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게임의 제작 의도, 시나리오가 구현된 구성요소, 표현 방식이 유사하다면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공개됐습니다. <팜히어로사가>의 킹닷컴이 <포레스트매니아>의 아보카도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2014년부터 진행해온 소송은 창작적 개성을 갖추고 있는 게임의 저작권을 인정하겠다는 판결로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따라 게임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별도의 법무실이나 자문 변호사가 없는 회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법조인들에게 이번 판결에 대한 해설을 요청했습니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사법연수원 32기, 법무법인 세종)은 디스이즈게임에 장문의 의견서를 보내주었습니다. 임 학회장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게임 사이의 표절의 판단에 대한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창작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대해 보다 꼼꼼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판결로 아이디어와 표현 사이의 '경계'까지 '표현'의 영역이 확장된 것입니다. 단, 이번 대법원 판결이 게임의 ‘규칙’ 자체에 대해서 저작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저작권법 해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과거 SBS의 인기 예능이었던 <짝>과 그와 유사한 포맷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 사이의 있었던 송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도 유사하다고 임 학회장은 이야기했습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개별 요소들의 선택과 배열에 있어서의 창작성을 인정해 국내 콘텐츠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사법부의 최근 판결 경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 학회장은 이번 판결에도 아쉬움은 남는다고 전했습니다. 먼저 대법원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게임에 대해 "창작성 뿐만 아니라 구성요소들이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선택·배열되고 조합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서 앞으로 세부적인 기준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또 부정경쟁방지법은 저작권법에 대해서 보충적으로만 적용되며, 예속적 모방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2심에서 제기했는데 상급인 대법원에서 이에 대한 코멘트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합니다.
[임상혁 학회장의 의견서 전문]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게임의 창작성의 인정 및 게임 사이의 표절의 판단에 대한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핸드폰을 이용한 모바일게임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간의 표절은 그 동안 업계에서 큰 쟁점으로 부각이 되어 왔습니다. 핸드폰 화면에 구현할 수 있는 표현에 한계가 있다보니 특히 캐주얼게임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게임 내에서는 구체적인 표현보다는 게임의 룰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작권법에는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고 표현만 보호한다는 ‘아이디어 표현 이분법(idea expression dichotomy)’이라는 대원칙이 있는데,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상당수의 캐주얼 게임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업계의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여 아이디어와 표현 사이의 ‘경계’에 있는 부분까지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였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게임의 ‘규칙’에 대해서 저작권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즉, 게임의 구성요소들의 각각의 창작성은 물론, 그 구성요소들의 선택, 배열, 조합에 대해서도 창작성을 본격적으로 판단하여 보호범위를 넓히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게임업계 내에서도 다른 회사의 창작적 노력에 대해서 존중을 하고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며, ‘아이디어’를 내세우면서 무분별한 베끼기 행위들이 제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대법원에서 새롭게 제시된 기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방송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포맷에 관한 창작성을 인정한 첫 사례인 ‘SBS 짝 사건’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다49180 판결) 에서 제시된 논리와 거의 유사합니다. 즉 개별 요소들의 선택과 배열에 있어서의 창작성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국내 콘텐츠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최근 대법원의 경향이 이번 판결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로 “전체적으로 어우러져야”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의 ‘구체적인 기준’이 이번 판결에서도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후속 판결을 통해서 점점 세부적인 기준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2심은 부정경쟁방지법 차목의 적용범위에 관하여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고(부정경쟁방지법은 저작권법에 대해서 보충적으로만 적용되며, 예속적 모방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 이것이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법학계에서는 또하나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참고] ‘SBS 짝 사건’ 의 대법원 판결 내용
“구체적인 대본없이 대략적인 구성안만을 기초로 출연자 등에 의하여 표출되는 상황을 담아 제작되는 이른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도 이러한 창작성이 있다면 저작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은 무대, 배경, 소품, 음악, 진행방법, 게임규칙 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고, 이러한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으로써 다른 프로그램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날 수 있다.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의 창작성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 각각의 창작성 외에도, 이런 개별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그 프로그램 자체가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있어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정도에 이르렀는지도 고려함이 타당하다”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다49180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