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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우주와 심해를 지나 블록체인으로 가는 1세대 개발자들

윌 라이트,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이 블록체인 게임에 뛰어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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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2-05-02 10:18:04
글로벌 게임 업계에서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 있다. 바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빛냈던 명망 있는 개발자들이 NFT, 블록체인 판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기업들이 기대와 반발 속에서 NFT 게임, P2E(또는 P&E) 게임을 만들고 있다. 

기업의 진출 사례는 잘 조명되는데, 이쪽은 잘 주목받지 않고 있다. 최근 <심즈>의 윌 라이트, <블랙 앤 화이트>의 피터 몰리뉴, 그리고 제프 베조스보다 몇 년 먼저 우주에 간 리차드 게리엇이 블록체인 게임에 진출했다. 이들 중 두 사람이나 '세계 3대 개발자'다. '전국 3대 짬뽕'만큼이나 아리송한 그 개념은 제법 유명한데, 기자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왜 빼는데요'라고 따질 것이다.

위에 언급한 3명의 개발자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개발자였다. 물론 지금도 업계의 존경을 받는 위인들이지만, 과거의 영광과 업적이 오늘날 행보보다 빛난다. 그리고 그 행보는 비교적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기에 엮어볼 필요가 있다.


 

# <프록시>, <레거시>, 그리고...

윌 라이트의 <스포어>(2008)를 내놓았지만, 심 시리즈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둔 뒤, 2009년 EA를 퇴사했다. 그는 여러 창작활동을 하다가 2018년 '추억 시뮬레이션 게임' <프록시>를 발표했다. 당초 발표에 의하면 이 게임은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되며 애플 아케이드로 독점 출시될 계획이었다.

잠잠하던 윌 라이트는 방향을 한 차례 틀었다. 작년 윌 라이트는 유튜브 인터뷰를 통해서 <프록시> 요소를 NFT로 만들어 소유하거나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록시>에서는 특정한 방법으로 생성한 '기억'을 3D 도면, 오디오, 사진으로 만들어 공유할 수 있는데, 이것을 NFT로 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19년 공개된 <프록시>의 개념도

피터 몰리뉴도 2008년 <페이블 2>를 300만 장 팔면서 흥행시킨 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키넥트(당시 이름은 프로젝트 Natal) 개발에 참가했다. 이후 그는 소규모 개발사 22cans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큐리어시티>, <가더스>, <가더스 워스>, <더 트레일> 등을 내놓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019년, 피터 몰리뉴는 첫 작품 <기업가>에서 영향을 받은 <레거시>를 발표했다. 다양한 물건을 만들고 이를 생산∙판매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레드불 게이밍이 개발사 22cans의 지원군으로 나서며 화제가 됐다. 그리고 피터 몰리뉴는 2021년 연말, 이 게임에 NFT를 발행하고 코인을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피터 몰리뉴의 <레거시> NFT는 이미 사전 판매를 시작했다.

<울티마> 시리즈를 개발해 RPG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리차드 게리엇. 그는 자신의 회사가 EA에 인수되자,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뒤 한국의 엔씨소프트에 영입됐다. 그는 그곳에서 <타뷸라 라사>를 만들다가 회사를 돌연 떠나 우주 여행을 다녀왔다. 2013년, 그는 150억 원의 유저 펀딩을 받아 <울티마>의 정신적 계승작 <쉬라우드 오브 아바타>를 5년 동안 개발해 출시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우주 여행에 이어 심해 탐사까지 다녀온 리차드 게리엇은 지난 4월, 외신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MMORPG를 개발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공식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NFT를 통한 토지 거래가 중요한 기능으로 작동한다. 그는 "블록체인은 이러한 가상 자산을 팔고 거래하는 주체들 간에 공정하고 일관된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리처드 개리엇이 근래 공개한 콘셉트 아트

# 그 옛날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직 이들의 프로젝트는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는 이르다. 하지만 기자는 1세대 개발자들의 블록체인 게임 진출을 보면, 자꾸만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서 왕년의 히트곡을 부르는 가수 모습이 연상된다. (한국 영화 <라디오스타>도 그런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나?) 

물론 이들이 만드는 것은 게임이고, 이들의 이름값이 세계적으로 대단하기에 펀딩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지난날의 영광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더구나 이들은 지난 몇년 간 인터뷰, 콘셉트 아트,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공명하지 못한 신작 몇 편 이외에 보여준 결과물이 없다.

이들 개발자들이 선보이는 시뮬레이션과 MMORPG가 전처럼 새로운 장르가 아니거니와, 블록체인 게임 역시 (도전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특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블록체인 영역이라면 오히려 이들은 2세대 개발자에 가깝다. 역시 '나와야' 알겠지만, 소유물을 거래하고자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현거래'에서 본 적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크레딧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는데, 최근 성적도 좋지 않다.

이제 우리에겐 '플레이어의 소유권이 보장된다'는 아이디어가 남는다. 만약에 이들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 게임이 망하면, 유저들 아이템을 전부 구매해줄 것인가?"라고 묻고 싶다. 

뿐만 아니라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해킹과 피싱 사례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아무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냐마는, 현재 한국에서는 P2E 게임을 양성적으로 제공할 방법도 없다. 법을 고치자 주장이 나오는데, 수많은 게이머의 염원이자 기업들의 '영업 기밀'인 확률형 아이템 공개 의무화에도 몇 년이 걸리고 있다. (어쩌면 법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각광받는 신기술을 두고 무조건적인 경계와 우려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재밌는' P2E 게임이 한국에 잘 나온다면, 기자야말로 제일 먼저 나서서 해보고 싶다. 기자는 듀얼 모니터 앞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켜놔도 혼나지 않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은가? 

존경하는 개발자들 신작이 잘 되어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아쉬움에 수첩을 폈다.

왼쪽부터 피터 몰리뉴, 윌 라이트, 리차드 게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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