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MID SEASON CUP(이하 미드시즌컵)가 LPL 탑 e스포츠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설욕을 다짐한 LCK는 이번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죠. 리그 우승팀 T1은 물론, DRX와 담원마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만 것입니다. 유일하게 4강에 오른 젠지는 모든 팬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탑 이스포츠에게 압도당하며 3-0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이 LCK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몇몇 이들은 LCK 각 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도전자’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죠.
이번 대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밴픽에 대한 LCK의 ‘독특한 생각’과 T1의 ‘비원딜 선택’이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이 해당 요소들을 정리하고, 간단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어떤 스포츠건 경기가 끝난 뒤, 과정을 두고 이런저런 의견이 오고가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예상들은 이미 나온 결과를 토대로 과정을 짚어보는 ‘결과론’에 불과하죠.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도 이러한 ‘만약’이 존재합니다. 특히 경기 전 챔피언을 선택하고 금지하는 ‘밴픽’ 단계에 대한 지적은 끝없이 화두에 오르는 요소이기도 한데요. 결과론이긴 하지만, 이번 미드시즌 컵 밴픽은 한 번쯤 이야기해보면 좋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번 대회, LCK팀들의 생각은 독특했습니다. 대세픽을 잘 고르지도 않았고, 1티어로 꼽히는 챔피언을 플레이하지도 않았으며, 모두가 '사기'라고 평가하는 아이템 트리를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바루스, 트런들, 그레이브즈, 세트, 신드라는 이번 미드시즌 컵에서 가장 많이 선택되고 금지당한 챔피언들입니다. 이중 LPL은 그레이브즈를 제외한 모든 픽에서 50% 이상의 승률을 올렸습니다. 반면, LCK는 세트를 제외한 모든 픽의 활용 빈도수가 낮았습니다. 승률 역시 어느 한 픽도 앞서지 못했죠.
가장 의아했던 건 바루스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올 시즌 LCK는 LPL만큼이나 바루스를 자주 플레이했고, 심지어 57%라는 높은 승률도 올렸습니다. 이는 원딜 챔피언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LCK는 이번 대회에서 바루스를 완전히 잊은 듯했습니다. LCK는 단 한번도 바루스를 플레이하지 않았고, 견제도 잘 하지 않았죠. 대회에 참가한 4개 팀 중 바루스가 밴 상위권에 포함된 팀은 DRX가 유일합니다. 다른 팀은 밴 카드를 소모하는 대신 ‘픽’으로 바루스를 받아치는 것을 선택했는데요. 젠지는 카이사, 담원은 칼리스타를 활용했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픽밴률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오공에 대한 생각도 다소 아쉬웠습니다. 올 시즌 LCK는 글로벌 밴으로 인해 오공을 사용하지 못했었죠. 반면, LPL은 오공이 글로벌 밴 되지 않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승률도 44%(20승 25패)에 불과했고 PO에서는 한 번도 밴픽 리스트에 오르지 못할 만큼 외면받은 픽입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오공을 기용한 LPL과 달리 LCK 4개 팀 중 오공을 사용한 건 DRX의 도란 뿐이었고, 그마저도 단 한 번에 불과했습니다.
이즈리얼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까요? 미드시즌 컵 이즈리얼의 핵심은 ‘3코어 죽음의 무도’(이하 죽무)였습니다. 그리고 LPL 원딜들은 하나같이 마나무네 -> 얼어붙은 건틀릿 -> 죽무 순서로 아이템을 완성해나갔죠.
3코어로 죽무를 완성한 이즈리얼의 승률은 4승 3패, 57%였습니다. 이 중 마지막 2연패는 로컨이 FPX와의 4강전에서 기록한 패배인데요. 당시 그의 KDA가 1/0/2, 10/3/6으로 나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3코어 죽무 이즈리얼’이 대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반면 LCK에는 아직 이즈리얼의 3코어로 죽무를 올리는 빌드가 정착되지 않은 듯했습니다. 데프트는 몰락한 왕의 검을 완성한 뒤에야 죽무 빌드를 올렸고, 룰러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삼위일체를 갖춘 뒤 죽무를 선택했습니다. 때문에 이를 완성하지도 못한 채 게임이 끝나고 말았죠.
앞서 말씀드렸듯 결과론엔 끝이 없습니다만, 분명 아쉬운 부분입니다.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T1을 뒤덮은 것은 ‘비원딜’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지난해 G2는 그야말로 비원딜 메타 활용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그들은 미드로 활용됐던 신드라를 2019 MSI 4강에서는 바텀으로, 롤드컵 4강에서는 미드로 활용했었죠. 또한 야스오는 미드와 바텀으로, 그라가스는 정글과 서포터로 쓰는 변칙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비원딜 활용은 G2를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역사에 남을만한 강팀으로 만들어놨죠. 지난해 G2는 스프링, MSI, 서머를 모두 우승하는 한편, 롤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 끗 차이로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T1은 지난 서머부터 이번 스프링 시즌까지, LCK 상위권 팀들 중 비원딜 활용도가 가장 낮은 팀이었습니다. 올 시즌 세나를 기본 옵션으로 장착한 다른 원딜과 달리, 테디는 올 시즌 카시오페아 2번, 세나 1번을 제외하면 모두 정통 원딜을 플레이했었죠.
이러한 흐름은 지난 서머 시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규시즌 동안 소나를 2번 택한 것이 전부인 테디와 달리, 다른 원딜들은 모르가나, 야스오, 빅토르 등을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고스트는 카르마와 블라디미르도 사용했습니다.
물론 비원딜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닙니다. FPX는 지난해 단 한 번도 비원딜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좋은 경기력으로 롤드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팀에게는 플랜 B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필요한 순간에는 비원딜을 꺼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플랜이 많으면 많을수록, 승리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늘어나는 법입니다.
이번 미드시즌 컵, LCK는 명백히 대세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다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결과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LCK는 어느덧 수년째 그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