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떠난 집을 되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은 직장이라면 더욱 어려운 일이겠죠. 오늘 소개할 곳은 넥슨을 떠났다가 NPC(Nexon & Partners Center)에서 자리잡고 퍼블리싱까지 함께하게 된 슈퍼비스튜디오입니다.
슈퍼비스튜디오는 넥슨에서 <버블파이터> <마비노기영웅전> 등의 해외 서비스를 담당했던 김종율 이사를 중심으로 경력 10년 차 이상의 개발자들이 모인 스타트업 입니다. 엠게임, 조이맥스, 딜루젼 스튜디오를 거친 김민석 PD가 메인 기획자로 함께하고 있죠.
이들이 출시를 앞둔 게임은 보드게임과 카드배틀게임을 결합한 <롤삼국지 for Kakao>(이하 롤삼국지)입니다. 지난 7월 넥슨 스마트온에서 처음 소개된 <롤삼국지>는 주사위를 굴리는 마블류 보드 시스템과 삼국지를 소재로 한 장수 카드로 전투를 펼치는 새로운 개념의 보드 TCG인데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슈퍼비스튜디오와 <롤삼국지>를 디스이즈게임이 만났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전략과 전투가 담긴 보드 게임 <롤삼국지>
<롤삼국지>의 기본 규칙은 지금껏 흔히 볼 수 있었던 마블류 게임을 따르고 있습니다. 보드판 위에서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만큼 말을 움직이고, 해당 지역에 영역을 표시하며 뺏고 뺏기는 전쟁을 펼치는 방식이죠. 한 번 획득하면 빼앗기지 않는 특별 지역 ’요새’(관광지)도 있고, 다양한 혜택이 제공되는 이벤트 ‘책략카드’ (찬스카드)도 있습니다.
<롤삼국지>만의 차별점은 뻔한 규칙 위에 ‘삼국지’를 입혔다는 점입니다. 위촉오 세 나라와 유비·관우·장비가 등장하는 ‘스킨’을 입힌 것 뿐만 아니라, 카드배틀 시스템을 통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전투’ 요소를 도입했죠.
주사위 외에도 게임의 핵심 요소에는 ‘장수 카드’와 ‘병력’이 있습니다. ‘장수카드’가 지역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표식이라면, ‘병력’은 돈과 건물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주사위를 굴려 특정 지역에 도착하면 플레이어는 해당 지역에 ‘장수카드’와 ‘병력’을 배치함으로써 점령할 수 있습니다. 기존 보드 게임에서는 이렇게 차지한 지역에 다른 플레이어가 도착하면 돈을 활용해빼앗게 되는데요. <롤삼국지>는 장수카드를 내밀어 전투를 해야 하는 거죠.
전투는 카드배틀 게임에서 볼 수 있듯 장수카드에 적혀있는 공방 스탯을 활용해 치뤄집니다. 만약 공격자가 전투에서 이긴다면 해당 지역을 뺏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방어자가 전투에서 이긴다면 공격자의 병력을 빼앗아 오는 방식입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병력을 바로 가질 수 없고, 징병 포인트로 적립된다는 것입니다. 이후 출발지였던 병영을 통과했을 때 누적된 징병포인트 만큼 내 손에 병력이 쌓이게 되죠.
또한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병력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 듯, <롤삼국지>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해도 기본 병력 피해량의 80%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만약 내가 보유한 현재 병력이 80% 피해량보다 적은 경우에는 상대에게 생포를 당합니다.
따라서 <롤삼국지>에서는 일반 마블류 게임처럼 단순히 영토를 늘리고, 건물을 세워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영토에 깔린 병력과, 전투에 따라 움직이는 병력을 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죠.
고? 스톱? 다양한 승리조건과 쫄깃한 심리전
전투에서 다른 군주(플레이어)의 병력을 모두 빼앗아 생포했다면, 처단·해방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처단’은 상대를 즉시 게임 오버시키는 것으로, 생포된 군주의 영토는 모두 초기화 됩니다.
반면 ‘해방’을 해주면 생포된 군주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데요. 이때는 두 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해당 영토에서 획득할 징병 포인트가 더 많이 싸이거나 다시 한번 생포했을 때 해당 군주의 영토와 장수를 몰수 할 수 있게 되죠. 혜택을 노리고 해방을 시켜 줬다가 상대가 승리 조건을 달성한다면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롤삼국지>의 승리 조건은 총 네 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30턴이 모두 종료된 상황에서 제일 우세한 상황일 때, 전투를 통해 모든 군주를 처단했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두의 마블>처럼 위·촉·오·요새 지역을 각각 모두 차지했을 때 ‘독점 승리’도 있죠. 여기에 삼국지 콘셉트에 맞게 모든 지역을 획득하는 ‘천하통일 승리’가 더해졌습니다.
독점 승리 상황이 되면 게임은 계속할지 아니면 그만둘지를 묻는데요. 이 때 그만하기를 선택하면 해당 게임은 종료되지만, 계속하기를 선택할
경우 턴오버 혹은 승리조건을 달성할 때까지 재개됩니다. 가장 좋은 보상은 천하 통일이겠죠? 물론 이때도 다른 플레이어가 승리조건을 달성하거나, 병력이 부족해
처단되면 독박을 쓸 수 있으니 신중한 결정이 필수입니다.
“보드게임 만난 전략 카드게임 <롤삼국지>, 30대 미드코어 유저 노렸다”
TIG> 마블류 보드게임은 1,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선례가 있다.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슈퍼비스튜디오 김종율 이사: 처음 게임을 기획하던 당시 <모두의 마블 for Kakao>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었고, 해외 시장에서도 <모노폴리> <부르마블> 류 게임이 모바일 시장에 한창 나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보드 게임을 좋아하지만 단순히 돈이 많으면 이기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전략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했다.
보드게임 기본적인 룰에서 벗어나 좀더 코어한 전투를 고민하던 차에 그
답을 ‘삼국지’에서 찾았다.
보드나 말에 스킨을 입히는 것 뿐만 아니라 아예 전투 시스템을 넣은 거다. 전투 끝에 얻은
병력이 바로 들어오지 않는 다든지, 이긴 사람도 병력에 피해를 입는 것도 전투 게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출시에 앞서 진행한 테스트에서 가장 즐거웠던 피드백이 “생각 없이 땅을 모았더니 지네요”라는 말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기존 보드게임과 흡사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전혀
다른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TIG> 결국 보드게임과 카드배틀 두 장르가 결합됐다는 얘기인데, 핵심 재미 요소는 무엇인가?
김종율: 지금의 모바일게임 시대에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고, <롤삼국지>의 궁극적인 재미 ‘땅을 따먹는 것’에 있다. 이는
보드 게임의 추구하는 재미이기도, 카드배틀이나 <삼국지> 같은 전략게임이 추구하는 재미이지 않나.
다만 과정이 복합됐다. 돈으로
땅을 구입하는 보드게임의 재미에, 병력을 운용하는 전략게임의 재미를 더했다. 전투 방식은 카드배틀 게임을 따랐고.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삼국지의
세계관도 녹여 냈다. 원작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수들과 군주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캐주얼한 유저보다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경험이 있는 30대 내외의 미드코어 유저를 타깃으로 개발됐다. 솔직히 말해서 게임이 쉬운편은 아니다. 그만큼 튜토리얼에 공을 많이 들였다.
TIG> 하지만 전투가 카드배틀로 진행되다 보니 결국 좋은 카드를 얻지 못하면 그만 아닌가?
슈퍼비스튜디오 김민석 PD: PVP 중심의 게임은 결국 상대를 이기는
게 목적이다. 다른 사람보다 강해지기 위한 과금 모델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유저가 타인보다 카드가 좋지 않아서 진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다음 행동이다.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기획 단계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굳이
결제를 하지 않아도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롤삼국지>는 비과금 유저도 대부분의 콘텐츠를 다 이용할
수 있도록 뽑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비과금 유저는 조금 늦더라도 해당 콘텐츠를 다 얻을 수
있으며, 빠른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과금을 하는 구조다.
또한 과도한 페이투윈을 막기 위해 카드 스펙에 따라 ‘제후-왕-황제-패왕’ 네 단계로 필드를 구분했다.
각 필드는 사용할 수 있는 카드 코스트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SS급 장수카드를 많이 가져도
제후 단계에서는 해당 카드를 다 사용하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양민학살’은 없을 거다.
TIG> 주사위도 별도의 기능이 부가되나?
김민석: 없다. 물론 주사위는 매력적인 비지니스 모델이어서 그 부분은 퍼블리셔인 넥슨과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당분간은 넣을 계획이 없다. 이미 주사위 자체가 확률이 들어가기 때문에, 전략을 강조하는 <롤삼국지>에서는 더 이상의 변수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뺐다.
TIG>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 보기 전까지 겉모습만 보고는 유사성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김종율: 알고 있다. 마블류 게임에서 시작했으니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차이점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유저들에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지는 퍼블리셔의 몫인 것 같다. 우리는 <롤삼국지>만의 특색을 살리기 위한 콘텐츠 개발에 힘쓰겠다.
“일확천금 보다는 유저들에게 좋은 평가 받고 싶다”
TIG> 팀원들의 이력이 눈에 띈다. 특히 김종율 이사는 넥슨을 나와서 다시 넥슨 품에 안겼다. (웃음)
김종율: 넥슨 출신이라 덕보지 않았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솔직히 핸디캡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정말 퇴사 당시만해도 다시 넥슨과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웃음) 함께 나온 개발자도 능력이 좋아서 어떻게 보면 배신자로 비춰질수 도 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쿨’하더라. 철저하게 게임만 보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만 평가 받았다.
TIG> 오랜시간 사업 PM으로 활동하다가 직접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계기가 있나?
김종율: 넥슨의 해외 사업 PM은 포지션이
독특하다. 단순히 일정 조율이나 현지와의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게 아니라 개발팀에 파견된다. 현지화 전략부터 게임 기획, 이벤트 콘텐츠 기획까지 전부 PM이 함께 한다. 넥슨 해외 조직이 탄탄한 이유다.
그렇게 해외 사업 PM으로
오래도록 일하면서 기존 게임에 살을 붙이고 로컬라이징 작업을 하다 보니 ‘내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혼자서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고, 10장에서 20장, 100장 쌓여 갈 때 쯤 슈퍼비스튜디오를 만들게 됐다.
TIG> 김민석PD의 이력도 독특하다. <오디션> <쌩뚱맞고> <범피크래쉬> <베이스볼 히어로즈> <가디언스톤>까지 지금껏 참여한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게임이 없다.
김민석: 일단 스타트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대형 회사의 경우 파트가 나눠져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기획은 할 수 있지만,
큰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스타트업은 다양한 역량을 발휘하기 좋다. 또한, 개인적으로 기획자는 하나의 장르만 좋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게임을 접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 수 있으니까.
물론 슈퍼비스튜디오가 스타트업이어서 합류한 건 아니고 게임 초기 기획부터
조언을 주며 함께 해 왔다. 김 이사님이 게임개발이 처음이다 보니, 상상했던
것과 막상 구현해 놓은 것에 괴리감을 많이 느끼더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합류를 결정했다.
TIG> 어려운 시기에 도전이다. 목표가 있다면?
김종율: 게임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 붙었다. 사업 직군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2년~2013년 태동기, 황금기를 놓친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띄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재미는 필수 요소이고, 트렌드라든지 운영도 중요하다.넥슨에게 퍼블리싱을 맡겼지만, 유저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직접 운영에도 직접 참가한다. 매출 얼마, 순위 몇위 이런 걸 목표로 하지 않겠다. <롤삼국지>로 일확천금을 노리기 보다도, 좋은 게임으로 많은 유저들에게 인정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