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우유를 먹자'고 했습니다. 11월부터 초등학생에게 우유를 나눠주는 '우유 장정'이 시작됐습니다. 그러자 이듬해 세계 우유 가격이 2배 가까이 치솟았고, 모차렐라 치즈 값도 67% 뛰어 올랐습니다. 독일에서 치즈사재기가 사회 이슈가 됐고, 우리나라 피자헛 CF에 피자 대신 스파게티가 등장했습니다. (관련기사: 중국 총리와 한국 피자집 알바)
인터넷처럼 세상 일도 연결돼 있습니다. 2018년 8월 30일 중국 정부는 '게임총량을 제한하겠다'는 역대급 규제책을 발표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 과연 어떤 이어질까요? 중국에서 끝날 일은 아닙니다. 우유 대책처럼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어줍잖게 들여다보고, 물어보고,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우리에게는 2017년 3월 한한령 이후 한국 게임 판호가 안 나오는 게 큰 이슈지만, 그들에게는 별 이슈가 아닙니다. 올해 3월 이후 아예 자국 게임에 대한 판호(이하 '내자 판호')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4월 게임 담당 부서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에서 공산당 중앙선전부로 바뀐 와중에 '일시적으로' 생긴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판호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업계의 불안감이 역대급으로 커졌죠. 7월 무렵 차이나조이 시작 전 내자 판호가 풀릴 것이라는 긍정적인 소문이 좀 돌았습니다. 헛소문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이슈도 터졌습니다. 8월 중순 텐센트의 PC게임 플랫폼 '위게임'을 통해 잘 서비스되던 <몬스터헌터: 월드>에 전격 판매중단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이미 판호까지 받아 판매 중이던 게임, 게다가 텐센트의 게임이었던 터라 업계의 충격이 컸습니다.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헛소문이 아니었습니다.
8월 30일(목) 오후 8시(현지시간) 중국 정부는 '어린이 청소년 근시 예방 종합 방안'(이하 '근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시력 보호를 위한 대책에는 신문출판서의 '게임 총량'을 통제하겠다는 메가톤급 방안도 포함돼 있었죠. 신규 판호 발급 제한과 셧다운제 외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증시와 업계는 잔뜩 움츠러들었습니다.
발표 다음날(31일), 중국 상위 10개 게임업체의 회사가치(시가총액)가 약 1,722억 위안(약 28조 원) 떨어졌습니다.
주요 업체의 주가 하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밖에도 중화권 소셜카지노 업체로 제일 큰 boyaa는 10.91% 떨어졌고, 최근 VR에 주력하고 있는 넷드래곤도 8.38% 빠졌습니다. 주로 해외 시장에서 수익을 거두고 있는 IGG마저 6.5% 떨어졌죠.
증시처럼 업계에서도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신문출판서의 대책 중 '게임총량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은 몇 글자 안 됩니다. 매우 단순합니다. 중국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과 관련해 '간단할수록 더 무섭다'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향후 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규제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반응이 다수입니다.
반대로 정부 발표를 긍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도 존재합니다. 3월 이후 아무 정보도 없이 판호 발급이 전무한 상태에서 최소한 '판호는 발급하되 그 수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확실해졌으니, 불투명성이 개선됐다는 거죠. 게다가 게임 자체에 대한 전면적 규제를 두려워했는데 '시력 보호 대책'의 일부로 발표됐으니, 그나마 나은 것 아니냐는 입장입니다. 소수의견입니다.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 확실한 것은 신규 판호의 제한입니다. 매주 수백 개의 게임이 출시되던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의 구조가 완전히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신규 게임이 뚝 줄어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당장 게임 장터 역할을 하던 앱 다운로드 플랫폼에 영향이 갑니다. '근시 방안'은 3자 앱마켓을 이끌던 잉용바오(텐센트), 바이두마켓, 360마켓에게는 날벼락이었습니다. 3자 마켓을 위협하며 급성장 중인 샤오미, 화웨이, 오포 등 휴대폰 자체 앱마켓에도 폭탄이 떨어진 셈입니다.
그동안 이 마켓들은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 수익을 거둬왔거든요. 수많은 출시작 중 특정 게임을 잘 노출시켜주는 대가였죠. 출시되는 게임의 수가 확 줄어들면 이런 수익모델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예 이런 플랫폼을 통해 게임을 출시할 이유도 약해집니다. 여학생이 많은 예술고등학교의 남학생은 굳이 데이트앱을 깔 필요가 없을 겁니다. 출시작 수가 적으면 출시하는 게임은 쉽게 유저의 관심을 끌 확률이 높습니다. 모바일게임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신규 게임의 UA(모객, User Acquisition) 역할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왔던 다양한 채널 역시 어려움에 처할 듯합니다.
그런 까닭에 넷이즈보다 텐센트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게 중국 내 대체적 시각입니다. 다양한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텐센트와 달리 넷이즈는 개발에 좀더 집중하는 회사니까요.
그렇다면 텐센트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텐센트와 넷이즈 등 메이저 게임회사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 같습니다.
2017년 신문출판광전총국은 약 9,200개의 자국 게임에 판호를 줬습니다. 올해 1분기 텐센트와 넷이즈는 각각 10개 가량의 판호를 받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지난해 두 업체를 합쳐 약 90개의 판호를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지난해 두 회사의 신규 판호 확보율은 1% 이하입니다.
반면 지난해 텐센트와 넷이즈의 중국 게임시장 점유율은 매출액 기준으로 70% 이상이었습니다.
개별 업체, 특히 메이저 업체로 한정하면 신규 판호의 수와 시장 점유율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신규 판호 수를 제한하더라도 메이저 업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전망을 반영하듯, 30일 폭락했던 넷이즈의 나스닥 주가는 31일 반등했습니다.
개발 역량 있는 메이저 회사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특히 베이징에 대관(GR, Government Relations) 관련 사무실까지 있다면 더 그럴 겁니다.
역대급 대형 규제라면서 이런 예측을 하는 건 이상해 보입니다.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중국 정부의 판호 관련 정책에는 산업적 목적과 정치적 맥락이 함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기도 했고요. 마크 트웨인이 그랬죠. 역사는 정확하게 반복되지 않지만 라임이 있다고. 아래 이미지를 클릭해보세요.
<미르의 전설2>의 성공 이후, 2000년 초중반 중국 정부는 판호를 통해 한국 온라인게임을 견제했습니다. 메이저 업체에게 할당된 '외산게임 판호 쿼터'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죠. 정황은 많았지만, 확증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후 중국 게임 시장은 메이저 중심으로 정리됐습니다.
이번 규제는 그때보다 정치적 맥락이 훨씬 커보입니다. 메이저 업체는 여전히 유리합니다. 신규 판호 수가 10%로 줄어든다고, 메이저 업체가 받는 판호 수도 10%로 줄지는 않을 겁니다.
덧붙여, 메이저 업체는 신규 판호가 줄어든 만큼 대작 게임, 자체 개발에 포커스를 맞출 확률이 높습니다.
게임 업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이후 중국 업계에서도 이 이슈가 크게 부각됐거든요. 근시 방안은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스타트업과 인디에게는 재앙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게임을 만드려면 사람과 돈이 필요합니다. 신규 판호 발급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판호를 받을 확률이 무척 떨어지고, 판호를 받는 절차가 더 까다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타트업은 판호를 발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를 받거나 인재를 구하기 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디는 판호를 받기까지 재정적 압박을 더욱 심해질 겁니다.
미성년자의 나이에 맞는 연령 표시, 시간에 맞춘 셧다운 시스템 등 부가적인 개발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판호의 발급을 위해 따로 쓰는 비용을 역시 늘어날 확률이 큽니다. 큰 회사에게는 별 부담이 아니지만, 인디 등 소규모 회사에게 이 모두가 큰 부담입니다.
메이저 업체는 외부 개발사 게임을 소싱하는 활동을 극도로 줄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중국은 물론 국내 모바일게임 업계에도 확연합니다. 신규 판호의 발급 확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익성 높은 자체 게임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역시 소규모 개발사에게는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물론 경쟁력 출중한 개발사라면 여전히 기회가 있겠지만요.
지난해 텐센트와 넷이즈가 시장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 이후 중국 게임업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해외 진출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수년 동안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중국의 논의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한국은 '해외에 나가야 한다'지만 중국은 '해외에서도 통한다. 나가자'에 가깝습니다.
한국 게임 시장만 봐도 확연합니다. 2014년 이후 중국 모바일게임의 한국 시장 진출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올해 차이나조이가 열리기 전, 구글 매출 10위 안에 중국 게임이 5개가 올라간 날도 있었습니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닙니다. 매출 기준 모바일게임 순위 50위 안에 중국산 게임이 5개 내외 포함돼 있는 국가는 전세계에 수두룩합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게임 시장인 영국 구글 플레이에는 9월 3일 현재 8개의 중국 게임이 매출액 기준 50위 안에 있습니다.
판호로 국내 시장이 막힐 경우, 결국 해외에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처음 가는 낯선 길이 아니고, 중국 업체에게는 이미 수년 간 닦아온 길입니다.
더불어, 광고수익형 게임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광고수익형 게임은 판호를 받지 않고 서비스가 가능하니까요. 또한 스탠드얼론 게임은 별 영향이 없어 보입니다. 온라인상으로 서비스되지 않고 혼자 플레이하는 게임은 이번 '근시 방안'과 상관이 없으니까요.
이런 중국 업계의 변화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중국의 게임 개발 역량이 약해질 가능성은 크지만, 그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일 겁니다.
당장 올해 379억 달러로 예상되는 중국 게임시장 진출은 향후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한국 게임을 소싱할 수 있는 회사 자체의 수가 극히 줄어들고, 소싱할 수 있더라도 소싱하는 게임의 수 자체도 확 줄어들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배틀그라운드>, <리니지2: 레볼루션>, <검은사막>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대작의 경우는 그래도 기회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국산 게임이 많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자체가 당장 큰 타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017년 3월 한한령 이후 공식적으로 신규 판호를 받은 한국 게임은 없었으니까요. 많은 회사가 품었던 희망이 꺾이게 된 점은 안타깝지만요.
국내 게임 시장 내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 게임회사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쟁력이 검증된 한국 시장에 더욱 눈독을 들일 테니까요.
거기에 중국 시장에 들어가기 힘들어진 다른 해외 게임들 역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시장인 한국에 공을 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해외 게임시장에서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지겠죠.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막힌 상태라면 당연히 다른 곳에서 경쟁의 강도가 세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신규 판호 수가 줄어든 중국 메이저들은 대작 개발에 더 힘을 쏟을 겁니다. 모바일게임 영역에서는 중국 게임사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국보다 낫습니다. 한국 업체의 해외 시장 진출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측을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세금혜택 등 수출 업체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중국 게임회사의 해외 진출에 더욱 힘이 붙을 수 밖에 없습니다.
8월 30일 중국 교육부 등 8개 부서는 오후 8시 '근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어 숫자 8(八)은 ‘ba’로 발음되는데, 돈을 번다는 뜻을 가진 ‘发财’(발재, 중국 발음 파차이)의 ‘发(fa)’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중국 정부가 사상통제를 위해 판호 관리를 하더라도 외화 획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