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인생 최고의 게임’,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게임’, 혹은 ‘내 인생을 망친(?) 게임’ 같은 “내 인생의 게임”을 하나쯤 갖고 있을 것입니다.
디스이즈게임의 “내 인생의 게임”은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 인생의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는 릴레이 연재기획입니다. 시작은 디스이즈게임 내부에서 먼저하고, 이후 게임업계의 다양한 인물들로 영역을 넓혀나갈 예정입니다.
내 인생의 게임, 두 번째 주인공은 바로 디스이즈게임 취재팀에 속한 저 환세르입니다. 막상 내 인생의 게임을 하나 정하려고 하니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워낙 인생 자체를 게임 같이 살아서 일까요? ^^;; /디스이즈게임 이성진 기자
☞ <리니지>(lineage) 게임의 초기 세계관은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봉건제도를 사회적 배경으로 했었으나, 파트2로 넘어가면서 게임 기획자의 설정대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리니지> 이전의 세계를 풀 3D 그래픽으로 구현한 후속작 <리니지2>가 서비스되고 있으며, <리니지3>는 한때 개발이 중단됐다가 다시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에서 개발한 MMORPG로 1998년 9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주기별 업데이트를 통해 신규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했고 공성전을 통해 유저들의 대결 구도를 정착시켰다.
TIG> 예상은 했지만 ‘내 인생의 게임’ 코너에서 <리니지>를 택하다니… <울티마 온라인>은 그렇다고 쳐도, <리니지>는 어떤 의미에서 용기가 대단한 것 같다. 두 게임이 환세르의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환세르: 나도 나의 용맹함에 놀랐다.(-_-;) 이 글이 나간 뒤에 또 어떤 댓글들이 달릴지 걱정이다.(환세르 린지 폐인 아니삼? 등…) 그래도 어차피 하고 싶은 말도 많았기에 이 기회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나 해야겠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울티마 온라인>과 <리니지>를 통해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인생을 올인했다.
TIG> 오... 벌써 그 어린 나이에 그걸 깨달았단 말인가.
-_-; 조금 과장된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당시에 <울티마 온라인>과 <리니지>는 나에게 신천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항상 혼자 즐기던 RPG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나아가 엔딩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저끼리 경쟁과 협력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반했다.
콘솔 게임을 즐기면서 느꼈던 아쉬움과 갈증을 <리니지>를 통해서 채울 수 있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대다수 콘솔 RPG에서는 결국 마지막에 열심히 레벨업 한 다음 반복 사냥으로 지존급 아이템들을 맞추고 마지막 보스 몬스터를 잡은 뒤 찾아 오는 허무함이 존재했다. 투자한 나의 시간들이 결국은 그렇게 무의미하게 끝난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리니지>와 <울티마 온라인>은 모두 네버엔딩이었고, 각각의 장점이 그 당시 디자이너 지망생이던 나로 하여금 꿈을 전환토록 만든 주범이 되었다.
영어를 싫어했었던 환세르에게 영어는 꼭 배워야 할 언어라는 걸 깨닫게 해준 게임.
TIG> 그렇다면 나름 잘나가던(?) 인생에 변화를 준 두 게임 <리니지> <울티마 온라인>은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아직도 흑백영화 필름 넘어가듯 그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거주하던 동네에 PC방이 하나 있을까 말까하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PC방에서 <디아블로>를 하고 있었다. 근데 어떤 손님이 대낮부터 야동을 틀어 놓았는지 여자 신음소리가 PC방 구석진 자리에서 계속 들려왔다.(아학~! 아앙!)
TIG> 혹시… 그 소리는?
그렇다. 대체 어느 나라 영상인지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서 보았는데 그것이 <리니지>였다.(신음소리는 여자 캐릭터가 두들겨 맞는 사운드였다) 그후 정신을 차려 보니 사회와 단절된 채 PC방에서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리니지>와 동고동락하고 있었다.
진짜로 무슨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정신 차려보니 시간이 그냥 막 가있더라.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하는데, 신서버 켄라우헬이 열리더라. 이후 정신을 차려보니 PC방 카운터에 앉아서 계산을 해주면서 해맑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참고로 환세르가 PC방 알바를 맡은 날은 단돈 10원의 오차도 없었다. -_-.v
TIG> PC방 알바를 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대로 가다가는 헤어나지 못 할 것 같아 과감히 <리니지>를 지웠다. 그리고 다시 학업에 매진하려고 하던 찰라, 신림동에서 PC방을 운영하던 친한 형이 "<울티마 온라인> 사러 용산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번엔 정신을 차려 보니 신림동 PC방에서 컴퓨터 3대를 돌리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두 대는 <울티마 온라인> 매크로를 돌리며 잉갓 노가다를 하고 있고, 한 대로는 성 먹어보겠다고 <리니지>를 하고 있었다. 40평 정도 되는 PC방을 5분만에 깔끔하게 청소해내는 내가 있더라.
TIG> 듣다보니 가슴 아픈 사연인 것 같다. 언제 정신을 차리게 됐나?
이후 군대에 가기 전까지 내가 발각된 곳이 미아리역에 있는 한 PC방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해외에 거주하고 계셨는데, 영장이 나왔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친척들의 신고에 부모님 두 분이 귀국하셔서 나를 찾아 낸 거다. 정말 나이 먹고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아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SBS TV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가 있었으면, 담당 PD가 아무 고민 없이 바로 섭외 들어올 건수였다.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서울 곳곳의 PC방을 유랑했던 것 같다. 특히 <리니지>와 <울티마 온라인> 두 게임 모두 군주, 또는 길드마스터를 했던 탓에 혈원과 길원 중에 PC방 주인이신 분들이 많아 공짜로 무전취식을 할 수 있는 원더풀한 환경이 끊임없이 제공됐다.
"다신 리니지 안하겠심니더...-_-" 지금 생각해도 이렇게 맞았던 것 같다.(영화 친구 中)
TIG> 좋게 말해서 인생을 올인 한 거지, 솔직히 말해 게임 폐인이었던 것 아닌가?
에… 참 인생이란 덧없는 것 같다. 최근의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국내 경제를 비롯 거시 경제가….
TIG> 말 돌리지 말라. 그러니깐 게임 폐인으로 지내다 보니 이쪽 업계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말 아닌가.
참으로 예리한 질문이다. 지금도 간혹 게임중독 방지와 관련된 교육을 할 때가 있는데, 난 모든 것이 체험에서 울어 나오는 눈물 섞인 고백에 가까운 교육을 실시한다. 나름 호응이 좋더라. 물론 교육을 요청한 선생님들은 다시는 나를 찾지 않지만 말이다.
교육 도중…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산만할 때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메이플 스토리>로 다시금 관심도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_-;;
TIG> 사실 환세르라는 닉네임은 디스이즈게임 이전에도 몇 번 봤던 것 같다.
<리니지>와 <울티마 온라인>에 대한 기행기를 열심히 썼기 때문일 것이다. 환세르라는 닉네임은 일본에 거주할 때부터 사용던 필네임이었는데, 기행기를 쓰면서 유저들 사이에 천천히 퍼져 나갔던 것 같다. ‘폐인 리니지’ ‘UOINFO’ ‘플레이포럼’ ‘쥬드천사’ ‘게임어바웃’ 등… 다양한 곳에서 기행기를 썼다.
TIG> 기행기를 쓴 이유가?
공통된 주제로 게임 외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일이 즐거웠다. 콘솔 게임의 경우 흔히 공략이 필요했지만, 온라인게임의 경우는 공략과는 다른 일기를 쓸 수가 있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랬어요~’라는 형태의 단순한 글이었다. 쓰다 보니 생각 외로 호응이 좋아 계속 쓰게 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재미있게 게임을 즐겼고 HTML이나 홈페이지 기획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나름 팬클럽도 보유하고 말이다.
최근에는 요놈들과 함께 <아이온>을 플레이하며 기행기를 다시 쓰고 있다는.
TIG> 방송에서 이상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으로 안다.
한참을 게임 관련 글을 쓰다 보니 엔씨소프트에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방송 나가볼 생각이 없냐’고 말이다. 솔직히 갸우뚱 했었는데, 출연료를 준다는 말에 아무런 고민 없이 OK하고 다음 날 촬영하러 여의도로 갔던 기억이 난다.
TIG> 다시 한번 묻겠다. 왜 방송에 이상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인가?
참고로 난 지금까지도 방송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_-;; 이번에 이 기사를 쓰면서 처음으로 봤다.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첫 방송을 찍으러 갔을 때 코디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음… 기자님은 얼굴이랑 몸이 너무 거대하셔서 화장품이나 소품이 일반인의 2배네요. 방송으로 나가면 1.5배 더 늘어나는데, 호호호. 모르셨죠? 호호호. 그래서 쫌 과격하게 메이크업 할께요” -_-...
처음엔... 이렇게 내보내 주었다.
방송이 거듭되면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TIG>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가이드북도 썼다던데…
<리니지> 하나로 많이 해먹은 것 같다. 가이드북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작업을 했는데, 팬레터라는 걸 이 때 처음으로 받아 보았던 것 같다.(방송 당시에는 안티팬도 양산됐다)
TIG> 오~ 팬레터라면 팬들이 스타를 위해 작성하는 그런 것 아닌가?
그렇다. 근데 모든 팬레터 작성자들이 군인들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에 휴가를 나온 장병들이 가이드북을 사서 복귀를 했었다고 한다. 내무반에 <리니지>했던 젊은이들 꼭 4~5명은 있었다는데, 그들이 내 글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편지 속에는 한결같이 ‘아이템 쫌 주세요~’라고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네티즌 평점 6점... -_-; 분명 당시에는 나름 사실적인 가이드북으로 유명했겄만... (예: 게임에서 강해지는 방법 - 1. PK 당하지 말 것, 2. 사기 당하지 말 것, 3. 현실 PK를 조심할 것...)
TIG> 지금까지 이야기는 <리니지>에 얽힌 즐거웠던 기억(?)들을 이야기한 것 같다. 내 인생의 게임이라고 꼽을 정도면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에피소드는 없나?
당연히 있다. 지금 결혼한 와이프를 <리니지>를 시켜서 작업했다. -_-.v
TIG> 어떻게 <리니지>를 시켜서 결혼에 골인했단 말인가?
일을 쉬고 있을 때 일본으로 놀러 갔던 적이 있다. 그때 지금의 와이프가 호주 유학 도중 방학 기간을 이용해 일본에 잠시 놀러 왔을 때 만났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잠시 연락을 하며 만나는 도중 와이프가 다시 호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온라인게임을 가르쳤다.
TIG> 혹시… 그 온라인게임이 <리니지>인가?
-_-;; 그렇다. <리니지>를 시켰다. 요정을 키우라고 시킨 뒤 몽둥이 하나 주고 두 달 동안 엔트의 열매를 따는 노가다만 시켰던 것 같다. 이유는 또 호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 붙잡아 두기 위해선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TIG> 결국 의도했던 대로 되었나?
-_-; 그렇다.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더라. 와이프 왈,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결혼식장에 들어서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또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을 낳은 뒤라고 했다.
TIG> 이 시대를 사는 솔로들에게 권장할만한 이야기인 것 같다.
데이트나 선물로 친밀도를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게 만들기에는 분명 그만한 관심을 끌만한 것이 필요하다. (이게 정말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길 바라며… -_-;;) 혹시 해외로 나가거나 멀리 떠날 연인이 있다면 <리니지>를 시켜보라.
TIG> 그냥 살짝 참고 하도록 하겠다;; 지금도 <리니지>와 <울티마 온라인>을 하고 있나.
솔직히 <울티마 온라인>은 접었다. 게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에 그래픽을 리뉴얼해서 새로운 버전을 내놓고 열심히 서비스하고 있지만, 완전히 일본 유저들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이 된 것 같아서 깔끔히 잊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살짝 접속해보니 도룡뇽 같은 걸 타고 다니는데 적응할 수가 없더라.
<리니지>는 지금도 하고 있다. 취재일에 아기도 둘이다 보니 하루에 30분 정도 밖에 게임 할 시간이 없지만 말이다. 사실상 국내에 선보인 MMORPG들 중 하루에 30분 플레이해서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없다. 결국 아쉬운 마음에 <리니지>를 한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게임 시스템의 큰 틀에는 변화가 없기에 그냥저냥 편안한 마음으로 접속한다.(옛날 같이 눈에 핏발 세우고 하지는 않는다)
한 때에는 이 상태로 게임에 몰두했었다. (아템... 아템...)
TIG> 최근에는 어떤 MMORPG를 즐기고 있는가.
앞서 설명했다. <리니지>만 살짝 즐긴다. 그래도 간혹 접속해서 게임 돌아가는 걸 보는 경우는 <리니지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정도다. 아, 최근에는 <아이온>을 테스트한다는 명분 아래에 업무 시간에 짬을 내서 플레이 해봤다.
그래도 업무 시간에는 최근 선보인 MMORPG들은 모두 플레이해 보고 있다. 특히 해외 게임들의 경우 어떻게 해서든 공짜로 계정 빌려달라고 해서 플레이한다.
TIG> 자. 이제 다음 타자로 넘어가 보자. 어떤 인물을 추천하겠는가.
음… 두말할 필요 없이 나를 디스이즈게임으로 입사시킨 다크지니 선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