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실제 전염병의 통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최근 영국 과학자들이 온라인게임을 통해 사스(SARS) 같은 전염병이 확산될 때의 영향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1일 영국 BBC는 블리자드의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이용해 게임 속에서 전염병이 퍼질 때 유저들의 반응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를 수행한 투프츠 대학 의학과 니나 페퍼먼 교수는 "인간의 습성은 전염병의 확산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고 "가상세계는 인간의 습성을 연구하는데 뛰어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 유명했던 <WoW>의 '오염된 피' 사태를 활용
이번 연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보스급 몬스터 중 하나인 '학카르'가 사용하는 스킬 '오염된 피'를 소재로 선택했다.
오염된 피는 유저에게 일정 시간 마다 피해를 입히는 마법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전염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 유저들 사이에서 전염이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학카르를 잡으러 갔던 유저들은 게임의 기획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일을 야기시켰다. 오염된 피에 감염이 된 상태로 아이언포지나, 오그리마와 같은 대도시에 돌아와 버린 것이다.
마치 영화 <28일 후>에서 본 것처럼 이 치명적인 전염병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일종의 '보균자'인 유저들은 근처에 있던 다른 유저들을 감염시켰으며, 체력이 낮은 저레벨 캐릭터들은 거의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불상사를 맞이했다.
'오염된 피 사태'는 곧 게임 속 사회를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일부 서버에서는 수천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게임 속 가상의 일이지만, 이런 전염병의 확산은 보건당국에서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 <WoW> 유저들의 반응 토대로 연구 진행
예치기 않은 전염병 사태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죽어가는 다른 유저들을 치료하다가 자신도 감염 되는 사람도 있었고, 전염병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달아나는 유저들도 있었다. 소수의 유저들은 마치 역학조사를 하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감염자들을 조사했으며, 어떤 감염자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병을 퍼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니나 페퍼먼 교수는 B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유저들의 반응이 놀랄만큼 현실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 현재 전염병의 확산에 관한 연구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실제로 전염병을 퍼뜨릴 수는 없다.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실험에 제약은 없지만, 수학적으로 얼마나 인간의 습성에 근접했는가 여부가 관건이 된다.
니나 페퍼먼 교수는 "유저들은 자신이 실제로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으며, 비록 게임일 뿐이지만 감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가상 세계야 말로 이 두 모델의 간극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니나 페퍼먼 교수의 연구팀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모델을 통해 전염병 발생시의 인간의 습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오염된 피'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자 이후 패치를 통해 플레이어 사이에서 전염이 되지 않도록 조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