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0월, 도쿄게임쇼에서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국내 개발사 '디자드'가 일본의 '요나고 가이낙스'와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것. 이번 계약을 통해 디자드는 <프린세스 메이커> IP를 활용한 게임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기획 및 개발은 디자드가 담당하고, 가이낙스는 감수를 맡는 방식이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시초로 불리며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1991년 첫 출시된 이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아 5편의 후속 시리즈가 제작된 바 있다. 다만, 2007년 이후 정식 넘버링 후속작은 출시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내 개발사가 PC와 스위치로 <프린세스 메이커> 신작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국내 게이머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냈다. 디자드가 <프린세스 메이커> 신작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드 김동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물었다.
디자드 김동현 대표
Q. 원작사와의 접촉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디자드의 어떤 가능성을 어필해 IP 사용을 허가 받았는지 알고 싶다.
A. 김동현 대표: 우연한 기회였다. 저희 사내에 원작자인 '아카이 타카미'님과 안부를 주고받는 분들이 계셨다. 그러다 작년 초, 국내에서 한 회사가 가지고 있던 <프린세스 메이커> 관련 라이선스가 만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프린세스 메이커>라면 요즘 시대에도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저희 아트 디렉터님이 원래부터 '찐팬'이시라며 팬아트를 한 번 그려주셨는데, 원작의 느낌을 굉장히 잘 살리시더라. 채색까지 해 보니 이 정도면 <프린세스 메이커>를 다시 만들어도 팬 분들이 반가워할 만한 아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그 특유의 느낌이 중요하지 않나.
저희가 큰 회사는 아니라 라이센스를 주신다는 것이 원작자의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희가 내부에 팬이었던 분들이 많고, 팬아트를 보여드리며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음을 어필했다. 그러다 보니 라이센스 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었다.
디자드의 AD가 그린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주인공
Q. 왜 <프린세스 메이커>였나? 육성 시뮬레이션은 요즘 잘 보이지 않는 장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디자드가 본래 개발해 오던 <아수라장>은 액션 게임이었는데.
A. 제가 과거에 몇몇 인디 게임을 혼자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서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어렵단 것'이다. <프린세스 메이커>라면 특히나 중요한데, 아트워크를 한 번 만들어 보니 원작의 그 감성을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여러 스트리머 분들이 종종 <프린세스 메이커>를 아직도 하시더라. <프린세스 메이커>가 원작을 안 해보신 분들도 밈을 통해 알고 있을 만큼 브랜드의 힘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느꼈다. 잘 만들면 요즘 게이머에게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소식이 공개되자 국내 올드 게이머의 반응이 컸다. 일본에서도 반응이 있나?
A. 일본에 아직은 보도자료 하나가 작게 나온 정도라, 소식이 잘 전해지지 않아서 큰 반응은 없다. 국내의 경우에는 이 정도로 좋은 반응이 올 줄은 예측하지 못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4월 정도에 아카이 타카미 선생님이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해서 현지 반응을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Q. 개발은 어느 정도 된 것인가? 정보 공개가 빠른 것 같은데, 원작을 해봤던 올드 게이머의 피드백이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나?
A. 개발 소식을 공개했을 때 반응이 좋으면 동기부여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더 좋은 반응을 보내 주셔서 사기가 많이 올랐다. 개발 진척도는 퍼센트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프린세스 메이커>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시스템을 만들면서, 신작인 만큼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두 가지가 본격적으로 맞물린 후에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수치적인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할 예정이다. 2025년 늦지 않게, 상반기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Q. 카렌을 주인공으로 고른 이유가 궁금하다. 주인공으로 한 게임의 개발이 중단됐던 비운의 캐릭터로 알고 있다.
A. <프린세스 메이커>를 개발하는 것이 디자드라는 회사를 알리는 목표도 있었고, 팬 분들이 좋아하실 수 있도록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것도 중요했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주인공 선택의 중요했다. <프린세스 메이커 1, 2, 3, 5, Q>의 캐릭터를 하나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여기서 <프린세스 메이커 2>는 <리제네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2024년 출시되기도 해서,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한 카렌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Q. 전반적인 세계관 설정은 어떻게 되나. 카렌은 프리퀄 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 Q>가 있는데, 해당 게임과 설정이 연동되나?
A. 기본적으로 '마계의 아이라는 설정'과 '현대(현실 세계)에 넘어가서 육성한다는 것'이 카렌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마계의 딸이라는 콘셉트는 <프린세스 메이커 4>의 페트리샤가 가져갔고, 현대에서 육성한다는 콘셉트는 <프린세스 메이커 5>에서 사용됐다.
따라서 반드시 이걸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었다. 그리고 제가 무사수행 콘텐츠를 정말 좋아해서 꼭 부활시키고 싶었다. 문제는 현대에서 무사수행을 하면 어색할 수 있으니까 판타지 시대를 배경으로 잡게 됐다.
마계의 딸이라는 원작 설정은 차용했다. <프린세스 메이커 Q>에서는 마계의 후계자로써 여러 음모를 피하고 현대에 보내진다는 이야기었는데, 여기서 마계에서 여러 이야기를 겪는다는 것은 살리려고 했다.
디스이즈게임을 통해 공개한 신규 일러스트
Q. 무사수행 콘텐츠는 어떻게 개발되고 있는가? 아무래도 무사수행 콘텐츠가 육성에 너무 좋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A. 저는 재미있게 즐겼지만, 무사수행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저희 내부 개발자 분들에게 게임을 즐긴 방법을 물어보니 다양하시더라. 무사수행을 꼭 해야 하는 콘텐츠로는 개발하지 않으려 한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플레이어가 선호하는 육성법을 통해서 원하는 결과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어느 정도 느슨하게 가려 한다.
Q. 엔딩은 몇 가지를 생각하고 있나?
A.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공개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팬 분들이 충분히 만족하실 만한 숫자를 목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이다.
Q. 아무래도 아트가 중요한 게임이다. <프린세스 메이커> 1, 2편의 화풍을 구현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있는지
A. 말씀하신 대로 손으로 채색하던 그 시절의 그 느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캐릭터나 일러스트가 움직이는 기법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크게 역동성을 주기보다는 지나치게 정적인 면을 완화하는 수준으로만 적용하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의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를 거치며 육성하는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의상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신경 쓰고 있고, 나이에 맞게 표현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예전에 2D 게임을 만드시던 분들이 이 부분에서 고생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 저희가 똑같이 겪고 있는 느낌이다(웃음).
지나치지 않은 수준에서, 일러스트에 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기법이 시도되고 있다. (오른쪽 사진)
10세 카렌, 11세 카렌, 12세 카렌
Q. 아무래도 오래 된 IP인 만큼 신규 유입층에게 어필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이 부분은 어떻게 잡아나갈 것인지.
A. 육성 시뮬레이션이 난이도가 무조건 높은 장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래부터 접근성이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기에 너무 허들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는 게임을 잘 하지 않던 사람들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게임이다. 모든 플레이가 의미가 있는, 말하자면 실패가 없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Q. 원작사가 감수를 맡고 있는데,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원작사 측에서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한 부분이 있는가?
A.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저희가 원작을 존중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큰 피드백은 아직 없었다. 아카이 타카미 선생님이 방문하시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을까 싶다.
Q. 그러고 보니 도쿄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A. 저희가 정말 <프린세스 메이커>를 좋아하는 개발자로 이루어져 있고, 오래 된 시리즈라고 해서 '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드렸다. 장르를 대표하는 IP로써 <프린세스 메이커>가 다시 빛을 발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프린세스 메이커>는 설명하지 않고도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아카이 타카미 선생님이 "맞다"는 답변을 주셔서 감사했다. 이 부분을 잘 살려 <프린세스 메이커>를 다시 각광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2023 TGS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Q. 육성 시뮬레이션은 아무래도 노하우가 많이 필요한 장르지 않나. 플레이어가 페러미터를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많은 가능성이 생기는데. 이 부분에 대한 어려움은 없나?
A. 아무래도 검수나 밸런스가 중요한 영역인데, 내부에서만 답을 찾고 있지는 않다. 외부 협력을 통해 QA 부분을 잘 잡으려 한다. 가령 이전부터 협력해 온 하이크라는 회사는 업력이 상당해서 과거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다. 아직 계약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업력 있는 파트너사들과 함께 후반 완성도를 높여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Q. 출시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일본어나 영어 버전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A. 일본어까지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지만, 해외권에서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출시 시점에서 여러 언어를 지원해야 할지, 순차적으로 지원해야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Q. 2025년 출시 계획으로 알고 있는데, 얼리 액세스로 선출시한 후 업데이트로 보완해 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곧바로 정식 버전을 출시하는 것인가?
A. 출시 시기에 맞춰서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얼리 액세스도 좋지만, <프린세스 메이커>에 이 방식이 어울리냐에 대해서는 팀원과 상의가 필요하다.
Q. 개발 인력은 더 늘릴 예정인가? 펀딩도 생각하고 있는지.
A. 아무래도 펀딩 제안이 들어와서 미팅을 진행할 예정인데, 그 이후에 결정될 것 같다. 인력은 가능하면 외부 협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Q. 본래 개발하던 <아수라장>은 어떻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나?
A. 지난 CBT 이후로, 보강해야 할 부분을 알게 됐다. 보강해야 할 부분 위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캐릭터의 콘셉트와 조작감, 타격감 면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캐릭터의 수와 숙련자와 초보자가 어떻게 만나느냐에 대한 매치메이킹 부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초보자들이 패배한 경험 위주로 게임을 접하지 않도록 봇을 매칭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장치를 보강하고 있다. 보강이 마무리되면 6월 경 진행되는 스팀 넥스트 페스트를 통해 테스트를 한 번 더 진행할 것 같다. 2024년 출시라는 목표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Q. 아무래도 기존 시리즈를 접했던 올드 게이머들의 기대가 크다. 한 마디 부탁드린다.
A. 저희도 원작의 팬이다 보니, 기다리는 팬 분들이 만족할 만한 게임이 나올 수 있도록 진정성있게 개발하고 있다. 기대에 벗어나지 않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선보이고자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니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