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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한잔] 숏폼 전성시대 스토리게임의 생존법은?

자라나는씨앗 김효택 대표, "Easy to Play, Hard to Forget"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06-17 18:54:46

"현직에 계신 분들도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이슈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잠시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뜨거운 현안들로 담소를 나눠보는 코너 '인디 한 잔'입니다.

여러분도 틱톡, 릴스, 쇼츠를 자주 보는 편이신가요? 숏폼 콘텐츠의 출현은 게임 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야후와 OMD가 진행한 광고 콘텐츠 연구 결과에 의하면 Gen Z(18~24세) 그룹의 능동적 집중 지속 시간은 1.3초라고 합니다. 해당 연구 이후, 광고 및 영상 시장에선 1.3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게 일종의 공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은 그 호흡이 조금 다릅니다. 만렙 찍어야 시작, 플레이타임 100시간은 넘겨야 콘텐츠 구경 좀 했다-하는 타이틀도 정말 많죠. 한편, 더 때리고 덜 맞기 위해 초집중하며 즐겨야 하는 게임도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느슨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토리 중심의 게임들도 있습니다. 기승전결, 캐릭터 감정에 빠져들 때까진 시간이 필요한데, 현대인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져만 가고 있죠.


문학과 역사를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 게임과, 사회적 가치를 담은 이른바 '임팩트 게임'을 만들어 온 자라나는씨앗 김효택 대표를 만나 물어봤습니다. 쇼츠 전성시대에 사람들이 스토리게임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고전문학을 소재로 한 게임이 잘 될 수 있을까요? 그는 "Easy to Play, Hard to Forget"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자라나는씨앗 김효택 대표

# 가지고 싶은 게임, 알아도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

자라나는씨앗은 <MazM> 시리즈로 대표되는, 스토리텔링 게임을 주로 선보인 개발사입니다. 김효택 대표는 ​<MazM> 시리즈를,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음"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으며, 책처럼 보이는 대문자 M 사이에 "a to z"를 넣어, "세상의 모든 스토리"를 담는 게 목표-라고 소개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소재로 한 <옐로 브릭스>를 시작으로, <MazM: 지킬 앤 하이드>, <MazM: 오페라의 유령>, 독립 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MazM: 페치카>를 선보여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스토리의 몰입감이나 재미 뿐만 아니라 '의미'까지 담아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게임이 될 수 있었죠.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후 자라나는씨앗은 조작의 재미를 더 강화하는 시도를 이어왔는데요. <하이드 인 씨크>에서 카드, 보드게임 룰을 섞는 시도를 했고, <다이 크리쳐>에서는 탄막을, <레사: 체크메이트>에서는 체스판 위에서 펼쳐지는 자동전투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김효택 대표는 유의미한 시도였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자라나는씨앗이 만들고 있는 차기작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그의 작품 <변신>을 소재로 한 게임입니다. <변신>이 굉장히 짧은 분량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과 작가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고 하며, 이번 게임에서는 서사와 인물 등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다이 크리쳐>
<페치카>
 

잠시 시야를 넓혀 봅시다. 최근, 스퀘어에닉스는 신작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블 익스포저>를 공개했는데, 얼티밋 에디션 예약 구매에 1, 2챕터를 남들보다 2주 빨리 플레이할 수 있는 특전을 내걸어 뭇매를 맞았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더 비싼 가격의 얼티밋 에디션을 구매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죠. 그만큼 스토리게임에서 '스포일러'는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MazM> 시리즈는 실존 문학, 인물, 신화 등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패를 공개하고 시작하는 불리한 위치에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김효택 대표는 "소장하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게 목표이자 숙제"라고 답변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를 그대로 옮기면, 누가 좋아하겠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비주얼라이즈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재창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더라고요. <삼국지>를 책으로 읽었어도, 또 다른 버전으로 즐기는 것처럼요. 좋은 책은 책꽂이에 소장하고 싶은 것처럼 게임도 마찬가지인데, 모바일게임은 소장 개념이 적긴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타이틀마다 그 정도는 달랐지만,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게임에 맞는 각색을 해왔기에, 원작을 알아도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 숏폼 시대에 살아남기

김효택 대표를 만나 '카프카'를 소재로 한 신작을 짧게나마 미리 볼 수 있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작품과 카프카 자신의 삶을 오가는 흥미로운 설정은, <변신>의 시점을 색이 바랜 화면으로, 작가의 시점을 색이 더 진한 화면으로 표현해 담아냈습니다. 기존 <MazM> 시리즈가 가로 화면으로 나왔던 것과는 달리, 게임이 세로형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죠. 


플레이는 더 가볍고, 호흡은 더 짧아졌습니다. 한 호흡을 2분 단위로 줄였고, 조작 요소를 상당수 덜어냈습니다. 전작들에 있던 월드도 없앴고, 불필요한 포인트 앤 클릭도 거의 없습니다. 게임적 연출이 남아있다는 측면에서 실사판 인터랙티브 게임과 비주얼노벨 사이에 있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전작의 플레이타임이 20시간 정도였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부터는 5시간 내외로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숏폼이 대세가 된 환경에 맞춘 변화입니다. 그래도 기승전결의 설득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효택 대표는 "모든 스토리를​ 짧은 호흡에만 맞춰버리면 아무 것도 없게 되는 때도 있​어서, 깊이, 몰입도, 플롯 전체가 다 중요합니다. 왕도가 없는 영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짧은 호흡의 플레이 안에서, 이어질 이야기에 흥미를 이어갈 수 있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핵심이 됐습니다.


그는 이번 신작에서 꼭 필요한 기능만 남기고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고 밝혔습니다. '기능을 더 추구하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기능을 빼는 데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면서, 게임을 많이 즐기던 유저가 아니라도 쉽게 입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와 <변신>을 소재로 개발 중인 신작 이미지

#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게임
 

'카프카' 게임은 오는 8월 말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자라나는씨앗은 게임을 더 빠른 주기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애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게임을 11월에,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작은 아씨들>, <햄릿>,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게임을 내년에 출시하는 게 목표죠.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흥행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지킬 앤 하이드>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유입이 있습니다. 오래된 IP는 계속해서 자연 유입이 있죠. <변신>과 '프란츠 카프카'를 깊게는 몰라도, 글로벌하게 보면 일정 비중이 다들 알고 있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카프카'와 '애드거 앨런 포'는 작품보다 작가가 더 유명하고, 팬덤도 많죠. 책을 많이 보던 분들은 찾아서 오고, 책보다 게임으로 먼저 접하는 걸 쉽게 느끼는 분들도 있어요."


자라나는씨앗이라는 사명을 정할 때부터 청소년과 교육을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김효택 대표가 '임팩트 게임'에 몰두해온 이유가 있는 것이죠. 최근 중학생들의 토론 수업에 <MazM> 시리즈가 활용되는 방향으로도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갔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성공하고 돈 버는 것만 강조되는 시대에, 문학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문학은 다른 사람의 삶을 공짜로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이잖아요. 게임을 통해서, 커뮤니티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죠. 게임을 하고 카프카의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까지가 목표입니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까지 궁금해 하면 더 좋고요."


"단순 지식, 단순 줄거리 전달이 아니면서, 작품으로서 경험하게 해주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아요. 라이트노벨, 비주얼노벨 쪽은 스토리에 재미만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의미도 함께 담았어요. 카프카는 집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게임 작업하다가 운 직원도 있었죠. 창작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의미 있게 보지 않을까요? Easy to Play, Hard to Forget을 지향하며 여러 생각을 담았습니다."

2024년은 프란츠 카프카가 서거한지 100년째 되는 해입니다.

# 포스트 코로나, 변화하는 업계

자라나는씨앗은 2020년부터 4년째 재택 근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효택 대표는 "게임 만드는 환경이 물리적 공간에 매여 있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며, 출퇴근 시간 및 비싼 땅값을 아낄 수 있는 등 경제적 효용도 언급했습니다. 


단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휴먼 터치가 부족할 때도 있었다"는 것인데, 1인 가구의 경우 업무 시간에도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껴, 룸메이트를 구하거나, 반려동물을 들인 직원도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엔, 초기 업무 공간 분리가 허들이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고 하네요. "본인 업무를 잘 컨트롤하는 사람들에게 맞는 방식"은, 자라나는씨앗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김효택 대표가 느낄 때, 최근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모바일게임보다는 스팀 게임에 도전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모바일은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고, 인디 개발자들의 개발 낭만을 충족시켜주기엔, BM 고민의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이죠. 스팀도 레드오션인 건 마찬가지지만,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집중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바일 시장에는 더 많은 유저들이 있으며, 범용적이고 쉬운 게임 또한 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자라나는씨앗의 신작들이 다시 모바일 플랫폼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죠. 최근 다소 획일화된 신작 트렌드 속에서도, 꾸준히 스토리텔링 게임, 임팩트 게임을 만들고 있는 자라나는씨앗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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