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투표 조작'이 드러나긴 했지만, 프로듀스 시리즈의 파급력은 굉장했다. 내가 투표한 멤버가 아이돌 그룹의 된다는 점은 많은 시청자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었고,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다. 이후 등장한 프로젝트 그룹 'I.O.I', '워너원', '아이즈원'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도 이와 유사하게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기업이 등장했다. 바로 LCK 프랜차이즈를 신청한 '게이머 리퍼블릭'이다. 하지만 유저들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홍보성 목적으로 참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부터, 다소 허무맹랑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과연 게이머 리퍼블릭은 의문부호를 지우고 '피터팬의 꿈'을 이어갈 수 있을까.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게이머 리퍼블릭은 팬이 주체가 되는 구단을 만들기 위해 이번 펀딩을 진행했다. 그들은 "팬은 팀을 운영하는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라며 "이 방식을 통해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팀을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다.
때문에 그들의 입장은 비교적 명확하다.
LCK 프랜차이즈 가입금의 2배가 넘는 240억 원을 펀딩받아 유저로 하여금 팀을 직접 운영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게이머 리퍼블릭이 LCK 프랜차이즈 진입에 성공하면 펀딩 참여자들은 선수와 감독, 코치 구성은 물론 밴픽 등 팀의 모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각 멤버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 유저는 다음 티어로 승격되어 추가 투표권을 얻게 된다.
펀딩 참여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도 있다. 일정 금액을 내고 펀딩에 참여할 경우, 매주 소속팀 선수들과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으며 팀 굿즈 할인과 별도의 데이터 분석 시스템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영국 에섹스 얼라이언스 풋볼 리그 프리미어 디비전(The Essex Alliance FootBall League Premier Division)에 참가하고 있는 런던 유나이티드 FC(United London F.C, 이하 런던 유나이티드)에서 시행 중인 방법이다.
'팬이 꾸리는 선발'을 슬로건으로 구단을 운영 중인 런던 유나이티드는 매 경기 전에 팬들의 투표로 베스트 11을 결정한다. 구단은 스카우팅 리포트를 제공하는 한편, 공격포인트와 경고 등을 기록해 선수별 점수를 산출한다. 팬들은 자신이 내린 선택의 결과에 따라 포인트를 얻고, 다른 이들과 순위 경쟁을 펼치게 된다.
일반적인 스포츠팀은 구단이 직접 선정한 코칭 스태프의 판단에 의해 선수 선발과 전술을 결정한다. 물론 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게이머 리퍼블릭 펀딩에 참여한 유저들은 말 그대로 구단 운영의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다. 선수 선발은 물론 밴픽 전략을 결정할 수도 있으며, 구단이 제공한 데이터 툴을 활용해 메타를 해석하거나 전략을 짤 수도 있다.
결과에 따른 보상도 주어진다. 펀딩 참여자들은 시즌 중 자신이 내린 선택의 결과에 따라 포인트를 받고, 리그 우승을 차지할 경우 상금을 받는다. 또한 팀이 롤드컵에서 입상할 경우, 펀딩 참여자는 해당 금액의 절반을 분배받는다. 이는 분명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신선한' 방식이다.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펀딩 금액이 많은 사람에게 경기 전략과 선발 명단을 결정할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점과 감독의 판단보다 돈을 낸 유저의 선택으로 팀이 운영되는 것이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한, 팬 투표로 팀이 운영될 경우 출전 명단이 인기투표로 전락할 위험이 존재하며 큰손의 입김에 따라 밴픽까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심지어 광고나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일회성 접근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게이머 리퍼블릭 류지원 대표는 경기에 관련된 부분은 옵션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밴픽 전략은 감독, 코치에게 위임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할 것"이라며 "만약 유저의 선택이 팀 성적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해당 멤버에게 낮은 점수를 주는 식으로 페널티를 부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지원 대표는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일회성 접근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게이머 리퍼블릭은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설립한 회사로, 법인 등록을 마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곳인 만큼 광고나 홍보 목적의 일회성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도가 규정상의 문제를 갖고 있진 않을까. 라이엇게임즈는 디스이즈게임에 "규정상 문제될 것은 없다"라며 "향후 태스크 포스(Task Force, TF) 팀에서 면밀히 검토해 적합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다른 스포츠 시민구단은 어떤 모습일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소속된 '레알 마드리드'는 시민구단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시즌권 구매자이자 주주들의 투표를 통해 구단을 운영할 회장을 선출하는 등 시민의 의견으로 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레알 마드리드는 높은 성적과 인기를 바탕으로 확실한 스폰서를 유치하고 스타 선수를 영입하며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반대 사례도 존재한다. 바로 K리그 시민구단이다. 올 시즌 K리그1에는 성남 FC, 대구 FC, 인천 유나이티드, 강원 FC, 광주 FC 등 5개 시민구단이 참가하고 있는데, 이 중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는 팀은 없다.
자금력의 한계로 스타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힘들뿐더러, 설령 스타를 키웠다 하더라도 이를 지키는 것 역시 버겁기 때문이다. 물론 대구 FC가 2018 FA컵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해 1부리그로 승격한 경남 FC가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는 K리그 시민구단 역사를 감안하면 작은 점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게이머 리퍼블릭이 LCK 프랜차이즈 진입에 성공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펀딩받은 금액으로 얼마나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할지, 팬 투표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류지원 대표는 "많은 분의 우려 섞인 시선을 잘 알고 있다"라며 "순수하게 팬들의 힘으로 운영되는 구단을 만들기 위한 도전인 만큼, 좋은 의견과 방향을 제시해주시면 기꺼이 귀담아듣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도전에 실패하면 각자 생업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부디 성공할 수 있길 바란다"라는 포부를 전했다.
오늘(1일) 기준, 게이머 리퍼블릭 펀딩에는 총 13명이 참여해 2만 2,498달러(한화 약 2,700만원)가 모인 상황이다. 과연 게이머 리퍼블릭의 시도가 '신선한 도전'으로 남을지, 끝내 의문부호를 걷어내지 못한 채 실패할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