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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컴퓨터박물관] '정보엑스포 96' 들리는가 들리면 응답하라

넥슨컴퓨터박물관(넥컴박) 2022-06-17 14:04:34

요즘의 공포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극한 상황에 고립될 때 가장 먼저 인터넷이 끊기곤 한다. 그만큼 오늘날 인터넷이 끊긴다는 것은 모든 세상과의 단절이나 다름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누구와 함께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는 것처럼 인터넷에서는 사용자들에 의해 우연한 재미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함께 읽어볼 연재 - SDN 구축과 연구를 주도한 전길남 박사의 내 인생의 컴퓨터

​*최근 출간된 전길남 박사의 평전을 통해서도 한국 인터넷 발달 과정의 상세한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2년 5월, 대한민국은 전길남 박사의 주도로 첫 번째 인터넷인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 연결에 성공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시공간을 넘어 연결하고 확장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이라는 낯선 기술을 익숙하게 사용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고, 하나의 방법으로 1996년에 개최된 인터넷 엑스포에 우리나라도 참여하였다.

 

# <정보엑스포 96>은 어떤 행사였을까?

 96 정보엑스포 개막 출처: KBS NEWS

 

1994년부터 전길남 박사를 포함하여 빈트 서프(Vint Cerf), 준 무라이(Jun Murai), 조이치 이토(Joichi Ito) 등 초기 인터넷 연구자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가상 박람회인 <인터넷 1996 세계 엑스포(The Internet 1996 World Exposition)>를 기획했다.

 

The Internet 1996 World Exposition 정문 출처: 과학동아 1996년 03호 
지금도 웹 메인 화면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엑스포에는 5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45Mbps 속도의 고속망이 설치되었고 각 나라마다 공식 조직위원회가 출범되었다. 우리나라는 <정보엑스포 96>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삼보컴퓨터의 이용태 회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약 6개월 동안 지속된 행사에는 21개의 주제 전시가 진행되었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전국 74곳에 마련되었다. 국제 행사인 만큼 각 나라의 특색을 살려 아마존 열대우림 생태계 탐험부터 세계 음식 순례 코스, 해외 유수 대학의 온라인 강의까지 마치 세계 여행을 다니는 듯한 다양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 "환영합니다. 이곳은 서울의 '센트럴 파크'입니다."

서울 센트럴 파크 메인 화면

 

<정보엑스포 96>에서는 각 나라마다 지역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관인 ‘센트럴 파크’가 있었다. 이곳은 국경 없이 서로 다른 나라의 이용자들과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일종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제패토, 제17회 대한민국청소년박람회

2021년 게더타운, 넥슨채용설명회, 2021년

오늘날 제패토나 게더타운처럼 그래픽으로 상세하게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우리나라의 센트럴 파크에는 많은 볼거리들이 준비되었다. 그 중 한 예로 LG 전시관에서는 유일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던 ‘어드벤처 플라자’가 있었고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VRML로 제작한 3D 공간인 ‘VR 월드’를 체험할 수 있었다.[1]

 

서울 센트럴 파크 안내
출처: 「가상박람회 정보엑스포 ’96 센트럴 파크’ 산책」, 『정보화사회』 no.104,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1996.


‘센트럴 파크’는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의 고리를 연결하여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의 온라인 공간을 마련하는 등 전통적인 매체로부터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상공간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한 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당시로서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 인터넷 생중계를 시도한 VJC(Virtual Jazz Conference)

VJC 공연 포스터

 

 

모든 축제에는 축하 공연이 있듯 <정보엑스포 96>에서도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였다. VJC(Virtual Jazz Conference)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공연은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생중계는 촬영된 영상을 인공위성을 통해 받고, 이를 다시 인터넷으로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공연은 기술적 구현의 어려움으로 인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큰 규모의 국제적 행사를 위해 준비한 공연이었지만 다시금 돌이켜보면 꽤 무모했던 도전이었다. 당시 아무리 45Mbps 속도의 고속망이 들어왔다고 해도 인터넷으로 실시간 생중계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2001852_30711.html<br/>
​1996년 9월 30일 출처: MBC


하지만 이 시도를 기반으로 같은 해 9월에는 MBC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TV로 송출하였고 이듬해 국내 최초의 인터넷 독립 방송국 M2Station이 설립되는 등 누구나 인터넷으로 방송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재민이와 떠나는 정보엑스포


인터넷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안다면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여 원하는 정보에 이를 수 있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누구나’라는 범위에는 청소년이나 어린이와 같은 받아들이는 정보에 민감한 나이의 사용자도 포함된다. 1990년대 중반 PC 통신을 오래 사용했다간 부모님에게 혼날 걱정이 앞섰던 것과는 달리 가상의 엑스포는 일종의 체험 학습장으로 인식되어 어린 아이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조직위원회에서도 교육용 목적으로 인터넷 체험을 장려하기 위해 학생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 동산’이라는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었다. 지금 사용하는 일반 포털 사이트처럼 특별한 게임이나 교육용 콘텐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의 그림이나 일기 등을 업로드 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시 엑스포로 가상의 체험 학습을 다녀왔던 아이들은 2000년대에는 집이나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2010년대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https://park.org/Korea/Tools/Guestbook/indexk.low.html

1996년 9월 발표한 ‘정보엑스포 96 서울 센트럴파크 이용 현황’에 따르면 하루에 평균 약 1만 8천여 건, 한 달 만에 55만여 건의 접속을 기록했고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네덜란드,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적게는 1천여 건부터 많게는 8천여 건의 방문객이 <정보엑스포 96>에 참여했다. 지금도 접속해 볼 수 있는 방명록 페이지에는 ‘생각보다 인터넷이 느리다’는 이야기부터 ‘줄을 설 필요가 없어서 좋다’거나 ‘너무 넓어서 다니기 무척 힘이 든다’는 생생한 경험담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엑스포가 열린 1996년을 전후하여 인터넷을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는 사건들이 맞물려 일어났다. 한 두 대 정도만 놓고 사용하던 인터넷 카페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인 오늘날의 PC방이 등장했고 인터넷 기술을 한 층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바람의나라와 같이 화려한 그래픽이 들어간 온라인게임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엑스포를 발아프게(?) 돌아다녔던 사용자들은 때로는 PC방에서 밤을 새고 바람의나라에서 동료들과 사냥을 다녔을 것이다. 

 

출처: KBS, <더 게이머>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이자 엑스포를 기획한 전길남 박사가 KBS 스페셜 <더 게이머>에서 ‘막상 인터넷을 깔아 놓았는데 이용자가 없었다’고 했던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만큼 인터넷 기술의 보급과 발전에서 사용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즉, 연구자들뿐 아니라 엑스포에서 방명록을 남겼던 이들 역시 오늘의 인터넷 환경을 가능하게 한 주역들이다. 당시 엑스포에 참여했던,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 인터넷에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 들리는가 들리면 응답하라. 

[1] VRML은 월드 와이드 웹 서버에서 입체 도형이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기술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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