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 이 이름을 듣고 가슴이 떨리지 않을 게이머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게임은 <위쳐 3>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2015년 GOTY(Game Of The Year)를 휩쓴 CDPR의 새 작품이다. 게다가 <사이버펑크 2077>의 개발 기간은 어림잡아 8년이다. 2012년에 첫 타이틀이 공개되어, 세 번의 발매 연기 끝에 2020년 12월 10일에 출시된다. 그만큼 들어간 개발비만 수백억이 넘고, 투입된 인력도 엄청나다. 게이머라면 기대 안 될 수가 없다.
덕분에 발매 전 <사이버펑크 2077>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공개될 때마다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CDPR의 전 작품인 <위쳐 3>를 뛰어넘는 방대한 오픈 월드.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울한 사이버펑크적 설정까지. 특히, 48분의 게임플레이 동영상은 조회수만 2,000만이 넘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사이버펑크 2077> 리뷰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리뷰판을 건네받은 후엔 약 며칠간 '정말로' 이 게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약 5일간 40시간 넘게 게임을 즐겼고, 여러 엔딩을 봤으니 할 건 거의 다 했다 싶다. 몇몇 사이드 퀘스트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단순한 미니 퀘스트들이기에 아마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사이버펑크 2077>는 여러모로 충격적인 게임이다. 문제는, 그 뜻이 꼭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란 것. 한 번 처음부터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양해를 구한다. 리뷰에 쓰인 스크린샷들은 모든 옵션을 끈 최하 옵션이다. 필자의 컴퓨터가 노쇠화되어 발생한 일이니 조금 감안해주기 바란다. 사양만 된다면 그래픽만큼은 확실히 멋진 게임이다. /김승주 필자(사랑해요4),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이 리뷰는 CDPR에서 별도로 리뷰 코드를 제공받아 작성된 것으로,
론칭 이후 패치가 이뤄질 정식 버전과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리뷰 작성을 위한 최소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기사]
① 사이버펑크 2077, 40시간 해봤더니... "과자 반 질소 반" (바로가기)
③ 가장 멀리 가는 RPG, 사이버펑크 2077 (바로가기)
디스이즈게임은 <사이버펑크 2077>을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기 위해 3명의 기자와 필자가 각각 게임을 플레이했습니다.
리뷰어 각각의 관점을 말하자면 ①은 전체적인 플레이 경험, ②는 사람들이 기대했을 법한 오픈월드 안에서 '샌드박스'스러운 자유도, ③은 사이버펑크라는 세계관을 CDPR이 게임 속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와, 오픈월드에서의 'RPG'입니다.
2020년의 마지막을 보낼 AAA급 게임을 단순하게 한 명의 견해, 하나의 리뷰로 다루기에는 할 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혼란스럽겠지만 TIG도 처음 시도해봤습니다. 1게임 3리뷰. - 편집장 주
출시 전부터 게이머들이 기대한 가장 큰 점 중 하나는 '사이버펑크'라는 요소를 게임 내에 얼마나 잘 녹여냈느냐다. 나이트 시티는 사업가 '리처드 나이트'가 수많은 메가코프(대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건설한 도시다. 본래는 '코로나도 시티'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리차드 나이트가 사망한 이후엔 그를 기려 '나이트 시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거대해게 성장한 메가코프들은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환경 파괴를 일삼았고, 1990년부터 201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전쟁까지 벌였다. 환경 파괴를 일삼다 보니 미국 전역은 사막과 같이 황폐화되었고, 결국 정부가 힘을 잃으면서 각 지역이 독립을 선포하기도 하는 등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다.
막 건설되던 나이트 시티도 이 영향을 피할 순 없었다. 덕분에 나이트 시티의 각 지역에서는 갱단이 활개를 쳤고, 총기 난사와 범죄는 일상이 되었다.
기업 전쟁을 마친 대기업들이 다시 도시를 재건하면서 나이트 시티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폭력단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시민들은 마치 핸드폰처럼 총기를 소지하고 있고, 치안을 담당해야 할 NCPD(나이트 시티 경찰국)도 자신들의 이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갱단에 가깝다.
확실히, 나이트 시티의 외관은 많은 팬들이 기대하는 '사이버펑크'적 요소를 제대로 살려냈다. 구름을 뜷고 올라간 메가코프의 거대한 빌딩들. 빼곡히 들어찬 광고판. 화려한 네온사인과 복층 구조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도시까지.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사양이 부족한 집 컴퓨터로 플레이하느라 고품질 옵션에서 나이트 시티의 외관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나이트 시티는 꽤 섬세하게 만들어졌고, CDPR은 마치 화려한 CG를 입힌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경관을 게임으로 멋들어지게 옮겨 놓았다.
수많은 인간군상이 모여 사는 나이트 시티답게, 게임 내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등장한다. 어자피 사이버웨어가 모든 언어를 통역해 주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가끔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어로 안내 음성이 나오기도 하며, 한 퀘스트에서는 한글을 쓰는 한국인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더빙도 꽤 자연스러워 놀랐다.
이렇게 비주얼만큼은 확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최적화는 영 좋지 못하다. 필자의 사양은 GTX 1060에 i5 8400 이다. 이 정도라면 '국민 사양'이라 자부할 만하지만, <사이버펑크 2077>을 최하옵으로 즐기는 것조차 버거웠다. 사전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 정도면 '권장 사양'이지만 실제로는 최하옵으로 해야 게임을 즐길 만하다는게 아이러니했다. 최적화는 론칭 이후를 기대해본다.
오픈월드의 매력 중 하나는 거대한 맵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심지어 바(술집)도 설명은 "두 다리 쭉 뻗고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입니다"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론 그냥 주류를 파는 상점의 역할만 하고 있다. 바에 앉아 홀로 술을 기울인다든지, 아니면 동료를 불러 함께 진탕 마신다던가 하는 상호작용 요소는 없다. 퀘스트 도중 NPC가 이야기를 하자며 앉는 것을 권하는 게 아니라면 V는 술집 바에도 못 앉는다.
작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브레인댄스를 개인적으로 즐긴다던가, 설정에 나오는 무장된 택시를 불러 타고 이동한다던가, 돈을 열심히 벌어 초고층 아파트를 구매해 야경을 즐긴다던가 하는 요소는 많이 없다. 그나마 클럽에 들어가면 춤을 출 수 있긴 한데, 그렇다고 누가 다가와 말을 걸어주거나 하진 않는다.
많은 화제가 되었던 몇몇 설정도 게임 내에 흥미롭게 등장하진 않는다. 한 예로 발매 전부터 화제를 모은 ‘트라우마 팀’은 <사이버펑크 2077>에서 존재감이 전무하다. 초반 퀘스트에 한 번 등장하고, 가끔 길거리에 멀뚱멀뚱 서 있는 게 끝이다. 플레이어가 특정 인물을 처치했는데, 마침 그 인물이 트라우마 팀 서비스를 가입한 상태라 전투를 펼친다던가 하는 일도 없다.
전반적인 오픈 월드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미흡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가령, 서브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 마침 다른 퀘스트가 시작하는 지점을 지나치면 갑자기 주인공에게 연락이 오며 다른 서브 퀘스트가 시작된다. 덕분에 속사포처럼 V에게 대사를 쏟아내는 NPC들을 보면 굉장히 혼란스럽다. 보통 타 게임은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을 땐 잠시 퀘스트 발생 트리거를 막아놓기도 하는데, <사이버펑크 2077>은 이를 막지 않아 종종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하고는 한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버그다. 게임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난 순간 왜 3번의 출시 연기가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될 정도였다. 일단, 필자의 컴퓨터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텍스쳐 팝인 현상이 굉장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게임을 읽어들이는 시간이 느리니,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목적지 마커가 위치한 장소에 이동하더라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퀘스트 도중에 NPC가 굳어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다행히 정식 출시일에는 수십 기가 분량의 데이원 패치가 예정되어 있긴 하지만, 한 번의 패치로 수많은 버그를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사이버펑크 2077>은 1인칭 액션 RPG다. 조금 미안하지만 다른 게임을 들어 비유하자면, <폴아웃 4>와 <더 디비전>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무기에도 등급과 레벨이 존재한다.
따라서 마음에 드는 옵션을 가진 전설/신화급 아이템을 획득하더라도 획득한 지 시간이 지나 주인공의 레벨이 오른다면 기본 대미지가 부족해져 사용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경우엔 다시 아이템을 제작해야 하는데, 들어가는 부품이 꽤 많아 평소에도 열심히 아이템을 분해해 부품을 모을 필요가 있다.
물론, 분해만으로 부품을 모으는 것은 아니다. 맵 도처에 있는 범죄 현장을 급습하거나, 숨겨져 있는 상자를 찾으면 고급 등급 이상의 부품을 얻을 수 있다. 아이템 제작에 들어가는 부품이 꽤 많아서, 원하는 고등급 아이템을 레벨에 맞게 사용하고 싶다면 열심히 상자를 찾으면서 파밍을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육성 요소로 넘어가 보자. V의 능력치는 '신체', '반사 신경', '테크 능력', '지능', '냉정'의 다섯 가지로 나뉜다. 신체는 말 그대로 육체적 능력이다. 신체 능력치가 높으면 문을 강제로 열어 길을 만들 수도 있고, 등급이 높을수록 체력과 스태미나가 증가한다.
반사 신경은 기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반사 신경이 올라갈수록 이동 속도가 증가하고, 플레이어의 회피율이 증가한다. 테크 능력은 기술 전문 지식을 나타낸다. 테크 능력이 높으면 잠긴 문을 열 수 있으며, 기본 방어력을 올려 준다. 냉정은 플레이어의 저항력과 평정심, 은신의 효율성을 결정한다.
<사이버펑크 2077>도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추구하는 만큼, 각 퍽의 능력치가 높으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구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령 신체가 높으면 기나긴 복도를 돌아가는 대신 잠긴 문을 강제로 열 수도 있다. 종종 퀘스트에서 능력치를 요구하는 선택지도 등장해, 특정 능력치가 높으면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각 능력치에 할당된 특전들도 뭔가 심심하다. 예를 들어 신체 능력치엔 '운동 능력', '섬멸', '길거리 싸움꾼'의 관련 특성들이 있는데, 각 특성은 수치적인 능력에만 관여한다. 섬멸 특성에 있는 '총알 세례' 퍽을 찍으면 등급마다 샷건 대미지가 3, 5, 9% 증가하는 방식이다. 신체에 능력치를 팍팍 투자하고 열심히 퍽을 개방하더라도 주인공의 수치적인 능력만을 올려줄 뿐이다.
아마 후술할 '사이버웨어' 요소 덕분에 특전에는 단순한 수치 변경만을 할당한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퍽을 단순화시켰다는 것은 아쉽다. 가령 샷건을 많이 사용해 경험치를 쌓고 능력치도 충분히 투자했다면 양 손에 샷건을 쥐고 쏠 수 있다던가, 퀵해킹에 능력치를 투자하면 적들을 한꺼번에 해킹할 수 있다던가 하는 요소는 없다.
한 가지 예외가 있긴 한데, 바로 '깔끔한 마무리' 특성이다. 은신 플레이 도중 적들이 시체를 발견하면 곧바로 경보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시체를 쓰레기통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퍽을 찍어야 적들을 암살한 후 곧바로 시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그전까지는 적을 쓰러트린 후 시체를 다시 드는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제 사이버웨어로 넘어가 보자. 공공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고, 아이들마저 몸을 개조해 사이버웨어를 사용하는 시대상 덕분에 의사의 자리는 '리퍼닥'으로 불리는 사이버웨어 전문가들이 대체하고 있다. 주인공인 V는 도시 곳곳에 있는 리퍼닥을 찾아가 각종 사이버웨어를 설치해 몸을 개조할 수 있다.
사이버웨어는 '전두 피질(뇌)', '안구 시스템', '운영체제', '피부', '손과 발' 등 다양한 곳에 설치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도 대부분이 수치적인 변화를 주는 사이버웨어가 대다수다. 피부에 단단한 철판을 삽입해서 일정 확률로 적들의 탄환을 튕겨낸다던지 하는 개조는 없다.
외피에 할당된 사이버웨어를 넣으면 단순히 방어력만 증가할 뿐이다. 사이버웨어를 많이 설치한다고 주인공의 외형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팔에 사이버웨어를 설치하면 1인칭에서 보이는 팔이 살짝 바뀌는 정도가 끝이다.
몇몇 개조는 눈에 띄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성능이 만족스럽진 않았다. 예를 들어서 필자는 거금을 들여 투사체 발사 시스템을 설치했다. 그러면 V는 팔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팔에서 유도 미사일이 쏟아져나와 적들을 화끈하게 쓸어버리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버튼을 클릭하니 미사일이 한번 날라가고 끝이었다. 대미지도 시원찮았다.
그나마 만족한 사이버웨어는 '강화 힘줄' 정도였다. 길거리 평판을 충분히 올리고 메인 퀘스트를 어느 정도 진행하면 살 수 있는 사이버웨어인데, 무려 '2단 점프'를 가능하게 해준다. 확실히, 강화 힘줄을 얻은 이후로부터는 전투건, 스텔스건 게임 진행이 꽤나 편해졌다. 2단 점프를 통해 고층에 손쉽게 진입해, 입구부터 적들을 따돌리며 적대 장소에 진입하는 대신 전투를 우회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이버웨어의 가짓수도 많지는 않다. 혹시 길거리 평판이나 레벨이 부족해 선택할 수 있는 사이버웨어가 적은 건가 했지만, 아무리 게임을 진행하고 레벨을 올려도 사이버웨어의 종류가 크게 늘어나진 않았다.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이버웨어가 새로이 등장하더라도, 성능은 완전히 같고 개조 부품 슬롯이 추가로 할당되는 정도가 끝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꽤 비싸 노가다를 하지 않으면 구매하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몸을 덕지덕지 개조해, 말 그대로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상' 이 되어 적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로봇 전사가 되어 적들을 도륙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몸을 개조한들 전투는 단순한 총싸움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비슷한 SF 게임인 <데이어스 엑스>가 다양한 개조를 통해 주인공을 말 그대로 '살인 병기'처럼 바꿀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사이버펑크 2077>의 사이버웨어는 빈약하고, 가짓수마저 적다는 느낌이 든다.
탭이나 캡스락 버튼을 누르면 스캔 모드에 들어갈 수 있다. 스캔 모드에 들어가면 물체를 특정해 단서를 찾거나, 퀵핵을 사용해 물건이 작동되게 하여 적들의 주의를 끌 수 있고, 아니면 적들의 사이버웨어를 직접 해킹해 디버프를 걸 수도 있다.
퀵핵은 특히 잡입 플레이에 요긴하게 쓰인다. 마치 <와치 독스>처럼 퀵핵을 사용해 적들의 주의를 끌고 뒤에서 습격하는 방식으로 잠입이 불가능해 보이는 구간도 손쉽게 넘어갈 수도 있다.
'침투 프로토콜'을 시행하면 간단한 미니 게임이 나오는데, 여기에 성공하면 퀵핵에 들어가는 자원을 줄이거나 감시 카메라를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기도 하다. 꼭 지나가는 통로에 적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더라도 '안구 재부팅'을 통해 시야를 차단한 후 안전하게 통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퀘스트 도중에도 스캔 모드를 사용하며 단서를 찾아야 하는 구간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마치 ‘위쳐 센스’로 단서를 찾던 <위쳐 시리즈>와 유사하게 느껴진다. 다행히 스캔 모드에는 왜곡 효과가 없어서 멀미가 발생하진 않는다.
문제는, 스캔 모드의 UI가 빨간색이란 점이다. 가시성 면에서 좋지 않다.
적들은 빨간색으로 표시되고, 간섭할 수 있는 오브젝트는 초록색으로 표시되는데, 명확하게 윤곽을 그려 표시해 주는 것도 아니라 굉장히 번잡하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한 색감까지 겹치면 눈이 굉장히 아파진다. 성능도 그다지 높진 않아, 전투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적들을 찍어 가며 하나하나 퀵핵을 거는 것보단 그냥 총 한 발 더 쏘는 것이 더욱 간편하기 때문에 퀵핵은 전투에선 거의 버려지는 편이다.
덧붙여, 전체적인 UI도 빨간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눈이 불편하다. 전체적인 인터페이스도 깔끔한 편은 아니다. 조금 인터페이스를 세련되게 만들 수 없었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이버펑크 2077>의 전반적인 전투는 미묘하다. 적들을 공격했을 때 사지가 절단되고, 호쾌한 총기 모션을 보면 나쁘지 않기도 한데, 답답한 AI와 느려터진 적들의 모션을 보면 깊이 면에서 여실히 부족함이 느껴진다.
먼저, 적들의 AI가 크게 특출나진 않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진행해서인진 모르겠지만, 적들이 협력해 플레이어를 전방위로 압박해 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또한 적들도 플레이어에게 퀵핵 공격을 가해 오는데, '과열' 외의 퀵핵을 시도하는 적은 없어 큰 난관은 되지 않았다.
적들이 플레이어의 스마트 무기를 해킹해 공격하지 못하게 만든다던지, 시스템을 해킹에 UI가 나오지 않도록 만든다던지 하는 세계관에 걸맞은 퀵핵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버그인지, 아니면 AI 자체의 문제인지 전투 중간중간에 적들이 공격을 중단하고 멀뚱멀뚱 서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근접 전투도 굉장히 미묘한 느낌이다. 적들의 공격은 느린데, V의 공격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강력한 적들과 카타나로 합을 겨루거나, 주먹으로 서로의 공격을 카운터치며 싸우는 일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V가 적들에게 근접 공격을 할 때도 경직이 발생하는데, 덕분에 근접 전투는 따로 떨어져 있는 적에게 다가가 반격도 하기 전에 빠르게 죽여 버린 후 이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붙어서 무기를 휘둘러 대는 순간 적들은 반격도 하기 전에 나자빠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 주위를 빙빙 돌면서 싸우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전투 모션도 굉장히 어색하다. 1인칭 총기 모션은 나쁘지 않은 편인데, 나머지 모션이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특히, 어색한 동작으로 느릿느릿하게 공격을 가해 오는 적을 보면 실소마저 나올 정도다.
은신한 상태로 접근에 적들을 일격에 처치할 수 있는 테이크다운 모션도 2020년에 나온 게임답지 않게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공중 테이크다운 모션은 처음엔 버그인 줄 알았다. 벽에 끼이면 모션도 나오지 않고 적이 즉사해 버리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해야 하니, 스토리에 관해선 공개된 정보 위주로만 말을 하겠다. 출신 배경에 따라 다른 부분은 있지만, 나이트 시티에서 성공을 꿈꾸는 V는 작중에 등장하는 메가코프 중 하나인 '아라사카'가 개발한 칩을 훔치기 위해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작전은 뜻대로 되지 않고, 훔쳐 온 칩은 파손된다. 칩이 완전히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V는 자신의 뇌에 칩을 삽입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아라사카에서 훔쳐 온 칩은 유명한 기타리스트이자 테러리스트'였던 조니 실버핸드의 기억이 백업된 것이었다. 덕분에 조니 실버핸드의 정신은 V의 뇌를 잠식해 오기 시작하고, 절친한 리퍼닥에게 얼마 가지 못해 죽을 것이라는 통보까지 받는다.
V는 머리에 심은 칩을 안전하게 제거하고 살아남기 위해 주어진 의뢰를 닥치는 대로 해결하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사이버펑크 2077>의 메인 플롯은 대략 이렇다.
나이트 시티의 거물이 되기 위해 살아갈 것 같은 트레일러와는 달리, 실제 <사이버펑크 2077>의 플롯은 비관주의적이며 우울한 느낌이 강한 편이다. 일단 배경부터 꿈도, 희망도 없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인데다, 나이트 시티의 거물이 되길 꿈꾸며 맡았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뇌에 심은 칩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태다. 메인 스토리는 유명 용병으로 부를 거머쥐기 위한 성장기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한 개인의 실존적 투쟁에 가깝다.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이며 V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V 또한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개인일 뿐이다.
'조니 실버핸드'와의 기묘한 동거도 눈에 띈다. 조니는 유명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모션 캡쳐와 성우를 맡았는데, 외관과 다르게 꽤나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V와의 첫 만남부터 V를 죽이고 육체를 차지하려 하며, 서로 협력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도 끊임없이 칭얼대며 V를 괴롭힐 정도다.
V와 협력하기로 정한 이후부터는 퀘스트 도중에도 불쑥불쑥 나타나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며, 나중에는 V와 유대감을 쌓기도 하는데 워낙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보니 그와 게임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은 꽤 즐겁기도 하다.
그런데, <사이버펑크 2077>도 오픈월드 게임이 고질적으로 겪는 문제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메인 퀘스트 플롯에 따르면 V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V건, V의 뇌 속에서 살아 숨쉬는 조니 실버핸드건 당장 칩을 뇌에서 분리하지 않으면 곧 죽으니까.
그런데 오픈 월드 게임은 넓은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에 주안을 두기에 이런 오픈월드다운 플레이 방식은 V가 처한 상황과 충돌한다. 당장 내일 쓰러져 죽을지도 모르는데 한가하게 서브 퀘스트나 깨고 다니며 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냐는 이야기다.
V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 뭐라도 하며 정보를 수소문해야 하고, 그만큼 돈도 많이 필요하기에 서브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은 오히려 메인 플롯에 합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퀘스트는 정말로 V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선택과 결과, 그리고 결과가 게임 세계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참 좋아하는 CDPR인 만큼 가끔 몇몇 퀘스트 수행이 나중에 큰 도움으로 돌아오긴 한다. 이따금 주인공이 서브 퀘스트에서 벌인 결과가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하지만, 게임을 새로 로딩할 때마다 칩으로 인해 고통받는 V를 보면 일단 메인 퀘스트부터 수행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리뷰 전반적으로는 혹평을 가했지만, <사이버펑크 2077>을 전체적으로 조감해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게임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수년간 기다렸던 과자를 뜯었는데, 질소가 너무 많이 들어있다. 과자는 먹을 만하다. 취향만 맞으면 꽤 맛있기도 하다.
나이트 시티의 외견은 훌륭하고, 몇몇 사이버펑크적 설정은 퀘스트에 잘 녹아들어 있어 꽤 즐거움이 있었다. 메인 퀘스트도 확실히 공을 들였다는 티가 나긴 하고. 전투도 몇몇 단점이 눈에 띄긴 하지만, 도저히 플레이를 못 할 수준까진 아니다. 만약 첫 오픈월드 게임에 도전하는 스튜디오의 게임이었으면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타이틀은 <사이버펑크 2077>이다. 수많은 인력과 엄청난 개발비가 투입된데다가 발매 연기만 세 번을 한 게임이지 않은가. 발매 연기를 한 시점부터 게이머들의 기대감은 끝을 모르고 올라갔고, 출시를 앞둔 지금 팬들의 기대치는 정점에 올랐다. 전 세계 게이머들은 <사이버펑크 2077>이 매너리즘에 빠진 오픈월드 게임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혁신적인 게임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이버펑크 2077>이 그런 바램을 만족시켜 줄 것 같지는 않다. 필자가 경험한 <사이버펑크 2077>은 타 오픈 월드 게임과 비교해 특출나진 않은 범작에 가깝다.
덧붙여, <사이버펑크 2077> 속 메인 스토리의 플롯과 엔딩을 보면 사이버펑크 장르에 큰 영향을 미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생각나기도 한다. 실제로 영향을 받은 듯한 부분이 곳곳에서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