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특별사면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했던 말 중에서 유명해진 문구가 있다. 바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문장이다.
국내 게임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게임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굵직한 국내 게임사들이 세계 각지에 지사를 세우고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소규모 업체들은 자사의 온라인 게임에 글로벌 서버를 도입하여 전세계 게이머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넓은 세계의 게임시장에 진출해서 ‘할 일’을 찾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마침 게임산업진흥원에서 ‘2008년 세계 게임시장 전망 세미나’를 개최하고 해외 전문가들의 주제 발표를 진행해서 관심을 모았다.
매서운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던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미국 DFC 인텔리젼스의 편집장 조지 크로니스(George Chronis)가 ‘미국 게임시장 결산 및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황성철 기자
미국 게임시장을 살펴볼 때 2007년은 화제가 무척 풍성했던 한 해로 기억될 듯 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저변을 확대한 것은 물론, 캐주얼 게임도 서서히 인기가 높아지면서 PC가 주요 플랫폼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것이다.
비벤디와 액티비전의 인수합병이라는 게임계 사상 최대의 빅딜이 성사되기도 했고 EA 또한 IP의 확보를 위해 바이오웨어와 팬더믹을 인수하는 등 게임사들 간의 인수·합병 열기가 뜨거웠다. 대형 미디어 그룹의 게임 시장 참여도 두드러졌는데, 대표적으로 디즈니의 클럽펭귄 인수를 들 수 있다.
미국 시장분석기업 DFC 인텔리젼스의 조지 크로니스 편집장은 게임업체가 인수·합병을 통해 점점 대형화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게임 개발에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전 게임보다 화려한 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마케팅에도 많은 돈이 든다. <헤일로3>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이 대표적인 사례. 때로는 개발비와 동등한 수준의 마케팅 비용이 소모되기도 한다.
조지 크로니스 편집장은 같은 이유로 독립적인 퍼블리셔나 개발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앞으로 북미 게임시장이 꾸준하게 성장할 것이나 그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6년에는 140억 달러(약 13조 2,380억 원)를 기록했지만, 2012년에는 200억 달러(약 18조 9,120억 원)로 이전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시장의 강자였던 콘솔 플랫폼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PC및 휴대용 게임기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강조했다.
DFC 인텔리젼스는 북미 게임 시장 규모를 2012년 200억 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 북미 콘솔시장 “독주는 없지만, Wii는 강하다”
2세대 게임 콘솔 시장은 소니의 PS2가 거의 점령했다시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크로니스편집장은 앞으로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닌텐도 Wii와 다른 차세대 게임기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크로니스는 PS3와, Xbox360, Wii가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는 3자 대결 구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7년, 닌텐도가 7년 만에 제 1위 게임 소프트웨어 퍼블리셔로 등극한 것이다. 닌텐도 Wii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하드웨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정도. DFC 인텔리젼스는 2008년에는 닌텐도 Wii가 Xbox360을 제치고 북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콘솔 게임기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크로니스 편집장은 더 이상 PS2와 같은 독주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크로니스 편집장은 닌텐도 Wii가 북미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로 ‘쉽게 즐길 수 있다’라는 점을 들었다. 특히 Wii 콘트롤러가 가지는 차별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하드웨어의 공급이 충분했다면 닌텐도의 판매가 더 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Wii의 판매가 소프트웨어의 판매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크로니스 편집장은 이 같은 점 때문에 WIi에 타이틀을 공급하고 있는 써드 파티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반면 Xbox360과 PS3는 닌텐도 Wii에 비해 그 성장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Xbox360은 지금까지 천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으나 닌텐도 Wii의 빠른 추격을 따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Xbox Live를 통한 온라인 서비스와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Wii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Live Arcade를 통한 한국식의 가상 아이템 판매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PS3는 다른 게임기에 비해 높은 성능의 하드웨어라는 강점을 지녔으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때문에 고전을 했다. 지난해 11월 가격인하를 하면서 어느 정도 판매량 증가를 가져왔으나, 닌텐도와 MS가 앞서가고 있는 시장 상황에 크게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크로니스 편집장은 ‘가격을 낮추고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면 2008년 판매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북미 PC게임 시장은 온라인 게임의 발전으로 매우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북미의 PC게임 소매시장의 하락세는 매우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대형 퍼블리셔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북미 PC 게임 소매 시장의 규모는 지난 몇년간 급격히 줄었다.
이에 따라 퍼블리셔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온라인 게임에서 찾고 있다. 화두가 온라인게임으로 옮겨간 것이다. 소매시장 분야는 줄여가고 온라인 게임의 강화를 꾀하는 기업이 많다. 특히 이들은 아시아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캐주얼 게임을 비롯해 부분유료화(microtransaction)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직 수익창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크로니스 편집장은 최근 매달 돈을 지불하는 유료회원 1,000만 명이라는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유저가 점차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온라인 게임들이 계속 시장에 뛰어들 것이기 때문에 유저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PC 온라인 게임 시장이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북미 콘솔 온라인 게임 시장은 아직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Xbox Live나 닌텐도 Wii의 버추얼 콘솔이 성장하고 있지만, 자사 플랫폼에 국한된다는 한계성이 뚜렷하다. PS3는 공개 플랫폼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타이틀이 충분하지 않다.
한편, 휴대용 게임 시장은 북미에서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시장의 최대 수혜자는 닌텐도DS로 거의 정복자 수준이다. 소니의 PSP가 가장 큰 경쟁자이지만, 두 게임기의 시장 점유율은 큰 폭의 차이를 보인다.
크로니스 편집장은 “소니가 닌텐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많은 컨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와 같은 유명한 IP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인하로 얻는 경쟁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2008년에 이르러 PSP의 성장세는 주춤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들은 무엇일까? 크로니스 편집장은 자본과 라이선스, 지적재산권, 파트너쉽, 플랫폼의 다변화, 소비자 성향의 이해라고 말했다.
최근 현지 게임업체 사이의 인수·합병은 자본의 집중과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EA는 바이오웨어 인수를 통해 미공개 MMORPG를 자사의 라인업에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매스 이펙트> 등의 블록버스터급 IP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바이오웨어는 EA의 막대한 자본이라는 장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트너쉽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크로니스 편집장은 북미 게임시장에서 소매 업체들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게임스탑, 베스트바이 등의 소매 업체가 결정하는 매장 진열방식이 게임의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정도. 이에 따라 그들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플랫폼의 다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점차 비중이 커지고 있는 PC를 비롯해 Wii, Xbox360, PS3 등 어느 하나의 플랫폼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북미에서 성공한 게임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 멀티 플랫폼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 하다.
수십 분 동안 그가 말한 것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북미 시장의 전체적인 맥락이었다. 현재 시장은 어떠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것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조지 크로니스 편집장의 발표 내용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다루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또한, 그의 말은 북미 현지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DFC 인텔리젼스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