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롤드컵 8강은 대부분 전력 격차가 큰 팀 간의 맞대결로 구성된 만큼, 손쉽게 승부를 예상할 수 있는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조차 쉽게 마침표를 찍지 못한 맞대결이 있다. 바로 8강 마지막 날 펼쳐지는 유럽의 G2와 LCK의 젠지가 맞붙는 경기다.
G2와 젠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에서 휘청거렸다. G2는 LPL 3시드 쑤닝에 연패하며 흔들렸고, 젠지는 전패를 기록한 TSM과의 경기에서 졸전을 펼쳤기 때문. 기대치에 비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두 팀의 맞대결은 어떻게 흘러갈까. 양 팀의 지표를 비교하는 한편, 핵심 라인으로 꼽히는 미드와 원딜 포지션을 통해 경기의 맥을 짚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본문에 활용된 데이터는 2020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G2와 젠지는 한 가지 재미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두 팀 모두 2020 롤드컵 8강 진출 팀 중 평균 경기 시간이 굉장히 긴 편에 속한다는 점이다. 이번 롤드컵, G2의 평균 경기 시간은 34분 40초로 8강 진출팀 중 가장 길다. 젠지 역시 32분 54초를 기록하며 G2 못지않은 장기전을 치르고 있다.
이는 양 팀이 첫 번째 포탑 획득률(G2: 71.4%, 젠지: 66.7%)에서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G2와 젠지는 경기 중 다소 의아한 판단으로 인해 흐름을 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 경기 시간이 다소 길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래곤과 바론 등 오브젝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젠지의 드래곤 획득률은 67.0%으로 롤드컵 전체를 놓고 봐도 꽤 준수한 편이다. 반면 G2의 경우 같은 항목에서 44.8%에 그쳤다. 이는 8강 진출팀은 물론, 그룹 스테이지에서 1승에 그친 '마치e스포츠'와도 비슷한 수준이다. 바론 쪽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젠지는 무려 90%의 바론 획득률을 기록하며 해당 부분 전체 2위를 차지했지만, G2의 바론 획득률은 50%에 불과하다. 8강 진출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양 팀의 밴픽 구도 역시 다른 흐름으로 전개됐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젠지가 가장 많이 밴한 챔피언은 트페, 오른, 신드라로 대부분 미드 챔피언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아무래도 '비디디' 곽보성이 롤드컵에서 신드라를 플레이하지 않는 데다가, 상대에게 트페를 줄 경우 라인전을 회피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완전히 틀어막은 모양새다.
젠지를 상대하는 팀들은 칼리스타, 세트 등을 가장 많이 밴했다. 룰러의 핵심 카드로 꼽히는 칼리스타는 밴률 100%를 기록했고, '비디디'와 '라이프' 김정민이 번갈아 쓸 수 있는 '세트' 역시 많은 팀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G2 역시 이러한 흐름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특히 칼리스타와 세트는 젠지의 필승 카드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8강에서도 꾸준히 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G2는 정글을 지배하고 있는 '니달리'를 가장 많이 밴하며 정글러 '얀코스'에게 힘을 실어줬다. 아무래도 얀코스의 폼이 썩 좋지 않은 만큼, 최대한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셈. G2를 상대로는 '루시안'이 가장 많이 밴 됐는데, G2의 핵심으로 평가되는 '캡스'에게 굳이 라인전 강한 챔피언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LGD 전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인 라이프 (출처: 라이엇 게임즈)
양 팀의 미드라이너 '캡스'와 '비디디'는 꽤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캡스는 롤드컵에 참가한 미드 라이너 중 경기당 가장 많은 킬(4.6)을 올림과 동시에 8강 진출팀 미드 선수 중 가장 많은 평균 데스(3.1)를 기록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지향하는 성향이 수치로 반영된 셈. 반면, 비디디는 캡스와 완전히 상반된 기록을 남겼다. 경기당 평균킬(3.0) 개수는 낮지만, 그만큼 평균 데스(1.8)에서 준수한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양 선수가 플레이한 챔피언과도 연결된다. 이번 롤드컵, 캡스는 에코, 갈리오, 신드라, 트페, 루시안, 제이스 등 각양각색의 챔피언을 거리낌 없이 플레이하며 좋은 경기력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비디디는 아지르, 루시안, 오리아나, 세트 단 4개의 챔피언만 활용했다. 캡스에 비해 폭도 좁을뿐더러,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챔피언에 치중된 흐름이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비디디의 '아지르 선호도'다.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를 통과한 팀 중 이토록 아지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비디디가 유일하다. 연이은 너프로 아지르의 티어가 내려갔음을 감안하면 다소 '독특한' 선택이다.
이에 더해, 비디디의 경기력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본디 비디디는 초반 라인전에서 격차를 벌린 뒤, 이를 바탕으로 게임을 끌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번 롤드컵에서는 비디디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이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 많은 이의 우려를 낳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 스테이지 LGD전에서 루시안을 잡고도 이렇다 할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 물론 프나틱과의 최종전에서 그나마 루시안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여전히 기대치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이번 롤드컵, 젠지는 '룰러' 박재혁과 '라이프' 김정민의 캐리에 의존하는 듯한 경기를 펼쳐왔다. 물론 두 선수가 보여준 경기력은 눈부셨지만, 단 하나의 캐리 공식만으로는 최상위권에 도전하기 어렵다. 비디디의 부활 여부가 젠지에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 한 해, 젠지의 핵심이자 최후의 보루를 담당한 '룰러'는 롤드컵에서도 매서운 경기력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룰러는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중이염으로 인해 고생했지만, 휴식을 취한 뒤 시작된 2라운드에서는 팀의 확실한 캐리 역할을 수행했다. 비디디, '클리드' 김태민 등 미드와 정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온 경기력인 만큼 더욱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G2의 원거리 딜러 '퍽즈'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원거리 딜러로써 좋은 활약을 펼친 퍽즈는 올해 스프링 시즌 캡스와 포지션을 변경한 뒤, 한 시즌 만에 다시 원거리 딜러로 복귀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후 G2는 서머 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퍽즈의 폼은 예년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두 선수의 엇갈림은 2020 롤드컵 관련 지표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룰러와 퍽즈는 이번 대회 경기당 평균 4킬 이상을 기록하며 전체 원거리 딜러 중 경기당 가장 많은 평균 킬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평균 데스 항목에서 룰러가 1.8에 그친 반면, 퍽즈는 2.6이라는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퍽즈의 기록은 8강 진출팀은 물론, 그룹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팀의 원거리 딜러가 기록한 것보다도 낮다.
초반 라인전 지표에서도 두 선수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룰러는 15분까지 상대보다 평균 9개의 CS를 더 챙겼고, CS를 앞선 경기의 비율도 무려 83.3%에 달한다. 반면 퍽즈는 경기 초반 상대보다 평균적으로 4개의 CS를 뒤처졌음은 물론, 이를 앞설 비율도 42.9%에 그쳤다. 8강에 진출한 원거리 딜러 중 '15분까지 상대 라이너보다 CS를 2개 이상 뒤처진' 원거리 딜러는 퍽즈 뿐이다.
앞서 말했듯 룰러는 젠지의 핵심 캐리 라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런 룰러를 상대해야 하는 퍽즈의 초반 라인전 수치가 매우 나쁘다는 건 그만큼 초반부터 경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G2가 바텀 싸움에 사활을 걸어야 할 이유다.
슈퍼 팀을 꿈꾸며 스타 선수들을 영입한 젠지는 아직 우승 트로피가 없다. 젠지는 스프링 시즌 결승에 진출했지만, 라이벌 T1에 3-0으로 완패했으며 시즌 중 열린 국제대회 '미드 시즌 컵'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서머 시즌에는 결승 진출에도 실패한 채 롤드컵 선발전까지 몰리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반면 G2는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유럽 리그 왕좌에 오른 팀이다. 특히 G2는 지난해 스프링, 서머 시즌은 물론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까지 우승한 데 이어 롤드컵에서도 T1을 꺾고 결승에 오르며 강팀의 위용을 과시했다. 올해 역시 정규시즌을 제패한 뒤 유럽 1시드로 롤드컵에 참여하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롤드컵을 바라보는 양 팀의 시선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젠지는 전신 삼성의 기록을 이어받긴 했지만, 젠지의 이름으로는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적이 없다. G2 역시 자국 리그에서는 패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롤드컵에서는 우승 트로피에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롤드컵을 바라보는 젠지와 G2의 시선은 사뭇 비장하고, 비슷할 수밖에 없다.
우승 트로피에 대한 비슷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두 팀의 맞대결은 10월 18일 오후 7시에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