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rsity(다양성). 이번 NDC 2016의 슬로건이다. 정상원 넥슨 코리아 부사장은 NDC 2016 첫 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단에 올랐다.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정상원 부사장은 모바일게임의 다양성에 생물학적 관점을 대입해 강연을 풀어나가며 모바일게임이 직면한 현실과 지향할 방향을 설파했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정상원 넥슨 코리아 부사장
모바일게임 다양화 더욱 힘들어져, 뭘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을 것
정상원 부사장은 “지금 뭘 만들어야 하나 고민 중인 개발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요즘 모바일게임을 보면 그래픽도 멋지고 요즘 트렌드와 함께 적절한 BM과 자동 전투도 들어있다. 그런데 개발자의 입장에서 모바일게임에 적절한 BM을 넣거나 게임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자동전투를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바일게임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어렵다. 더군다나 요즘 유저들은 모바일게임을 대부분 ‘킬링타임’용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모바일게임의 디자인이 더욱 단순해지고 있다.
모바일게임의 다양화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또 있다. 보통 개발자들이 게임을 개발한 뒤, 홍보팀이 게임을 홍보해 매출을 거두고, 그 매출이 다시 개발에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개발보다 홍보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이상한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두 알지만, ‘초코파이’를 누가 생산하는지는 모르는 것처럼 일부 영역에서는 게임이 공산품화 돼 가고 있다. 마치 만들어진 초코파이가 대형 마트의 어떤 위치에 진열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진열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매출과 비용의 흐름도 이를 따른다.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들보다 게임이 진열되거나 소개되는 메신저, 플랫폼, 홍보 비용으로 쓰이는 돈이 점점 많아지다보니 정작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바일게임은 온라인게임보다 이러한 경향이 훨씬 심하다.
그렇다면, 최근 모바일게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이 바뀔 여지는 있을까?
고등 생물들은 왜 굳이 수고로운 유성 생식을 택했을까?
주로 하등 생물들이 번식할 때 택하는 방법 중, 무성 생식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암수구분없이 하나의 개체가 쪼개져 번식하는 것으로 유전 형질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호날두가 무성생식하면 아들도 호날두, 메시가 무성생식하면 아들도 메시가 되는 식이다.
무성생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당연히 예상한 결과가 도출되며, 위험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고등 생물들은 수고로운데다가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예측도 할 수 없는 유성 생식 방식을 택한 것일까?
환경이 바뀌어도 생존할 수 있나? 적자 생존의 역설
정상원 부사장은 이유를 ‘적자 생존의 역설’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적자 생존의 ‘법칙’이 아니라 ‘역설’인 이유는 적자가 생존한다는 결론이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룡은 살아가던 시대의 기후와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으나 멸종했다. 운석 충돌설, 바이러스 감염설 등 멸종에 대한 여러가지 가설들이 있으나, 결국은 환경이 변했을 때 생존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는 호주 토끼 전쟁 예를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생태계에서는 약자에 속하는 토끼가 1900년도 초, 처음 호주 대륙에 뿌리내렸을 때는 십여 마리에 불과하던 것이 몇 년 뒤 3억 마리로 증식했다. 호주 토끼의 경우, 상위 포식자가 없다는 환경 때문에 끝도 없이 늘어난 것이고 결론적으로 환경에 따라 살아남은 것이다.
무성 생식의 리스크를 피부로 느끼기 위한 사례로는 바나나를 들 수 있다. 바나나는 사실 1960년대에 한 번 멸종했었다. 이유는 전 세계 바나나의 유전자가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나나에 치명적인 곰팡이가 창궐했을 때, 바나나의 유전자가 모두 동일하지 않았다면 그 중 하나의 유전자 정도는 곰팡이를 이겨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나나가 멸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새로 개발한 지금의 바나나도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또 다시 바나나에 위협적인 환경이 조성되면, 우리는 바나나를 먹기 위해 또 다른 유전자를 가진 바나나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환경은 계속해서 변한다.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무성 생식과 같이 성공작들을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리스크를 지닌 유성 생식, 즉 다양성을 기반으로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얼마 전 어떤 주제에 대해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갔었다. 그 자리에서도 들은 것이고, 업계나 유저나 다들 공감하는 내용이다. VC(벤처 캐피탈)들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퍼블리셔가 좋다고 하는 게임에 투자한다. 퍼블리셔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유저들이 좋아하는, 유저들이 지갑을 여는 게임을 선택한다.
현재 모바일게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바로 성적표가 나온다는 것이다. 게임을 업데이트하거나, 신작이 나오면 성적표가 즉각 들이밀어지니 눈 앞의 성과를 피해 모험을 하기 어렵다. 이렇게 모든 업체가 경쟁에 내몰려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커버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은 그런 팀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푸드코트와 미슐랭 3스타, 회사의 선택은?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요즘 고민은, 우리가 너무 포트폴리오를 낚시하듯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치 낚시를 할 때 매우 가까운 곳(익숙한 곳)에 낚싯대를 10개만 드리워 놓고 기다리는 것처럼. 과연 내가 진짜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걸까? 진정한 의미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낚싯대의 길이가 은하 규모로, 다양성을 더욱 큰 범위로 확장해야 한다. 설사 이해가 안 되더라도, 다양성을 위해 한 번씩은 해 봐야 한다.
롯데월드 푸드코트에 가면 전 세계의 음식들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 푸드코트 운영 측은 맛집을 입점시킨 뒤 그들이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자유롭게 경쟁시키며, 사람들은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먹는다. 반면, 미슐랭 3스타는 쉐프가 모든 과정을 통제하며 고퀄리티의 음식 몇 가지를 제공한다.
양쪽 다 고객의 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둘 중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 인지는 회사의 몫이다. 다만, 진정한 의미의 포트폴리오라는 측면에서는 푸드코트의 방식이 조금 더 낫다.
마켓 리더의 저주,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퍼스트 어드밴티지(First Advantage)를 누린 게임들 중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다. 온라인게임 중에서는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 <리니지>, <바람의나라> 등이 각자의 장르에서 퍼스트 어드밴티지를 누리며 성공한 명실상부 1등 게임들이다. 모바일의 경우도 비슷하다. <모두의 마블>, <세븐나이츠>, <블레이드>등이 퍼스트 어드밴티지를 누렸다.
이들의 특징은 ‘새로 개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나올 법 하다’라고 여겨지던 상황에서 기존의 게임이 부족했던 점 몇 가지를 보완한 뒤 출시했고, 크게 성공했다. 퍼스트 어드밴티지가 없더라도 큰 개발비와 홍보비, 회사의 역량을 총 동원해 모든 것을 걸고 이미 자리잡은 타이틀에 도전한다면 승산은 있다.
패키지게임이 침체돼 있을 무렵, 인터넷이 국내에 소개됐고 온라인게임 개발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패키지게임이 온라인게임에 비해 비교우위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라인게임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대세가 바뀐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을 ‘마켓 리더의 저주’라고 부른다. 기존의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으니,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기 충분하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세상의 변화에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실 나도 다양성을 만들기 위한 정답이 뭔지 잘 모르겠다. 알게 된다면 계속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게임이라는 비즈니스는 흥행 비즈니스다. 어제 1부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레스터시티라는 축구 팀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그들은 2015년, 2부에서 1부로 올라온 뒤 내내 꼴지를 지키고 있다가 우승 팀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심지어 이 팀이 이길 확률을 도박사들은 1/5,000으로 예상했다. 이런 종류의 서프라이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게임 개발도 마찬가지다.
정상원 부사장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저들이 평소에 잘 알지 못하지만 막연하게 찾고 있는 무엇, 현재 시장을 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장에 나와있지 않은 것 중 흥미를 끌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개발자들은 지금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