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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병정의 게임 리뷰] '톰 클랜시 : 더 디비전', 왜 재미없었을까? (상)

어떤 게임이 재미있는 게임인가?

얼음병정 2017-02-10 18:59:37

디스이즈게임은 얼음병정 님의 게임 비평과 리뷰를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냉철한 자신의 시선으로 풀어낸 리뷰와 비평을 통해 디스이즈게임이 놓칠 수 있었던 게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담론의 장을 열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리뷰리퍼블릭에 먼저 게재된 글입니다.


# intro




게임의 핵심은 재미입니다. 아무리 그래픽이 좋고 디테일이 훌륭하더라도 게임이 재미가 없으면 도태되기 마련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의문은 당연히 "어떤 게임이 재미있는 게임인가"로 향해야 합니다.

 

- 재미있는 게임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가. 그런 구조에 우리는 왜 재미를 느끼는가. 

- 반면 재미없는 게임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가. 이런 구조에 우리는 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가. 

- 두 경향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 무엇이 기획자/개발자들을 실패하게 하는가.

 

하지만 재미에 대한 탐구는 아직 불모지입니다. 어떤 그래픽이 좋은 그래픽이고, 좋아 보이는 그래픽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빠삭하게 아는 이론가도 '게임의 재미'의 면으로 들어가면 꿀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여기에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가 환골탈태한 게임이 있습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입니다. 최근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괜찮습니다. 게임의 단점을 보완하고 '서바이벌'이라는 좋은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게 그 평가의 중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업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왜 재미가 없었을까." "지금은 왜 재미가 있을까." 저는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초기 모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초기와 지금의 차이를 뚜렷하게 제시하진 못합니다. 그저 지금에도 남아있는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단점들을 통해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작품의 상태와 전망을 분석해보고, 왜 재미없는 게임이었는지, 지금은 어떤지, 서바이벌의 수명은 어떠한지를 이 글에서 살펴 볼 예정입니다. 아울러 제가 가지고 있는 '온라인 게임' 시스템에 대한 우려와 MMO가 가지는 시스템적 한계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고전주의 사조에서부터 시작된 이 관점은 현대에 오기까지 단 한 번도 흔들려 본 적이 없습니다. 모방의 대상은 늘 "세계"이었습니다. 이 세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가상의 세계일수도, 불과 몇년 후면 겪게 될지도 모를 가상 시나리오일수도, 있는 줄은 알지만 잘은 모르는 전문적인 세계(정치나 의학 등)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 모든 작품은 세계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작품'은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 대해 얼마나 그만큼의 현실감을 가지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표면적 표현의 종합이 아닌, 그 사건들이 가지는 개연성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표현에 맞닿아야 합니다.

 

따라서 세계의 모방에는 외형적인 모방, 구조적인 모방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합이 절묘해야 그 세계에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되죠. 피카소의 '입체파'나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가 예술로서 고평가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들은, 실재하지 않는, 오로지 논리적으로만 인지할 수 있는 세계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나오는 인물들은 인물 같지 않고, 풍경은 화려한데 감흥이 없습니다. 액션이 화려하지만 긴장이 되지 않고, 인물들은 감정을 토해내지만 어이없기만 합니다. 이런 작품들은 모방 대상인 '세계'를 굉장히 협소한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에 대한 세밀하고 깊은 이해가 아닌, 세계의 표면적이고 즉각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만이 작용하여 생긴 문제입니다.

 

게임에 있어서 이런 성향은 결국 콘셉트와 게임성 간의 불균형, 게임성의 부실함 등으로 표현됩니다. 세계의 성향을 산술체계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술에만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인류 종말'의 가상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세계를 구현한 작품입니다. 때문에 종말을 표현한 부분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차들과 쓰러져가는 사람들 그리고 혼란을 틈타 도시를 약탈하는 폭력집단들. 디비전에 가장 먼저 접속했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염병'으로 인해 더이상 정상적으로 구동되지 않는 사회상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점점 진행하다 보면 이런 사실들은 조금씩 퇴색되어 갑니다.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같고 몰려오는 퀘스트와 잡아야 할 적들, 그리고 떨어지는 아이템이 전부인 세계로 점차 변모하게 되죠. 왜일까요? 표면상으로 표현되는 세계와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만들어진 구조적인 세계가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크게 서사와 퍼즐로 되어있습니다. 서사는 퍼즐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퍼즐은 서사에 목표를 정해줍니다. 둘이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둘은 갈라지게 됩니다. 퍼즐은 서사를 방해하고, 서사는 퍼즐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늘 "게임성이냐 스토리냐" 싸움이 끊이질 않는 겁니다. 설사 이 둘을 상호보완적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둘에게는 결국 거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거리가 생기면 퍼즐은 퍼즐대로, 서사는 서사대로 민낯을 드러냅니다. 이 경우 결국 게임은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호환 오류 문제를 게임 메커니즘 분석을 통해 살펴봅시다. 

 

 

# RPG시스템

 

엄연히 말해 이 게임의 장르는 RPG입니다. 현대 RPG의 핵심은 '성장'이죠. '성장'을 표현하는 데에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실력을 성장시킨다"와 "캐릭터의 능력을 성장시킨다"입니다. 전자를 핵심으로 잡느냐, 후자를 핵심으로 잡느냐에 따라 게임의 매커니즘과 레벨디자인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모든 게임은 이 둘을 모두 작용하도록 합니다만 어느 쪽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지는 게임마다 다릅니다.)

 

전자는 FPS, 횡스크롤 액션, RTS 게임 등이 많이 설정하는 콘셉트입니다. 후자는 RPG 게임이 많이 설정하는 콘셉트죠. 고로 지금 다루려고 하는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은 플레이어의 실력 보다는 캐릭터의 수치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게임입니다.

 

RPG가 캐릭터의 '성장'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수치화'입니다. 캐릭터의 능력을 수치에 환산하여 점점 강해지는 경험을 '수'로 전달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표기법이 '레벨'입니다. 레벨은 '경험치'라는 도달조건을 통해 노력을 수치화합니다. 유저의 노력이 도달조건에 다다르면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가죠. 이 레벨은 유저에게 혜택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더 '강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죠.

  

RPG 게임의 '성장'은 '레벨', '경험치'에서 벗어나 점차 다각화되었습니다. HP 총량, 데미지, 방어력, 저항력 등으로 세분화되는 것입니다. <톰 클렌시 더 디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DPS', '근성', '스킬 파워'라는 세 가지 항목에서 능력치의 변화를 수치화합니다.

 

그런데 '성장'에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수능 성적 면에서 성장하려면 우선 "좋은 대학에 간다"는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까지의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많이 요구하게 된다면 인간은 금방 싫증을 내게 됩니다. 따라서 성장을 시키려면 궁극적인 목표가 필요합니다. 이전 <문명> 리뷰에서 언급했던 '목표 설정의 3단계'의 '3차 목표'가 되겠죠. 그리고 이를 달성하는 1차 목표와 2차 목표선에서 역경이 있어야 합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각 아이템에 상한 요소와 하한 요소를 같이 포함하도록 유도합니다. 오로지 탄창집만 DPS, 근성, 스킬파워가 모두 올라갈 수 있도록 조정해놓고 나머지 아이템들은 일부가 올라가면 일부는 떨어지도록 유도한 것이죠. 유저는 개인의 성향과 캐릭터 목표에 맞게 능력치를 조절해나가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템 드랍이라는 즉각적인 성과가 개인의 성장으로 직결되지 않으면서, 아이템을 다수 떨어뜨려 성취감을 유발하면서도 성장 속도 자체는 더디게 갈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죠.

 

한편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필드 전역에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분배해뒀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성장과 기지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도록 유도했죠. 기지 성장은 퀘스트를 통해 달성하여 얻은 포인트들을 소모해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지 성장은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주죠.

 


 

기지 성장은 '의료동', '기술동', '보안동'의 세 부서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각 부서는 성장할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퍽을 줍니다. 때로는 기술에 속성부여까지 추가해주죠.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총 3가지로 기지 성장을 통해 얻은 기술 중 사용할 3가지 기술을 선정해 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의 속성을 부여하여 플레이어의 능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속성은 캐릭터 성장과의 시너지를 노려볼 수 있습니다. 각 아이템에 달 수 있는 부속품이 주는 효과와 아이템 자체가 주는 효과들이 이 기술과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존재하고, 기술들의 능력이 '스킬 파워'에 영향을 받아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하기 때문이죠. 기술의 힘에 의존한다면 '스킬 파워'를 중심으로 키워나가고, 캐릭터의 능력치 자체에 힘을 주길 원한다면 기술을 캐릭터의 보조 역할만 해주는 것들로 배치하고 캐릭터 능력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 기지 성장이 주는 퍽은 기술과는 무관하게 캐릭터에게 영향을 줍니다. 퍽은 소유 즉시 영향을 미치므로 소유량에 한계가 없습니다. 기지가 성장할수록 플레이어에게는 무조건 어드벤티지입니다. 아이템에서 오는 손실을 기지를 통한 스킬부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레벨디자인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RPG 시스템입니다. 이제 이 '성장' 요소를 가지고 '필드'에서 어떻게 적용시키고 있는지 레벨디자인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픈 월드치고는 상당히 이동 경로가 제한적입니다. 또 각 지역별로 레벨 권장 수치가 있어 수치에 합당하지 못한 지역에서의 생존율은 수직 낙하하게 됩니다. 이런 레벨디자인은 MMO RPG의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각 필드에는 무수히 많은 서브 퀘스트들과 엔카운터가 존재합니다. 각 서브 퀘스트들은 저마다 이야기가 존재하며 그 이야기에 따라 진행되곤 합니다. 보급품을 운반하거나 밀수를 막거나 인질을 구출하거나 적의 기지를 공격하거나.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기지 점수를 비롯하여 능력치와 아이템으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한 번 해결한 퀘스트는 빠른 이동이 가능한 지점이 됩니다. 엔카운터는 필드마다 적들이 돌아다니며 이따금 강한 적들이 배치되곤 하는데 퀘스트와 무관하게 나타나며 여러분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각 필드에는 거점이 존재합니다. 빠른 이동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거점에서 보급품을 지원받을 수 있고, 상점을 이용할 수 있으며, 퀘스트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각 지역에는 메인 퀘스트가 2~3개가량 배치되어 있으며 메인 퀘스트는 많은 보상을 제공합니다. 또 메인 퀘스트는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이야기를 제공하는 주 콘텐츠로 이것을 이용해야지만 이야기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또 '다크 존'이라는 구역이 존재합니다. 일반 필드와는 다르게 MMO PVP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는 일반 필드와는 별개의 행위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일반 필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고성능의 무기를 제공하죠. 또 별개의 레벨과 별개의 화폐를 사용합니다. 오직 다크 존 안에서만 얻을 수 있죠. 다크 존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으므로 아무쪼록 레벨이 높고 아이템의 성능이 좋아야 합니다. 저 레벨 입장의 경우 따로 분류시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지만 그래도 레벨 차이는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고 레벨인 30레벨을 달성하고, 모든 서브퀘스트를 완수하면 각 필드에 강력한 적들이 등장합니다. 배치는 고정적이지만 월드 맵에서 표시는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다시 나타나며 이들을 물리칠 경우 최고 등급의 무기로 보상받습니다. 강해지고 싶다면 이들을 물리치기만 해도 상당히 그 수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이죠.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전반적인 게임 시스템을 살펴보았습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준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성장 요소에 있어 수치화된 정보 제시와 시너지 효과를 유도할 수 있는 부가요소들이 준비되어 있고, 개인의 스킬에 따라 캐릭터 컨셉을 다양하게 세분화할 수 있으며, 아이템을 통한 성장에 있어서는 DPS, 근성, 스킬 파워가 서로 견제하도록 설정하여 성장의 속도를 늦췄습니다.

 

그럼에도 탄창집이라는 아이템을 통해 전체 시너지를 유도할 수도 있어 서로 견제하며 조금씩 수치가 올라가고 떨어지고 하더라도 종국에는 이 수치가 모두 올라가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필드에 돌아다니는 적들보다 그 수치가 월등히 높거나 월등히 낮거나 하여 흥미를 떨어뜨리는 일도 적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계산들은 서사를 대입하는 순간 모조리 '악수'가 되어버립니다. 메커니즘이 가지고 있었던 이점은 모조리 희석되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악점이 곳곳에 드러나고 맙니다. 다음 편에서는 과연 어떤 부분이 게임을 망쳐버렸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보기] [얼음병정의 게임 리뷰] '톰 클랜시 : 더 디비전', 왜 재미없었을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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