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뭐 먹을까?"
모든 직장인, 대학생의 최대 난제 중 하나다. 각자의 취향도 중요하지만, '가격대'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올랐는데, 점심밥의 맛이 그만큼 좋아졌느냐 하면, 글쎄… 이렇듯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매번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이때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다.
하지만 기자는 '가성비'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게 쓰이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도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효용이 부족하다며, 가보지 않은 길을 포기하는 모습들을 여러 차례 봐왔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에 있어서는 비용과 노력을 들이는 것 자체를 망설였다. 그러나 반문하고 싶다. 정말로 그 선택에 들어가는 '비용'과 돌아올 '가치'에 대해 미리 다 알 수 있는가?
비용이 명시된 상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가격이 정해진 게임에 대한 지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 시점, 가장 뜨거운 게임인 포켓 페어의 <팰월드>와 참신한 플레이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의 사례와 함께, 가성비의 '맹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팰월드>는 <포켓몬스터>, <젤다의 전설>, <아크 서바이벌> 등 인기 게임들의 장점을 버무려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서바이벌 크래프팅 게임이다. 어제(1일) 포켓 페어가 밝힌 바에 의하면, 얼리 액세스 출시 13일 만에 스팀에서 1,200만 장 이상 판매됐고, 게임 패스를 포함한 Xbox 플랫폼에서 700만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즐겼다고 한다. 무려 1,900만 명 이상이 신비한 생물 '팰'들과 함께 생존 모험에 나섰던 것이다.
참고로 원조 맛집에 해당하는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은 출시 3일 만에 판매 1,000만 장을 넘겼고, 약 2개월 만에 2,000만 장 이상 판매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역사의 길이 자체가 달라, 이런 직접적인 비교에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스칼렛·바이올렛>은 (대대적인 마케팅을 포함한 사전 예약 판매도 진행했지만) '닌텐도 스위치 독점작'이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가장 결정적으로 <스칼렛·바이올렛>은 64,800원의 정식 출시작이었던 반면, <팰월드>는 스팀 정가 32,000원에, Xbox 게임 패스 구독자라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얼리 액세스 게임이다. 이 지점에서 동료 기자와 이런 질문을 주고 받았었다. "<팰월드>가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진 6~7만 원 가격의 풀 프라이스 게임으로 나왔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팰월드>의 가격 대비 '성능'은 어떨까? 얼리 액세스 게임이기 때문에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나, 그 가격 이상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게임은 스팀에서 가장 높은 평가 기준인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진 못했다. 스팀 리뷰 165,798개 중 94%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리뷰 수가 많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한 지표다.)
게임 평가 지표로 자주 인용되는 오픈 크리틱에서는 어땠을까? 탑 크리틱 평균 점수는 69점이었고, 비평가 추천도는 44%에 그쳤다. 역시나 재미는 있지만, 다른 게임들이 연상되는 '오리지널리티'와 완성도가 아쉽다는 게 비평가들의 의견이다. 대중들의 평가와 같은 맥락이었지만, 이들이 준 점수는 달랐다.
<팰월드>가 화제의 게임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나, 이런 평가들을 고려한다면 GOTY(올해의 게임)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한편, 정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23년 12월 전국 만 20~64세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시간과 돈, 어느 콘텐츠에?]라는 보고서를 어제(1일) 발표했다. 그리고 이 콘텐츠 산업 동향 분석 안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은 콘텐츠 소비에 하루 3.05시간, 지출액은 월 평균 39,674원을 사용했다.(이 '콘텐츠 소비'라는 항목에는 OTT, TV, 유튜브, 음악, 게임, 웹툰·웹소설, 도서, 영화, 콘서트, 뮤지컬 등이 포함됐다.) 유튜브 동영상 소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OTT 동영상 소비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했으나, 게임 콘텐츠는 소비 시간에 비해 지출액이 크게 나타난 것이 특징이었다.
게임 패스 구독자라면 무료로 즐길 수 있고, 정가를 주고 구매해도 32,000원에 즐길 수 있는 <팰월드>의 가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최근 한 달 사이 가장 흥행하고 있는 게임에 지출하는 비용으로는 꽤나 합리적인 가격이 아닌가?
우연의 일치겠지만, 한국인의 콘텐츠 소비액 월 평균 39,674원에서 넷플릭스 등의 OTT 구독료(또는 멜론과 같은 음악 스트리밍 구독료) 하나 정도를 빼면, 정확히 28,800원(<팰월드> 초기 할인가)~32,000원(<팰월드> 스팀 정가) 사이다. 이게 만약 포켓 페어 CEO 미조베 타쿠로가 의도한 가격 포지셔닝이라면,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제(1일) Xbox 측에서는 "<팰월드>의 흥행은 Xbox 게임 패스를 통해 론칭한 써드 파티 게임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팰월드>는 Xbox 플랫폼에서 300만 명에 가까운 일일 활성 유저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게임 패스 구독료(PC나 코어 기준 월 7,900원, 얼티밋 기준 월 13,500원) 또한 엄연한 비용이지만, 추가 비용 없이 등록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Xbox 게임 패스는 '가성비'의 대명사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블로그 게시글을 보기도 했다. "<팰월드>를 무료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내용으로,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 혜택인 게임 패스 3개월 무료 쿠폰을 활용하라는 것이었다.(신규 '게임 패스 PC' 가입자에게만 해당된다) 유튜브 프리미엄 신규 가입 정가도 iOS 기준 19,500원으로 비싼 편이니, 통신사 혜택 등을 활용해 저렴한 가격에 가입하라는 것.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팰월드>의 인기를 체감해 놀랐다.
그렇다면 게임 구매 비용이 0원이 되면 어떨까? '가성비'의 측면에서 최고인 게임일까?
인디 개발자 '소미'는 1월 30일 자신의 X(트위터) 게시글을 통해 "게임을 좀 더 길게 만들었어야 한다"고 한탄했다. 그의 신작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에 대해 "혼자서 만든 게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든 게임이며, 스토리에 푹 빠졌고, 감동적이고 놀라운 게임"이라 평가한 스팀 리뷰가, 게임을 '환불받은 유저'의 리뷰였기 때문이다.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의 스팀 정가는 7,800원이다.
해당 게임은 천천히 플레이해도 3~4시간이면 엔딩을 볼 수 있으며, 스팀은 정책적으로 14일 이내에 구매한 2시간 미만 플레이 게임에 대해 환불 지원을 해주고 있다. 소미가 게임을 짧게 만든 것도, 스팀이 소비자를 위해 환불 규정을 마련해둔 것도 모두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해당 리뷰를 작성한 유저 또한 도의적인 문제는 있을지언정, 이미 있는 정책을 활용했을 뿐이긴 하다.
그러나 '가성비'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말은, 그 가치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했을 때 성립하는 것 아닐까? 무조건 가격이 싸면 좋고, 돈을 아끼기만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지향해야 할 '합리적인 소비' 안에는 콘텐츠 창작자와 시장의 존속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구매하는 '가치'에는 그런 '미래의 가치'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