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케스파컵이 담원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케스파컵은 스프링 시즌 직전에 개최되는 컵 대회로 많은 팀이 다양한 로스터를 통해 전력을 점검하는 실험적 성격이 강한 대회다. 특히 이번 케스파컵은 LCK 프랜차이즈화를 앞두고 펼쳐진 만큼, 주전 대신 2군 선수를 기용하며 실험에 나선 팀도 적지 않았다. 개중에는 아쉬움을 삼킨 팀도 있으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팀도 있었다.
물론 케스파컵 결과가 반드시 LCK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시즌을 앞두고 로스터를 점검하는 마지막 대회인 만큼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과연 이번 케스파컵에서 많은 팬의 눈길을 사로잡고 차기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선수는 누구일까. 통계 자료를 통해 케스파컵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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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없으면 도란이 왕!" 최근 커뮤니티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한국 최고의 탑 라이너로 꼽혔던 '너구리' 장하권이 중국으로 떠난 만큼, '도란' 최현준이 그 자리를 꿰찼다는 말이다.
실제로 도란이 이번 케스파컵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는 꽤 놀랍다.
통계로 모든 걸 파악할 순 없지만, 도란이 기록한 초반 라인전 수치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도란은 15분까지 CS, 골드, 경험치 차이 등 대부분의 라인전 지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15분까지 골드 차이의 경우, 2위 '써밋' 박우태가 기록한 481보다 무려 400 이상 높은 935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솔로 킬 역시 총 2회로 탑 라이너 중 공동 3위에 해당한다.
물론 KT는 이번 대회에서 T1이나 젠지 등 LCK를 대표하는 강팀의 '1군 라인업' 대신 2군을 상대했다. 게다가 도란의 경기 출전 횟수는 4회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번 케스파컵은 도란에 있어 여러 의미를 지닌다. 특히 김대호 감독의 품을 떠나 맞이한 첫 번째 대회에서 상대적 열세로 꼽힌 KT를 이끌며,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저평가를 뒤집었다는 건 도란의 선수 생활에 있어서도 상당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다가올 스프링 시즌, '너없도왕'이 기대되는 이유다.
담원이 현재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판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쇼메이커' 허수의 강력한 미드 라인전을 통한 스노우볼링, '베릴' 조건희의 날카로운 로밍, '고스트' 장용준의 안정적인 라인전과 한타 포지셔닝, '칸' 김동하의 안정감은 담원을 롤드컵 이후에도 강팀으로 남게 한 결정적 요인이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캐니언' 김건부의 강력한 카운터 정글링이다.
이번 케스파컵에서 캐니언이 선보인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쇼메이커가 상대 미드를 몰아넣으면 캐니언이 곧바로 상대 정글러를 압박하며 오브젝트를 독식하는 그림이 자주 펼쳐졌다. 덕분에 초중반 단계에서 캐니언을 이길 수 있었던 정글러는 사실상 없었다. 실제로 캐니언은 대부분 지표에서 압도적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캐니언의 지표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평균 데스와 분당 대미지다. 캐니언의 평균 데스는 1.7로 케스파컵에 참가한 정글러 중 1위에 해당하며, 분당 대미지 역시 442로 전체 2위에 해당한다. 캐니언이 경기 내내 안정감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에게 대미지를 욱여넣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2020 롤드컵 결승 MVP에 올랐던 캐니언은 케스파컵까지 경기력을 유지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과연 스프링 시즌에는 캐니언에 맞설 정글러가 나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담원 못지않게 많은 팬의 시선을 사로잡은 팀은 '농심 레드포스'다. 팀 다이나믹스 시절에도 보여준 끈끈한 팀워크는 '피넛' 한왕호의 영입으로 더욱 단단해졌고 이는 준우승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농심 레드포스의 지표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농심 레드포스는 준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15분까지 골드 차이, 분당 팀 평균 CS 등에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경기당 획득한 평균 드래곤 역시 2.08로 평범하다. 초중반 단계에서 농심이 꽤나 고전했음을 알 수 있는 수치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는 농심의 저력과도 연결된다.
분명 농심은 이번 대회 내내 초중반 단계까지는 쉽지 않은 경기를 펼쳤지만, 주로 한타를 통해 이를 뒤집으며 승리를 이어갔다. 실제로 DRX와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초반 킬 스코어 차이가 크게 벌어졌음에도 바론 한타로 역전에 성공했으며, KT와의 4강 1경기에서는 단단한 운영과 한타를 통해 불리한 경기를 뒤집기도 했다.
물론 농심의 여정은 결승전에서 일방적인 경기 끝에 담원에 3-0으로 패하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함에 따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농심인 만큼, 케스파컵에서 얻은 오답 노트를 잘 복기할 수 있다면 차기 시즌에서는 창단 후 첫 LCK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려볼 만하다.
이번 케스파컵에는 해외에서 복귀한 스타 선수들도 다수 등장해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LCK에 돌아온 '칸' 김동하의 활약은 가히 눈부셨다. 칸은 담원의 롤드컵 우승을 이끈 '너구리' 장하권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영입됐다. 그만큼, 많은 이는 과연 칸이 너구리의 공백을 메꿀 수 있을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담원과 칸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번 케스파컵에서 칸은 멋진 경기력을 선보이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칸은 대회 내내 안정적인 라인전은 물론, 라인전 우위를 바탕으로 캐니언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빈틈이 보이면 과감히 진입해 솔로 킬을 따내는 능력 또한 여전했다. 실제로 칸은 써밋과 함께 솔로킬 부분 공동 1위(3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유턴한 '피넛'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어느덧 선수 생활 7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정글러 피넛은, 대회 내내 팀의 중심을 잡으며 농심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쳤다. 피넛의 오더에 따라 농심 선수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멋진 한타를 수없이 만들어냈다.
'케스파컵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롤드컵 등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팀은 케스파컵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케스파컵에서 호성적을 거둔 팀은 LCK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에 등장한 말이다.
일단 첫 번째 징크스는 깨졌다.
2020 롤드컵을 차지한 담원이 케스파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린 탓이다. 물론 T1, 젠지, KT 등 명성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거둔 팀도 있으나 해당 팀들이 이번 대회에서 2군 로스터를 내세웠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많은 기대를 모은 한화생명e스포츠 역시 탑, 정글 주전을 가리기 위해 실험적 로스터를 기용한 느낌이 강했다. 최상의 전력을 활용하지 않은 셈이다.
반면 준우승팀을 둘러싼 저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농심 레드포스가 지난해 케스파컵 준우승을 차지한 샌드박스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선수단이 대거 교체된 데다 호흡을 맞출 시간이 적었음에도 지난 시즌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으므로 희망적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2020 케스파컵에 참가한 10개 팀은 저마다 '오답 노트'를 펼쳐 들고 차기 시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각 팀은 이번 대회를 통해 어떤 개선점을 준비하고 있을까. 차기 시즌은 1월 13일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