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익스트랙션 장르'가 주목받고 있다는 칼럼을 작성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24 SGF(서머 게임 페스트) 등을 거치며 보인 한 가지 흐름이 더 있는데, 바로 히어로 슈터 장르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개발사가 많다는 것이다.
히어로 슈터란 1인칭 혹은 3인칭 PvP 슈팅 장르에 각 캐릭터의 고유 능력이나 '궁극기'와 같은 요소를 강조한 게임을 일컫는 단어다. 대표적으로 밸브의 <팀 포트리스 2>와 블리자드의 <오버워치>가 있다.
최근의 공식 발표와 각종 루머를 종합하면 내로라하는 개발사가 이 장르에 도전하는 흐름이 보인다. 중국 개발사 중에서는 넷이즈의 <마블 라이벌즈>가 SGF에서 다수의 정보를 공개했다. 서양 개발사 중에서는 파이어워크 스튜디오의 <콩코드>가 게임플레이를 첫 공개했다. 그리고 유출을 통해 큰 화제가 됐던 밸브의 <데드록>이 있다.
그렇다면 '히어로 슈터' 장르가 갑자기 많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갑자기 히어로 슈터가 많이 보이는 이유?
먼저 이 장르에 대한 정의를 돌아보자. 히어로 슈터는 1인칭 또는 3인칭에서 진행되는 멀티플레이 슈팅 게임의 파생 장르다. 플레이어는 고유한 속성, 기술, 무기, 궁극기 등을 가지고 있는 사전에 만들어진 '영웅' 캐릭터를 선택해 두 팀으로 나뉘어 경쟁한다. 팀워크가 강하게 요구되며 각 영웅 간의 조합이 중요하다. 개성 있는 영웅들이 존재하는 만큼 캐릭터의 움직임이 빠른 편이기도 하다.
더불어 히어로 슈터 게임은 기존 슈팅 장르보다 '캐릭터성'이 강하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만들어진 영웅을 선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배경 스토리나 캐릭터의 서사 등이 강조되어 있다.
장르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팀 포트리스 2>. 각 클래스의 캐릭터성을 강조했다.
장르의 기원 자체는 오래 됐다. 1999년 출시된 <팀 포트리스 클래식>이 원류라고 할 수 있다. 동명의 <퀘이크> 모드 개발팀을 밸브가 영입해 만든 게임이다. <팀 포트리스 클래식>은 플레이어가 개성 있는 병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각 병과는 사용하는 무기와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달랐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병과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장르의 방향성을 정립한 것은 2007년 출시된 <팀 포트리스 2>다. <팀 포트리스 클래식>의 병과 시스템을 가져오면서도, 각 클래스의 개성을 더욱 명확하게 나누고 카툰 그래픽을 통해 캐릭터성을 살려내 크게 흥행했다. 개별 캐릭터마다 트레일러를 할당한 '팀원을 만나다 시리즈'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팀 포트리스 2>는 현재도 스팀 인기 순위 상위권이다.
본격적인 대중화를 이끈 것은 <팀 포트리스 2>에서 큰 영감을 받아 2014년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오버워치>다. <오버워치>는 이전 MOBA 장르의 유행에서 영향을 받아 '궁극기'라는 개념을 도입해 크게 흥행했다.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것에 대한 블리자드의 노하우도 게이머의 마음을 직격했다.
<오버워치> 덕분에 당시 히어로 슈터 붐이 크게 일기도 했다. 장르에 대한 용어가 자리 잡은 것도 이때쯤으로 2014년 <배틀본> 이라는 게임이 보도자료에서 용어를 사용한 것이 첫 사례라고 전해진다.
출시 당시의 <오버워치>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국내에서는 <LoL>을 PC방 순위에서 장기간 밀어냈을 정도 (출처: 블리자드)
# 히어로 슈터 게임의 장점
히어로 슈터의 유행은 많은 게임에 영향을 끼쳤다. 위에서 말한 장르의 개념에 꼭 부합되지는 않더라도, 각 클래스의 개성과 궁극기와 같은 요소를 슈팅 장르에 추가해 흥행한 게임이 상당히 많다. 배틀로얄에 히어로 슈터의 요소를 도입한 <에이펙스 레전드>나 정통 FPS에 이를 도입한 <발로란트> 등이 있다. 모두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다.
히어로 슈터는 왜 시장에서 흥행했을까?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확실히 흥행한 사례가 존재함 ▲배우기 쉽고, 마스터할수록 다양해지는 플레이 ▲MOBA 장르 플레이어에게도 익숙함 ▲개성 있는 캐릭터를 통한 협동의 재미 ▲슈팅 장르 비숙련자도 승리에 보탬이 될 수 있음 ▲매력 있는 캐릭터와 서사를 추가하기 용이한 것이 이유로 꼽힌다.
<오버워치>가 시장에 크게 히트하기 전, 게임 업계에서 크게 붐이 일었던 게임은 <LoL>과 <도타 2>를 필두로 한 MOBA 게임이다. 현재의 히어로 슈터 장르 게임은 슈팅 게임에 MOBA의 요소를 결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덕분에 슈팅보단 MOBA를 더 많이 접한 게이머라도 접근이 용이했다. <오버워치>가 2016년 <LoL>을 밀어내고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사례가 있다는 점이 이를 잘 증명하지 않나 싶다.
<LoL>을 밀어내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었다는 것은,
<LoL>만 하던 사람이라도 <오버워치>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사격 실력이 별로 좋지 못하더라도 스킬을 통해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있다. 팀원과 '궁극기'를 맞춰 사용해 적을 쓸어 담았을 때의 쾌감도 크다. 한 번 제대로 팀원과 연계해 적을 일망타진하고 게임에서 승리하면 히어로 슈터 장르 게임을 그만두기 어렵다.
게임의 기초는 배우기 쉽고 단순하지만, 익숙해질 수록 기발한 '슈퍼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유튜브에 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팀 포트리스 2>의 프랙 무비나 <오버워치>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내면 말 그대로 도파민이 폭발한다. (출처: 블리자드)
그러고 이런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전략, 전술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오래 붙잡을 수 있는 동기 요인이 된다. 라이브 서비스를 하기 적합한 장르란 것이다. 밸런스 패치, 신규 캐릭터, 신규 맵 등을 통해 게임의 메타를 순환시킴으로써 히어로 슈터 장르는 성공 후 유지보수를 잘 하면 장기간 서비스가 가능하다.
캐릭터성과 서사를 통해 개발사와 플레이어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가져가기도 좋다. 게이머는 매력 있는 캐릭터에 애정을 가짐으로써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동기를 얻고, 개발사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치장 아이템을 판매해 지속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시즌 패스를 필두로 한 이런 치장 아이템을 주요 BM으로 삼는 것은 '페이 투 윈'으로 보기 어렵기에 반감도 적다.
참고로 <팀 포트리스 2>가 아직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게임 내에서 랜덤 박스를 통해 치장 아이템을 얻어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은 2009년 추가됐는데, 밸브는 '수익' 관련한 부분에선 무서울 정도로 선구적이다.)
간단히 말해 스킨을 만들고 팔기에 용이하다. (출처: 블리자드)
원작의 이미지가 강한 IP를 게임화 하기도 용이하다. 원작의 설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IP의 팬들이라면 상상할 법한 'vs 매치'를 실제로 구현하기 좋기 때문이다. 자사의 IP를 총출동 시킨 유비소프트의 <엑스디파이언트>나 넷이즈의 <마블 라이벌즈>가 대표적인 예시다.
무엇보다도 히어로 슈터 장르는 아직 블루 오션에 가깝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배틀로얄 게임의 느낌에 더 가깝고, <발로란트>는 정통 FPS의 느낌이 더 크다. 이런 게임을 제외하면 '히어로 슈터'의 개념에 가까운 게임 중, 시장에서 <팀 포트리스 2>나 <오버워치 2> 말고는 큰 인기를 유지하는 게임이 없다.
게다가 <팀 포트리스 2>는 올해로 출시 17년을 맞이해 사실상 업데이트가 끝난 게임이다. <오버워치 2>는 아직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상태지만, 전작 <오버워치>의 초기 흥행에 비해 기세가 꺾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버워치>에서 <오버워치 2>로 흐르는 과정이 원활하지 못했다.
게임 개발에 보통 3년 이상의 시간이 소모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 속에서 게임사들이 2016년의 대유행 이후 다시금 준비한 결과물이 2024년부터 선보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인기가 한 번 솟았다 수그러들었지만, 아직 분명한 가능성을 가진 시장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진 공식 정보가 없기에 실제 개발 및 출시 여부는 속단할 수 없지만, 신작 안 내놓기로 유명한 밸브가 히어로 슈터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한 잠재력을 가질 시장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데드록>은 신작을 잘 안 내는 밸브가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출 직후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다만, 정식 발표된 게임이 아니기에 미래는 알 수 없다. (출처: 유튜브)
# 그렇다면 뭘 기대하면 되나요?
2024년 들어 정보를 본격 공개하며 출시 준비를 하고 있는 히어로 슈터 장르는 다음과 같다.
먼저, 출시가 가장 가까운 '파이어워크 스튜디오'의 <콩코드>가 있다. 5vs5로 진행되는 1인칭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SIE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서 본격 정보를 공개했다는 점에서 PS 진영에서 밀어주고 있는 대표적인 타이틀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PC 버전에 PSN 연동을 필수로 했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렇다.
<콩코드>는 각 클래스가 가진 능력을 차별화해 플레이어가 창의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개발진에 따르면 몇몇 설치형 장비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맵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참고로 개발사 파이어워크 스튜디오는 번지, 리스폰 등 FPS 게임에 조예가 깊은 개발자가 모여 만들어졌다. 8월 23일 출시 예정이다.
넷이즈는 두 가지 타이틀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는 3인칭 5vs5 대전 게임으로 개발 중인 <마블 라이벌즈>다. 히어로 슈터의 구조에 만화 회사 '마블'의 IP를 넣었다. 개발진은 마블의 수많은 캐릭터와 만화의 배경을 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핵심은 '팀업' 시스템이다. 그 유명한 '어벤저스'도 마블의 팀업 중 하나다. 이를 반영해 <마블 라이벌즈>에는 영웅끼리 상호작용해 사용하는 '팀업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로켓 라쿤으로 그루트의 등 뒤로 올라가 총을 난사할 수 있는 식이다. 출시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두 번째 타이틀은 6월 Xbox 쇼케이스를 통해 공개한 신작 <프래그펑크>다. 핵심은 플레이어가 '샤드 카드'를 선택해 라운드마다 플레이 방식과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매 라운드 시간이 2분 30초로 짧아 스피디한 게임플레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텐센트는 자회사 '아이드림스카이'에서 <스트리노바>라는 게임의 글로벌 출시 준비를 하고 있다. 3인칭 게임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게임에 비해 빠르지 않은 정석적인 템포의 슈팅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서브컬처 캐릭터가 강조됐으며, 국산 게임 <페이퍼맨>을 연상케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이던 캐릭터를 종이처럼 만들어 벽에 숨거나,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착지하거나, 총알을 피할 수 있다.
정식 공개는 아니나, 밸브는 <데드록>(가칭)이라는 게임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테스트에 참여한 몇몇 게이머로부터 플레이 동영상이 유출되며 알려진 내용이다. 유출 내용에 따르면 6vs6을 기반한 3인칭 게임으로 <팀 포트리스 2>와 <도타 2>를 섞은 듯한 인상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타이틀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출시를 시작할 2024년부터 히어로 슈터 장르에서 대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든 타이틀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이미 <오버워치> 이후 2016~2020년경 장르에 도전했다 실패한 게임이 많다. 유행을 이끈 <오버워치 2>도 꾸준한 재도약을 노리는 중이다. 이런 유행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지켜보는 것도 올해의 흥미거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