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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6] ‘거지키우기’를 통해 발견한 좋은 게임의 또다른 기준

마나바바 이동수 디렉터가 <거지 키우기>를 통해 얻은 게임의 성과, 그 속에서 찾은 메시지

정혁진(홀리스79) 2016-04-27 19:01:46

‘허술하고 부족하면서, 매번 유저에게 쫓겨가는 게임’. 마나바바의 이동수 디렉터가 강연을 통해 자사의 <거지 키우기>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단어만 놓고 보면 매우 부족한 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동수 디렉터는 <거지 키우기>는 완벽하게 게임을 만들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기존 문법과 정반대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뛰어난 그래픽과 콘텐츠, 시스템은 아니지만 단순하면서 유머를 유발하는, 유저들과 소통을 하면서 부족함을 보완해 가는 게임. <거지 키우기>는 그렇게 고정된 성공 방정식을 벗어나 조금 더 ‘인디스러운’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아갔다. 그 결과 100만 다운로드 돌파, 양대 게임마켓 1, 2위에 오르는 등의 성적을 거뒀다.

 

‘거지’라는 의외의 소재, 태블릿이 아닌 마우스로 한 땀 한 땀 그려가며 완성한 캐릭터. 허접하고 간단하지만 부족함에서 여유를 찾은 <거지 키우기>는 거지 같은(?) 게임을 개발한 마나바바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이동수 디렉터를 통해 게임의 성과, 그 속에서 마나바바가 얻은 ‘좋은 게임’의 의미를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마나바바의 이동수 디렉터.

 

최근 <거지 키우기>에 대한 인기가 많아졌음을 실감한다.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치관 중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생을 살면서 ‘거지’에 대한 비호감을 거둔 계기가 됐다는 정도?(웃음).

 

<거지 키우기>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멋모르고 거두게 된 성과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문뜩 알게 됐다.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마케팅을 어떻게 했는지, 홍보에 비용은 얼마를 투자했는지 묻기 시작하더라.

 

물론 민감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어렵지 않게 대답해드렸다. “마케팅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굳이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쭤보면 ‘마케팅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못 했다’라고 답한다. 꽤 단순하다.

 


 

마케팅은 하지 않았음에도 운 좋게 입소문을 많이 탔다. 유저분들이 알아서 입소문도 해주시는가 하면 블로그 포스팅이나 게임 내 카툰이 업로드되기도 했다. SNS에 자신의 거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덕분에 구글 인기게임 2위, 애플 무료게임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감사드린다.

 


 

소통을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도 오픈했다. 유저들이 게임에 남긴 리뷰나 평점에 댓글을 달곤 했는데, 구글플레이는 간편하지만, 애플 앱스토어는 달기가 꽤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어서 페이지를 개설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벌써 좋아요가 10만 개가 넘었다. 

 

운영자가 직접 소통하는 콘셉트보다 게임 내 등장하는 외계인을 페북 덧글지기로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설정으로 한 것을 많은 분께서 좋아해 주신 것 같다. 질문이나 건의에 최대한 정성껏 답하려다 보니 다른 열성 유저들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더라. 덧글지기 대신 질문에 답을 할 정도였다.

 

시기적인 운도 많이 따랐다. 당시 금수저, 3포세대, 88만 원 세대, 헬조선 등을 다룬 사회 현상, 기사들이 나오던 때였다. 주요 언론들도 그들 나름의 시선으로 해석한 기사를 쓰곤 했다. 그런데 그때쯤 뉴스에서 30년을 구걸에 16억을 모은 부부가 기사화되며 화제에 올랐다. 덕분에 <거지 키우기>가 뜻하지 않은 버프 효과를 받았다.

 


 

그러던 도중, 우리는 냉정해지고 <거지 키우기>가 성공을 거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을 테니 그 점에 대해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인기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종합됐다. ▲ 폭넓은 유저층을 확보해 나름 ‘착한 게임(Good Game)’을 만들었다는 것, ▲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는 ‘가벼운 게임 (Light Game)’, ▲ 튜토리얼 조작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쉬운 게임(Easy Game)’, 마지막으로 ▲ 엉뚱하면서 재미있는 카툰 식의 ‘스토리 게임(Story Game)’ 등이다. 

 

처음부터 이런 네 가지가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게임 속에서 유저들이 이런 부분에 의미를 두고 좋아해 주신 것 같다.

 


 

추가로 앞서 말한 유저들의 자발적 마케팅도 있다. 온라인 배틀 형식이 아니다 보니 학생들에게서는 많은 인기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스스로 오프라인 배틀을 붙기도 하더라. 같은 반끼리 모여서 1주일 안에 거지 키우기 경쟁을 벌여서 지는 사람 계정을 초기화하는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보는 화면은 <거지 키우기>를 출시하고 4일 만에 남겨진 댓글이다. 애써 게임을 하면서 돈을 모아 미술품도 사고 기업도 키웠는데, 자고 일어나니 아무것도 없다더라. 이후 댓글로 양해의 말씀을 드리면서 저장 기능도 추가하면서 하나둘씩 업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그레이나 쌈디 등 연예인들이 SNS에서 자신이 <거지 키우기>를 하고 있다는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몇몇 걸그룹 멤버들도 그렇고. 심지어 엑소의 찬열도 한다고 하더라. 팬 중에는 이 게임에 관심이 없다가 찬열이 한다는 말을 듣고 ‘찬열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덧글을 남겨주시는 분도 있었다(웃음).

 




 

어떻게 생각하면 <거지 키우기>는 완벽하지 않은 게임, 갖춰지지 않은 모습에서 점점 보완해 나가는 형태의 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픽과 리소스, 밸런스, 현실감을 추구하는 프로들의 세계를 우리도 존중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듯 우리는 우리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반대인 셈이다. 좋은 게임은 결국 ‘유저가 간단하고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월드컵 얘기를 하면서 맺겠다. 당시 월드컵을 보면서 생전에 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나바바도 <거지 키우기>와 같은 성공을 거둔 게임이 또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월드컵 때 차두리 선수가 4강 성적을 두고 ‘어제 내린 눈’과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인디게임을 개발하는 이, 게임 개발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마나바바도 좋은 게임 선보일 수 있도록 다 함께 힘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