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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음악계 뒤흔든 표절 의혹, 게임계 분위기는 왜 다를까?

‘P의 거짓’으로 다시 확인된 게임 업계의 개방성

방승언(톤톤) 2022-08-30 11:01:16

2022년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네오위즈의 액션 어드벤처 <P의 거짓>이 한국 게임 최초로 3관왕을 달성했습니다. ‘가장 기대되는 PS 게임’, ‘최고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최고의 RPG’ 세 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콘솔 불모지이자 온라인, 모바일 게임이 월등히 대세인 국내 게임업계이기에 이 기록은 더 각별합니다.

 

물론 이런 성과와는 별개로 레퍼런스가 된 게임들과의 유사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태도로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는 게이머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재미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단순 명쾌한(?) 반응도 자주 눈에 보입니다.

 

게이머들의 비교적 느긋한 반응은 최근 국내 대중음악계를 뜨겁게 달궜던 어떤 이슈를 떠오르게 합니다. ‘창작물 간의 유사성’이라는 공통의 주제에 대해 두 시장은 꽤 다르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음악 소비자들의 조금은 과열된 양상과 비교했을 때, 게이머들의 개방적 태도는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이것은 어떤 차이에 기인할까요? 또한 각각의 분위기는 소비자와 창작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 장르적 유사성, 혹은 그 이상?

 

<P의 거짓>은 이번 행사 현장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어블 빌드가 공개됐습니다. 게임스컴을 직접 방문하지 못한 유저들은 각종 매체가 공개한 플레이 영상을 통해 게임의 면면을 간접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겉모습을 살펴본 유저들 사이에서 계속 그 유사성이 언급되는 타이틀이 하나 있습니다. 프롬소프트웨어의 <블러드본>입니다.

 

<P의 거짓>이 프롬 소프트웨어의 ‘소울본’ 게임들에 영향을 받은 ‘소울라이크’ 갈래의 게임이라는 사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의 어엿한 장르로 굳어진 여러 소울라이크 요소가 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게 딱히 놀랄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두 게임의 유사성은 ‘그 정도’가 아니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많은 게이머는 <P의 거짓>을 두고 농담을 섞어 ‘드디어 나온 PC판 <블러드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일부 매체도 비슷한 태도입니다. 외신 PC 게이머는 두 게임의 유사성을 다룬 기사에서 구구절절 닮은 점을 읊기도 했습니다.

 

PC게이머가 지적한 요소는 ▲체력·스태미나·아이템 인터페이스 ▲빅토리안·벨 에포크 스타일의 적들 ▲타격 시 중첩되는 상태효과 ▲힐링 애니메이션 ▲아이템 반짝임 이펙트와 줍는 모션 ▲사망 시 텍스트 출력 방식 ▲하얀 점으로 표시되는 락온 이펙트 ▲무기 내구도 시스템 등입니다. 매체는 “개발진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블러드본>의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P의 거짓>을 둘러싸고, 이렇듯 ‘베꼈다’는 평가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류를 이루는 것은 긍정적 반응입니다. “프롬 소프트웨어가 <블러드본> 후속작을 내놓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풍자부터, “기존 게임의 좋은 점을 자기 스타일로 모방하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는 진지한 응원까지, 유사성 논란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 태도가 비교적 더 부각됩니다.

 

네오위즈 역시 <P의 거짓>과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들과의 유사함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재미를 제공하도록 노력 중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는 게임스컴 어워드 수상 직후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됐습니다. 

 

<P의 거짓> 최지원 PD는 이번 '최고의 RPG상' 수상 직후 IGN 인터뷰에서 "다른 게임과의 유사성에 대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여기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프롬 게임들의 광팬이고, 그 게임들은 위대한 게임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프롬 게임뿐 아니라) 제가 즐겼던 모든 게임이 저에게 영감과 도움이 된다."고 말했죠.

 

그리고 이어서 "누군가 <블러드 본>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면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이런 작품들이 저희가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원천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 게임들과 차이를 만들기위해서 더 노력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 '비슷함은 곧 표절' 이라는 가혹한 잣대

 

그런데 ‘옆 동네’로 잠시 시선을 옮겨보면 이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바로 얼마 전 국내 가요시장에서는 한 작곡가의 ‘다년간 표절’ 의혹으로 촉발된 논란이 다른 여러 아티스트의 표절 의심으로 일파만파 확산한 바 있습니다. 파장은 아직도 지속 중입니다.

 

지금 유튜브에서 '표절'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영상이 나옵니다. 국내 아티스트들의 유명 곡과 다른 곡을 나란히 놓고, 서로 비슷한 구간을 지적하는 영상들이 대부분입니다. 여기에는 보통 “양심 없다”, “충격이다”, 더 나아가 “음악계의 대대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댓글이 달립니다. 여러 작곡가, 싱어송라이터가 이렇게 심판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제시된 의혹 중에는 진지하게 따져볼 만한 사례도 분명 많을 겁니다. 그러나 우후죽순 올라오는 폭로 영상들에서 포착되는 일방적이고 강경한 분위기를 보면 우려도 함께 느껴집니다. ‘표절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은 대부분의 영상에서 상당히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의견을 냈다가 ‘작곡가와 한패’로 몰려 공격당하는 모습도 목격됩니다.

 

하지만 표절 시비는 많은 경우 판단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주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하는 데에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가치판단이 달라질 만한 일이다 보니 관련법 또한 변해왔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인 만큼 영상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 판단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 그러니까 공론화된 장에서 정해진 체계에 의해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대중들 사이에서 건강한 논의 없이 한쪽으로만 분위기가 계속 쏠린다면 분명 우려할 일입니다. 특히 지금 일부 음악 소비자들이 보이는 모습처럼, 일말의 비슷함까지 전부 건전한 모방이 아닌 표절로 치부하고 배격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면, 오히려 소비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표절'을 검색한 결과 화면. 타당성과는 별개로 기존 대비 그 숫자가 매우 많아졌다.

 

 

# 건전한 모방이 시장에 주는 이익, 다만…

 

게임업계의 예시를 보면 '표절 아닌 모방'이 유저에게 안기는 혜택이 무엇인지 잘 보입니다.

 

게임계는 창작물 간 유사성에 상당히 관대합니다. 특정 게임이 다른 게임을 명백히 모방했더라도, 결과적으로 ‘다른 재미’를 준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습니다.

 

해당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 용어가 '~라이크'라는 표현입니다. ‘소울라이크’ 게임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P의 거짓>사례에서와 유사하게 ‘소울본’ 게임들의 핵심 시스템, 플레이 스타일, 톤&매너 등을 직접적으로 모방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퍼런스를 노골적으로 참고·변형·재배치해 선보이는 것 역시 나름의 창작 방식으로 인정받는 셈입니다. 

 

그리고 소비자들 역시 이런 관행에 익숙하다 보니, 신작 게임에서 내가 잘 아는 기존 게임의 요소를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곧장 표절을 주장하거나 제작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블러드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게임 자체가 아주 훌륭해 보인다. 게임이 개선되는 방향이 마음에 든다. 스토리와 설정도 꽤 궁금하다. 게임을 파고들 날을 기대한다.” - <P의 거짓>에 대한 한 유저의 생각

  

이는 비단 소규모 게임에서만 포착되는 경향도 아닙니다. 대기업들도 같은 관행을 자주 따릅니다. 라이엇을 세계 최대 게임사로 만들어 준 <리그 오브 레전드>가 <AoS>, <도타> 등 다른 게임에서 확립된 메카닉을 참고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블리자드 또한 <워크래프트>,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오버워치> 등 여러 작품에서 기존 여타 게임들에 있었던 시스템을 적절히 취해 다듬은 뒤 여기에 독자적인 IP와 밸런스 노하우를 더하는 창작법을 보여줬습니다.

 

격투 게임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리트파이터 2>의 대유행 이후 수많은 격투게임이 등장했고 그 게임의 방식은 비슷합니다. 커맨드 입력방식의 조작이 대부분의 격투게임에 적용되었죠. 얼핏보면 저작권 침해이자 아이디어 도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허용한 결과는 대전 격투게임의 대전성기를 열고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업계 전반의 개방성이 소비자에게 안기는 이익은 뭘까요? 물론 다채롭고 풍부한 소비 선택지입니다. ‘<둠>의 복제품’이라는 의미의 ‘둠 클론’이란 단어가 오늘날의 ‘FPS’와 거의 같은 의미로 통용되던 시절이 있습니다(<울펜슈타인 3D> 등 장르 원형을 만든 작품은 따로 있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게임업계가 만약 이때부터 유사성을 절대적으로 배격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FPS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상의 <탕탕특공대> 리뷰 페이지 캡처. 비판은 많지만 평점도 높은 편이다. 

 

다만 게임계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접근이 지나치게 소비자 편의적인 발상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노골적인 모방도 대체로 용인되는 시장이지만, 이런 작품들이 창의력 부족이나 성의 부족 등에 대한 비판까지 전부 모면할 수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례로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모바일 액션 게임 <탕탕특공대>는 스팀 히트작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메카닉을 상당히 닮았습니다. 실제로 유저 평가에는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게임의 평점은 높은 편입니다. 물론 이는 모바일 게임 수요층과 PC 게임 수요층이 서로 덜 겹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개발진의 '아이디어 차용'이 과연 널리 용인할 수준인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는 우려도 함께 안깁니다.

 

더 나아가 게임시장은 게임 아트나 스토리 등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창작물에 대해서는 원작자 권리 보호에 훨씬 민감하다는 점도 짚어볼 만합니다. 최근 표절 시비가 있었던 게임들은 대부분이 이 영역이 문제시됐습니다. 당장 위에 언급된 <뱀파이어 서바이버> 또한 <악마성> 시리즈의 스프라이트를 그대로 사용해 많은 비판이 일었고, 개발자는 스프라이트를 교체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의 기저에는 인게임 메커니즘과 같은 '무형의 창의력'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린 듯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분명 존중받아야 할 창작의 영역이며, 때에 따라서는 법적인 권리 주장도 가능합니다. 단적인 예로 닌텐도는 무수한 게임에서 차용되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떼었을 때 발동하는 차지 공격 시스템'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침해를 문제 삼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 예민함보다는 첨예함으로

 

표절은 창작자들의 창작 의지를 꺾는 행위입니다. 만연해진다면 업계의 존속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해, 시장 참여자 전원이 항상 표절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 그저 예민하기보다는 첨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서 살펴본 것처럼, ‘비슷함’이라는 쉬운 잣대만을 내세워 표절과 모방을 적절히 구분치 않고 공격한다면, 표절을 쉽게 용인하는 일만큼이나 창작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표절과 모방의 구분은 쉽지 않고 뚜렷한 정답이 없습니다. 업계의 내밀한 사정이나 관행 등, 일반 소비자가 채 감안하기 어려운 사항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정 '업계 발전과 사회 공정'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고 자부하는 소비자라면, 감내할 수고입니다. 다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무고한 창작자 공격에 가담한다면, 그 피해는 본인에게만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1950년대 UFO 신드롬 저변의 심리적 경향을 분석한 칼 융의 저서 '비행접시: 상공에서 목격되는 물체에 대한 현대적 신화'(Flying Saucers: A Modern Myth of Things Seen in the Skies) 속 한 구절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상대적으로 더 무의식적인 사람은 자연적 충동에 이끌리는 경향이 더 강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만의 익숙한 세상에 갇혀, '익숙한 것', '자명한 것', '그럴듯한 것' 그리고 '전반적으로 옳은 것'을 고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모토 삼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어렵다. 그러니 대중이 대신 판단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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