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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오버워치의 '올가미' 삭제… 만약 욱일기였다면?

두 가지 이슈를 대하는 ‘온도차’의 원인,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0-07-17 11:27:53

7월 15일 <오버워치> 업데이트에는 알리지 않은 조용한 콘텐츠 삭제가 있었습니다. 황야의 무법자 스타일 영웅 ‘맥크리’의 스프레이 중 하나인 ‘올가미’가 감쪽같이 사라졌죠. 

 

스프레이: <오버워치>에서 플레이어가 T를 누르면 벽이나 바닥 등에 표시할 수 있는 그림 기호. 자신의 슈퍼플레이를 과시할 때나 다른 플레이어를 놀리는 용도로 흔히 사용된다.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올가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종차별적 함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올가미의 ‘퇴출’은 요즘 코로나19와 더불어 미국의 최대 이슈인 차별반대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문제소지가 있는 게임 속 콘텐츠가 지워지는 모습을 보니 한 가지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도 여러 글로벌 게임 안에 버젓이 사용되는 욱일기입니다. 여러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올가미는 지워지는데, 욱일기는 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일까요? 게임사의 대응이 이렇게 극명히 갈리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오버워치> 영웅 '맥크리'의 전용 스프레이였던 '올가미'

 



 

# 올가미의 어두운 역사

 

맥크리의 외형이 카우보이임을 본다면 올가미 스프레이는 형태는 동물 포획에 사용되는 올가미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스프레이로 구현된 올가미는 교수형에 쓰이는 매듭에 가깝습니다. 

 

물론 게임 안에서 맥크리는 무법자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고 실제 미국 서부시대에는 보안관들이 법 집행의 일환으로 교수형을 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올가미 매듭을 보여주는 것이 설정을 따라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교수형 올가미’(noose)가 인종차별과 흑인 린치(lynch·私刑·법 제도에 따르지 아니하고 사사로이 벌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카우보이들이 사용하는 포획용 매듭의 모습. 맥크리의 '올가미' 스프레이와는 다른 형태다. (출처: 유튜브 채널 WhyKnot)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에 따르면 1882년에서 1968년 사이 미국에서 최소 4,700건에 달하는 린치가 일어났고, 피해자 73%는 흑인이었습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며 노예제도는 폐지됐지만 흑인에게는 아직 온전한 권리가 없었고, 범죄 의심만 가지고 린치 당하는 경우가 더 흔했죠.

 

흑인 린치에 자주 사용된 방식이 바로 교수형입니다. 백인은 흑인을 ‘단죄’한다며 올가미에 매달고는 했습니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올가미는 흑인을 향한 노골적 적대의 의미로 종종 사용됐습니다. 올가미를 직접 들이밀거나 올가미를 맨 흑인 인형을 사물함에 숨겨놓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요.

 

 

# 차별 상징 축출하는 미국사회

 

최근 미국에서는 여태 묵인되던 인종차별 상징을 적극적으로 몰아내는 운동이 한창입니다. 5월 25일 무고하게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차별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한 여파입니다.

 

미국 곳곳에는 과거 남북전쟁에서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군측 지도자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추모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이런 동상을 시민들이 임의로 철거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영향을 받아 노예상이나 식민지 지배자 동상을 철거하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죠.

 

남부연합기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존속을 주장한 남부연합군의 상징이었다. (출처: flicker / edward stojakovic)

 

남부연합군 상징이었던 남부연합기도 자취를 감추는 중입니다. 미시시피주는 주 깃발에 포함돼있던 남부연합기 문양을 지우기로 결정했고 자동차 경기대회 나스카(NASCAR)도 경기장 인근에서 남부연합기 사용을 금했습니다.

 

이런 흐름의 영향으로 지난주 게임계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발생했습니다. 미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FPS <콜오브듀티>의 ‘OK’ 감정표현이 삭제된 것인데요. 최근 몇 년 동안 이 동작이 일부 미국인 사이에서 백인우월주의 상징 암호로 통용됐기 때문인 듯 합니다.

 

[관련기사]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OK' 감정표현 삭제 이유는?

 

일부 유저는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원래 OK 사인은 아무 문제 없는 동작이었으니까요. 이번 ‘올가미’ 삭제에도 비슷한 의견이 눈에 많이 띕니다. 올가미는 수배전단, 리볼버 권총처럼 서부개척시대의 거친 문화를 보여주는 한 요소이기도 한데, 잘못된 의미만 의식해서 과하게 반응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 만약 욱일기였다면?

 

역사적 배경이 다른 국내 게이머가 이 사안에 감정을 이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쉬운 방법은 여러 게임의 욱일기 사용 사례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욱일기에 느끼는 정서처럼 많은 미국인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전부터 게임 속에 사용되는 OK 사인이나 올가미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이런 정서가 BLM 운동 이후 급격히 고조된 분위기에서 게임사들은 조용히 문제를 해결한 거죠.

 

우리가 OK 사인이나 올가미에 대해 둔감한 것처럼 서양 문화권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들은 잘 모르고 사용하다가 거센 항의에 뒤늦게 사과하지만, 어떤 이들은 비판이 나와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지적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죠.

 

욱일기 관련 항의를 묵살한 대표적 게임으로는 <GTA 5>와 <배틀필드 4>가 있습니다. <GTA 5>는 커스텀 스킨에 욱일기를 포함시켜 많은 유저의 분노를 샀지만 이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도 않고 문제를 수정하지도 않았습니다.

 

<GTA 5> 스킨 커스터마이제이션 기능에 포함된 욱일기 문양에 국내 플레이어들은 분노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배틀필드 4>도 공식 포럼에서 한 유저가 플레이어들의 욱일기 사용 방치를 비판하자 포럼 운영자가 “나치는 사라졌지만 일본은 남아있다. 다시는 이런 스레드를 만들지 말 것”이라고 일축해 많은 유저를 격분시켰습니다.

 

 

# 그들이 '듣게' 만드는 법

 

이런 대응은 <콜오브듀티>의 인피니티워드나 <오버워치>의 블리자드가 보이는 태도와 전혀 다릅니다. 두 기업은 ‘알아서’ 문제 요소를 삭제했으니까요. 욱일기 이슈보다 훨씬 심하게 찬반양론이 갈리는 논란인데도 말입니다.

 

식민통치 피해자인 한국 입장에 공감하고 행동했던 기업들도 물론 있습니다. <월드오브워십>에서 욱일기를 삭제했던 워게이밍이나 <레인보우식스:시즈>에서 광복절 이벤트를 열었던 유비소프트처럼요.

 

두 기업 공통점은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할 정보가 충분했다는 사실입니다. 워게이밍의 경우 한국 지사에서 본사에 관련 역사자료를 전달해 설득에 성공했고, 유비소프트의 경우 원래 역사지식에 해박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관련 기사] 유비소프트, 교육 콘텐츠 '어쌔신크리드 디스커버리 투어' 무료 배포

 

안타깝게도 미국 기업이 앞다퉈 차별반대 선언에 나서는 것처럼 일본 제국주의 잔재에 대해 ‘알아서 잘 하게’ 만드는 화끈한 방법은 없습니다. 미국에서 욱일기 이슈에 BLM 운동 같은 저항이 일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GTA 5>와 <배틀필드 4>의 무지 또는 무관심 또는 방치를 해결하는 방법은 워게이밍이나 유비소프트처럼 본사 및 한국 지사가 이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게이머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전세계 게임 시장에서 4위 국가입니다.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시장입니다. 우리 게이머들이 이성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게임 회사들에게 ‘제국주의 잔재는 나쁘다’는 명제가 ‘인종차별의 잔재는 나쁘다’는 명제만큼 명징하게 인식되기를 희망합니다. 게임 속에서 욱일기가 사라질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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