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을 공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문만 무성하고 이렇다 할 만한 지침조차 없는 미지의 상황에서, 한일 게임 현지화 전문가인 '팀 나야나' 이경훈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은 운이 따라야 하지만, 실패는 릴리스(배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정해집니다."
소규모 개발사가 어떻게 일본 시장에 진출해야 할지, <어비스리움>과 <빅헌터>의 사례로 알아보자.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이경훈 대표는 한국과 일본의 소규모 개발사 게임을 현지화하고 양쪽 시장에 특화한 마케팅을 기획하는 '팀 나야나'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마케팅을 거친 게임은 일본 게임으로는 <헌트쿡> <두근두근 말왕자님>으로 국내에서도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역으로 국내 게임 중에서는 <어비스리움> <빅헌터>가 이 대표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가 보는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이 대표는 "소규모 개발자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정리했다. 올해 초 한국에서도 이슈가 된 <엄마가 게임을 숨겼다 2>는 2인 개발자 게임으로, 출시한 지 2주만에 글로벌 3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일본 공중파 방송 덕분에 단숨에 차트를 뛰어오른 <정말 미친 롤러코스터> <외톨이 행성>의 사례도 있다.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이 까다로운 것은 맞지만, 이런 '역주행' 사례가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두 배 이상 빈도가 높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비중이 90% 이상인 한국과 달리 (애플)앱스토어의 비율이 높은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한 쪽에서 어렵더라도 다른 마켓에서 반등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한 번의 기회가 소중한 개발자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는 셈이다.
심야에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는 게임 소개 방송, 각종 게임 실황 스트리머와 막강한 트위터 바이럴도 장점으로 꼽았다. 전반적으로 돈을 들이지 않아도 발품을 팔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 사전예약 마케팅을 도와주는 '예약 탑 10' 등의 서비스도 있지만 너무 많은 비중을 둘 필요는 없다고 한다.
트위터를 통한 바이럴이 막강하기 때문에 트위터 유료 프로모션은 효과가 있는 편. 실황 스트리머를 통한 마케팅을 할 때 '우리 게임이 실황 방송을 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인가'를 먼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 트위터 바이럴에 최적화한 <어비스리움>의 사례
"다른 지역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지만 일본에서는 트위터입니다. 트위터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트위터 확산을 신경써야 합니다."
이 대표가 <어비스리움> 일본 론칭을 도울 때 트위터에서 잘 확산되도록 많은 부분을 신경썼다. 게임 이름도 <심해정원>으로 바꾸려 했지만 일본 개발자들의 의견을 들은 결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온 의견이 의외였다. 컬래버레이션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다.
컬래버레이션 콘텐츠는 까다롭다. 그냥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 <어비스리움>이 론칭 컬래버레이션 상대로 결정한 것은 <살아남아라! 개복치>였다. 평소 친분이 있던 <살아남아라! 개복치> 개발자로부터 흔쾌히 승낙을 받아 개복치가 어비스리움에 등장하게 되었고, 결국 좋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 뒤 바이럴이 활성화되도록 최적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어비스리움> 공식 트위터 계정에 다섯 번 방문하면 숨겨진 물고기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게임이라면 트위터에 게임 화면을 공유했을 때 아름답거나 재미있게 보이도록 신경썼어야 했지만, <어비스리움>은 그래픽이 뛰어난 덕분에 그 부분에서는 많이 손대지 않았다.
"보통 트위터 공유를 시키면 어떤 유저들은 게임용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거기에만 올립니다. 그런 계정은 팔로워도 없고, 공유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냥 공유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본 계정에 올려도 괜찮을 정도로 예쁘거나 재미있거나, 혹은 유머스러워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게임 배포를 시작했다. 바이럴이 잘 됐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2주만에 일본 앱스토어에 피처드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다. <포켓몬 GO>가 등장한 것이다. 다운로드 순위가 올라가지 않는 것뿐 아니라, 신규 다운로드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대표는 기존 유저와 트위터 바이럴에 힘을 실었다. <어비스리움>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글을 계속 리트윗하거나 '감사합니다'라는 멘션을 달고 팔로우했다. 또 <포켓몬 GO> 론칭 당시 폭염이었던 것을 감안해 "낮에는 시원한 실내에서 <어비스리움>을 하고, 밤에는 나가서 <포켓몬 GO>를 하세요" 라고 어필했다.
<어비스리움>의 트위터 사랑은 계속됐다. 일본 트위터 유저들에게 투표를 받아 신규 물고기 업데이트 순서를 정했고, 개발사에 건의해 일본 유저들에게 컬트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산갈치'를 추가하기도 했다. 산갈치는 몸집도 크고 뱀처럼 긴 물고기라 개발사는 난색을 표했지만, 막상 넣으니 과금 유저가 크게 늘었다.
이외에도 <어비스리움> 하이쿠 짓기 이벤트, 유저가 보낸 감동적인 사연 공유하고 겸손한 감사 표현 등 트위터 운영에 큰 공을 들였다. 이 대표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할 때 주의점을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항상 정직해야 합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설프게 넘어가려 했다가는 애정이 미움으로 변합니다. SNS는 소문 나는 것도 굉장히 빠릅니다. 잘못이 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해야 하고요. 과금 관련해서 문제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험이긴 하지만 일본 유저는 과금 관련해서는 거짓말이 거의 없어요. 반영이 안 됐다고 하면 달리 요구하는 것 없이 바로 처리해주고, 덤을 조금 주면 좋아합니다. 유저가 우리 편이 되어줍니다. 일본 회사보다 낫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 일본 사람들은 무기를 싫어해? <빅헌터>의 사례
글로벌 900만 다운로드. 인디개발사 카카로트 인터랙티브가 <빅헌터>의 일본 서비스를 도와달라며 이 대표에게 연락했을 때의 성적이다. 당시 <빅헌터>는 북미와 러시아, 남미에서 특히 성과가 좋았고 그외에도 여러 곳에서 다운로드가 많이 일어났다.
반응도 좋은데, 일본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다운로드가 없었다. 이 대표는 분석에 들어갔다. 다른 지역에서는 성과가 좋은데 왜 일본만 반응이 없을까? 이 대표는 먼저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일본어 로컬라이징은 권장이 아니라 필수다.
앱스토어에서 게임을 미리 볼 수 있는 스크린샷과 동영상에도 외국어 없이 일본어만 나오거나 아예 언어가 없어야 한다. 영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일본 유저들은 조심성이 많아서 해외 앱을 설치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다고 현지화만 하면 되나? 그것도 아닙니다. 영어 버전을 플레이한 일본인 유저나 개발자 분과 대화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맘모스에게 창을 던지는 것이 불쌍하다' 래요. '아프겠다', '동물 학대 아니야?' 라는 반응이 옵니다. '이 무슨' 싶었는데."
일본어를 추가하고 게임 용어와 세계관을 바꿨다. 굶어가는 부족을 위해 부족장이 사냥을 나간다는 스토리에서 '부족장'을 '아버지'로 바꿨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맘모스를 잡으러 간다는 이야기가 됐다. 일본의 전통적이고 '짠한' 아버지 상에 호소한 것. 게임을 접한 유저들의 반발이 줄어들었다.
용어도 바꿨다. '무기'나 '웨폰'이라는 말 대신 '사냥도구'로 순화했다.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본 게임 <헌트쿡>도 '사냥도구'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동물을 죽인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카카로트 인터랙티브의 <빅헌터>
마지막으로 <어비스리움> 개발사에 게임 소개를 부탁드렸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한국 게임끼리 돕는다는 의미로 리트윗 좀 부탁드린다고 했어요. 흔쾌히, 인디개발자의 정으로 해주셨습니다. <어비스리움> 일본 트위터 계정 팔로워가 3만이 넘거든요. 돈으로 따지면 노출당 10원씩 받아도 모자랄텐데. 많이 감동했어요. 그래서 초반엔 이렇게 도움을 받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손을 댄 <빅헌터> 일본어 버전이 배포되자 일본 앱스토어에 바로 피처드가 됐다. 이 대표는 앱스토어 피처드 조건 중 하나가 현지화라고 추측한다. 이후 게임 소개와 스크린샷, 영상을 담은 프레스킷을 만들어 일본 게임 매체에 리뷰를 부탁했다. 반응이 좀 늦긴 했지만 30번 넘게 부탁하고 발품을 팔았더니 리뷰가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복병이 등장했다. <어비스리움> 때는 <포켓몬 GO>가 나타났는데, <빅헌터>에는 넷이즈의 <음양사>가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개발자의 장비가 고장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결국 업데이트가 한 달이나 늦어졌다. 그래도 2월 말 기준, 일본 다운로드가 35만이 넘었다. 0에 가까웠던 초반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조금 더 잘될 수도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개발자님과 메신저로도 이야기하고 직접 만나뵙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분, 욕심이 참 없으세요. '원래 일본 쪽에서는 반응도 없었는데, 지금은 다운로드도 나왔다. 돈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라, 많은 분들이 게임을 재미있게 해주시는 것이 좋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것이 참 인디스럽고 좋았습니다. 유저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 세계 유저에게 퍼져서, 지금 <빅헌터>는 글로벌 1,200만 다운로드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게임은 없지 싶어요."
# 성공은 운이지만 실패는 배포 전에 정해진다
이 대표는 일본 진출을 생각하는 소규모 개발자에게 몇 가지 조언을 남겼다.
먼저 게임에 명확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 일본 시장에서도 이미 잘 만든 게임이 많이 있다. 만듦새는 기본이요, 특이한 유머나 장르 등 무언가 한 가지는 튀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이럴 포인트가 잡히는 건 물론, 공중파나 실황 방송의 찬스도 얻을 수 있다.
바이럴 요소를 미리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산이 적은 입장에서 가장 극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임 이름과 링크를 공유하면 '나홀로 계정'에서만 업로드될 뿐이다. 내 공식 계정에서 업로드하고 싶은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이 트윗을 본 사람이 공유하거나 게임을 해보고 싶은지, 공식 계정 방문과 팔로우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 고려해서 공유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대표는 가장 바람직한 참고 자료로 <어비스리움>과 <헌트쿡>을 꼽았다.
"그림을 고쳐야 한다든가 이런 얘기는 안 합니다. 하지만 이건 꼭 말씀드립니다. 트위터. 우리나라처럼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것도 없습니다. 페이스북만 넣고 나가면? 바이럴은 기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식 트위터 계정 운영은 장기적이어야 합니다. 유저가 쌓이면 서비스가 오래 노출되는 건 물론, 그 자체로 막강한 마케팅 수단이 됩니다."
이 대표는 일본에 진출하기 전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일본 시장과 유저의 성향 뿐 아니라 내놓을 게임도 포함한다. 게임에 '엣지'라고 할 만한 특징이 있는지, 일본 유저가 좋아할 만한 것인지 미리 알아보고 해외 게임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해 적용해야 한다.
게임을 출시한 후에는 홍보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이 대표는 60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90일은 너무 늘어지고, 30일은 너무 짧다. 60일 동안 열심히 홍보를 하고 대형 업데이트도 해보라는 것이다. 또 구글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피처드가 늦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조언했다.
피처드, 매체 리뷰와 방송 모두 다운로드를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은 운의 영역이다. 개발자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준비 작업은 실패 방지 영역입니다. 컨트롤이 가능해요. 이리저리 잘 검토하고 머리를 맞대서 게임을 준비하고. 여기만 잘 하셔도 실패는 없으실 겁니다. 하지만 출시 후 성공을 좌우하는 부분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사실 운에 가까운 부분이죠. 그러니까 60일 동안 정해진 활동을 열심히 하세요. 포기하지 마시고 끈질기게."
<어비스리움> 역시 슬로우스타터였다. 꾸준히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다보니 갑자기 리트윗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게이머, 일본 게임 매체 '패미통' 편집자, 아이돌 가수 등 많은 팔로워를 지닌 유저가 <어비스리움> 게임 소개 트윗을 리트윗한 것이다. 트위터를 통한 바이럴이 강한 나라이다보니,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사람이 운을 부른다'고 조언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물론, 한국의 인디 게임을 앞장 서서 선전하고 게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는 한일 개발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언젠가 한국과 일본의 인디 개발자가 공동 프로젝트를 할 때 중요한 다리가 되어드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