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심은 야박했습니다.
지난 13일(금),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 센터 402호에서는 <엘소드>라는 게임의 제작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제작발표회란, 어떤 물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하는 자리입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행사죠,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수년 동안 땀 흘려 만들어온 물건을 세상 밖으로 처음 선보이는 것이니까요. 이날 <엘소드>도 플레이 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회는 좀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대구의 게임업체 KOG가 서울까지 올라와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알기론 지방 온라인게임 업체가 서울에서 게임제작발표회를 하는 첫 번째 사례가 아닌가 싶더군요.
전날 밤 늦게까지 시연할 준비를 하고, 짐을 챙겼던 KOG 직원 17명은, 이날
(다음에 나올 내용은 저 자신도 예외가 아닙니다.) 엄청난 기대작이나, 유명한 사람이 등장하는 제작발표회라면 기자들은 미리부터 와서 진을 칩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에 제 시간 지키는 기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취재일정이 바빠서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도 있겠지만, ‘나 하나쯤’ 혹은 ‘뭐 대충’ 하는 매너리즘의 영향도 없지 않죠. 그래서 발표회나 간담회가 공식 일정보다 20~30분 늦게 시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습니다. 신랄한 리뷰를 잘 쓰는 기자라면 자기 자신에게 다른 잣대를 갖고 있는 것 아닌지 한 번쯤 리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KOG 대표는 북핵 사태를 걱정하더군요. 처음 서울에서 하는 제작발표회에 대한 염려가 많았으니, 게임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그런 이슈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변수는 ‘북핵’이 아니라 <WOW>였습니다. 전날 블리자드에서 기습적으로 확장팩의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시작했고, 각 매체 기자들에게 계정을 제공했죠. 따라서 많은 기자들이 그 시간에도 ‘버닝’하고 있었거나, 버닝 후 산화한 상태였을 겁니다.
이런저런 까닭에 행사는 30분 정도 늦게 시작했습니다. 평소보다 기자들도 적었고, 오히려 퍼블리싱 관계자들이 더 많이 왔더군요. KOG 관계자 분은 MT겸 해서 온 것이고, 처음 하는 것이니,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구경꾼 모으기’라는 외형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번 제작발표회는 '13일의 금요일'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첫 평가’라는 제작발표회의 실질적인 성과로 본다면, 이날 행사는 'TGIF'(Thank God, It's Friday)였습니다.
기사로는 쓰지 않는 내용이지만, 플레이 영상을 본 뒤 현장의 기자들이나, 퍼블리싱 관계자들이 ‘매너용’ 멘트가 아니라 ‘진짜로’ 게임이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요. 디스이즈게임이 현장에서 찍어 공개한 플레이 동영상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도 무척 높고, 평가 역시 무척x2 좋았습니다.
KOG 대표는 “부족한 것이 많지만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로 프리젠테이션을 마쳤습니다. 순간, 누가 부족하다고 느껴야 하는 건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뜨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