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전문지를 제외한 기성 언론 대부분이 FPS를 ‘총싸움 게임’으로 풀어 쓴다. 이제는 거의 20년쯤 되어가는 전통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어휘 선택은 조금 묘하다. 매체들은 총싸움이라는 말을 이제 다른 맥락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실제 ‘총으로 하는 싸움’에는 총격, 총격전 같은 말을 주로 사용한다. 총싸움은 주로 게임 기사에 등장한다. 포털 사이트 뉴스 탭에서 ‘총싸움’을 검색해보면 8할 정도는 게임 관련 기사임을 알 수 있다.
언론이 용어 변경이나 신어 사용을 무조건 꺼린다는 생각은 명백한 오해다. 필요하고 적합하다면 매체들은 쓰던 말을 바꾸기도, 새 말을 가져다 쓰기도 한다.
당장 ‘총싸움’이란 말이 다른 유형 기사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기사에서 총싸움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총격 장면, 총기 액션, 총격씬 등으로 표현한다. 영화 속 총격 묘사가 정교해지고 영화산업이 점점 더 비대해지면서 사용되는 용어도 함께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주류 언론이 FPS를 아직 ‘총싸움 게임’으로 칭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바꿀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FPS를 ‘총격전 게임’이나 ‘총격 게임’으로 바꾸면, 게임을 잘 모르는 독자가 어색함이나 심지어는 위협감을 느낄 가능성이 생길 뿐이다. 그리고 독자를 ‘쓸데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건 대부분 매체가 원치 않는 일이다.
하지만 ‘총싸움 게임’은 게이머로서 느끼기에는 영 어색하고, 이상한 인상을 준다. '총격전'보다 좀 더 순우리말에 가까운 표현일 뿐인 '총싸움'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당연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이런 느낌이 드는 원인은 아마도 ‘총싸움’이라는 단어의 일상적 쓰임에 있다.
어린이들이 장난감 총으로 서로 쏘거나 쏘는 시늉을 하는 놀이를 보통 ‘총싸움 놀이’라고 한다. 현재 언론들이 ‘총싸움’이라는 단어를 게임적 맥락 밖에서 사용하면 대부분 여기 해당한다. 서로 방망이를 겨누며 노는 야구선수들 사진 기사에 ‘추억의 총싸움’ 같은 캡션이 붙거나, 엄마와 아이가 물총으로 '총싸움'을 벌였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총싸움 놀이’는 아이들 놀이치고도 단순하다. 눈앞의 상대를 쏘아 맞히는 행위(혹은 그런 상상)만으로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며 만족하고, 실제로 ‘총싸움 놀이’는 대체로 그렇게 진행이 된다.
그런데 누군가가 ‘총싸움 게임’이라는 말에서 이러한 놀이를 연상하고, 현대의 FPS를 그만큼 단순한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로 오인한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84년 출시한 <덕 헌트> 혹은 그 이하의 복잡도를 지닌 미디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실에 도무지 부합하지 않는다. FPS는 특히나 기술 집약적 성격이 강한 게임 장르다. 독자의 불필요한 오해를 막는 것이 언론의 보편적 책임 중 하나라면, ‘총싸움 게임’이라는 용어 사용의 적합성 또한 한 번쯤은 돌아볼 만한 듯하다.
그런데, 왜 비(非)게이머 독자가 게임을 공들여 '사실에 부합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일까? 이것은 별개의 질문거리다.
업계 바깥에서 게임은 중요 관심사가 아닐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게임이 아이들 놀이만큼 단순하든, 누리호의 발사원리만큼 복잡하든, 외부 시선에서 보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일반 독자가 FPS, 더 나아가 게임 산업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는 뭘까? 게임 업계가 일반 대중의 삶에 이바지하는 바가 있기는 할까?
게임 업계의 역할은 ‘새 재미’를 찾는 것이다. 재미를 발굴·생산·제공하는 것이 업계의 주된 일이다. 이런 산업을 넓게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부른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치는 이미 널리 인정받는다. 게임 업계만 다른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게임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재미 연구’의 부산물을 누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임 업계가 찾아낸 재미 공식은 방송, 영화, 교육 등 곳곳에 적용되고는 한다. 런웨이 위의 때로 이해하기 힘든 ‘실험’들이 톤다운 되어 일반 옷 가게에 진열되고, 우리가 그것을 사 입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런데 문득 의심이 든다. 주류 게임 업계가 정말 위에서 말한 `재미 연구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걸까? 공교롭게도 올해 출시한 FPS 게임들이 유독 이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A, 액티비전 블리자드, 유비소프트 등 세계적 대형 게임사들이 2021년 줄줄이 내놓은 FPS 타이틀은 모두 게이머들에 실망을 안겼다. 자원 부족이나 인력 부족 등 불가항력적 개발 이슈에 발목 잡혔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기업들이다.
EA의 <배틀필드 2042>는 ‘확대된 전장’이라는 셀링 포인트에 집중하느라 시리즈 고유의 재미를 계승/혁신하는데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비소프트의 <파 크라이 6>,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콜 오브 듀티: 뱅가드>는 벌써 수년째 창작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불만이 크다. 익숙한 방식에 기대 개발 효율만 추구하다가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넘치는 개발 역량을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같은 ‘대기업’ MS와 캡콤의 <헤일로 인피니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에 대한 평가는 앞선 세 게임과 사뭇 다르다.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재미있다’고 유저들은 평했다.
NFT 등 블록체인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겠다는 선언이 최근 들어 대기업뿐 아니라 온갖 규모의 게임사들 사이에서 포착된다. 관계자들은 여기서 파생하는 무수한 가치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이 어떤 ‘재미’를 가져다주는지 물으면 대부분 침묵하거나 말을 돌린다. ('돈 버는 재미'는 논외로 하자)
게임은 재미의 지평을 탐구하고 확장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일환으로서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다만 업계가 이 역할을 스스로 저버리면 이런 가치는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대중의 인식 속 FPS를 ‘총싸움 놀이’와 구분 짓는 일, 나아가 게임이 게임으로서 인정 받도록 하는 일은, 다른 누가 아닌 업계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