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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인공지능과 일러스트레이터는 공존할 수 있을까?

"이미 닥쳐온 현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림 AI 쓸 줄 알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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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3-06-28 10:50:33
예전에는 극장마다 영화를 홍보할 때 페인트와 붓으로 그린 그림 간판이 걸렸다. 해당 극장의 주요 개봉작을 그림으로 그려서 크게 내걸었던 것이다. 이 간판은 '간판 화가'라는 전문가의 손길로 완성됐는데, 1980년대까지 극장 간판 화가는 페인트 가게를 작업실로 사용하며 문하생까지 거느렸던 유망 직종이었다.

그러나 종합상영관이 등장하면서, 극장 화가는 사실상 소멸 직업이 되었다. 멀티플렉스가 나온 뒤, 영화 홍보를 위한 대형 간판은 빠르게 추억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OTT가 보편화되며 굳건할 줄 알았던 멀티플렉스의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다소 진부한 문장이겠으나, 기술 발전에 따라서 시대는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건축 설계자, 시공 관리자, 엔지니어들은 더 이상 넓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전지를 펴놓고 고개를 숙이고 돋보기를 대어가며 손으로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컴퓨터 지원 설계, 즉 CAD의 등장은 건축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제 CAD를 모르면 관련 산업에 종사하기 어렵다. 수제를 고집하던 작업자들은 이제 사라졌다. 제도(製圖​)는 예나 지금이나 이 분야의 핵심이지만, 작업은 분명 컴퓨터에서 이루어진다.

 

페인트로 그린 극장 간판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사진은 2018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촬영한 <라라랜드> 극장 간판. 영화제를 찾은 관객을 위해 특별 제작한 간판이다.

 

게임 개발 현장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냥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오버워치> 토르비욘의 초고열 용광로에서 갓 꺼낸 것마냥 뜨거운 감자다. 이미 국내외 많은 회사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게임 콘셉트 아트, 배경, 캐릭터 일러스트를 사용하고 있거나, 활용 방안을 연구 중이다. 지난 4월 25일에는 위메이드플레이(옛 선데이토즈)가 AI가 그린 게임 캐릭터를 상용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테이블 디퓨전. 오픈소스로 배포 중인 이 모델로 그림 인공지능은 괄목성장했다. 사람들은 이미 이 AI에서 다양한 검색어를 넣고, 자신의 작업물을 학습시키며 전에 없던 속도로 많은 양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이미 창작자들은 임베딩, 하이퍼네트워크, 드림부스, 로라 등의 튜닝 방법을 사용해서 입맛에 맞는 학습 방법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

AI가 그린 그림에 대한 반발은 만만치 않다. 일러스트레이터의 화풍과 창작물을 학습시킨 뒤, 생성형 AI로 그림을 찍어낼 수 있게 되자 토사구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이터스>와 <디모>로 이름난 대만의 게임사 레이아크는 완성도가 부족한 AI 일러스트를 검수 없이 일반에 공개했다가 유저들의 지적을 받고 결과물을 고친 일이 있다. 레이아크의 기술책임자(CTO) 종지위안​(鐘志遠)은 "AI가 확산되면 콘텐츠 제작 비용이 감소하고,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며 "AI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빠르게 쫓겨난다"고 맞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하는 인공지능과 수년간 자신의 재주를 닦아온 일러스트레이터는 공존할 수 있을까?

 

레이아크가 지난 4월 공개한 손가락 6개 나왔던 <디모 2> 일러스트.'손가락 6개 버그'는 생성형 AI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로 지목되고 있다. 훗날 레이아크는 이 이미지를 수정했지만, 유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비판을 받은 뒤였다.

 

27일, 위메이드플레이의 임상범 게임제작총괄은 구글 클라우드 컨퍼런스에서 <애니팡 4>가 어떻게 자체 이미지 생성 툴 '애니'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소개했다. 회사는 <애니팡 4> 에셋 생성 프로그램 '애니'를 만들어서 이미 사용 중이다.

기자는 행사장에서 임 총괄과 이창명 CTO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가장 먼저 "사내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반발은 없었는지" 물었다. 임 총괄은 이렇게 답했다.

 

임상범 게임제작총괄: 사내에서 스테이블 디퓨전 관련 강연을 진행한 적 있다. 이때도 원화가분들의 질문이 가장 매서웠다. 프로그램을 쓰는 것보다 직접 그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연구·개발이 계속되면서 설득이 아닌 인정이 이루어졌다. 오히려 '이것을 더 빨리 익혀야 살아남는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미 닥쳐온 현실 속에서 회사는 이미 계신 분들이 AI로 스위칭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 위메이드플레이 디자이너들은 생성된 이미지를 리터칭해서 작업 능률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존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한 생성 이미지(좌) 대비, 자체 튜닝한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해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이미지 생성 이 가능하다고. (위메이드플레이 제공)

 

AI의 도입은 "이미 닥쳐온 현실"이기 때문에 사내 아트 직군 담당자들은 여기에 적응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위메이드플레이는 스테이블 디퓨전에 드림부스와 로라를 학습시키는 자체 프로그램 '애니'를 개발해서 <애니팡 4> 이미지에 쓰고 있다.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에 호스팅하는 내부 웹 서비스 형태로 구성했다.​ 위메이드플레이는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자동 번역, 자동 배경 지우기, 중요 프롬프트 자동 삽입, 캐릭터별 태그 자동 삽입도 쓰고 있다.

​'애니' 도입 이후, 위메이드플레이는 약 25%의 제작 기간 단축 효과를 보고 있다. 원화 배경에는 14일, 콘셉트 아트 구성에는 최대 5일까지 걸리는데 이제는 파츠 별 리터칭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롬프트를 넣고, 파츠를 비교하고, 리터칭을 하면서 작업자들은 이전과 다른 방식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다. 앞으로 위메이드플레이는 자사 신작의 게임 아트는 물론, 마케팅 소재와 브랜드 마케팅에도 AI를 도입할 계획이다.

게임에 쓰이는 배경 원화에는 더욱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고 있다고. (위메이드플레이 제공)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위메이드플레이가 앞장서서 생성형 AI 사용을 공식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임상범 게임제작총괄: 이 부분은 선데이토즈부터의 DNA 같다. 빨리 한 쪽과, 늦게 하는 쪽이 있다면 그 중에서 빨리 하는 쪽이 되고 싶어 한다. 경험상, 모바일 때 <애니팡>으로 일찍이 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카카오톡 입점을 주저하고 있을 때 앞장서서 들어간 것도 선데이토즈였다. ('애니'를 쓰기로 할 때도) 아직 대부분 그림 AI에 관해서 조사 단계였지,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시점은 아니었다.

 

<애니팡>의 성공에 새로운 트렌드의 재빠른 적용이 있었듯, 이번에도 AI라는 트렌드를 신속하게 익혀서 개발 과정에 도입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위메이드플레이는 2018년부터 구글 클라우드를 쓰고 있다. 구글 애드센스, 구글 플레이 등 여러 제품군과의 연결고리가 강하다는 것이 회사가 구글을 선택한 이유. 다양한 제품군과 얽혀있기 때문에 서비스에서 연결고리를 많이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창명 CTO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창명 CTO: 구글 클라우드가 기술 지원이 빠르고 버텍스 AI 등 다른 서비스와의 연동이 쉬웠다. 타 클라우드는 엔터프라이즈 고객 위주의 대응이 이루어지는데, 구글은 처리되는 과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오픈된 느낌이다. 학습에 대해서도 문서가 워낙 잘 정리되어있다. 게임 쪽은 개발자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기 때문에 (구글이 게시한) 서류나 영상을 보고 문제를 처리하는 편이다. 

 

위메이드플레이의 임상범 게임제작총괄(좌)과 이창명 CTO(우)

일러스트레이터가 회사의 소속으로 일하면서 그린 일러스트는 회사의 자산이다. 또 업계에서는 일러스트를 온전한 개인의 작업물이 아닌 같은 팀원, 기획팀, 외주작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공동 결과물로 해석하는 흐름도 있다. 위메이드플레이의 '애니'는 AI 모델 학습에 자사가 축적해온 '애니팡'의 자산을 썼다.​ 이 CTO는 이렇게 말한다.

이창명 CTO: 사 소속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원래 그리던 화풍을 다른 회사에서 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사람 머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코딩 과정과 이전의 결과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AI 그림을 가지고 일러스트레이터의 것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앞으로 AI 그림에서는 결과물보다 프롬프팅 능력이 자산이 될 것이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게임 회사에서는 앞으로 AI 일러스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검수하는 능력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위메이드플레이에서도 AI 일러스트를 곧바로 최종 결과물에 적용하는 경우는 없다. 기존 팀원들의 리터칭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CTO는 "AI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디자이너나 기획자의 역할이 전혀 없이 게임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20년 가까이 판교에서 일했던 임 총괄은 "원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절차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포토샵이 나온 뒤에도 계속 손으로 그리는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라며 AI는 결국 도구이며, 높은 수준의 일러스트를 위해서는 아직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기사로 '인공지능과 일러스트레이터는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완벽히 답할 수는 없다. "이미 닥쳐온 현실", AI는 과연 누구의 도구가 될 것인가?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누구'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알아야 한다.

(출처: 이라스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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