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광고라는 말이 있다. 과대광고란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내용을 부풀리거나, 없는 내용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 과대광고는 게임계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는데, 출시 직전 개발사가 약속했던 요소가 실제 게임엔 전혀 없거나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얼마전 뉴욕타임스는 "<사이버펑크 2077>를 10년짜리 과대광고"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9일 출시된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 <노 맨즈 스카이>(No Man's Sky)는 이런 과장 광고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게임이었다. 2013년 첫 공개된 <노 맨즈 스카이>는 맵을 무작위로 생성하는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통해 구현된 대규모의 우주를 탐사하며, 외계인과 교류하는 컨셉으로 많은 주목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게임이 발매되자 개발사가 약속한 요소들은 게임 내에 전혀 구현되지 않았고, 게임은 툭하면 버그를 뿜어내며 플레이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당시 디스이즈게임의 평가도 "사지 마세요" 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0년 <노 맨즈 스카이>는 권위 있는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에서 무려 '우수 서비스상'을 수상했다. 출시 초창기만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스팀 평가도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2019년에는 유저들이 직접 돈을 모아 헬로 게임즈 근처에 감사의 이미지를 담은 광고판을 개재하기도 했다. 허위 광고로 인해 각종 소송과 살해 위협까지 시달렸던 게임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과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노 맨즈 스카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노 맨즈 스카이>가 4년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2008년 2월, 레이싱 게임 <번아웃 시리즈>로 유명한 EA 산하 스튜디오 '크라이테리온 게임즈'의 수석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숀 머레이는 퇴사를 결심했다. 반복적인 후속작 제작에 싫증을 느끼고, 자신이 진정으로 개발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EA를 나온 숀 머레이는 의기투합한 3명의 개발자와 '헬로 게임즈'를 설립했고, 2년간의 개발 끝에 레이싱과 플랫포머 요소를 결합한 게임 <조 데인저>(Joe Danger)를 출시했다.
자신의 집까지 팔아 가며 세운 개발사인 만큼 개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지만, 기나긴 노력 끝에 출시된 게임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PS3로 발매된 <조 데인저>는 발매 첫날 만에 개발비를 전액 회수했으며, 약 3개월간 1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비평가들의 평가도 좋았다. 2010년에는 영국 유명 일간지인 '더 가디언' 이 선정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100대 기업에 선정될 정도였다.
이런 성공에 고무된 헬로 게임즈는 2012년에는 후속작인 <조 데인저 2: 더 무비>를 발매했지만 전작만큼 신통치 않았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숀 머레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그가 EA를 퇴사한 이유도 반복적인 후속작 개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노 맨즈 스카이>의 최초 공개는 2013 VGX(스파이크 게임 어워드)에서 이루어졌다. 해당 시상식에서 숀 머레이는 게이머들에게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이용한 방대한 SF 게임을 만들 것이라 약속했다. 정교한 시스템을 통한 무한한 우주의 구현, 행성 탐사를 통한 다양한 외계인과의 교류, 팩션 간 이루어지는 대규모 함선 전투까지 구현할 것을 약속한 노 맨즈 스카이를 보고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이는 SF(공상 과학) 게임에 대한 서양 게이머들의 선호도를 생각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나 <스타 트렉 시리즈> 등 서양권에선 우주 탐사를 다룬 SF물을 선호하는 마니아들이 많은데, 이는 게임계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부터 <엘리트>(1984) 등 광활한 우주 탐사를 구현하려 노력한 게임은 많았고, <노 맨즈 스카이>가 공개될 당시에도 <X3 시리즈>나 <스타 시티즌>등 많은 게임들이 넓은 우주를 현세대 기술력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개발 중인 베데스다의 <스타필드>도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압도적인 스케일'의 우주를 약속한 <노 맨즈 스카이>가 많은 기대를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헬로 게임즈에게 선뜻 손을 내민 유통사는 바로 소니였다. 당시 소니는 PS4에 적극적으로 인디 임을 유통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눈에 <노 맨즈 스카이>가 매력적으로 비쳤음은 당연하다. 헬로 게임즈가 개발했던 <조 데인저>가 PS3로 선행 발매되어 높은 수익을 거뒀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조 데인저>는 PS3로 발매된 이후 1년 뒤에 Xbox 라이브로 발매되었는데, Xbox에서의 판매량은 높지 않았다. 소니는 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헬로 게임즈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기대감은 헬로 게임즈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높아지는 기대감과 정반대로 노 맨즈 스카이의 개발은 여러모로 꼬여만 갔다.
첫 시작은 자연재해였다. VGX 2013에서 게임을 공개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2013년 12월 24일, 영국 남부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강둑이 무너졌다. 강둑 근처에 있었던 헬로 게임즈의 본사는 그대로 홍수를 뒤집어썼다.
크리스마스 휴가도 반납하고 황급히 돌아온 직원들은 자신들의 맥북이 사무실에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백업한 데이터는 정상 작동했지만, 이들은 몇 날 며칠을 꼬박 사무실 청소에 매달려야 했다.
엉뚱한 곳에서 터진 지적 재산권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영국 방송회사 스카이(SKY)가 <노 맨즈 '스카이'>라는 제목이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건 것이다. 축구 팬들에게는 스카이 스포츠로 유명한 그 곳이다.
대중 앞에 선 숀 머레이도 문제였다. 그는 달변가나 마케터라기보다는 개발자 캐릭터였다. 조명을 받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하게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조절하거나, 각종 매체의 자극적인 질문을 유연하게 흘려내지도 못했다.
출시일이 다가오자 헬로 게임즈도 게임에 산적한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버그는 너무나 많았고, 콘텐츠는 빈약했다. 개발 기간이 더 필요했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끝없이 올라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게임이 발매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발매 직전부터 <노 맨즈 스카이>는 지독하게 꼬인 게임이었다.
높은 기대감 때문에 <노 맨즈 스카이>는 발매 2주 전부터 게임이 유출되는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몇몇 유저가 불법적으로 <노 맨즈 스카이>의 미리 패키지를 입수해 게임을 플레이한 것이다.
UI나 인터페이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가령 우주 전투에서 플레이어가 탑승한 비행기의 쉴드가 소모되면 아이템을 사용해 이를 충전해야 하는데, 핫키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일일이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사용해야 했다. 채집해야 할 아이템은 많은데 인벤토리가 너무나 작기도 했다. UI도 직관성이 매우 떨어졌고, 제대로 된 튜토리얼도 없어 플레이어가 수고를 들이며 게임 시스템을 공부해야 했다.
그래도 스팀은 구매 후 14일 이내 플레이 시간이 2시간을 넘지 않을 경우엔 손쉽게 게임을 환불할 수 있었지만, 소니의 환불 정책은 전혀 달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소니는 다운로드 혹은 스트리밍을 시작하는 순간 콘텐츠에 결함이 있지 않은 이상 환불이 불가하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게임을 다운로드한 즉시 환불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덕분에 소니의 환불 정책이 게이머들의 비판대 위에 오르기도 했다.
<노 맨즈 스카이>는 분명 끔찍한 실패였다. 유저들의 혹평, 개발진을 통한 끝없는 협박 덕분에 헬로 게임즈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직면할 경우 개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아예 게임업계를 떠나거나, 뻔뻔하게 입을 씻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전념하기도 한다. 일단 <노 맨즈 스카이>의 판매량은 괜찮았던 만큼, 금전적으로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숀 머레이와 헬로 게임즈는 힘든 선택을 내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범한 실수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처음부터 고쳐나가리라 다짐한 것이다.
실제로 8월 16일 이후 첫 업데이트인 '파운데이션'이 공개되기 전까지 숀 머레이의 트위터는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런 업데이트가 모두 '무료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개발진들이 잠적한 줄만 알았던 게이머들은 업데이트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초기 반응은 마냥 긍정적이진 않았다. 이미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들 달라지는 게 있겠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게임이 정상적인 수준까지 올라오자 <노 맨즈 스카이>를 혹평하며 떠나갔던 게이머도 소식을 듣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틀라스 라이즈 업데이트 당시 2만 명에 그쳤던 동시 접속자 수는 NEXT 업데이트 이후엔 약 10만 명까지 증가할 정도였다.
이미 혹평을 받은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서 업데이트하는 모습을 보며 헬로 게임즈와 숀 머레이에 대한 게이머들의 평가도 바뀌어 나갔다.
이는 게임의 순기능으로 각종 언론에 소개될 정도였고, 개발자들도 트위터를 통해 유저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남겼다. 몇 년 전만 해도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개발사가 이제는 유저들에게 자발적인 격려를 받는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노 맨즈 스카이>는 분명 최악의 게임 중 하나로 역사에 남을 게임이었다. 하지만 헬로 게임즈와 숀 머레이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게임 업데이트에 전념했고, 결국 2020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 다른 쟁쟁한 게임들을 제치고 '최고의 서비스(Best Ongoing)상'을 수상했다.
한 때 과대광고의 대표주자였던 게임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노 맨즈 스카이>는 게이머들에게 '올바른 사후지원'을 상징하는 게임이 되었다.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겠지만, 헬로 게임즈는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을 성취했다.
물론, 출시 초기에 벌였던 여러 행각들을 고려하면 발매 3~4년 이후에야 제대로 된 게임을 완성했다는 비판을 완전 피하기는 힘들다.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구현되지 않은 요소가 실제로 게임에 적용된 것 마냥 홍보한 것은 분명 헬로 게임즈의 실책이었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출시 초기의 저평가와 대량 환불 사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앞서 해보기' 단계라는 핑계로 제대로 된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수많은 게임들을 생각해 보면, <노 맨즈 스카이>가 보여준 남다른 책임감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하다. <노 맨즈 스카이>는 무리한 개발 일정과 과대광고가 만든 악례이자, 유저들과의 무너진 신뢰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에 대한 선례를 보여준 게임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Forgive, But don't forget)"- <노 맨즈 스카이>에 대한 유튜브 댓글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