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 <소설의 이론>(루카치) 서문의 의 첫 대목
고등학교 때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웠다. 대학 때는 루카치(1885 ~ 1971)의 이 대목을 외곤 했다. 먼저 매혹적인 문장에 끌렸다. 후에 담긴 뜻에 수긍했다.
이런 글을 쓴 주인공은 헝가리 출신 유태계 문학사가이자 철학자 죄르지 루카치(Lukács György)다. 대학시절에는 '죄르지' 대신 '게오르그'라고 읽었다. 헝가리에서는 '루카치 죄르지'라고 부를 것이다. 헝가리 이름은 우리나라처럼 성이 먼저니까. 그가 1885년 4월 13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다시 '별이 빛나는 창공'으로 시작하는 글을 읽었고, 여기 그에 대해 쓰고 있다.
서문은 좋았지만, <소설의 이론>은 어려운 책이었다. 번역도 나빴다. 읽다가 때려치웠다. 설명하는 책들을 보면서 '아, 이런 내용이구나' 했다.
루카치는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로 유명한 막스 베버가 아끼는 제자였다. 1차 세계대전과 그 전후 유럽사회의 혼돈은 그의 초기 대표작 <소설의 이론>(1914년)을 낳았다. 헤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었다.
루카치는 소설을 이상과 총체성이 사라진 시대의 가장 적합한 서사 장르로 봤다. 사라진 총체성을 찾아 모험에 나서는 '문제적 개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런 맥락에서 도스토에프스키의 리얼리즘 문학을 옹호했다. 허무적 세계관과 자아의 심리를 따라가는, 제임스 조이스나 카프카의 모더니즘을 싫어했다. 사회 현상에 대한 모방에 그치는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도 비판했다.
그는 예술의 진정한 역할을 '주어진 역사적 시기의 객관적 진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봤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자가 됐지만, 이런 시각은 계속 유지됐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화된 모더니즘만큼이나 스탈린 시대의 교조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스탈린에게 미움을 받았다. 쫓겨나기도 했고, 갇히기도 했다.
루카치는 경제 일원주의의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했다. 비판이론의 선구자가 됐다. 서구 자본주의를 분석함으로써 인간 소외가 단순한 경제적 차원이 아닌 의식의 영역에까지 확산되었음을 강조했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런 면에서 루카치를 좋아했다. 스탈린은 정말 여러 면에서 나빴다. 하지만, 루카치도 구식은 구식이다. 브레히트와 논쟁에서 속좁은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보였다. 그럼에도 <소설의 이론> 서문은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문장은 여전히 빛나며, 정보가 넘치는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