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카카오게임즈가 엑스엘게임즈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카카오게임즈는 엑스엘게임즈 지분 53%를 1,180억 9,218만 원(약 460만 주)에 취득했는데요.
이로써 카카오게임즈는 엑스엘게임즈의 경영권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 결정으로 엑스엘게임즈의 4대 주주였던 위메이드는 200억 원 규모의 카카오게임즈 주식 전량을 매각했죠.)
카카오게임즈는 왜 엑스엘게임즈를 인수했을까요? 엑스엘게임즈가 카카오게임즈의 품에 안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회사는 앞으로 무엇을 할까요?
먼저 카카오게임즈가 엑스엘의 경영권을 가져간 1,180억 원의 무게를 생각해봅시다. 단순 비교는 늘 조심스럽습니다만, 카카오게임즈가 엑스엘게임즈의 경영권을 얻기 위해 쓴 돈은, 2019년 4분기 카카오게임즈의 매출과 그 규모가 비슷합니다.
13일 카카오 실적발표에 따르면, 카카오가 2019년 한 해 게임 콘텐츠로 벌어들인 돈은 3,973억 원입니다. 2019년 4분기 카카오게임즈의 게임 매출은 1,059억 원으로 전체 연 매출의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중 높은 성과를 올린 게임이 바로 엑스엘게임즈의 <달빛조각사>입니다.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시한 달빛조각사는 카카오의 전체 게임 매출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2019년 10월 10일 출시된 <달빛조각사>는 그보다 앞서 출시됐던 <테라 클래식>, 오락실 게임을 재탄생시킨 <콘트라: 리턴즈>, 김태곤 PD의 <창세기전: 안타리아의 전쟁>보다 흥행에 성공했죠.
<달빛조각사>가 서비스 초기 경험치 오류를 비롯한 각종 버그에 시달리기는 했습니다만, 2019년 하반기 모바일 MMORPG 대전에서 나름 자기 자리를 지킨 게임이기도 합니다. 매출 순위 10위 권 아래 오래 머물렀던 지금은 앱스토어 매출 21위, 구글플레이 매출 46위를 기록하며 충성도 높은 유저 풀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와 유사한 사례로 넥슨과 넷게임즈를 들 수 있습니다. 2018년, 넥슨은 1,450억 원으로 넷게임즈의 지분 48%를 보유하며 최대 주주가 됐는데요. 퍼블리셔와 개발사 관계로 관계를 쌓았다는 점, 인수 대상 회사의 대표가 MMORPG 개발자로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는 점, 그 밑에 풍부한 노하우의 개발팀이 있다는 점이 두 케이스의 유사점입니다.
카카오게임즈는 넥슨이 넷게임즈에 투자한 돈보다 더 싼값에 엑스엘게임즈를 가져갔습니다. 엑스엘게임즈에게는 전 세계 64개국 이상에서 약 2천만 명 이상의 누적 가입자 수를 기록한 IP <아키에이지>도 있죠. 이 정도면 카카오게임즈 입장에선 굿 딜이 아닐까 합니다. 넥슨과 넷게임즈는 모바일 MMORPG <V4>로 성과를 냈는데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는 어떨지 두고 볼 일입니다.
<달빛조각사>가 2019년 하반기 경쟁작으로 분류됐던 모바일 MMORPG보다 벌어들인 돈이 적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카카오게임즈는 MMORPG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매출을 보장한다는 판단이 섰을 것입니다 'for Kakao'나 '프렌즈' 시리즈로 기억되는 캐주얼게임 이상으로 말이죠. 한국 게임 시장에서 MMORPG의 매출력은 그만큼 강합니다.
카카오게임즈는 <뱅드림! 걸즈 밴드 파티!>나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 등 2차원 게임을 잘 가져오는 퍼블리셔로 일부 유저들에겐 "게임의 신 카카오"라는 칭찬까지 받곤 했는데요. 카카오게임즈는 2차원 게임에 들인 공 이상으로 MMORPG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음게임 시절부터 작년까지 <검은사막>의 국내 서비스를 했고, 오늘날 <패스 오브 엑자일>을 한국에 들여온 곳이 카카오게임즈입니다.
아직 소식은 없습니다만 PC MMORPG <에어>도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시를 맡기로 했죠. 크래프톤이 만들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할 예정인 <에어>는 작년 2차 CBT 이후 소식이 없는데요. 당시 카카오게임즈 김상구 PC 퍼블리싱본부장은 "두 회사의 명운이 달린 게임"이라고 각오를 비추기도 했습니다.
란투게임즈의 <테라 클래식>도 그 시도의 일환이었습니다만, 솔직히 성적이 좋진 않았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명 for Kakao>와 <의천도룡기 for Kakao>도 카카오게임즈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카카오게임즈에게 MMORPG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같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카카오게임즈의 MMORPG에 대한 시도는 물을 계속 마시고는 있는데 목마름이 해소되지 않았던 상황입니다. 엑스엘게임즈와 <달빛조각사>는 카카오게임즈에게 오아시스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카카오게임즈가 <달빛조각사> 하나만으로 엑스엘게임즈를 인수하진 않았을 겁니다. 엑스엘게임즈는 탄탄한 입지를 가진 개발사입니다. 자체 개발 엔진 XLE을 보유한 곳이고, 모바일 MMORPG <달빛조각사> 이전에는 PC MMORPG <아키에이지>를 만든 회사입니다. <문명 온라인>과 레이싱게임 <XL1-클리핑포인트>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죠.
송재경이라는 세 글자가 지니는 무게감도 아직 유효합니다. AAA급 MMORPG를 기획부터 서비스까지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개발자는 드뭅니다. 정리하자면 카카오게임즈는 MMORPG가 필요하고, 송재경 대표와 엑스엘게임즈는 MMORPG를 만들 줄 압니다.
과거 경제지 보도를 살펴보면, 엑스엘게임즈는 2015년부터 2016년 사이에 <아키에이지>와 <문명 온라인>을 원투펀치로 상장에 도전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스타 개발자가 대표로 있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엑스엘게임즈였지만, 상장하기엔 실적이 부진하다는 게 당시 중론이었죠.
카카오게임즈도 2018년 상장을 공식화한 이후 3년째 기업공개(IPO)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엑스엘게임즈를 품에 안으면서 카카오게임즈는 검증된 개발역량과 포트폴리오뿐 아니라 상장의 추진력까지 얻게 됐습니다. 엑스엘게임즈를 품은 카카오게임즈는 건실한 퍼블리셔면서 동시에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되었으니까요.
<달빛조각사> 말고, 앞으로 두 회사는 뭘 할까요?
가장 가시적인 프로젝트로는 <아키에이지 워크(가칭)>가 있습니다. 남궁훈 대표가 이끄는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라이프엠엠오'는 작년 9월 엑스엘게임즈와 <아키에이지> IP를 활용한 게임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죠.
라이프엠엠오는 위치기반 서비스 기술을 활용한 '라이프게임'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회사죠. 일상과 게임의 결합이라는 주제의 라이프게임은 카카오게임즈와 남궁 대표의 핵심 아젠다입니다. 이 아젠다를 담기 위한 첫 번째 그릇이 바로 <아키에이지>를 기반으로 한 IP입니다.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은 <아키에이지 워크> 제작에 원작자 엑스엘게임즈가 더 긴밀하게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두 회사의 결합을 통해 또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엑스엘게임즈가 "들어엎는다더라"는 소식 말곤 잠잠한 <에어>의 구원투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경우는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과의 역할 조정 과정이 필요하고, 가능성도 낮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회사의 명운이 달려있다"면 테이블에 올려놓고 검토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는 이런 방식으로 힘을 쓸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까진 아니더라도, 엑스엘게임즈가 앞으로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할 MMORPG를 검토하는 데 도움을 줄 순 있다는 뜻입니다. 카카오페이지가 보유한 웹소설 등의 IP를 엑스엘게임즈가 게임화할 수 있죠.
앞으로 두 회사가 만들 시너지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