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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넥슨 노조 100일, 발자국이 나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설립 100일 맞은 넥슨 노조, 그간의 행적을 돌아보다

반세이(세이야) 2018-12-20 18:14:21

9월의 첫 월요일, 넥슨이란 이름 뒤에 노동조합이란 네 글자가 붙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게임업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간 불거진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하면 게임업계에도 노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지만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예측하지 못한 모습으로 넥슨 노조 ‘스타팅 포인트’는 등장했다.

 

지난 12월 11일은 넥슨 노조가 생긴 지 꼭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간 네오플 지회를 포함해 전체 스탭은 20명이 됐고, 조합원은 1,100명을 넘어섰다. 설립 직후 열광적이던 분위기는 다소 차분해졌다. 숫자만 보면 당장 무엇이라도 이뤄낼 것 같지만 넥슨 노조 역시 다른 노조가 그렇듯 지난한 길을 걷고 있다. 넥슨 노조 설립 이후 100일을 되돌아본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90여 개 교섭안 5회에 걸쳐 논의하기로 결정, 고용 불안부터 복리후생까지 다양한 안건

9월 3일 설립을 발표한 넥슨 노조는 넥슨코리아와 네오플에 대해 단독 교섭권을 획득하고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와 노조는 교섭을 거쳐 만들어 진 서로간의 약속, ‘단체협약’을 맺고 정해진 기간동안 협약 내용에 따른다. 조합원 수가 과반을 넘으면 재직자 전체가, 과반에 미달하면 조합원들만 단체협약의 적용 대상이 되지만, 관례적으로 비조합원에까지 단체협약을 적용하기도 한다. 넥슨 노조 조합원 수는 현재 전체 재직자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넥슨과 노조는 약 90개 교섭안을 5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카테고리별로 1회씩 총 5회 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교섭안이 합의를 이뤄 단체협약이 체결되면 회사와 노조는 정해진 기간 동안 협약 내용에 따르게 된다. 보통은 2년의 주기를 갖지만, 산별 노조의 협약 종료일을 통일시키기 위해 화섬식품노조는 소속된 기업 노조의 협약 종료일을 2020년 3월 31일로 정해둔 상태다. 넥슨과 노조는 19일인 어제, 3회차 교섭을 끝냈다. 

 

넥슨과 노조가 앞으로 교섭해 나갈 안건들은 다음과 같다.   

 

1회차: 기본원칙/조합/교섭/협약사항

2회차: 인사원칙 등

3회차: 임금/경영성과배분/근무시간/휴일/휴가 등

4회차: 여성/모성/산업안전 

5회차: 복리후생

  

노조원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제작한 사원증 목걸이
  

 

노조 가입 제한자 범위 두고 이어진 기싸움, 갈등 심화되자 한 발짝 물러난 넥슨

11월 8일, 1회차 교섭이 끝난 뒤 노조는 회사로부터 전임 및 사무실 제공 불가 방침을 전달 받았다. 임금손실 없이 노동조합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로 시간 면제자, 즉 전임자*의 수는 일반적으로 조합원 수에 비례해 책정되는데, 노조 가입이 가능한 사람의 범위를 정해야 제공할 전임자 수도 정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었다. 

 

회사는 팀장 이상급 인원과 각종 인프라 담당 부서, 재무, 회계, 홍보 부서 등이 사측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한다고 규정, 이들에 대해 노조 가입을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또, 인트라넷을 통해 노조를 홍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통보했다. (*근로시간면제자와 전임자는 개념상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사의 핵심 쟁점이 아니기에 편의상 전임자로 지칭)

 

 

노조는 회사의 요구를 거절했다. 법무나 재무, 인사 등 명백히 사측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정의되는 부서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팀장 이상급 직원의 노조 가입 불가 방침은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게임회사 특성상 프로젝트에 따라 구성원이 팀장과 팀원을 오가는 일이 빈번하며, 이러한 가입 범위 제한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닌 조합원을 위해 활동하는 결과를 초래, 결국 노동조합의 변질을 불러온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조는 홈페이지를 통해 교섭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팀장 이상급 직원의 노조 가입 불가안이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천명했다. 이와 관련해 회사는 “노동관계 조정법을 따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은 내용이 공개되고 노조와의 갈등이 계속되자 회사는 기싸움을 멈추고 한 발짝 물러섰다. 그간 개인 휴가를 써 노조 업무를 이어오던 배수찬 지회장을 포함한 두 명의 노조 스탭에 12월 6일부터 2개월 간 근로시간 면제를 보장하고 노조 업무를 위한 사무실을 제공한 것이다. 노동조합 가입 범위에 대한 논의는 현재 보류된 상태로, 지금은 기존에 회사가 제안한 가입 불가 부서 소속 직원 역시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넥슨 노조 사무실 모습. 이곳에서 노조 업무를 비롯해 각종 노동 관련 상담을 진행한다.

 

 

본격 교섭 드라이브 건 넥슨과 노조, 일부 사항 진전되고 실무 교섭도 시작


대표적 난제 ‘전환 배치’ 이슈, 당사자 의견 수렴한 실무 교섭 통해 풀어가기로

 

넥슨과 노조는 전환배치를 포함한 고용불안 이슈에 대해 2회차 교섭을 진행했다. 프로젝트가 접혔을 때 권고 사직 되거나 타 부서로 전환 배치 되는 등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문제는 그간 개발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왔다. 넥슨은 고용 불안 문제에 대해 ‘개발자들이 고용 불안으로 고통받는 것은 회사 역시 원하지 않는다’라며 간접적으로 해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감한 내용이 다수 존재하는 사항인 만큼 넥슨과 노조는 실무 교섭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다. 단체협약에 고정된 문구를 기재하게 되면 유연하지 못하게 적용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전환배치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실무 교섭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은 인사팀과 교섭 위원들의 전환 배치 관련 실무 교섭이 이미 시작됐다고 밝혔다.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

 

단체 협약 전문(前文) 수용과 상호 존중 조항 추가 통해 한 수씩 양보한 넥슨과 노조

 

‘단체협약 전문’은 단체협약의 목적과 기본 원칙을 나열한 글로, 넥슨이 소속된 민주노총 화섬노조의 모든 지회가 공통된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협약을 맺으면 정해진 기간 동안 따라야 하기에 회사와 노조는 교섭시 협약안의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조정하게 된다. 회사와 노조는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하거나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문구를 고집하게 되고 이는 명분과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져 일반적으로 노조에 불리한 양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넥슨은 화섬노조의 단체협약 전문을 수정없이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상호 존중 조항을 추가할 것을 노조에 요구했다. 상호 존중 조항은 ‘특정 사안에 대해 회사와 노조가 대립하게 되면 우선 회사와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추가 행동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취지의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과 노조가 서로 부담되는 조항을 하나씩 교환하는 것으로 명분과 자존심 싸움의 불씨 하나를 꺼뜨린 것이다. 

 

 

 

52시간 이상 근무 시간 기록되도록 개선, 유연 근무제 논의도 곧 시작될 것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문제 제기를 통해 알려진 ‘주 52시간 근무 제도 꼼수’도 개선됐다. 이정미 의원은 원내 브리핑을 통해 넥슨이 노동자가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시스템에는 최대 52시간까지 기록되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넥슨은 근무 시간이 기록되지 않더라도 출퇴근 시간이 기록되기 때문에 증빙 효력이 발생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최근 52시간 이상 노동한 경우에도 근무시간이 기록되도록 시스템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연근무제 관련 논의도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논의에는 유연근무제와 휴가를 함께 사용했을 때 적용되는 근무 시간 계산 방식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넥슨은 현재 월 52시간까지 추가로 근무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하루 8시간을 기본으로 4시간 일할 지, 12시간 일할 지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또 조직별로 10시~15시(점심시간 포함), 11시~16시 중 하나의 시간대를 선택해 의무적으로 근무할 것을 정해두고 있다. 

 

유연 근무제를 통해 4시간 근무하겠다고 정하고 반차(4시간 휴가)를 사용할 경우 출근 의무가 면제돼 그날 하루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 그러나 넥슨은 반차를 사용했으니 하루 전체를 휴가로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이러한 형태의 휴가 사용을 제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넥슨 노조는 유연근무제와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따른 근무시간 증빙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최우선 해결 과제, 포괄임금제 관련 논의는 2019년으로 미뤄져

한편 포괄임금제를 비롯한 임금 관련 논의는 2019년으로 미뤄졌다. 포괄임금제는 노조가 출범할 때부터 최우선 해결 과제로 내세운 이슈로, 3N 중 하나인 넥슨의 포괄임금제가 폐지될 경우 넥슨은 물론 게임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게임업계는 최근 포괄임금제를 하나 둘 폐지해 나가는 추세다. 펄어비스와 웹젠에 이어 2019년부터는 위메이드가 수당 삭감없이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합의를 이루지 못한 노조 가입 범위에 대해서는 2019년 다시 시작될 4회차 교섭 전 노조가 입장을 정리해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좀 더 세밀한 실무 교섭을 통해 차근차근 합의를 이뤄나갈 예정이라고 배수찬 지회장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