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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7] “참사를 극적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애프터데이즈’ 개발기

네팔 대지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기능성 게임 <애프터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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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이(세이야) 2017-04-28 16:20:50

2015년 4월 25일. 히말라야 산맥 아래 아름다운 나라 네팔은 아비규환이 됐다. 규모 7.8의 대지진이 나라 전체를 덮친 것이다. 가옥의 90%가 파괴되고, 국토 전체가 남쪽으로 3m나 이동했다. 구호 단체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만큼의 대참사였다.  

 

도민석 겜브릿지 대표는 크게 충격 받았다. ​세월호 참사 후 약 1년.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사람들은 지진이라는 참사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지진 안전 지대였다. 

 

 

 네팔 대지진의 참상을 다룬 게임 <애프터데이즈>를 개발한 겜브릿지 도민석 대표


 

하지만 도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땅을 밟고 사는 이상 지진은 네팔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약 한 달 간, 전 세계의 지진 발생 현황을 모니터링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달 사이에만 진도 4.5 이상의 지진이 391회 발생한 것으로 관측됐다.

 

지진은 비극적인 재난이다. 예방할 방법이 없으며 일단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땅을 밟고 사는 생명체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도 대표는 고민했다. 네팔 참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알리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공감해 주길 바랐다. 대학원에서 기능성 게임을 공부하던 도 대표는 네팔 대지진을 게임의 소재로 선택했다. 겜브릿지의 첫 모바일게임 <애프터데이즈>가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몰입과 공감은 ‘재미’없이 불가능하다​

  

비극적인 상황이나 장면을 보면 사람은 보통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을 직접 돕는 일에는 예상 외로 인색하다. 왜일까? 도 대표는 아픔을 극적으로 포장하는 것에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공감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좋은 수단이다. 유저는 보통 주인공의 입장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기 때문에 환경이나 상황, 역경에 대한 감정적 몰입이 다른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 

 

 


 

 

도 대표는 유비소프트가 개발한 <발리언트 하츠>가 떠올랐다.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비극적인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참상을 알린 수작이다. 하지만 알리는 것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던 중, <디스 워 오브 마인>이 DLC 수익을 미국의 비영리단체 워 차일드(War Child)에 기부한 사례를 찾았다. 

 

소재도 결정하고, 목적도 정해졌지만 도 대표에게는 남은 과제가 있었다. 기능성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 바로 게임은 ‘플레이어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제 의식을 가진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주제 의식에 매몰돼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몰입과 공감은 ‘재미’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도 대표의 생각이었다.

 

 


 

 

 

엎고, 또 엎고. 결국 “네팔로 떠납니다”

 

1차 콘셉트가 결정됐다.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은 외국인 의사’였다. 만드는 사람들이 네팔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터였다. 

 

그러나 게임을 개발할 수록 네팔 참사를 그리는 것보다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다. 도 대표와 겜브릿지는 네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네팔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커피’와 연이 닿은 것도 그 때였다.

 

 


 

 

네팔은 ‘아라비카 커피’의 주 산지다.​ ​공정 무역으로 생산된 커피를 판매하는 ‘아름다운 커피’는 네팔 대지진으로 붕괴된 마을을 지원하고 있었다.  지진 직후 긴급 구호팀을 파견하고 판매할 수 없게 된 커피의 대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겜브릿지는 <애프터데이즈>의 NPC가 돼 줄 실제 모델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커피와 거래하던 농장의 조합장과 현지 커피 조합 코디네이터가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다. 

 

겜브릿지는 게임을 엎고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스토리, 캐릭터, 애니메이션 방식, 제목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콘셉트도 이방인 의사가 자아를 찾는다는 내용에서 마을을 살리는 것으로 전면 수정했다. 때마침 정부 지원 사업이 통과돼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보다 나은 퀄리티를 위해 고가의 그래픽 툴 ‘스파인’을 사용해 그래픽을 다듬고, 아름다운 커피가 찍어준 현장 사진을 참고로 배경도 다시 그렸다.

 

 


 


 

 

그러나 도민석 대표는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커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 역시 현지인은 아니었다. 도 대표는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 참사를 겪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담아오고 싶었다. 게임이 데모 버전까지 만들어 진 시점, 도 대표는 네팔행을 결심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서로 도왔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수도 카트만두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신두팔촉 마을.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군데군데 복구되지 못한 곳이 많았다. 지진 직후 수도 외곽의 지역들은 평균 10일 이상 고립됐고, 참사 첫 주에는 시신을 수습할 수 조차 없었다. 지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건물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큰 나무 아래 모여 약 7일간 노숙을 했다. 정부의 지원이 닿지 않아 아직까지 양철을 엮어 만든 집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게임 만드는 사람들이 온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왔다. 사진으로만, 영상으로만 봤던 게임 속 인물 먼두 타파(주인공 아샤)와 수더르산 볼라케(조력자 볼라쉬)도 있었다. 도 대표는 조심스러웠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에게는 어찌됐든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야 하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실 그대로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도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 대표와 겜브릿지는 그들의 간절하고도 순수한 눈동자를 마음에 담아 한국에 돌아왔다. 꼭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 ‘꼭 성공해야 한다’

 

부담감은 곧장 슬럼프로 이어졌다. 게임에 나오는 NPC들은 모두 직접 인터뷰 해 온 사람들이었다. 후원을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도 도민석 대표의 어깨를 짓눌렀다. 약속한 것을 지키려면 성공해야 했다. 그러나 시장은 현실이었다. 인디게임의 성공 확률은 낮았다. 

 

그 때, EBS에서 연락이 왔다. <애프터데이즈>와 겜브릿지를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게임이 공중파를 타고, 각종 매체에서도 겜브릿지와 <애프터데이즈>를 다루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기능성 게임인데다 한국인이 네팔 대지진을 주제로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은 매체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도 대표는 그렇게 다시 힘을 얻었다.

 

 


 

[관련기사] 한국인이 왜 그런 게임을 만들어요? (보러가기)

 

 

<애프터데이즈>는 네팔 참사 2주기인 지난 4월 25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출시됐다. iOS는 5월 중 출시될 예정이다. 1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면 이후부터 다운로드 1건당 500원이 적립된다. 2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면 1억 원이 모인다. 3개 마을에 임시 학습센터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앞으로의 로드맵도 짜 뒀다. 게임과 유저, 이슈와 관련된 단체가 함께하는 그림이다. 유저가 게임을 구매하면 게임은 플레이를 통해 재미와 이슈를 전달한다. NGO 등 관련 단체는 정보를 제공하고 마케팅을 맡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슈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만의 방식으로 이슈를 알리고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도 대표는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유저가 가진 순수한 몰입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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