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세컨드 라이프> <심시티> 처럼 유저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4일 오후 서울 삼성동 엔씨소프트 R&D센터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1회 ‘게임문화포럼’에서 중앙대학교 진중권 겸임교수가 진행한 강의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진중권 교수는 자신이 게임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항상 떼로 몰려다니며 마치 크로마뇽인들처럼 싸우는 게임만 하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도 했죠.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성공한 대다수의 온라인게임들이 공성전, 전쟁과 같은 경쟁 요소를 부각시킨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연에서 진 교수는 게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 오늘 행사장에 참석한 분들이 저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 테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라며 주로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강연을 있는 그대로 정리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이성진 기자
이 자리에서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건 사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다. 그래서 오늘은 철학에서 말하는 놀이와 게임에서 말하는 놀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텐데, 놀이와 상상력의 차이와 일반적인 놀이와 컴퓨터 예술에서의 놀이 문제를 다루어 볼까 한다.
내가 보기에 상상력이란,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었을 때 힘을 발휘한다. 우리 시대가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이 굉장히 필요하다. 우리 사회를 보면 걱정이 된다. 아이들을 놀게 하지 못하고 기계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
놀이의 힘이 어떤 것인지는 최근 촛불집회를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정치라는 것은 투쟁의 역사였다. 하지만 지금 촛불집회를 보면 축제 분위기다. 옛날에는 살벌한 구호를 외치며 진행됐는데, 지금 구호를 보면 오락, 유희가 되어가고 있다. 즉, 모든 것들이 엔터테인먼트화 되어 가고 있는 시대다. 놀이라는 행위가 생산적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다. 최근 대통령이 하루 4시간 밖에 못 잔다고 자랑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발상은 산업화 시대에나 통하는 이야기지 지금 정보화 시대에는 다르게 적용된다. 예전 같이 강압적으로 사람이 기계 공정에 맞추기 위해 하루에 17시간씩 일했을 때와는 다르다.
산업화 시대의 이상적인 노동자 상은 군인이었다. 자기 생각 없이 묵묵히 일을 수행하는 것 말이다. 군사 문화는 산업화 과정에선 필연적이었지만, 노동력의 단순 투여일 뿐이다. 같은 시간에 몸을 빨리 빨리 움직여서 끝내야 하는 식이다. 지금 쇠고기 협상도 1주일 만에 협상을 끝내서 ‘와 잘했다’라는 산업화 시대의 사고 방식인데, 미래는 정보화 시대다.(웃음)
지금 대기업의 연구실 삼성이나 LG는 박사급 연구원이 무려 2만 명이 넘는다. 연구원들은 전통적 의미의 연구원이 아니다. 미래 사회의 화이트 칼라다. 물론 미래 시대의 블루 칼라는 지금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웃음) 지금 정보화 시대 때에는 노동과 유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가까운 예를 들어 PC를 통해 노동을 하고 놀이도 같이 한다. 생산력이 곧 상상력이 되어 가는 시대인 거다.
예를 들어서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의 차이를 물었을 때 기존에 있던 욕구를 소비자에게 안긴다면, 블루오션은 없는 욕구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안기는 것이다.
블루오션의 예를 들면, 소니가 워크맨을 만들기 전엔 사람은 음악을 집에서 듣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워크맨을 통해 밖에서 음악 듣는다. 휴대폰도 재미 있다.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이 있으면 사진을 찍게 된다. 작품 활동도 생겨나고 있다. 아직 없었던 걸 생각하는 능력, 상상력이 미래의 생산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생산력은 달라진다. 상상력은 인문학 과학 예술이 통합되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영화 <메트릭스>를 보면 결국은 모든 것들이 문자로 프로그래밍된 세계다. 현 디지털 세대에 있어 가상은 현실이고 곧 현실이 된다.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을 돈을 주고 산다. 분명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샀지만 현실이 됐다.
결국은 어떻게 이러한 프로그래밍 된 문자를 합리적으로 이미지 위에 얹는가, 그리고 잘 실현시키는 능력을 가졌는가 여부가 새로운 언어학적 능력이 될 것이다. 게임을 만들 때에도 누군가가 그 게임의 이미지나 세계를 그려 내었다면, 이를 잘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할 것이며 이어서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사실성을 부여해 현실로 실현시켜야 한다.
상용문자 능력 즉, 남들이 만든 이미지를 텍스트 단에서 읽어내는 능력도 중요해진다. 컨셉트를 읽어내야 하고 설계의 관념을 읽어 내야 하고 사진 하나의 느낌을 이해해야 하는 세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못 읽거나 외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림이나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이곧 문맹인이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미지를 실현하고 현실로 만드는 능력과 남들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 텍스트 코드를 읽어 내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중요해지고 미래의 생산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세대를 교육해야 하는데, 영어로 몰입교육 창의력이 나올 수 없는 상태다. 시험은 획일적인 대답만을 미리 준비해 놓고 진행한다. 결국 학생들은 문제를 푸는 알고리즘만을 익히게 되고 문제 해결 능력을 못가지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대다수가 문제를 제기하질 않는다. 그리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 즉, 사회에서 제공하는 알고리즘만을 빨리 파악해서 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정보화 사회로 넘어 가고 있는 단계다. 선진국들은 이미 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인드를 못 바꾸고 있다. 미래로 나아가는데 상상력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향후에는 인문학, 공학, 이미지 아티스트들의 컨소시엄이 이루어질 것 같다. 게임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슈퍼마리오>도 비슷하다. 세계관을 만들고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인문학적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디자인도 제품 디자인만이 아니라 내러티브를 넣어 줘야 한다. 인문학자와 아티스트들의 통합성이 중요해졌다. 미래 생산력의 형태다.
한국의 문제는 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다리는 잘 짓지만 교량 디자인은 이를 따라가질 못한다. 예술가와 공학간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이해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예술가는 공학자들에게 턱도 없는 요구를 하고 있고, 전문인력을 쓸데 없는 중노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혹여 애써 만드는 이미지가 있더라도 그것은 예술가를 만족시키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각자의 파트에서 상대방의 파트를 이해하질 못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결국 미래의 생산 주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삼각 컨소시엄 융합의 정도가 선진성의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기술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술 개발만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예술성이 없으면 더욱 쓸모가 없어진다. 아무리 발전을 해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쉽게 따라 잡히기 마련이다.
결국 놀이와 예술에서 하고자 하는 건 새로운 부류의 인간들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상상력은 가르치기 어렵다. 시에서 운율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은유를 가르치는 건 어렵다.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선 애들을 놀려야 한다. 예전에는 비행기가 되기 위해선 두 팔만 벌리면 됬다. 수류탄을 만들고 싶으면 길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을 사용하면 됐다. 요즘은 물건들이 모두 만들어져서 나온다. 아이들을 놀게 해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영감의 근원 서양 예술의 근원을 보면 창의력이 풍풍한 것들이 많다. 자주 쓰이는 상상력의 어휘들 중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게 있다. 그림자 종이, 주사위 상상력과 관련되어 있는 어휘가 있다. 상상력이 남이 보질 못했던 걸 보게 해주는 능력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있게 하는 능력이다.
아티스트들이 하는 작업은 선구적이 되어 간다. 네티즌들이 지금 포스터를 만드는 걸 보면 재미있다. ‘개세’ ‘뽀샤시’ ‘인상파’ ‘잡티’ ‘제거’ ‘보정질’ 등 초현실주의 기법들을 마구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1930년 대에 예술가들이 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드웨어 매뉴얼만 이용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들이 하는 실험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에 영감을 주고 개발이 된다. 아티스트들은 같은 사물들을 다룰 때에도 미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용도를 개발해 내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게임으로 영화를 찍기도 한다. 결국 게임 회사는 업데이트를 통해 영화 촬영 기능을 강화하게 된다. 결국 아티스트들의 시작, 그리고 개발자들의 서포트의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상상력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단순히 종이접기라는 행위만으로도 많은 일들이 일어 나고 있다. 사람마다 자기의 영역이 있는데, 각자에게 종이를 주면 각기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일본과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한복과 기모노 등을 접어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인테리어 업자는 수납공간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접어서 공간들을 확보해 낸다.
IT 분야에서는 종이접기로 만든 건축물 나노 물질을 접는 기술이 개발됬다. 이것을 또 DNA 유전자 공학과 연결시키면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 또 이것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무궁무진한 세상이다.
나 역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노력한다. 책을 쓰다가 막히면 성경책을 가져다 놓고 주사위를 돌려서 나온 구절 구절을 읽으면서 구절과 구절의 충돌에서 일어나는 과정에서 영감을 떠올리고 있다. 영감에 대해서 유기적인 생각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감이라고 하면 막연히 오선지를 펴놓고 ‘느낌이 오지를 않아’라는 구태연한 자세는 잘못됐다.
가까운 검색엔진 ‘구글’을 사용해 특정 단어만을 검색해도 두뇌엔 자극이 된다. 퍼나르는 글들에서 불필요한 글들을 지우면서 몽타쥬를 만드는 놀이를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를 수 있다. 영감을 떠오르게 하려는 훈련이 중요하다.
결국 세상은 공학, 인문학, 철학 등이 합리적으로 융합되고 상상력이 뒷받침되는 사회를 향해 나아 갈 것이다. 상상력을 자그기켜 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건… 결국 백두산까지 가게 되는데, 상상력에 합리성이 주어진다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이유는 실핏줄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강연이 끝난 후 추첨을 통해 자신이 집필한 <컴퓨터예술의 탄생>이라는 책을 주었다. 직접 싸인까지 해서.
※ 뱀다리: 진중권 교수는 최근 촛불집회 현장을 실시간 중계하면서 많은 분들의 집중을 받고 있죠. 자신이 여전히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정치권으로 넘어가지 않아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시사성 기사를 다루는 매체에서 강연을 취재했다면 '월척'이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