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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20] "새로운 게임 안 하는 게 아니라, 게임들이 새롭지 않다"

업계 동료 겸 '겜친' 들의 대담

방승언(톤톤) 2025-03-17 10:17:36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의 신작 <스플릿 픽션>이 장안의 화제다. 뛰어난 만듦새, 창작의 환경과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감동적 은유, 기발한 협동 메카닉 등으로 널리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런데 ‘아무나 할 수 없는’ 게임으로도 통한다. 긴 여정을 함께해 줄 친구가 반드시 한 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게이머가 ‘최신 그래픽카드보다 어려운 요구사항’이라며 절규하고 있다.

하나 고백하자면, 기자는 10여 년 전부터 이 방면에서는 ‘호사’를 누려 왔다. 성향이 잘 들어맞는 게임 친구(이자 현실친구)를 3명이나 확보해 다양한 협동 게임을 함께 즐겨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들은 5년~10년 동안 각자 업계에 몸담고 있는 현직자들이기도 하다. 업무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각자가 산업 내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서로 많이 다르다. 각각 1인 개발자, 중견 기업 기획자, 대기업 개발자 등 다양한 배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각자 쌓인 경험이나 업계 현안을 향하는 시각에서 늘 비슷한 듯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막역한 친구이자 업계 동료, 그리고 게임 친구인 세 사람이 업계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의견을 나누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단순하지만 오래된 궁금증을 해소해 보기 위해, 세 사람을 소집한 뒤 ‘업계인 대담’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건 술자리를 가졌다. (술값은 기자가 냈다) 현직자들답게, 항간에 돌아다니는 견해와는 다로 다른 관점들도 제시된 점이 흥미롭다.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해 봤다.

※ 전원 익명을 희망했다. 편의상 1인-개발자, 중견-기획자, 대기업-개발자로 지칭한다. 각자 기업이나 참여 작품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모두 생략했다.

10년 넘게 가져온 술자리 중 가장 재미없었던 점에는 사과하고 싶다

기자: 각자 경력 좀 간단히 소개해 줘.

1인-개발자: 17년부터 프로그래밍 독학해 가며 개발을 시작해서 2019년에 첫 작품 냈고, 지금은 차기작 개발 중이야(그의 첫 게임은 국내외 대형 스트리머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명성을 얻었다.).

중견-기획자: 2016년부터 일했고 중간에 잠깐 쉬었다가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그가 일하는 기업은 10년 이상 된 MMORPG를 메인 사업으로 삼고 있는 중견 개발사다).

대기업-개발자: 12년 좀 넘게 일했지(그가 일하는 기업은 국내 업계에서 규모로 5위 내에 드는 대형 게임사다).

기자: 세 사람이 공통으로 겪었던 이야기부터 해보자. 코로나19 당시에, 힘들었다는 기업도 있고 그 반대인 기업도 있는데, 너희들이 느끼기엔 어땠어?

대기업-개발자: 난 솔직히 코로나가 게임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잘됐으면 잘됐지, 왜 어려워졌다는 기업이 있는 거야?

기자: 내가 알기로는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가 일어났어. 우선 대기업이 연봉 인상으로 인재를 흡수하면서 작은 기업들은 사람 뽑는 것부터 힘들었던 걸로 알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게임 이용 시간은 늘었는데, 개인별 수입은 줄었었잖아. 그래서 게임 소비자들은 자기 돈을 되도록 유명하고 인기 있는 게임에 한정적으로 쓰려는 경향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새롭게 진입하려는 게임사들엔 어려웠다는 것 같아.

1인-개발자: 난 2019년에 게임 내고 다음 해에 코로나가 터졌는데, 확실히 판매량이 늘어나는 순간들이 있었어. 대대적으로 늘어난 건 아닌데, 이전이랑 비교해서 판매량 스파이크(급상승)가 여러 번 생기더라고. 유명 유튜버 스트리밍 같은 게 없었던 기간인데도 몇 번 그랬어. 그런데 코로나 끝나고 나니까 확실히 그런 경향이 줄어들더라.

코로나를 돌아보는 시선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 고용시장 한파의 이유는?

기자: 코로나 끝나고 지금까지 고용시장이 한파라던데 실제로 그런가?

중견-기획자: 코로나 이후에는 확실히 다 함께 어려워진 게 있지. 코로나 때 재택근무로 업무 환경이 안 좋아지면서 더 뛰어난 인재가 급하니까 기업들이 월급을 인상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들었어.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고 돈 못 버는 일부 프로젝트가 올라가버린 직원 연봉을 감당 못하게 됐고, 결국 인력이 대규모로 시장에 풀렸지. 그런데 올라간 만큼의 연봉을 주고 다시 그들을 데려갈 기업은 막상 계속 줄어든거야. 그래서 지금은 인력 시장이 아주 차가워졌다고 하더라고.

대기업-개발자: 코로나 때 개발자들 연봉이 오른 건 IT 전반적으로 돈(투자)이 많이 몰렸기 때문이기도 해. 사람들이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하면서 IT 쪽에 ‘붐’이 많았잖아. 배달 앱이 확 잘된다든지. 새로 나타난 <로블록스>랑 기타 메타버스도 많았고.

요즘은 우리 회사도 사람 뽑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아. 근데 (절대적 인력 공급이 적은 게 아니라) 다들 연봉이 높아져서 그런 것 같아. 그렇다고 회사가 낮은 연봉의 사람들을 뽑고 싶냐 하면, 그건 아닐 거거든. 결국 임원들 원하는 레벨의 사람들을 구하기가 (비용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얘기겠지.

코로나 시기에는 모든 개발사가 개발자를 연봉 높여줘 가며 뽑을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전 영역에서 인력 수급이 쉬웠을 거야. 근데 그렇게 높은 연봉 줘가며 뽑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아웃풋이 안 나왔고, 그래서 지금 회사들이 다 같이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

여러 대기업의 경쟁적 연봉인상이 있었다

기자: 중견 개발사는 구인 현황이 어때?

중견-기획자: 이번에 기획 1명 뽑는 데 140명이나 지원했어. 전에 같은 공고 냈을 때는 15명 지원했었거든. 그걸 보니까 확실히 요즘 이직 시장 어렵구나 싶더라고.

기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중견-기획자: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기업 소기업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프로젝트 정리되었다는 소리가 계속 들려.

대기업-개발자: 그것도 결국 업계에서 돈이 얼마나 도느냐의 문제야. 프로젝트 접히고, 개발팀 크기 줄고 이런 게 전부 외부에서 업계로 돈이 유입 안 돼서 그런 거거든. 물론 가장 직접적 원인은 게임이 잘 안되는 것이겠지만, 나라 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렵다 보니 투자 받기 어려운 것도 한몫하지.

기존 프로젝트는 계속 접히는데, 새 프로젝트가 시작될 돈은 (업계에) 없으니까 자리가 안 생기는 거야. 그러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꾸 눈만 높아지지. 그런데 눈은 높아졌으면서 연봉 수준을 그에 맞게 높게 줄 생각들은 또 없어.

게임 이용율은 확실히 코로나 시기 대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 ‘업계가 어렵다’는 목소리

기자: ‘업계가 어렵다’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껴?

대기업-개발자: 내 생각에 업계에 실패 사례가 갑자기 늘어난 건 아냐. 원래도 게임이란 게 언제든지 한순간에 망할 수 있는 사업일 뿐인 거지,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지는 않았다고 봐. 게임에 돈 쓸 사람은 (경기랑 상관없이) 다 쓰거든.

기자: 그런데 계속 얘기 나오듯이 신규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접혔다는 소식은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진 게 사실이잖아.

대기업-개발자: 난 역시 투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유일한 설명 같아.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결국 어디선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 돈줄이 마르니까 조직이 해체되거나 사람이 나가거나 하는 거지. 캐시카우를 마련해 둔 회사들은 이전과 똑같아. 운 좋게 유저 풀을 확보한 게임의 운영 기업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사라지는 거지.

중견-기획자: 우리 게임의 경우 연식이 오래되어서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긴 해. 기존 유저가 조금씩 빠져나가니까. 그래서 신작이 빨리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기자: 신작 의존도가 큰 1인 개발자 입장에선 어떻게 느끼나?

1인-개발자: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신작들 퀄리티가 비교도 안 되게 올라와서 경쟁이 세졌어. 해외 커뮤니티에 1인 개발 게임이라고 광고되는 게임들 보면 내 프로젝트와 너무 비교되고, 정말 혼자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야. 그래서 웬만한 퀄리티 신작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 같아. 스팀에서 괜찮아 보이는 게임들을 발견해서 들어가 보면, 리뷰 수가 많지도 않고, 평가도 낮을 때가 많아.

구조조정이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 “새 게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게임들이 새롭지 않다”

기자: 신작 도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작년 통계를 보니까 1년 동안 스팀에서 새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 비율이 15%밖에 안 된다더라고. 이런 경향에 대해서 느끼는 바는?

대기업-개발자: 글쎄, 유저들 성향이 아니라 재미있는 게임이 안 나오는 상황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유저들이 문제일까? <헬다이버스 2> 봐, 얼마나 센세이셔널했어. 그런 게임에 취향 없던 사람들도 다 와서 플레이했잖아. 그런거 보면 사람들이 새로운 게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새롭게 느낄 만한 게임이 안 나오는 거 아니냐고.

기자: 사람들이 새 게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게임들이 새롭지 않다? 그러면 왜 그런 경향이 생겼을까

중견-기획자: 예전에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찐’(진짜)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들었었잖아. 그런데 게임이 이젠 (작품이 아닌) 사업이 되어버리다 보니, 게임을 이익 창출 수단으로만 굴린단 말이야.

그래서 게임에 무슨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만 하면 “그거 이익 안 되는데 왜 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우리(게이머)가 원하는 진짜 게임 본연의 재미는 생각 안 하고, 숫자상으로만 바라보면서 (콘텐츠를) 자르니까 재미있는 게임이 안 나와.

그러면서 기존 모델에 대한 집착은 커져. “돈 번 적 있는 메카닉”이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새로운 시도를 안 하는 거야.

대기업-개발자: 죄다 제록스*가 됐다는 거지.

*프린트 기업 제록스는 한때 혁신적 기업으로 꼽혔으나, 돈이 되는 사업에만 투자하고 혁신을 포기한 끝에 몰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익숙한 방향만 쫓는 기업운영의 위험성을 시사하는 사례 중 하나.



기자: 그런 ‘사업적’ 운영이 업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 근본적 원인은?

대기업-개발자: 그냥 업계에 돈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게 문제야. 특히 라이브 서비스들이 돈을 지나치게 ‘빨아먹는’ 게 나는 문제 같다.

중견-기획자: 라이브 서비스 과금 유도가 심하긴 하지. “우리 게임 하려면 이 정도는 사야 한다”하는 게임들이 많잖아.

대기업-개발자: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이 거기 열광을 하고, 그래서 돈이 잔뜩 모여. 그러면 이제 ‘똥파리’ 들이 잔뜩 꼬이는 거야.

기자: 그러면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새롭기만 하면 된다고?

1인-개발자: 새롭기만 한 게 능사는 아니지. 인디 게임들 보면 가격이 대체로 낮은데도 너무 낯선 방식이면 유저들이 플레이에 부담을 느껴서서 기피하는 경향이 생겨. 실제로 신선함을 추구하는 게임 중엔 시간과 집중력을 투자해야 하는 사례가 많아. 개발자 입장에서는 너무 평범하면 사람이 관심을 안 가질 것 같아서 독특함으로 승부한 건데, 부작용이 나는 거지.

그런데 반대로 망한 게임들 예시들을 보면 대부분 ‘어디서 본’ 게임이기는 해. 그래픽은 화려한데 무언가의 복제품이거나, 아예 대놓고 “A게임과 B게임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홍보하는 경우들, 여기에는 사람들 관심이 적어. 어떤 게임일지 보이니까.

대기업-개발자: 재미에 어느 정도 왕도는 있지. 그걸 잘 따르거나, 아니면 아예 신시장을 개척하는 게임이거나 해야지.

이후의 운영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지만 넷 다 <헬다이버스 2> 출시 초기엔 깊이 감탄했었다.


# ‘대세’ 게임이 줄어든 자리에

기자: 개발사들이 새로운 게임을 잘 못 만드는 게 문제라는 진단인데, 외부적 환경 변화는 영향이 아예 없다고 보는 거야? 예를 들어 전에는 한두개 게임이 게임이 대세로서 주목 받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현상이 약해지거나 사라졌잖아.

1인-개발자: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 게임이 너무 자주 나오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히 빨리 옮겨 가.

중견-기획자: 게이머들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관행도 변한다고 봐야겠지. 내가 대학 때만 하더라도 <리그 오브 레전드>에 신 캐릭터 나왔다고 하면 모두 그 얘기 했었어.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전부 하는 게임이 제각각이야.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잘 흡수하는 나이대의 사람들이 예전만큼 게임을 안 하는 것 같기도 해.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우리 게임같이 오래된 게임을 계속 운영하는 개발사가 유리한 점도 있고.

기자: 갈수록 유저 성향이 파편화돼서 대세 게임이란게 없어지고 유저 결집이 잘 안된다는 얘긴데, 그럼 기존에 잘되는 큰 게임으로 먹고 살던 게임사들은 다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는 거 아냐?  


대기업-개발자: 지금도 대세 게임이 없진 않지 <로블록스>는 몇천만 명씩 플레이하잖아.

게다가 설령 유저 결집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그건 우리같이 나이든 업계인들이나 신경 쓰는 사정일 뿐이야. 시장이 쪼개지는 걸 보면서 위기다, 업계가 작살나는 것 같다, 암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0대, 20대 생각은 다를 거라고. 걔네들이 보는 게임 시장은 자기들 할 거 천지고, 재미있는 거 너무 많아서 행복한 곳일 걸?

중견-기획자: 그렇지, 앞으로는 그렇게 완전히 다 세분되는 시장인 거지.

기자: 그러니까, 이전처럼 하던 기업들이 따라가기 힘든 것 뿐, 업계 전체는 아무 이상 없고, 소비자들은 각자 할 게임 하면서 행복하다?

중견-기획자/대기업-개발자: 그렇지.


# 변화와 생존

기자: 대세 게임에 매달리는 거대 게임사들은 결국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인 거야? 그럼 그런 시장 속에서 너희는 어떻게 할 건데?

대기업-개발자: 난 지금 회사 망할 때까지 계속 있어야지. 다른 기업에 가서 새 게임을 한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이 극단에 가깝도록 낮다고 봐. 반면 지금 회사는 가지고 있는 캐시카우가 사라질 때까지는 존속할 테니까 그때까지 있어야지.

중견-기획자: 나는 미래에는 만들고 싶은 대로 게임 만들고 싶어. 지금 회사 안에서는 그러기 힘들어. 돈을 쥔 게 다른 사람이니까. 내가 뭔가 제안을 하더라도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고 결정권자는 투자자와 돈을 쥔 윗선이야. 위에서 아니라고 하면 할 수가 없어.

기자: 각자 회사가 저물어 갈 수밖에 없는 게 확실한데도, 남아있어야 한다?

중견-기획자: 확실하게 저문다고 말할 수는 없지. 그보단 아무도 모르는 것에 가깝지. 그런데 피차 미래를 모르니까, 누군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방향으로 확고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거잖아. 근데 회사들은 모든 방향을 한꺼번에 추구하려고 해. 결정권자 중 아무도 리스크 안 지고 싶어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

1인 개발 게임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발라트로>

기자: 규모 있는 기업들 사정이 그렇다면, 반대로 1인 개발자들은 본인 역량만 되면 오히려 장기적 측면에서 유리할 수도 있는 건가?

1인-개발자: 그런 측면에서는 1인 개발은 굳이 말하면 양날의 검이지. 1인 개발자도 캐시카우가 있어서 계속 거기 의지해 살면 좋은데 일단 나는 그건 아니야. 그래서 생존의 두려움을 항상 느끼고 있어. 하나가 웬만큼 성공해도 계속 다음을 생각해 내야 하니까.

기자: 그래도 변화를 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는 있잖아.

1인-개발자: 그렇긴 하지.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자유도는 훨씬 높지. 그래서 나는 그 자유도 때문에 이제 와서는 어떤 회사에서든 입사 제의가 오더라도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아.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할 것 같아.

기자: 아까 얘기처럼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1인-개발자: 나오는 게임이 늘어난 건 맞는데, 그만큼 소비자 수도 늘어난 것 같아. 2019년에 냈던 첫 작품 수익이, 계속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발생을 하거든. 그걸 보면서 희망을 갖게 돼. 비슷한 성공을 계속 쌓아놓으면 개인으로서도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자유도뿐만 아니라 생존도 챙길 수 있게 되는 거고.

또 하나의 1인 개발 히트작 <매너 로드>


# 소수가 아닌 소수취향

중견-기획자: 앞으로는 그런 게임이 대세가 될 것 같아. 작은 집단의 욕구라도 확실하게 공략하는 게임. 사람들이 점점 그런 데는 돈을 안 아끼는 것 같아.

대기업-개발자: 대기업은 그런 면에서 불리해. 그런 게임은 돈을 붓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좋은 게임'은 자본이 적어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 자본이 많다고 게임이 잘 나오지는 않아.

대기업이 유리한 건 그저 좋은 '씨앗'을 발견했을 때, 그걸 키울 자산이 많다는 것뿐인 듯해. 근데 이러려면 운이 많이 작용해. 그래서 결론적으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경쟁에서 대기업이 더 유리한 지점이 있냐면, 나는 아니라고 봐. 다만 대기업은 그런 게임을 만드는 시도를 더 많이 해보면서도 안 굶어 죽을 덩치가 있을 뿐이야. 주사위를 '리롤'(다시 굴림)할 기회가 많은 거지.

기자: 그런데 리롤 비용이 점점 천문학적으로 되고 있잖아.

대기업-개발자: 그러니까 대기업이 점점 더 불리하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트리플A 게임의 소비자 규모가 대기업들 지탱할 정도가 되지만 나중엔 아닐 거야. 제작비가 점점 더 늘고 있거든.

중견-기획자: 아니면 마케팅에 크게 투자해서 수익을 강제로 창출하는 경우도 예전엔 먹혔다는데, 그것도 이제는 안 된다고 그러더라.

대기업-개발자: 예전엔 마케팅하면 그만큼 기대감이 커졌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당해’봤으니까.

천문학적 단위의 실패를 해도 바로 죽진 않는 '덩치'가 대형 개발사의 경쟁력이다


# 5년 후의 우리

기자: 너희가 생각하는 업계의 앞날이 어떤지 대충 알겠어. 마지막으로 5년 후의 자신을 상상하며 마무리한다면?

중견-기획자: 1인 개발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지금 다니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회사를 옮기더라도, 그게 게임사가 아니더라도 1인 개발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할 거야. 평생을 걸쳐서 내 게임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었어.

대기업-개발자: 5년이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니까 이 회사에 계속 있을 것 같고, 내 기술이 있어야 하는 사내 프로젝트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야. 나는 개발자 중에서도 메이저 직군이 아니라서 쉽게 대체가 안 될 것 같아. 게임 개발은 개인적으로는 뛰어들 의지가 없는데, 원한다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은 된 것 같아. 말했듯이 저비용으로 게임을 만들어서 소수의 팬만 확보하면 되는 시대가 됐으니까.

1인-개발자: 5년 뒤에도 지금처럼 개발하고 있을 것 같아. 첫 게임 개발하고 나서 사람들 반응 보면서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의 가능성이 대단하단 걸 확인했어. 이렇게 작은 게임의 매력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그 숫자가 꽤 되더라고. 당장 걱정 없이 먹고 살 만한 수준으로 벌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꾸준히 하면 그 시점에 도달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여.

무엇보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거기에 느낌 감동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 자체가 내게도 감동이야. 나는 그 가능성 때문에 계속 게임 개발을 놓지 못할 것 같아.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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