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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14] 모에는 ‘본능’이다! 진화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모에론’

스마일게이트 김용하 PD의 ‘모에론’

김승현(다미롱) 2014-05-28 18:03:52
모에(萌え). 싹트다의 일본어 동사인 이 단어는 서브컬쳐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언제부턴가 '모에'란 단어는 어느 대상(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캐릭터)에게 열광하거나, 열광하는 대상의 매력을 설명하는 등 그 쓰임새가 넓어졌다.

서브컬쳐, 특히 일본 문화에 거부감 있는 한국에서는 특정 대상층을 제외하고는 모에라는 단어나 이와 관련된 어휘(?)를 쓰는 경우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게임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적지 않은 게이머가 일본(혹은 일본풍의) 서브컬쳐를 즐기고 있으며, 카드배틀 게임 붐 이후에는 이러한 화풍과 분위기가 어엿한 세일즈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모에라는 단어. 과연 이것의 명확한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개발자는 어떻게 하면 더 ‘모에한’ 캐릭터를 만들어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린 민메이’를 첫사랑이라고 밝힌 용기(?) 있는 남자, 스마일게이트의 김용하 PD의 ‘모에론’을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스마일게이트의 김용하 PD

‘귀여워~’와 ‘모에~’는 유사 감정. 모에란 ‘본능’이다! 


“주제 특성 상 이미지나 예시가 양성 평등(?)하지 못합니다. 여성 청중분들께서는 ‘로리’같은 단어를 ‘쇼타’ 등으로 ‘뇌내 변환’해서 이해해 주세요.”

김용하 PD의 웃음기 어린 양해문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다. 첫 주제는 ‘모에란 무엇인가?’였다. 김 PD의 말처럼 남성과 여성의 취향이 다르듯, 혹은 같은 남성 내에서도 로리지온(?)과 누님연방(??) 등 파벌이 갈리 듯, 무언가에 ‘모에’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다 다르다. 

하지만 김 PD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의 심리 기제를 파고들어 보면 이러한 취향은 결국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 뇌가 발달한 결과다. 가장 잉여한(?) 취미로 취급받는 서브컬쳐의 근간은 생존을 위해 발달한 인간의 마음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예시로 ‘초정상 자극’이라는 실험을 이야기했다. 한 연구자가 알을 품고 있는 새에게 실제 알의 특징을 흉내낸 가짜 알을 줬다. 그 알은 무늬나 모양이 다른 알과 똑같았지만 딱 한 가지, 그 크기만은 기존 알보다 월등히 컸다. 

거위는 이 가짜 알을 보자마자 자신이 품던 알을 버리고 가짜 알을 품었다. 거위의 눈에는 가짜 알이 그 크기 덕분에 우량종자로 인식된 것이다. 생존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거위의 뇌가 그렇게 판단했다.


서브컬쳐 마니아들이 가상의 캐릭터에 끌리는 것도 유사한 이유다. 진화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해 상대와 짝짓기를 하고 싶은 욕구(통칭 S 회로), 그리고 영유아를 보살피고 싶은 욕구(통칭 C 회로)가 내제되어 있다. 

S 회로의 영향으로 남성은 가슴이나 엉덩이같이 여성성이 두드러진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C 회로의 영향으로 눈이 크거나 몸집이 작고 둥근 아이의 특성을 가진 대상(설사 그것이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더라도)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 두 본능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서브컬쳐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 눈이 크거나 귀여웠으면 좋겠다와 같은 C 회로의 포인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보통 일반인(?)이 이성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요소를 분석하면 풍만한 가슴이나 넓은 어깨 같은 성적인 매력이 70%, 큰 눈 등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특성이 30%를 차지한다.

이러한 비율은 ‘모에’한 캐릭터를 분석하면 반대로 나타난다. 서브컬쳐 마니아는 일반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느낄 때 대상의 성적 매력보다는 큰 눈이나 미성숙한 행동, 양갈래머리(일명 트윈테일) 등의 귀여움에 더 많이 반응한다. 

즉, ‘모에함’을 느끼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C 회로의 비중이 높을 뿐, 그 감정의 근간은 다른 이들과 같다는 것이 김용하 PD의 설명이다.




귀여우면 장땡? ‘모에’한 캐릭터란 무엇인가


‘모에’한 캐릭터란 무엇일까? 단순히 귀엽기만 하면 끝나는 것일까? 아니다. 김용하 PD의 말을 빌리면 똑같은 ‘모에함’이라도 외형이나 색감, 성격 등 그 표현방식이 달라지고, ‘모에한’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색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케이온!>의 ‘히라사와 유이’라는 캐릭터는 크고 둥근 눈동자, 그리고 교복(=어린 나이)이라는 C 회로를 자극할 수 있는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케이온!>은 캐릭터들의 눈이 대부분 크고, 주요 인물이 다들 소녀라 교복이라는 요소도 묻힌다. 

오히려 ‘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하고, <케이온!> 안에서 그의 C 회로를 강화하는 요소는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캐릭터의 성격이다.



‘로리’ 캐릭터라고 해서 귀여움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린 소녀의 활동성을 나타내는 학교 수영복(일명 스쿨미즈)의 경우, 교복(?)이라는 상징 속에는 소녀의 살이 드러난다는 성적 코드가 숨겨져 있다.

로리 캐릭터의 대명사인 <테라>의 ‘엘린’같은 경우, 큰 눈이나 작은 체구, 동물 귀와 꼬리 등 귀여움을 강조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볼륨 있는 엉덩이와 허벅지, 피부에 들어간 하이라이트 등으로 섹시어필의 요소가 강하게 느껴진다.

어떤 캐릭터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모에’는 2차 성징을 거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상징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할 요소도 필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캐릭터의 경우 풍만한 가슴 같은 전통적인 섹시 어필은 물론, 제복이나 사슬 액세서리, ‘절대영역’(치마와 스타킹 사이에 노출되는 허벅지를 일컫는 용어) 같은 페티시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모에요소’가 모두 먹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캐릭터는 일관된 맥락도 없이 무분별하게 모에 요소를 사용해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캐릭터 안에 트윈테일, 고양이귀, 토끼귀, 악마 꼬리, 세일러복, 카츄사(메이드들이 머리에 하는 장식), 눈물점, 안대 등의 요소가 다 있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를 알아보고 매력을 느끼기 이전에, 절조 없는 디자인에 먼저 질릴 것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통합적인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모에 요소가 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80~90년대 같은 경우 ‘마법소녀’가 매력적인 모에 요소였지만 마법소녀 속성의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모에에 있어 최고의 레시피는 없고, 오로지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이 과제인 셈이다.




식상함을 넘어라! 갭모에(반전매력)와 L 회로


그렇다면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에 요소’란 없는 것일까? 김용하 PD는 이에 대한 답으로 세기의 아이돌(?)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아야나미 레이’의 예를 들었다. 레이는 평상시 말수도 적고 감정도 잘 표현하지 않는 기계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격인 ‘이카리 신지’에 의해 조금씩 변화하다가 결국 자신을 구하러 온 신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열게 된다. 무감정한 캐릭터가 신지에게 호감을 표하는 이 장면은, 신지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용하 PD는 아야나미 레이를 ‘갭모에’와 ‘L 회로’가 복합된 캐릭터라고 분석했다. 갭모에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캐릭터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면모를 보임으로써 매력을 어필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다. 가녀린 소녀에게 헤드폰 등 전문직의 이미지를 가진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식의 외형 요소로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의외의 성격이나 약점 등과 같은 맥락적인 장치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의 ‘아케미 호무라’는 작품 전반부의 이미지만 보면 무뚝뚝하고 인정사정없는 해결사의 이미지를 가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캐릭터의 과거, 그리고 그가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시리즈 최고 인기 캐릭터로 등극하게 되었다. 



L 회로는 사람이 호감과 애착을 가지게 되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일컫는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받은 대로 돌려주고 싶어하는 심리 기제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이는 잘 대해주고 싶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는 같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장치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혹은 독자)와 교감할 수 없는 ‘작품 속 캐릭터’에게는 이 호감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시청자가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에게 호감을 표함으로써 이뤄진다. 처음에 설명했던 레이의 경우 14세 소년다운 행동을 보여줬던 신지에게 호감을 표함으로써, 당시 신지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인 인상을 남겼다.

결국, 종합하자면 ‘모에’한 캐릭터는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의 조합과 이에 공감할 수 있는 맥락에 의해 탄생한다. 

‘귀여움’이라는 요소에 더 호감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미성숙하고 말썽쟁이인 ‘동생계’ 캐릭터가, 성숙함에 더 눈이 가는 이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른의 매력(?)을 풍기는 ‘누님계’ 캐릭터가, 평범한(?) 서브컬쳐 마니아에겐 소꿉친구나 동급생 같은 밸런스형 캐릭터가 더 모에하게 느껴지는 식이다. 

그리고 여기에 캐릭터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맥락이 존재한다면, 해당 캐릭터는 자신의 속성(?)과 별개로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다.




“최근 화제인 ‘오토코노코’(어딜봐도 여자지만 실은 남자인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음은 강연이 끝난 후, 김용하 PD와 청중 간 있었던 일문일답이다.

오덕계(?)에 유명한 격언으로 ‘휴덕은 있지만 탈덕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도 같다. 물론 업무나 일신상의 사정으로 서브컬쳐를 멀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식으로 한참으로 쉬는 친구도 많이 봤다. 하지만 모에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유전적’으로 선호하는 요소가 기호화된 것이다. 계기만 있다면 탈덕은 언제든 끝날 것이다.

참고로 나는 비슷한 이유로 ‘오덕’도 피에 의해 유전된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 얼마 전 ‘코믹’에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사촌동생을 목격했고,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단위로 ‘덕질’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오토코노코’(여자처럼 생겼지만 실은 남자)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는가?

모에요소를 찾고 찾다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가 아닐까? 오토코노코는 캐릭터의 성별을 반전 요소로 활용한 ‘갭모에’ 캐릭터다. 평상시에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남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반전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에 보여준 요소를 더욱 강력하게 어필하는 방식인데…. 

문제는 자신과 같은 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나로서는 오토코노코가 과연 서브컬쳐의 메이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청법’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두렵지 않다. 모에를 즐기는 이들은 범죄자가 아니고 범죄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모에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동 환호)


어떤 이는 모에라는 현상, 혹은 시대별로 선호하는 모에 요소에 대해 사회적 환경이 투영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모에를 이루는 요소는 유행이나 사회 현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귀여움을 선호하는 취향, 혹은 모에에 대한 선호도는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을 자극하는 것이 모에의 기본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BL(여성 취향 시각으로 보는 남성들의 동성애)을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화 심리학에 따르면 동성애라는 것은 진화에 필요한 요소다. 정확히 말하면 진화에 동성애가 좋은 영향을 주기에 아직 살아 남았다는 의견이다. 


강연에 쓰인 예시가 대부분 일본산 작품이다. 세션의 핵심은 모에가 유전적인 본성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서구권에서도 이런 작품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2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유전자적으로 모에 요소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체구도 작아 귀여움에 대한 선호가 높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서양인들이 개화(?)가 덜 된 것이 아닐까? (웃음) 사실 서양에서도 재패니메이션 등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체형이나, 미디어가 섹시함을 많이 강조하다 보니 이런 것이 동양보다 덜 주목받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꼬마버스 타요>나 <뽀롱뽀롱 뽀로로>도 모에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없다. 모에는 성인이 인지할 수 있는 섹시 요소가 함유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배제된 유아용 캐릭터나 팬시 캐릭터는 모에하다고 할 수 없다.


‘모에론 강연 후 김용하 PD에게 싸인을 요청하는 청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