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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 이상 표절과 타협하지 않겠다” 어느 개발사의 작은 반성이 씁쓸한 이유

반성과 한 걸음 전진을 위한 노력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길 바란다

안정빈(한낮) 2014-03-13 15:58:45

한 달에 수 십 개의 모바일게임이 출시된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 지친 개발사들이 인기게임의 골격을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옷을 입힌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한다. “우리만의 무언가를 덧붙였다.

 

비교적 눈에 덜 띄는 일러스트나 이미지는 더하다. 저기서 본 드래곤이 여기에도 있고, 여기서 만난 구름이 저기에도 떠 있다작가가 드러나지 않은 이미지는 논란에도 대꾸조차 없다. 모두가 묵인동의로 알고, ‘논란화제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거침없이 위험한 영역에 손을 뻗는다.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두 말 할 나위 없는 표절 논란의 전성시대다.

 

이 표절의 전성시대 속에서 한 개발사는 약간 다른 선택을 했다. 유저들의 지적이 나오자 순순히 표절을 인정했고, 지속적인 사과와 함께 지금까지 만든 콘텐츠를 모두 갈아엎었다. 보기 드문 반성이다.

 

모처럼 바라던 이야기가 나온 곳은 <애니팡2> 출시 후 연일 최고주가를 기록했던 선데이토즈도, 재탕에 삼탕을 거듭하며 해외 진출까지 시작한 스케인글로브도 아니었다. 이제 막 직원이 20명을 넘은 작은 개발사 롤앤무브스튜디오(클라이맥스에서 분사).

 

지난해 10월 문제가 됐던 <신수의 주인>의 일러스트들.

1.

2013년 10월 롤앤무브스튜디오에서는 새로운 모바일게임 <신수의 주인>을 공개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3등신의 귀여운 캐릭터는 스퀘어에닉스의 <브레이블리 디폴트>를 연상시켰고, 이내 비판이 쏟아졌다.

 

흥행을 노린 노이즈마케팅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결국 개발을 총괄하는 신원철 PD는 그래픽과 일러스트를 전부 뜯어고치겠다는 약속과 거듭된 사과를 남긴 채 첫 공개를 마무리 지었다.



2.

몇 주가 지나고 <신수의 주인>은 새로운 일러스트와 그래픽을 공개했다. 기존의 느낌을 살리되 등신비와 일부 요소들을 변경한 그래픽이었다. 인력이 10명 남짓한 작은 개발사로서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모두 끝마친 100마리 신수를 최대한 지켜보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었다.

 

결론은 더 나빴다. 기존 그래픽과 차이는 있었지만 완전히 새롭다고 보기엔 부족했다. 유저들은 표절을 인정한 이상 확실히 그래픽을 고칠 것을 요구했고, 신원철 PD는 이에 수긍했다두 번째 사과다.



2.5

그 사이 스케인글로브는 슈퍼셀의 글로벌 히트작 <클래시 오브 클랜>과 유사한 콘텐츠로 구성된 <수호지>로 구글 플레이 스토어 매출순위 5위를 기록했고, <애니팡2>는 모바일게임계 최고의 화제를 남기며 매출순위 1위에 올랐다. 일러스트에서는 일일이 기사로 다루기 어려울 만큼 더 많은 표절 의혹들이 터졌다.

 


<드래곤 기사단>의 일러스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일러스트. 공론화 되지 않은 표절 논란을 포함하면 훨씬 많아진다.

 

 

3.

신원철 PD와 다시 만난 건 지난 2월 초였다. 3개월 만에 다시 만난 신 PD <신수의 주인>의 새로운 버전을 보여줬다. 캐릭터는 2등신으로 바뀌었고, 자연히 일러스트와 그래픽도 아예 새로워졌다.

 

배경을 제외한 모든 디자인을 새로 그렸고, 애니메이션을 새롭게 작업했고, 덩달아 게임의 전투방식도 바꿨다. 새로운 그래픽으로는 이전과 같은 느낌을 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과거 작업했던 100마리의 신수 데이터는 모두 신 PD PC 깊숙한 곳에 매장됐다.

 

개발 일정은 반년 가까이 연기됐고, 콘텐츠를 다시 만들면서 인원은 20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막 독립한 신생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전부 제 잘못이죠. 월급 주느라 죽겠어요.신 PD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

 

 

4.

당장 신작의 출시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작은 개발사에 대해 디자인 표절 논란이 일었으니 그래픽을 뿌리부터 뜯어고치라고 조언해주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지금까지 만든 모든 것을 버리라는 소리는 더 힘들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수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픽 수정을 말린 사람도 많았고, 이 정도면 됐다는 사람도 많았다. 내부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신들과 손을 잡자는 퍼블리셔도 있었다.

 

신 PD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고 생각하니까. 개발은 새로운 걸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고, 베낀 것보다는 새로 만드는 게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화를 부른 건 한 번이면 충분했다.

 

일단은 게임을 내고 배를 채우고 나면 논란에서 벗어난 게임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 역시 반대했다. 유혹에 한 번은 없다. 창작을 고집하던 개발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모방의 길을 택한 예는 여러 번 봤지만, 그 반대의 예는 아직까지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 넘어가면 돌이킬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신 PD가 전면수정이라는 무리한 수를 두면서까지 표절’의 굴레를 벗으려는 이유다.

 

만약 또 어딘가를 베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건가?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여력이 되는 한 끝까지 고칠 겁니다. 몇 번을 사과하고 출시를 미루더라도, 더 이상 내 자식이 베꼈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죠.다행히 개발팀 전원의 그의 결정을 군말 없이 따라줬다.

 

<신수의 주인>의 현재 신수 이미지.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


5.

표절 논란은 사업가와 개발자의 생각에서 나오는 차이다. 사업가는 질 좋은 물건을 가장 빠르게 만들고, 가장 비싼 가격에, 가장 많이 파는 게 제 역할이다. ‘위법이 아니라면 양심이나 도덕이 끼어들 틈은 많지 않다. 반면 개발자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의 창조물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애착을 갖는다.

 

지금의 모바일게임 시장은 순수하게 개발자로만 살기에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유혹은 너무 많다. 아슬아슬한 표절의 영역에서 큰 수익을 내는 개발사도 많다. 특히 마땅한 자금줄이 없는 신생 개발사라면 유혹은 더 커진다. 그래서 개발자보다는 사업가가 더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는 사업가 대신 개발자로 남기를 원한다.



6.

이야기는 확실히 하자. 표절 논란에 휩싸인 개발자가 이를 수긍하고 논란이 된 부분을 끝까지 고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신 PD의 결정이 대단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래픽에서나마 표절을 시도하려 했던 그의 태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세상에는 여전히 표절 논란 한 번 없이 창의적인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이 더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그의 반성은 충분히 눈에 띈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이야기가 한창일 때 그는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당사자인 저는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게임을 고치려는데 주변에서는 오히려 괜찮다, 그냥 가자는 말을 던져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제가 너무 옛날 마인드의 개발자여서 그럴까요?”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7.

지금 국내 게임업계는 각종 규제에 대항하고 있다. 그중에는 게임은 단순한 상업이 아닌 문화 혹은 예술’이라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내 게임시장에서 급성장하는 모바일게임 시장상업보다는 예술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해에 수 백 개의 모바일게임이 나오는 상황에서 표절 논란이 수그러들기를 바라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비슷한 콘텐츠는 계속 나올 거고, 그 때마다 표절 논란이 생기는 걸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어딘가에 최소한의 반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은 신생 개발사의 반성 하나가 이렇게 이질적으로 보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당연한 반성과 한 걸음 전진을 위한 노력이 정말 당연한 일로 여겨질 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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