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틀그라운드>는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서비스될 것인가?
2. 넥슨은 매각될 것인가?
올해 초 게임인들의 술자리. 가장 큰 이슈는 이 둘이었습니다. 각종 '썰'이 쏟아지던 중, 한국과 중국 시장 전문가 두 분과 내기를 했죠. 저는 자신있게 둘 다 '아니오'를 택했습니다.
정답은 아무도 모르는 문제였습니다. 다만 맥락을 살펴보면 가능성 높은 쪽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5월과 6월 각각의 정답이 나왔습니다.
1. 텐센트는 5월 초 <배그 모바일> 서비스를 접고, <화평정영>을 오픈했습니다.
2. 김정주 NXC 대표는 6월 하순 넥슨 매각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제 추측은 둘 다 맞았습니다. 막걸리를 얻어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앗싸!
그런데,
저는 5월 초 <화평정영> 서비스 소식을 듣고, 두 번째 내기의 승리도 예감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죠.
'<배틀그라운드> 때문에 넥슨 매각이 무산되겠군.'
<배틀그라운드>와 ‘넥슨 매각 무산’을 연결짓는 것은 허무맹랑한 공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둘 사이는 너~무 많이 떨어져 보이니까요.
물증이나 관계자의 언질도 없습니다. 개인적 추정일 뿐입니다. 올해 초 내기처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맥락 속 둘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배틀그라운드>와 넥슨의 매각 이슈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2017년 6월로 갑니다.
2017년 6월, 넷이즈 고위 임원들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스팀에서 대성공한 <배틀그라운드>를 잡기 위해서였죠. 넷이즈 임원들은 블루홀(현 크래프톤)을 방문해 김창한 PD 등을 만났습니다. <배틀그라운드> 중국 판권을 위해 투자를 포함한 계약 조건을 적극적으로 제시했습니다.
한국 게임 업계에 텐센트의 영향력은 컸지만, 이 시기는 좀 달랐습니다.
텐센트는 2014년 한국 모바일게임에 애정공세를 펼쳤습니다. 넷마블과 4:33 등에 투자했고, 여러 게임의 중국 판권을 따냈죠. 하지만, 가져가 성공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듬해부터 분위기가 바뀌었죠. 텐센트가 직접 개발한 <왕자영요>가 그해 대박이 났습니다. 2016년 6월에는 슈퍼셀을 인수했죠. 한국 게임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식었습니다. 2006년 맨땅에서 한국 사업을 일구었던 텐센트 코리아 켈리스 박 대표도 중국으로 돌아가 본사 임원 역할에 더 집중하던 시기였죠.
그 틈을 넷이즈가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쌓아온 텐센트의 아성은 굳건했습니다. 2017년 7월 결국 텐센트가 이겼습니다. 텐센트는 현재 크래프톤(구 블루홀)의 2대 주주이며 6,000억 원 이상 투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텐센트는 넷이즈와 경쟁을 이기고 <배틀그라운드> 판권을 땄지만, 중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3가지 악재가 잇따라 텐센트와 <배틀그라운드>를 가로막았습니다.
첫 번째 악재는 문서로 존재하지 않지만 모두가 아는 ‘한한령’(限韓令)이었습니다. 2017년 3월 이후 중국 정부는 한국 게임에 대해 판호(서비스 라이선스)를 발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악재는 ‘배틀로얄’ 장르 자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저격이었습니다. 2017년 10월 중국 시청각디지털출판협회 게임위원회(GPC)는 홈페이지를 통해 "<배틀그라운드>의 폭력성과 혈흔 묘사가 중화민족의 전통문화습관과 도덕 규범을 해친다"며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행위가 핵심이 되는 장르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 개발을 비권장한다"고 공표했죠. <배틀그라운드>는 대표적인 타깃이 됐습니다.
세 번째 악재는 시진핑 정부의 미디어 관리 강화 기조였습니다. 2018년 3월 중국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게임 관련 관리 부서가 바뀌었습니다. 이와 함께 그해 연말까지 게임의 신규 판호 심사 자체가 중단됐습니다. 자국 게임마저 판호를 못 받는 상황에, 텐센트가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특별 대우를 받을 수는 없었죠. <배틀그라운드>의 판호 발급은 요원했습니다. 개발 주체를 텐센트로 바꾼 <배그 모바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옹지마일까요? 3단 콤보 공격에 텐센트와 <배틀그라운드>가 답을 못 찾고 있는 사이 <배틀그라운드> 판권을 놓쳤던 넷이즈는 오히려 더 잘 나갔습니다. <배틀그라운드>를 대놓고 따라 만든 것처럼 보인 모바일게임 <황야행동>은 2017년 일찌감치 판호를 받았습니다. 그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해 2018년 중국에서만 8,100만 달러(약 920억 원) 이상 매출을 거뒀죠.
텐센트와 넷이즈는 중국 모바일시장에서 최대 경쟁 관계입니다. 텐센트는 애가 탔을 겁니다.
2017년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텐센트 설립자 마화텅이 직접 판호 문제를 풀기 위해 베이징에 여러 차례 올라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죠. 기대가 높아졌지만 결국 판호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타이밍이 나빴습니다. 시진핑 정부는 2018년부터 뉴미디어 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처럼 한 방향으로 보내는 기성 매체와 달리 유저 커뮤니티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신규 매체는 요주의 대상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억 명 이상 유저수가 급속히 늘던 동영상앱 ‘네이한된즈’(內涵段子)를 폐쇄시켰습니다. ‘사회 분위기를 해치는 저속한 콘텐츠를 양산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성격의 앱 300여 개도 문을 닫았습니다.
2018년 4월 게임을 담당하는 부서가 중국공산당 직속의 중앙선전부로 바뀐 점도 뉴미디어에 통제를 강화하는 전체 맥락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2018년 2월 출시된 <배그 모바일>이 100개 이상 국가에서 애플, 안드로이드 양대 마켓 무료 1위에 올랐지만, 중국에서 판호를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19년 3월 <포트나이트> 짝퉁이라는 비판을 받던 <포트크래프트>(넷이즈)가 중국 정부의 판호를 받았습니다. 배틀로얄 장르라고 모든 게임이 못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황야행동> 캐릭터 생성화면에 공산당 구호가 나오고, <배틀그라운드>도 ‘군사훈련’으로 게임 내용을 포장했었죠.
그럼에도, <배틀그라운드>는 판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텐센트는 열불났겠지만, 중국 정부 입장도 다소 난감했을 겁니다. 넷이즈의 배틀로얄은 두 개 판호를 받았는데 텐센트 게임이 막혀 있는 상황은 형평성에 어긋나니까요.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배틀그라운드>에게 판호를 발급하기도 힘들었을 거고요.
<화평정영>은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나온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그래픽이나 UI, 100명 동시전투, 파밍 구조, 사용 무기 등에서 <화평정영>은 <배그 모바일>과 똑같습니다. <배그 모바일> 서비스 종료 직전 모든 유저 데이터가 <화평정영>으로 옮겨졌습니다. 즉 유저들은 <배그 모바일>의 닉네임부터 레벨, 아이템까지 그대로 이어받아 <화평정영>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죠. 스토어에 깔려있던 <배그 모바일>을 업데이트하면 <화평정영>이 됐습니다.
다른 점도 일부 있습니다. <화평정영>의 캐릭터들은 '평화를 위한 정예'들로 대테러 훈련 작전을 진행하는 인민해방군입니다. 총에 맞아도 피를 흘리지 않고, 죽어도 손을 흔들며 사라지며, 최후의 1인이 아니라 5인이 같은 보상을 받습니다.
펍지는 “<배그 모바일>과 <화평정영>은 공식적으로 무관한 게임”이며 "양사가 원만한 합의 하에 <배그 모바일>의 서비스를 종료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나 텐센트 입장에서 <배그 모바일>과 <화평정영>은 절대 같은 게임일 수 없습니다. 어차피 중국 서비스를 할 수 없는 펍지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죠. 텐센트와 펍지의 ‘원만한 합의’ 속에는 공개할 수 없는 보상책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넥슨 매각 이슈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업체는 텐센트였습니다. 넥슨은 매년 텐센트로부터 <던전앤파이터> 로열티로 약 1조 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넥슨 그룹 전체 이익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게다가 텐센트는 카카오, 넷마블, 4:33, 블루홀 등 국내 업체는 물론 라이엇게임즈, 에픽게임즈, 액티비전블리자드, 슈퍼셀 등에 투자한 전력도 있고요.
넷마블과 카카오게임즈가 넥슨 인수 경쟁에 달려들었지만, 두 회사 모두의 대주주인 텐센트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가 더 큰 관심사항이었죠. 넥슨 인수의 키(key)는 텐센트가 쥐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시련을 겪은 <텐센트>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지만, 절대로 신규 게임이어야 하는 <화평정영>의 론칭이 더 절실하고 중요한 이슈였으니까요.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일절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지난해 8월 텐센트의 PC게임 플랫폼 위게임에서 <몬스터 헌터: 월드>는 발매후 서비스 취소 조치를 당했습니다. 다음 달 텐센트는 4년째 승승장구하던 텍사스홀덤 <천천덕주>의 서비스를 스스로 종료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신중해야 할 올 상반기, 아직 한한령이 걷히지 않은 상황에서 15조 원이 넘는 넥슨 인수에 나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위험요소를 줄여도 모자를 판에, 엄청난 위험요소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배틀그라운드>가 중국에서 인기가 있던 지난해 국내 지상파 방송국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펍지와 텐센트에 게임을 활용한 대형 예능 프로그램 등을 제안했습니다.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혹시나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지도 모릅니다.’
중국에서 <화평정영> 서비스를 위해 <배그 모바일>을 종료했던 5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서 펍지는 넷이즈에 제기한 소송도 종결했습니다. 펍지와 텐센트가 구체적인 조건을 안 밝힌 채 <배그 모바일> 종료에 ‘원만한 합의’를 한 것처럼, 펍지는 구체적인 조건을 밝히지 않은 채 ‘<황야행동>의 <배틀그라운드> 표절 혐의’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저는 이조차도 큰 틀에서 ‘리스크 헷지’(위험 제거)로 보였습니다.
<화평정영> 서비스가 시작되는 시점, 텐센트의 넥슨 인수는 리스크가 너무 컸습니다. 결국 넥슨의 매각은 무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