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래프가 떨어지면 게임이 위험해질 수 있다.
초록색 그래프가 무엇이냐고? 스팀 API를 제공받아 통계를 보여 주는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동시 접속자 그래프'다.
최근 몇 년간 스팀 동시 접속자 추이를 통해 게임의 흥망성쇠를 평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기사에서도 그렇고, 유저 커뮤니티에서도 동시 접속자 그래프를 보며 게임을 평가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국내만의 이슈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해외에서는 이런 그래프를 보며 동시 접속자가 확연히 낮아진 게임들을 죽은 게임(Dead game)이라 칭한다. 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이트는 '스팀DB'다.
당연히 동시 접속자가 떨어지면 게임을 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고, 멀티플레이 게임의 경우에는 매칭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기사를 쓰는 이유는 최근 前 밸브 개발자 '쳇 팔리셰크'가 작성한 "내가 다음 게임에 얼리 액세스를 하지 않는 이유"라는 글 때문이다.
스팀DB의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추이 그래프
사진은 스팀 부동의 1위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2>다. (출처: steamDB)
# 멀티플레이 게임에 더욱 치명적인 유저 그래프
주장에 대한 정확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챗 팔리셰크는 글을 통해 스팀이 동시 접속자가 일정 수준 이하인 게임은 제대로 된 데이터를 표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런 경향성은 소규모로 개발된 멀티플레이 게임에 치명적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논란이 된 원본 글은 현재 삭제됐다.)
들여다봐야 할 점은 여기서 스팀의 API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아니라 소규모 게임에 있어 동시 접속자 그래프 추이가 치명적으로 작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로 라이브 게임이 자체 클라이언트를 사용한 이전과 비해 스팀의 규모가 커지고, 스팀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게임이 많아지면서 각 게임의 PC 버전 기준 동시 접속자를 알기 쉬워졌다. 스팀은 자체적인 API를 제공하고, 여기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포함되어 있기 대문이다.
스팀 상점 페이지에는 상위권의 게임만 표기되지만, 조금만 검색해 스팀의 API를 보여 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게임이 출시부터 지금까지 몇 명의 유저 수를 유지하고 있는지 세부적인 그래프로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메인 화면부터 유저 수 그래프다. (출처: steamDB)
기존에는 랭킹 순위나 길드 수를 통해 유저 수를 추측하거나 개발사의 공식 발표(주로 흥행을 자랑하기 위한)가 아니라면 대략적인 동시 접속자를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를 알기 위해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다. 사이트에 접속하고 캡처하면 끝이다. 심지어 사이트에서는 스팀 플레이테스트만 하더라도 몇 명이 게임에 접속해 있는지 그대로 출력된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서 정보는 굉장히 빠르게 퍼져나간다. 커뮤니티에는 "오늘 동시 접속자 떨어졌더라"는 글이 올라오고, 유명한 게임이라면 항상 기삿거리를 찾는 기자 혹은 이슈를 찾는 유튜버에게 좋은 소재가 된다. 어떤 게임의 '동시 접속자가 구체적으로 XX만에서 X만까지 떨어졌더라' 하는 글은 이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구글을 키고 검색창에 '동접'을 친 다음 뉴스 탭을 눌러 보라.
# 숫자가 가속화하는 흥행
'대세감'을 좇는 게이머에게 이런 수치는 좋은 소재가 된다. 흥행이 어떻건 자신이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별 상관이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는'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멀티플레이 게임, 특히 소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매칭도 가뜩이나 안 잡히는데 커뮤니티에서 "지금 게임 하는 사람이 00명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욕이 솟을 사람은 적을 것이다.
협동 게임을 찾는데 같이 할 사람은 없어 '매치메이킹'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려는 사람에게는 낮은 유저 수 그래프가 게임을 구매하지 않을 가장 큰 동기가 될 것이다. 챗 팔리셰크가 삭제됐던 글을 작성한 이유는 아마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챗 팔리셰크의 발언에 "사이트에서 보여 주는 수치는 스팀 API에서 그대로 가져와 보여주는 것"이라며 즉각 반박했던 스팀DB 운영자 '파벨 준딕'도 "저도 스팀이 일일 활성화 유저 수와 같은 추가적인 통계를 제공하면 좋겠다. 스팀이 이를 제공한다면 우리도 표기할 것"이라며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한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유저 수가 크게 줄어들어 사실상 매칭조차 어려워진 게임을 Dead game이라고 칭한다.
사진은 동시 접속자가 크게 하락할 당시의 <멀티버서스> (출처: 레딧)
반대로 소수의 사례지만, 입소문을 제대로 타면 오히려 이런 표기가 게임의 흥행을 더욱 가속화해 주기도 한다. <배틀비트 리마스터>와 <리썰 컴퍼니>가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두 게임 모두 작은 인디 스튜디오에서 개발된 게임이지만 입소문을 제대로 끌어모으며 크게 흥행했다. <배틀비트 리마스터>의 경우, 한창 치고 올라올 당시 당시 국내와 해외 언론사가 게임을 소개할 때 주로 사용한 문구는 "동시 접속자가 XX만을 찍었다"와 "동시 접속자가 <배틀필드 2042>보다 많다"였다.
물론, 콘솔에 동시 출시된 게임이라면 "콘솔 유저수도 생각해야 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콘솔에서는 명확한 라이브 인원을 알기 어렵고, 동시 접속자 그래프를 보며 게임을 손가락질하는 게이머들은 "굳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주제다.
'게임을 잘 만들면 동시 접속자가 높을 테고, 별로면 낮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쓰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다. 기사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동시 접속자를 숫자 그대로 볼 수 있는 세상이기에 이전보다 게임의 흥행과 평가가 더욱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여담으로 게임의 동시 접속자 추이가 커뮤니티에서 밈(meme)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정식 출시의 좋은 반응을 통해 동시 접속자를 끌어올린 <이터널 리턴>이 그런 경우다. <이터널 리턴> 커뮤니티에서 "오늘 동시 접속자가 줄었다더라 / 올랐다더라"하는 글은 마치 일상처럼 사용된다.
유저가 하루마다 동시 접속자 지표를 보며, 그래프가 올라가면 기뻐하고 떨어지면 슬퍼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동시 접속자를 그대로 보여 주는 스팀의 데이터가 만들어 낸 하나의 흥미로운 그림이 아닐까 싶다.
'이터널 리턴 동접'으로만 검색해도 수많은 글이 보인다.
# 이제 유저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챗 팔리셰크는 원본 글을 삭제하고 작성한 새로운 글을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러프한(기초적인 수준만 완성된) 게임을 얼리 액세스 출시하고,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받으며 게임을 만드려 나가는 시도는 이전처럼 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플레이어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플레이테스트 등을 통해 얼리 액세스와 같은 '첫 출시'부터 완성도 높은 게임을 선보여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비록 추측이지만 그가 새로운 글을 통해 얼리 액세스를 어느 정도 긍정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남긴 이유는 기사에서 소개한 내용과도 약간이나마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게임의 흥행도를(최소한 스팀에 출시한 버전은) 수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서, 시작부터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해 동시 접속자가 낮다면 '망한 게임'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고, 이미 낮아진 이미지 속에서 반전을 보여주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용자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얼리 액세스 게임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기본적인 완성도를 어느 정도 담보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가 아닌가 싶다.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하며 계속해서 그래프를 유지해 주고,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는 '충성 유저층'의 확보도 무엇보다 중요한 듯 싶다. 멀티플레이 게임이면 더욱 그렇다.
출시 초기의 흥행 부진을 이겨내고 반전을 선보였던 <배틀필드 2042>와 같은 사례를 들어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AAA 게임은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본기와 체급이 있기에 부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체급이 약한 작은 개발 규모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크게 꺾였던 상황에서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반전'에 성공했다는 사례는 많지 않다.
따라서 오늘도 이 초록색 그래프를 우상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최근 게임사들은 유저와의 소통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당연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점도 분명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소통이 미비하거나 이슈에 대응하지 못해 동시 접속자 그래프가 크게 꺾인다면, 온갖 게임 커뮤니티에 '한 때 동접자가 OO만 명이었던 게임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갈 테니 말이다.
오늘도 많은 개발자가 이런 유저 수 그래프를 꿈꾸며 잠에 들지 않을까 싶다.
사진은 스팀에서 최근 유행 중인 <리썰 컴퍼니> (출처: stea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