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얼음병정 님의 게임 비평과 리뷰를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냉철한 자신의 시선으로 풀어낸 리뷰와 비평을 통해 디스이즈게임이 놓칠 수 있었던 게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담론의 장을 열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리뷰리퍼블릭에 먼저 게재된 글입니다.
[관련기사] [얼음병정의 게임 리뷰] '톰 클랜시 : 더 디비전', 왜 재미없었을까? (상)
# 반복을 숨기기 위해
게임은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문명>을 리뷰하면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해결해볼 수 있음 직한 몰이해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만약 그 대상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면 갑갑함만 느끼게 되고, 어떻게든 그 대상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공부가 비슷한 케이스겠네요. 해결은 고사하고 아예 저항할 수도 없겠다고 생각하면 무서움을 느끼죠.
반면 해결도 하고 있고 이해도 한 것에는 실증을 느낍니다. 그러나 무언가에 도전하다 지친 상태라면 해결도 하고 있고 이해도 한 것만큼 안락한 것이 없죠. (집, 일상, 업무 등) 그래서 늘 재미는 의욕과 피곤함을 같이 유발하고 일상은 안정과 권태를 동시에 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게임은 '해결해볼 수 있음 직한 몰이해'가 되어야만 합니다. 전적으로 대상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여야 하지만 그를 마주했을 때 그 몰이해 상태를 해결해볼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가져야만 합니다. 때문에 게임은 반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태 해결을 위해 계속 새로운 정보를 주어야 한다면 게이머는 게이머대로 피곤하고, 개발자는 개발자대로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게임 내 행위가 지속해서 반복이 된단 뜻입니다. 반복된다는 것은 '몰이해'를 '이해'로 바꾸기에 충분한 행위고요. 때문에 '반복'은 '실증'을 유발합니다. 여기에서 개발자들이 고생한 흔적이 드러납니다. <톰 클랜시 더 디비전>은 반복을 통한 탈 몰입을 해결하기 위해 무려 8가지 정도의 유형을 생산해냅니다. 주둔군 피습 구원, 인질 구출, 감염지 탐사, 시설 복구, 밀수 방해, 보급품 운반, 보급 중 습격 방어, 기지 급습. 어쩌면 제가 기억 못 하는 유형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 고생한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크게 망각한 것이 있습니다. '해결해볼 수 있음 직한 몰이해'는 오로지 '퍼즐'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문제죠. 개발진은 이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NPC가 당신에게 퀘스트를 줍니다. "사슴 10마리를 잡아 오시오." 레벨업을 시키기 위한 지침 같은 겁니다. 단순히 필드에 나가 돌아다니는 늑대를 잡는 것보다 NPC가 목표를 지정해주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신은 필드로 나가 사슴을 10마리 잡습니다. 그리고 NPC에게 가서 보상을 받습니다. NPC는 다시 말합니다. "이번엔 늑대 10마리를 잡아오시오."
퀘스트란 결국 이 단순한 구조의 반복입니다. NPC가 요구하면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돌아옵니다. 반복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런 목표 설정 없이 레벨만 올리라고 하면 적 한 마리 한 마리를 잡는 내내 그 모든 것이 반복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이 또한 반복됩니다. 한 번의 행위의 주기가 매우 짧기 때문이죠. 결국, 탈 몰입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엔 상황을 조금 바꿔봅시다.
당신이 어느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지역에 들어가자 기운 없는 주민들이 보입니다. 더러는 나무에 기대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고 더러는 빈 솥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합니다. 당신이 한 인물에게 다가가 어찌 된 거냐고 묻습니다. 몇 달째 비가 안 와 작물들이 모두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마을 사내들이 먹을 걸 구하러 갔는데 소식도 없다고요. NPC와의 대화 끝에 당신은 사슴 10마리를 잡아 오기로 합니다.
그런데 사슴 10마리를 잡아 마을 주민들과 옮겨 왔더니 사냥 나갔던 마을 사내들 일부가 피범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어찌 된 일이냐 하니 늑대에 습격을 당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눈앞에 피 철갑을 한 늑대 몇 마리가 마을 입구로 달려오는 게 보입니다. 마을은 혼비백산이 되네요. 이런 상황에 늑대를 안 잡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행위는 같습니다. 사슴을 10마리 잡아 오라 시키고 늑대를 10마리 잡으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행위 사이에 당위성을 입혀주면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전혀 반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행위에 반복을 인지하려면 정말 오랜 수의 반복이 필요합니다. 이게 게임이 '반복을 감추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게 "해결해봄 직한 몰이해"입니다. "퍼즐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바로 그 몰이해인 것이죠.
# 반복을 감추기 위한 서사라는 도구
이것은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서사'를 가진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서사'의 핵심은 "거짓임을 감추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모두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죠. 이야기에서 나오는 인물도 "실재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품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그 인물이 진짜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물의 향방을 걱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서사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관객을 속이는 거죠. 이렇게 관객을 속이려면 이야기는 치밀해야 합니다. 인물의 행위에는 당위성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배경에서의 영향이 있어야 합니다. 인물과 인물이 만나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이 배경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변화한 배경에 인물이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물이 영향을 받자 사건이 변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줬을 때 극은 이미 창작자의 손에서 벗어나 제 맘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창작자는 이 지점에 도달하면 희열을 느끼게 되고, 마치 "작품 스스로가 살아있어 나를 조종하는 것"과 같은 느낌에 도달합니다. 인물 사건 배경 간의 관계는 저절로 서로 간의 폭을 좁힙니다. 삼각형 안에 또 다른 삼각형을 그리듯이 말이죠. 그렇게 좁히고 좁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제란 게 형성됩니다.
잘 쓴 작품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제부터 상정하고 인물과 사건 배경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 전혀 자연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인물은 인물대로, 사건은 사건대로, 배경은 배경대로 따로 놉니다.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니 주제가 이야기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극 중 인물에 창작자가 빙의하게 됩니다. 주제를 입으로 조잘대죠. '설명충'의 등장입니다.
유비소프트는 늘 이렇습니다. 주제부터 상정하고 인물 사건 배경을 억지로 갖다 박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주제가 전달되질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설명이 많습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건 입이 아니라 상황으로 전달하는 겁니다.
# 허술한 서사구조는 게임 전체를 무너트린다.
앞에 나온 정보들을 정리하여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에 적용해봅시다. 모든 게임에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제가 흔히 1차 목표, 2차 목표, 3차 목표 설정이 필요하단 것처럼 말이죠. 궁극적으로 1차, 2차 목표가 게임을 이끌고 가고 3차 목표가 그 방향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톰 클랜시 더 디비전>은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해주고 있습니다. 당장 전달되고 있는 게임 자체가 시작부터 설명으로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설명으로 끝나다 보니 작위적이고 재미도 없습니다. 인물들은 활력이 없고 사건도 있으나 마나 합니다. 그러니 사건에서 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리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끝을 보겠다는 등의 의욕이 거세된 상태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목표가 제대로 설정이 안 되어있으니 퀘스트라도 설득력이 있어야 겨우 재미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퀘스트도 그렇지 않습니다. 메시지로 "이래라저래라"하고 행위만 전달하고 8가지 유형의 서브퀘스트를 계속 반복시키고 있습니다.
더 최악인 것은 메인퀘스트가 서브퀘스트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볼륨 차이는 있지만 행위는 서브퀘스트의 것과 같죠. 이러면 메인퀘스트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스토리도 재미없는데 퀘스트 마저도 차이 없는 반복의 연속인 것이죠.
이렇게 퍼즐의 민낯이 드러나 버린 상태에서 퀘스트의 유형은 다르지만 결국 적을 보면 총을 쏜다는 행위는 반복되니 결국엔 질리게 됩니다. 서사가 상황을 제대로 제시해주지 못하니 그나마 만든 유형도 무의미해집니다.
이 게임의 배경은 '질병으로 인해 정상 작동이 멈춰버린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홉스'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회귀한 세계란 것이죠. 그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척박한 배경으로부터의 생존'입니다.
그러나 정작 게임 내의 세계에서 수행하는 임무는 '세력 경쟁'입니다. 세력과 세력 간의 경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같은 상황을 연출했던 <메트로> 시리즈가 이를 굉장히 매끄럽게 표현한 데 비해 <더 디비전>은 작위적입니다. 결국 '흑막'을 만들고 모두 인위적인 것으로 처리하면서 '생존'은 실종되어버렸죠. 콘셉트 호환 오류가 여기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 오픈 월드라고 다 좋은게 아니야
'생존'은 급박하고 유변적인 상황을 요구하는 소재입니다. 주변에 워낙 아무것도 없거든요. 세계는 다 무너져 있고, 있는 거라곤 목숨을 위협해오는 것들뿐입니다.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널브러진 차들과 간간히 볼 수 있는 병든 NPC들. 척박한 환경 때문에 이런 세계를 고정적이고 느리게 표현하면 굉장히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라스트 오브 어스>, <메트로> 시리즈 등 내로라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들이 급박하고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플레이어의 긴장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게임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선형적 게임'이라는 것이죠. 예. 오픈 월드는 '생존'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의 이동 구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죠. 연출은 특정 지점에 도착했을 때 플레이어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픈 월드'라는 개념 자체가 "제한되지 않은 이동 경로"를 뜻합니다. 애초에 호환되지 않는 속성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의 경우 오픈월드의 맵 크기와 선형적 레벨 디자인의 경로 폐쇄성을 적절하게 잘 버무려 '생존'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한 겁니다. 또 <폴아웃> 시리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렸음에도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그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어느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안 그래도 단순한 퀘스트라인에 동선도 불명확한 오픈 월드 때문에 환경을 제대로 제어하지도 못했습니다. 환경 제어가 안 되니 연출도 당연히 제한적이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오픈 월드의 환경 제어는 <GTA 5>가 기가 막힌 방법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무식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까지 겹치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다 일반적인 RPG가 아니라 전투는 TPS로 이뤄지기 때문에 피로도도 훨씬 큽니다. 다수의 적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액션 RPG는 한 번에 여러 적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그 피로도가 적습니다만, 슈팅 게임은 한 번에 한 적밖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필드에서 만나는 적들은 갈수록 귀찮아집니다. 거기에 오픈 월드 특성상 배경이 잘 변할 수도 없으니 늘 똑같은 지역만 맴도는 느낌으로 갈수록 배경 보는 재미도 없어집니다.
더 심각한 것은 슈팅 게임이라 '밀리터리'라는 콘셉트를 설정하는 바람에 '보스'들도 상당히 개성 없다는 겁니다. 이건 앞의 서사 문제와도 결부됩니다. 당장 주동 인물들 인물성도 제대로 관리 못 하는 스토리가 적의 인물성은 제대로 관리했을까요? 또 다른 설명충들을 등장시킵니다. 외모도 다를 것 없고 체력도 노란 피통이 전부이며 전투 스타일도 똑같습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총이나 화염방사기를 쏴대죠. 끔찍할 지경입니다.
그래도 30레벨 이후에는 꽤 즐길만한 거리가 있습니다. 하다 못해 '파밍'이라도 할 수 있죠. '다크 존'이라는 콘텐츠는 좀 더 생존에 걸맞게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콘텐츠를 즐기는 데 결국 '일반 필드 에서의 반복'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상 귀찮은 작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왜 '생존'이 각광받는 지 아실 겁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찾은 거죠. 마치 운동회에 슈트 입고 갔다가 뒤늦게 운동복을 받고 갈아입은 것 같습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 본편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게임 시스템 자체는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복장과 무기를 잃어버린 상태에 낙오되었습니다. 병균에 감염되어 오래 있을 수도 없습니다. 시한부 목숨을 부지하려면 지역을 벗어나 다크존으로 이동하여, 생환해야 합니다. 생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죠. 그리고 밖은 얼어붙을 정도로 폭풍이 몰아치고 있어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한 치 앞을 볼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불을 찾아 몸을 녹이고, 물과 식량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약으로 연명하며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이 지역에 당신을 제외하고도 30명가량이 남아있습니다.
좁은 지역에서 제한적인 보급품. 필요한 도구는 찾아지지 않고 시간은 촉박합니다. 그야말로 '생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존 게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 생존 게임을 해봤지만, 결국 제대로 된 목표도 하나 설정해주지 못하고 방임하다 어영부영 끝나는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생존 모드도 제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태껏 본 생존 모드 중 가장 완벽한 생존 모드였습니다.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해줍니다.
그에 반해 툴팁(tooltip)은 좀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존 모드의 세부적인 생환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세부 목표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몇 번 플레이 해봐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시스템 내의 단점이라곤 이것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이 게임도 결국 반복이라는 것이죠.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은 그래도 플레이타임이 엔딩까지 20~30시간을 필요로 한다면, 생존은 오직 '1시간 동안의 경쟁'을 모토로 합니다. 매 1시간의 반복은 금방 질릴 수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더욱이 스타팅포인트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 모드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정입니다. (패치로 렌덤으로 변경시키겠다고 합니다.) 콘텐츠라는 게 수가 소모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존 모드는 생존 모드대로, 본편은 본편대로 따로 콘텐츠가 소모됩니다. 연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생명도 짧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이때 알고 있었지..., 생존을 오픈 월드에 갖다 박은 그 순간, 게임이 망할 것을..
예전에는 더욱 심했다고 합니다. '다크존'은 불합리해서 얻는 것보단 잃는 게 더 많았고, 아이템도 지금처럼 잘 나오지 않았으며, 보상은 렌덤이라 퀘스트가 무의미했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많이 다듬어진 것이 지금의 모습이고, 시스템적으로는 딱히 나무랄 데 없습니다.
그러나 서사 측면에서는 너무나도 무능함을 보여준 게임입니다. 생존이라는 속성과는 무관한 스토리와 전개, 반복을 방임해버린 퀘스트, 전달력이 없어 설명충이 되어버린 인물들, 감흥 없는 엔딩. 수많은 개발사들이 자행해온 만행들이며, 게임을 망치는 최악의 선택들. 그 흔적들은 여전히 잔류해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을 지루한 게임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MMO이니까요. 일반 필드마저도 호스트 서버로 서버 위에 게임을 증축해놓은 시스템이니까요. 일반적인 게임과 온라인 게임은 이것 때문에 질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온라인 게임은 게임 데이터를 서버 위에 증축시킵니다. 서버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정보만 담을 수 있죠. 또 플레이어에 의한 데이터 변화를 버틸 수 있을 만큼만 담습니다. 만약 환경 연출 같은 걸 한다면 더미 데이터가 미친 듯이 쌓이겠죠. 게임이 곧 터질 겁니다.
또 만약 이걸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발생합니다. 만약 플레이어의 행동이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면 어느 한 플레이어에 의해 일부 환경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후부터 그 지역에 당도한 플레이어는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없단 것이죠. 플레이어 간에 받는 내용에 불균형이 생깁니다.
같은 돈 내고 게임하는 데 다른 정보를 받아야 한다는 건 불합리한 제공입니다. 이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갈수록 MMORPG들이 버림받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반복이 심한 퍼즐도 허용할 수 있는 유저가 많았던 반면,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죠.
# 리뷰를 마치며
온라인 오픈 월드 생존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힌 게임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는 결과가 말해주죠. 온라인 오픈월드 생존 RPG 베이스 TPS 게임은 더 복잡한 문제를 안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오픈 월드+생존. 세 가지의 섞일 수 없는 콘셉트는 결국 괴작을 만들어버렸습니다. 흔해빠진 흑막과 멍청한 엔딩, 설명하기 바쁜 인물들, 당위성을 잃은 사건, 매력을 잃은 배경. 야심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유비소프트에 남은 숙제는 이것입니다. '이 게임을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 것인가'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재미있는 게임은 아니거든요. 물론 생존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존은 본편과는 별개의 게임이란 것이 중요합니다. 본편을 버리고 생존을 더 깊게 만들거나, 생존에 준할 만한 또 다른 모드를 만들거나 하는 방향도 충분히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본편을 되살릴 생각이 있다면 정말 고민해볼 때입니다. 지금의 반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기를 잃은 필드에 어떻게 생기를 불어 넣어줄 것인가. 무작정 적을 배치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무작정 적의 난이도를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톰 클랜시 : 더 디비전>의 문제는 지금까지 유비소프트가 보여줬던 게임들 모두에 있었던 단점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서사가 말썽이었죠. 인물들도 배경들도 죽은 게임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가 유비소프트라는 회사의 향후를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