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개발을 총괄 지휘했기 때문에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 사이에선 굉장히 친숙한 ‘롭 팔도’(Rob Pardo) 블리자드 게임 디자인 부문 부사장. <스타크래프트2>와 <WoW: 리치왕의 분노> 등 블리자드 모든 게임의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롭 팔도가 생각하는 ‘게임 디자인의 철학’ 이란 과연 무엇일까?
디스이즈게임은 4월29일 오전(미국 시간) 캘리포니아 주 얼바인 블리자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롭 팔도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간결한 어조로 블리자드의 게임 철학과 신작의 개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바인(미국)=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블리자드가 추구하는 제 1의 철학은 '재미'
TIG> 만나서 반갑다. 우선 ‘블리자드’에서 만드는 게임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롭 팔도> 블리자드가 게임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부분은 바로 ‘플레이의 재미’. 다시 말해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높은 완성도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게임의 외적인 문제로 인해 완성도와 재미 부분에서 피해를 입는다면 그 게임은 결코 고객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는 개발 초창기부터 이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 힘과 노력을 쏟아왔다. 실제로 게임의 모든 개발 스케줄만 보더라도 ‘재미있는 게임’, ‘높은 완성도의 게임’을 만드는 것에 맞춰진다.
TIG> 블리자드는 최근 몇년 동안 빌 로퍼, 마크 컨 등 유명 개발자들이 많이 퇴사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블리자드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실제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 같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블리자드는 특정 한두 명의 개발자들이 모든 아이디어를 내고,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다. 물론 언론에서는 특정 인물이 두각을 나타내기는 한다. 하지만 언론에 나오지 않은 개발자들 역시 모두 창의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갖출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개발자 한 두 명이 나간다고 해서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블리자드가 만드는 모든 게임들은 특정 개발자들의 작품이 아니며, 해당 프로젝트 팀원 전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 이탈이 있더라도 블리자드는 언제나 블리자드일 수 있는 것이다.
TIG> 블리자드가 창의적인 문화를 가지게 된 배경과 그것을 유지하는 비결은?
우선 각 팀의 리더들이 창의력을 키우고 어떻게 하면 이끌어내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기존의 팀원들과 새로운 팀원들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특별하게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 고유의 ‘습관’ 또는 ‘전통’ 이라고 할까? 우리는 게임 개발 관련해서 특정 이슈가 있으면 절대로 개인이 혼자서 고민하지 않는다.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 고민한다. 또한 유저들의 커뮤니티 의견 역시 항상 귀를 기울여서 항상 의견을 받고 반영한다. 우리가 창의성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점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TIG> 개발자들을 뽑을 때 직접 면접에도 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지 궁금하다.
새로운 인력을 뽑을 때는 ‘팀원들과의 협업을 잘 해내는지’, ‘블리자드의 문화에 잘 적응하는지’, 마지막으로 ‘게임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그 중에서도 게임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아트웍과 줄거리만 보더라도 게임을 잘 이해하는 사람, 또한 흑백으로만 이뤄진 게임을 보고도 그 안에 숨어있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사람.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높게 평가한다.
스타2는 알파버전 초기 단계, 베타 준비중
TIG> 현재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와 <리치왕의 분노> 두 가지 신작이 발표되어 있다.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각각의 게임들에서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
워낙 많아서 특별하게 한 부분만 딱 꼽기가 정말 어렵다.(웃음)
일단 몇 가지를 들자면, 우선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배틀넷’ 시스템과 ‘래더 시스템’에 많은 중점을 두었다. 기존의 배틀넷이 굉장히 많은 유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배틀넷, 그리고 혁신적인 래더 시스템을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의 유저들, 특히 한국 유저들의 마음에 꼭 들도록 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를 부탁한다.
그리고 <리치왕의 분노>에서는 ‘원작을 계승하는 요소’에 많은 신경을 썼다. 특히 새로운 지역을 추가하는데 있어 원작의 느낌과 연관성을 얼마나 살리느냐에 대해 굉장히 많은 신경을 썼다. 부가적으로 새로운 퀘스트와 함께 ‘죽음의 기사’(데스나이트) 같은 영웅 클래스의 디자인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TIG> 최근 쉐인 다비리(Shane Dabiri) 프로듀서가 블리자드에서 차세대 MMORPG에 개발을 진행한다고 밝힌바 있다. 사실인지 궁금하다.
우리 회사 공식 사이트에서 이에 대해 포스팅을 한 바 있지만, 현재 블리자드에서 새로운 신작 차세대 MMORPG를 개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쉐인이 참가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게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이른 단계라고 생각한다.
TIG> 최근 블리자드가 만든 <디아블로3> 홈페이지가 오픈하는 등 관련 루머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아직까지 회사 차원에서 차기작 관련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내가 이 자리에서 <디아블로3>와 관련해서 직접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해를 바란다.
TIG> <스타크래프트2>의 최근 개발 진척 상황에 대해서 알려달라.
지금은 ‘알파 버전 초기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세 종족의 멀티 플레이가 가능한 단계로, 종족간 밸런스 관련해서 많은 수정을 가하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유닛을 디자인하고, 쓸모 없어진 유닛을 빼는 등 변화가 많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고로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참고로 요즘은 멀티 플레이도 멀티 플레이지만, 싱글 플레이 모드의 개발에 많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스타크래프트2>의 개발 관련 최대의 이슈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베타 테스트 준비”라고 답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베타 테스트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스타크래프트2> 싱글플레이 모드의 스크린샷.
액티비전 블리자드 출범, 개발에 영향 없다
TIG> 블리자드는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2> 관련해서 한국에서 많은 이벤트를 진행했다. 혹시 올해 안으로 또 다른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 있는가?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어떤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일정이 잡힌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이 워낙 e스포츠의 메카이고, 인기 있는 나라이다 보니 조만간 또 다시 행사를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적인 요소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국적 유닛의 추가’ 같은 부분은 현재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나 e스포츠 등에 있어 한국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많이 감안해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TIG> 최근 인터넷에는 롭 팔도 부사장의 딸이 <WOW> ‘흑마법사’를 플레이 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흑마법사가 PvP에서 지나치게 강력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니냐 하는 비야냥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굉장히 흥미롭다.(웃음) 음… 이전 <불타는 성전> 이전에는 확실히 내가 직접 클래스간 밸런스 조절에 있어 많은 관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클래스간 밸런스보다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 없다.
만약 그런 소문이 돌았다면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딸이 흑마법사를 하는 이유는 그저 소환수를 마치 ‘펫’(Pet) 부리듯 플레이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결코 PVP가 좋아서 즐기는 것은 아니다.
TIG> 블리자드는 최근 액티비전과의 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합병 관련해서 게임 개발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액티비전과의 합병이 당장 게임 개발에 영향을 준 것은 없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액티비전과 블리자드 개발자들은 서로가 팬이기 때문에 서로 교류하는 부분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하거나 공동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TIG> 혹시 한국 게임을 해봤다면 ‘디자인 측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게임이 있다면?
특별하게 한국 게임을 해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에 열린 GDC 2008에서 넥슨 북미지사 관계자의 MMOG 관련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감명을 받았다. <카트라이더>나 <메이플스토리> 같은 게임을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