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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상이 즐거울 때 개발도 즐겁다", 인디 게임 '던전을 찾아서' 개발기

김영돈(수기파) 2017-12-14 12:29:27

12일 판교 뷰파티홀에서 '2017 게임창조오디션 송년의 밤' 행사가 열렸다. 게임창조오디션 1기에서 7기까지 선발팀과 게임 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행사 1부는 <던전을 찾아서>로 게임창조오디션 6회 1위를 차지한 '문틈' 지국환 대표의 강연으로 구성됐다. 

 

강연 주제는 <던전을 찾아서>의 포스트모템이었다. 포스트모템이란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개발 과정을 돌아보며 성공적이었던 점, 아쉬웠던 점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는 것이다.​ 11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출시된 <던전을 찾아서>의 생생한 개발 에피소드를 정리해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영돈 기자


  

문틈의 '지국환' 대표

 

 

# 퇴사 후 1년 반, 무엇을 얻었는가

 

지국환 대표의 첫 직장은 네이버였다. 디자이너로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첫 게임은 수익이 없어 힘들었다. 다행히 이후 개발자들에게 유니티를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유니티의 장점을 설파하다, 스스로 믿음이 생겨 다시 게임을 만들기 위해 퇴사했다. 1년 반이 흘렀다.

  



'게임 언제 나와요?'라는 질문은 게임 개발자가 가장 흔히 듣는 질문이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지 대표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는 워낙 오래 게임을 만들고 또 개발자들과 알고 지내다 보니, 이제는 개발자의 대답에 따라 제작 진척도를 알 수 있게 됐다.

 

1. "아, 이제 시작이죠!" (해맑게) : 아이디어가 샘솟는 기쁜 단계다. 너무 옛날이라 기억도 안 난다. 

2. "이제 프로토타입은 다 됐습니다." : 대부분 게임이 여기서 멈춘다. 조금만 다듬으면 될 것 같다. 

3. "콘텐츠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 다 만든 것 같지만 시나리오를 넣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4. "다음 달에 나옵니다." : 거짓말이다. 사실 개발자는 정말 나올 것 같은데 못 나오는 거다.

5. "다음 달에 나오지 않을까요?" : 스스로 게임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다. 마치 남의 게임처럼... 

6. "허허... 커피 드실래요?" : 웃기만 하면서 말을 돌린다. 이제 게임이 출시될 준비가 됐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나름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가 만든 <던전을 찾아서>도 이 과정을 거쳤다. 지국환 대표는 '이대로 출시해도 되나?' '더할 작업이 없나?' 생각할 때 비로소 게임이 완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 유저가 좋아하는, 전작이 외면했던 10%에 집중

 

<던전을 찾아서>는 전작 <던전 999>의 유저 플레이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됐다. 전작의 플레이 패턴 90%가 전투에 치중된 모습을 보였다. 스킬 트리나 아이템 구입 등 전투 외적 요소는 10%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전투가 플레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많은 유저가 '자동 전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유저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10%의 콘텐츠에서 더 재미를 느꼈다. 

 

유저가 직접 플레이를 선호하는 10% (이미지 출처 : 강연 슬라이드) 

 

지국환 대표는 자연스럽게 '전투를 비중을 낮추고, 나머지의 비중을 높인 게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작에 비해 스케일을 키운 게임을 기획했다.

 

처음엔 벽돌 미는 기능 하나를 구현하는 것도 재밌어서 프로토타입을 신나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4개월이 지나갔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의 즐거움도 잠시.  콘텐츠 추가 단계가 됐다. 맵 하나를 만드는 것부터 모든 것이 버거웠다. 바닥, 풀, 나무, 몬스터를 배치하는 것부터 아이템 세팅, 함정 제작까지 일일이 만들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렵다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 효율적인 퍼포먼스를 위해, 좋은 도구를 만들자

 

지국환 대표는 처음 괜찮은 스테이지를 하나 만드는 데 3일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대작 게임이라면 한 스테이지에 3일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인디게임에서, 유저가 10분 만에 깨는 스테이지를 3일 동안 만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100개 스테이지를 목표로 하면 300일이 걸린다. 수지가 안 맞는 장사다.  

 

(이미지 출처 : 강연 슬라이드) 

 

그는 링컨의 명언을 떠올렸다. "나무를 베는데 9시간을 준다면, 도끼를 가는데 8시간을 쓰겠다"는 말이다. <던전을 찾아서>도 맵을 직접 만들지 않고, 맵 에디터를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며 유니티로 맵 에디터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마우스로 하나하나 찍어내던 과정을 수치만 입력하면 무작위로 맵이 생성되는 에디터로 대신했다. 맵 크기와 오브젝트 숫자, 생성할 몬스터의 개채수도 수치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생성됐다.​ 

 

유튜브를 보며 제작한 맵 에디터 (이미지 출처 : 강연 슬라이드) 

 

혹자는 '에디터를 제작할 시간에 맵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단순 시간만 비교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국환 대표는 맵 에디터가 진가를 발휘하는 때는 '맵을 수정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3일 걸려서 제작한 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3일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에디터가 있으면 3시간 만에 새로운 난이도를 가진 맵을 만들 수 있다. 전체 개발 과정을 단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출시 뒤 추가적인 콘텐츠를 만들 때도 효율이 좋다.

 

 

# 모두를 위한 게임은 없다

 

지국환 대표는 개발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인디 게임 제작은 기간이 늘어나면 자금이 바닥나고, 의지도 떨어진다. 반면 투입한 시간 만큼 게임에 대한 욕심과 기대만 늘어난다. 

 

그는 시간 절약을 위해 UI에 투자하는 시간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발 단계 UI는 볼 때마다 고치고 싶어진다. 하루는 버튼이 마음에 안 들었다가, 다음날은 폰트가 거슬리는 것처럼. 하지만 UI는 열심히 만들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영역이다. 때문에 UI는 테스트 단계나 출시 후 피드백이 들어오면 고쳐도 늦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미지 출처 : 강연 슬라이드)

 

또한 지 대표는 한번에 모든 유저를 만족시키겠다는 마음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인이 원하는 게임'이라는 이미지를 예로 들었다. 'PK는 가능해야 하는데 내 캐릭터는 죽으면 안 된다'와 '직업간 밸런스는 훌륭해야 하지만 내 캐릭터는 세야 한다'처럼 서로 충돌하는 요구가 담겨있다. 

 

이런 상반된 재미를 동시에 가진 게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는 1인 개발 규모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대한 많은 유저를 만족 시키는 게임을 향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걸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그런 게임은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게 중요하고 덧붙였다.

  

 

# 게임 전시회, 한 번은 꼭 추천한다

 

게임이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오면 전시회에 참가하라는 메일이 많이 온다.  지국환 대표는 출시 전에 전시회에 참가하는 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먼저 마감이 생겨서 게임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전시회에서 낮은 퀄리티로 유저의 외면을 받아보면 없던 의욕도 생긴다. 전시회를 찾은 열성 유저에게 좋은 완성도의 게임을 보여주면 바이럴도 된다. 그들은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후기를 써준다. 또한, 플레이 한 게임을 기억했다가, 런칭 초기에 유입되는 비율이 높다. 

 

구글 인디페스티벌에 참가한 <던전을 찾아서> (이미지 출처 : 강연 슬라이드)

  

<던전을 찾아서>는 세 번의 전시회에 참가했다.​ 구글 인디 페스티벌과 게임창조오디션, 그리고 BIC(부산 인디 커넥트)였다. 그는 각 전시회에 대한 짧은 소감을 전했다.

 

구글 인디페스티벌은 모바일 게임에서는 인지도가 가장 높은 전시회다. 참가하면 구글에서 게임을 많이 홍보해준다. 순위권에 입상하면 에디터 추천게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전시에 참가하면 평소에 만나지 않던 유저들을 만날 수 있다.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오기 때문이다. 

 

다만 참가할 때 경쟁률이 세고, 고생을 많이 시키는 데 반해 상금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제 6회 게임창조오디션에 참가한 지국환 대표 (이미지 출처 : 게임창조오디션 공식 홈페이지)
 

게임창조오디션의 가장 큰 매력은 상금이 있다는 점이다.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상금'이 주는 무게를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수익은 개발자의 멘탈을 튼튼하게 해준다. 창조오디션에서 상금을 받으면 '앞으로 1년은 버티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사무실을 주는 것도 좋다. 

 

다만 행사 자체가 오디션 방식이다 보니 압박감이 있다. 또한 행사 성격 상 준비 과정 길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것이 단점이다.

 

마지막으로 BIC는 국내 인디 게임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다. 사람이 정말 많이 온다. 앞서 언급한 두 행사보다 많은 종류의 게임이 참가한다. 다른 게임 부스를 돌아다니며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다. 특징은 콘솔과 PC​ 기반 게임, SNS에서 유명한 게임이 인기가 많다. 인지도가 부족한 인디 개발자에겐 불리한 부분.

 

 

# 인디 게임도 테스트는 필수다

 

게임 출시 전 테스트 과정도 중요하다. 지국환 대표도 처음 게임을 만들 때는 평가가 두려워서 테스트를 거부했다. 하지만 주변의 피드백을 무시하고 출시한 게임이 실패하자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반드시 출시 전 한 달 이상 테스트 기간을 확보하라는 조언을 전했다.

  

<던전을 찾아서> 테스트 유저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지

  

<던전을 찾아서>는 세 번의 테스트를 실시했다.

  

1. 포커스 그룹 테스트 (20명) : 지인을 대상으로 테스트했다. 밥을 사거나 아르바이트 비용을 지불했다. 대신 하루 8시간 동안 플레이를 부탁했다. 게임을 진행하며 생겼던 모든 이벤트를 타임라인으로 기록해달라고 했다.  

 

첫 동료 캐릭터를 영입할 때 몇 분이 걸렸는지, 첫 게임 오버는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결제 욕구가 드는 건 어느 타이밍인지. 구체적으로 다 기록해달라고 부탁했다. 클리어까지 8시간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2시간 만에 끝낸 테스터도 있었다.

 

2. 클로즈 베타 테스트 (200명) : 전시회 부스에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게임에 설문지를 넣었다. 응답률이 100%는 아니었지만, 정식 출시 후 보상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달았다. 참가자에게 메일로 보상을 전송했다. 보상을 받은 거의 모든 유저가 게임을 다운 받았다.

 

3. 오픈 베타 테스트 (10000명) : 구글 플레이에 있는 기능을 사용했다. 이 테스트 기능을 사용하면 마켓에서 게임이 노출된다. 검색과 비슷한 게임 추천에도 나온다. 출시 전까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완성 단계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 준비된 개발자에게 기회가 온다

 

끝으로​ 지국환 대표는 오랫동안 게임을 개발할 때 필요한 팁을 전했다. "평범한 일상이 즐거울 때 개발도 즐겁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일상도 중요한 '자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개발 기간이 오래되면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쉽다. 밤샘 개발이 필요한 때와 일상적으로 일할 시기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 대표는 준비된 개발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그는 TCG 장르를 예로 들며 "상대방이 강력한 카드를 마구 꺼내도, 버티면 반드시 내 차례가 돌아온다", "오랜 개발에 지칠 때도 있겠지만, 잘 준비된 콤보가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