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하 배그 모바일)은 2018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를 모바일로 재탄생시킨 이 게임은 한국의 펍지와 중국 텐센트의 라이트스피드 & 퀀텀 스튜디오가 공동 개발했다고 합니다.
<배그 모바일>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습니다. 게임은 2019년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6억 개라는 엄청난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죠. 이는 글로벌 빌드를 놓고 계산한 수치로 중국 다운로드는 계산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난 상반기 크래프톤의 실적 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이번 상반기에만 모바일 게임 매출 7,108억 원을 올렸습니다. <배그 모바일>과 저사양 스마트폰에서도 구동할 수 있는 <배그 모바일 라이트>가 이끈 성과입니다. 크래프톤의 상반기 전체 매출이 8,872억 원이니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배그 모바일>이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펍지가 <배그 모바일>의 퍼블리싱을 맡은 것은 한국와 일본뿐인데, 순수하게 두 지역에서 저만큼의 매출을 올렸다고는 보기는 어렵습니다. 텐센트 서비스에 따른 수익 일부가 크래프톤으로 연결된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크래프톤의 매출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배그 모바일>은 적잖은 수난을 겪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폭력성을 문제로 게임 사용이 금지되는 한편, 외교 갈등으로 서비스 위기에 놓인 상황입니다. <배그 모바일>은 게임이 현실과 얼마나 깊게 연관될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인도는 현재 중국과 분쟁 중입니다.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서로 주장하는 영토가 다릅니다. 히말라야의 빙하 호수 '반궁후' 일대가 자국의 영토라는 것인데, 두 나라는 최근 여러 차례 충돌했습니다. 지난 8일에는 경고 사격까지 주고받았는데, 양측은 언제나 상대방이 먼저 무력을 썼다고 합니다. 11일, 두 나라의 외교장관이 만나면서 분쟁이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도의 반중 정서는 극에 달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중국어를 가르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죠. 시민들이 오성홍기와 시진핑 주석 사진을 불태우는 장면도 보도됐습니다. 인도가 코로나19 폭증으로 인한 분노의 방향을 중국으로 설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인도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중국산 앱까지 제재했습니다. 현재 인도에서 틱톡과 위챗은 금지입니다. <왕자영요>, <AFK 아레나> 같은 게임도 하루아침에 금지됐습니다. <배그 모바일>도 여기에 포함되면서 현재 서비스 금지 상태입니다.
이에 펍지가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배그 모바일>의 인도 다운로드 수는 약 1억 8,000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 앱애니 보고서에 따르면 <배그 모바일>은 인도에서 매출/인기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지난 8일, 펍지는 <배그 모바일>의 직접 서비스를 희망한다는 내용을 게시했습니다. <배그 모바일>이 한국 게임이 된다면 굳이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도 현지에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년 인도 구자라트주는 "젊은이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라며 <배그 모바일> 플레이 금지를 권고한 적 있습니다. 구자라트주에서는 길거리에서 <배그 모바일> 플레이하는 것을 단속하러 다니는 경찰까지 있었죠. 이번 금지로 주 정부는 조치를 유지할 다른 명분이 생겼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바일 슈팅 게임 <FAU-G>이 현지에서 대대적인 홍보 중입니다. "인도군이 국내외 위협에 대응하는 실제 시나리오 기반" 게임으로 인도와 중국의 영토분쟁을 주요 소재로 합니다. 게임 수익 20%는 순직 군인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되죠. <배그 모바일>이 차단되자 등장한 애국심 고취 게입입니다.
<FAU-G>의 정체는 게임이 인도에서 차단된 지 사흘 만인 9월 5일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밝혀진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과도한 애국심 고취에 반발을 드러내는 게이머들도 있지만, "인도산 게임을 하고 싶다", "인도인이라 자랑스럽다"는 등의 반응도 있습니다.
펍지는 인도 당국을 대상으로 주도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당국과 원래 게임을 서비스하던 2대 주주 텐센트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게임을 살려내야 하는 거죠. 여기에 이름까지 비슷한 경쟁 게임이 애국심까지 들고나왔습니다.
이보다 앞선 2019년 5월, 중국에 <화평정영>이 등장했죠. 그래픽, UI 등 <배그 모바일>의 에셋을 사용했는데, 총을 맞으면 죽지 않고 안녕이라 인사하며 사라집니다.
100명 전투와 파밍 방법까지 전부 똑같았지만, 공식적으로 표절 게임은 아닙니다. 게임의 개발과 서비스는 텐센트가 맡았는데 당시 <절지구생: 자극전장> 서비스를 중단하고 대신 문을 연 게 <화평정영>이죠. <배그 모바일>을 하던 중국 유저는 자신의 레벨과 소유 아이템을 그대로 가지고 <화평정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토어에 깔려있던 게임을 업데이트하면 <화평정영>이 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출시 시기, 계정 이관, 라이트스피드&퀀텀 스튜디오 개발 등의 정황을 종합해 사실상 같은 게임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펍지에 따르면 <배그 모바일>과 <화평정영>은 공식적으로 무관한 게임입니다. 텐센트가 <배그>의 중국 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평정영>은 완전히 별개의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펍지는 "양사가 원만한 합의 하에 <배그 모바일>의 서비스를 종료했다"라며 "<화평정영>은 펍지와는 무관한 게임"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봅시다. <배그 모바일>를 베꼈다는 혐의를 받는 <황야행동>은 판호를 받았는데 <배그 모바일>은 판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판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출시해도 인 앱 결제를 담아서 낼 수 없었죠. 많은 분들이 <배그 모바일>이 한국 게임이었던 탓에 중국에서 정상적인 서비스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텐센트는 판호를 받고 정상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해 수를 썼습니다. <화평정영>의 캐릭터들은 '평화를 위한 정예'들로 중국을 지키는 특별 임무를 맡은 인민해방군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대테러 작전 수행을 위한 훈련입니다.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된 <화평정영>은 요즘 중국에서 인기리에 서비스 중입니다. <배그>가 연상되는 모바일 슈팅 게임이 애국심 고취의 도구가 됐다는 점에서 인도의 <FAU-G>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그런가 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일부 국가에서는 폭력성과 중독성 등을 이유로 <배그 모바일>이 금지됐던 적 있습니다.
네팔 정부는 작년 4월 11일 <배그>의 PC판과 모바일판의 접속을 전면 차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의 학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당국은 "폭력성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특히 중독성이 강하다"라고 <배그>를 콕 '저격'했습니다. 정부는 곧바로 게임 사이트를 내리고 게임 스트리밍도 막았습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24일, 네팔 대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배그> 모바일 금지는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정부의 조치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현재 네팔에서 <배그 모바일>은 정상적으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국회 차원에서 특정 게임의 금지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배그>, <포트나이트> 등의 게임이 제재 대상으로 등록됐죠. 사회, 도덕, 그리고 교육적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비디오 게임을 차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었고, 이는 지금도 계속 유지 중입니다.
그밖에 요르단과 파키스탄에서도 폭력성과 중독성 문제로 <배그>의 플레이가 차단된 적 있습니다. (네팔을 제외하고)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국가들에게서 이런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배그 모바일>이 인기입니다. 센서 타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해외 <배그 모바일> 매출의 8.8%가 발생해 전체 3위에 올랐습니다.
<배그 모바일>이 서비스 중인 특정 지역에서는 청소년이 게임을 하지 말라는 권고,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팝업 알림이 담긴 '게임플레이 매니지먼트'가 적용됩니다. 중국에 출시되는 모든 게임에 적용되던 기능이죠.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인도네시아,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에도 이 시스템이 적용 중입니다. 게임을 계속 서비스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 장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센서타워 보고서를 조금 더 보겠습니다.
<배그 모바일>의 해외 매출 비중은 미국이 29%, 일본이 12%, 사우디아라비아가 8.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1억 8,550만 다운로드나 기록할 정도로 많은 유저가 선택했지만 매출 비중은 1.2%였습니다. 공식적으로 다른 게임인 <화평정영>은 제외한 값입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8월 13일까지 <배그 모바일>은 모바일 배틀로얄 게임 중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가레나의 <프리 파이어>, 넷이즈의 <황야행동>, 에픽의 <포트나이트>, 액티비전의 <콜오브듀티: 모바일> 순으로 나타났죠. (그래프 1)
미국에서는 <포트나이트>, <배그 모바일>, <콜오브듀티: 모바일>, <프리 파이어>, <주바> 순입니다. 아시다시피 애플 앱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가 빠지게 되었으니 이 지표는 바뀔 것입니다. 작년 4분기 아이폰은 미국 스마트폰 점유율의 47.2%를 차지했습니다. 아이폰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바꾸거나 추가로 구매하지 않는 이상 모바일 <포트나이트>를 즐기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래프 2)
<포트나이트>가 벌어들인 1억 1,800만 달러에 가까운 수익은 앞으로 어디로 갈까요? 애플은 며칠 동안 앱스토어에서 <배그 모바일>을 피처드에 걸어놓고 홍보했죠. 애플과 에픽의 전면전으로 <배그 모바일>이 의도치 않던 효과를 바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리포트를 쓴 애널리스트 크레이그 채플은 <배그 모바일>의 수익은 지역 차단 같은 악재 속에서도 앞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거대한 시장 인도에서 차단됐다고 하더라도 막상 유저들이 돈을 많이 쓰는 손님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게임사 입장에서는 잡아야 할 고객이죠)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배그 모바일>은 중국과 인도의 분쟁으로 인한 악재에 놓였고, 종교성이 강한 국가에서는 폭력성과 중독성을 문제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 <배그 모바일>은 없지만 <화평정영>은 있습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게임이며 <화평정영>으로 인한 수입은 크래프톤 보고서에 포함되어있지 않는다는 것이 일관된 진술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배그 모바일>은 크래프톤에게 많은 매출을 안겼고, 오히려 인도에서 게임이 막힌다고 하더라도 매출 하락은 적을 거라는 전망도 보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플레이할 수 없지만 수천억 매출을 올린 게임인데, 애플과 에픽의 갈등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얻을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게임 하나가 이렇게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니 재밌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