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회째를 맞은 ‘지스타 2006’이 끝났습니다. 이미 여러 언론매체에서 이번 지스타를 평가하는 글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스타 조직위원회는 관객 16만명을 돌파하고, 2억 9천만 달러 수출상담 실적을 달성했다며 좋아합니다. 이런 외형적인 수치도 중요하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4일 동안 지스타 행사장을 둘러보며 느낀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규모만 동북아
행사장을 오가며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의문은 ‘왜 하필 일산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전시회에서는 장소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지스타 후기’에 대한 기사가 여기 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어느 매체도 ‘장소’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사실 무척 당황했다. 지스타에 참가한 대부분의 업체가 장소 문제를 언급했고, 관람객들 역시 열악한 주변 인프라에 많은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코엑스(COEX)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전시장 중 하나다.
외국인들을 위한 항공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도심공항 터미널이 옆에 있고 호텔 등 충분한 숙박시설도 있다. 전시회와 연계된 쇼핑몰이 코엑스처럼 잘 갖춰진 곳도 드물다. 지리적인 여건과 교통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 3분의 1이 살고 있는 곳이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고, 지하철이 바로 지근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굳이 코엑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서울 대치동에 있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도 훌륭한 대안이다. 전시회장 규모가 킨텍스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이번 ‘지스타 2006’에서 우격다짐으로 채우거나 버려진 공간을 생각한다면 SETEC 개최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최측에서는 이번에 지난해보다 많은 16만명 이상의 관객이 지스타를 찾았다고 하지만 나흘 내내 현장에 있었던 필자의 생각과는 차이가 많다. 부스를 차린 게임업체 관계자들 역시 지난해보다 훨씬 못한 것 같다는 푸념을 늘어놨다. 행사 첫날인 9일과 10일은 정말 한산했다. 아무리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하지만 너무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전시회의 생명은 얼마나 많은 관람객이 찾는가에 있다. 추운 날씨에 지하철에서 15분을 걸어와야 하고,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서울을 오가는 셔틀버스 막차가 떠나버리는 상황이라면 지스타는 더 이상 일반인을 위한 게임쇼가 아닐 수도 있다.
전시회는 인프라산업이다. 일산 킨텍스는 동북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교통, 숙박, 쇼핑 등의 주변 인프라는 열악하다.
온라인게임 전문쇼로 자리매김 하는 지스타06
이번 지스타는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었지만 발표된 신작 타이틀의 수 면에서는 그다지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지스타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온라인게임은 <아바> <워로드> <쿵파> <에이트릭스> <에어로너츠> <프리잭> <신암행어사 온라인> <에이카> 등 8개 게임. 또 이번 지스타는 플레이어블 온라인게임이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아이온> <헬게이트: 런던> <헉슬리> 등의 게임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플레이어블 버전’으로 공개돼 많은 인기를 누렸다.
다양한 온라인게임 신작이 공개되고 넥슨이 <프로젝트 블랙>을 언급하는 등 미공개 프로젝트를 깜짝발표하면서 ‘지스타 2006’은 ‘온라인게임에 강한 게임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넥슨은 각 스튜디오별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고 EA의 CCO였던 렉츠 셰프너의 영입을 깜짝발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왜 EA를 버리고 넥슨에 들어갔냐’는 질문에 넥슨 NPNA(넥슨 퍼블리싱 노스 아메리카) 렉츠 셰프너가 말한 답변은 ‘지스타 2006’의 나갈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해준다.
렉츠 셰프너는 “EA는 5년 전에 가장 좋은 회사였지만, 넥슨은 5년 후에 가장 좋은 회사가 될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이미 전세계적인 추세다. 향후 몇 년 안에 온라인게임 회사가 전세계적인 게임회사로 부상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스타가 온라인게임에 중심을 둔 전시회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런 면에서 올해 ‘지스타 2006’은 온라인게임 전시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올해 적지 않은 온라인게임 신작이 지스타를 통해 발표되면서 내년에는 더욱 많은 게임을 지스타에서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E3나 도쿄게임쇼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측면도 있긴 하지만 참가한 업체 상당수는 내년 지스타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신작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론 NHN, 그라비티, 윈디소프트, CJ인터넷 등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CJ인터넷의 기대작 <이스온라인>과 그라비티의 신작 <바디첵>을 지스타에서 처음으로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지스타 2006'은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스타 어워드 선정 아쉬워
‘지스타 2006’ 최고의 게임은 한빛소프트에서 서비스하는 <헬게이트: 런던>이었다. 근소한 차이로 <아이온>이 우수상을 차지했고 <헉슬리> <창천> <에어로너츠>가 장려상을 탔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지스타 조직위는 위의 5개 게임명단을 발표한 게 전부였다. 이 게임들이 왜 상을 타게 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순위가 산출됐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보니 일부 수상업체는 순위에 불만을 품고 수상을 거부하겠다고 반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수상업체에 포함되지 않은 업체 역시 객관적인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디스이즈게임이 지스타사무실 관계자에게 물어본 결과 이번 지스타 어워드는 관람객 투표 70%, 기자 투표 30%를 반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공개하더라도 의혹만 더욱 커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지스타 사무국 관계자의 말.
어떤 시상식이건 순위를 매기다보면 불만 있는 곳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지스타의 신뢰를 더욱 높이는 요소다. 지스타 기간 중에 지스타 홈페이지나 게임전문 매체를 통해 온라인 폴을 실시하고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헬게이트: 런던>이 지스타 어워드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지금도 일부 업체는 이번 어워드의 선정방법에 불만이 많다. 좀더 깔끔한 일처리가 아쉬운 부분.
지스타와 e스포츠의 궁합?
지스타 행사기간 내내 메인홀에서는 각종 e스포츠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흥행 면에서는 참패였다. 1,000석이 넘는 자리가 마련됐지만 행사 내내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은 20~30명 수준에 불과했다.
지스타 조직위는 행사의 내실을 다지고 관람객들에게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e스포츠 경기를 기획했지만 관객 동원에 실패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카트라이더> 그랜드파이널 대회를 비롯해 <프리스타일> <피파온라인> <길드워> <겟엠프드> 등의 온라인게임 e스포츠 대회가 열렸고 <위닝일레븐 9> <DOA 4> 등의 콘솔게임 대회, <미니게임천국> 등의 모바일게임 대회가 열렸지만 관객이 몰려든 게임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스타크래프트> 슈퍼파이트 대회에서는 스타 플레이어인 이윤열과
지스타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홀의 관람석이 행사기간 내내 텅 비어있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조직위가 e스포츠 행사를 지스타 안에 계속 품고 갈지 좀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썰렁한 e스포츠 행사장.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경기를 볼 뿐이다.
낯 뜨거웠던 ‘게이머즈 파티’
차라리 안하는 편이 좋았다.
지스타 행사 둘째 날
게이머, 업체 관계자,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게이머즈 파티’는 파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행사진행이 미숙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저녁을 먹고 가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한 음식에 있었다. 부페 형태로 음식이 제공됐지만 나오는 음식은 고작 20~30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양.
이 때문에 참가자들은 접시를 들고 줄을 서서 다음 음식이 올 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이 같은 장면은 마치 급식을 받기 위해 나온 행렬처럼 비쳐졌고 IGN 등의 외신기자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시종일관 썰렁했던 B2B관
썰렁한 B2B관은 국제적인 게임쇼로 발돋음하는 데 여전히 걸림돌이 됐다. 행사기간 동안 별도로 마련된 B2B관은 시종일관 썰렁했고 일부 게임업체들은 아예 B2B관을 비우기까지 했다. 지스타 조직위에서는 B2B관에서 진행된 상담건수가 1,090건에 달했다고 말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수출상담 실적이 2억 9천만 달러에 달한다는 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말 그대로 상담만 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이 액수가 고스란히 수출실적으로 잡히는 경우는 없다.
게임업체 관계자가 말하는 실질적인 수출실적은 5%도 안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수출상담 실적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다”며 “실질적으로 수출업무가 진행돼 계약서가 오고 가는 경우는 5%도 안된다”고 말했다.
전시장 옆에 마련된 B2B관. 행사기간 내내 한산했다.
그외 잡다한 아쉬움
비싼 부스비용은 중소업체들에게 여전히 부담이다. 해외게임쇼보다도 비싼 것으로 알려진 부스 임대료는 중소 개발사 뿐 아니라 대형 퍼블리셔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지스타에서 10억원 이상의 금액을 썼다. 이 돈이면 새로운 게임 하나를 개발할 수 있는 금액”이라며 “행사비용 전부를 게임업체에 부담지우는 것은 지스타 참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장 규모를 과도하게 늘려 쓸데없는 공간이 많아진 것도 문제로 보인다.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아케이드 업체들 대부분이 참가를 포기하면서 남겨진 공간이 휴게실, 카트체험관 등으로 구성되면서 공간낭비가 심했다는 지적이다. 모 전시업체 담당자가 말하는 지스타의 적정 전시장 규모는 5,000명. 하지만 이번 지스타는 이보다 3배 이상 큰 규모로 치러지면서 외형적인 덩치만 키웠다.
어린 유저들이 15세, 18세 이용가 게임을 아무런 제재 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아쉬움이다. 특히 지스타 메인홀 옆에 마련된 100여대의 PC에서는 초등학생 유저들이 몰려와 15세 이상 이용가 게임인 <서든어택>을 즐기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지 않았다.
부스배치는 정말 좋았다!
지스타 조직위에서 지난해와 달리 대형 부스와 중소형 부스를 적절히 섞어서 자리를 배치하면서 개발사들에게 힘을 준 것도 좋은 시도였다. 기존 전시회의 경우를 보면 대형 부스에서 각종 이벤트와 막강한 도우미 누나들의 힘으로 많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상대적으로 관람객들의 쏠림현상이 심했다.
이번 지스타도 큰 변화가 없었지만 대형부스와 소형부스를 구분짓지 않고 서로 섞어놓으면서 중소형 부스를 차린 업체들에게 자연스럽게 관람객 동선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한 점은 관람객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그나마 어느 정도 해소해줬다.
이외 각 부스별로 소음규정을 철저하게 적용해 과도하게 시끄러운 것을 막은 것도 좋았다. B2B관을 행사장과 별도로 분리해 상담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 점도 지난해보다 발전한 모습이다.
PS: 여러 매체에서 ‘지스타 2006’ 역시 지난해에 이어 ‘지스타’가 아닌 ‘걸스타’였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게임쇼의 꽃은 ‘게임’이 맞지만 이 게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부스걸’입니다.
행사 전부터 참가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멋지고 예쁜 부스걸을 섭외할 수 있을까’ 하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부스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죠. 다만 지나치게 부스걸이 돋보였던 것은 전시장에서 선보인 ‘컨텐츠(=게임)’가 다소 적거나 빈약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년 지스타에서는 더욱 멋진 게임과 예쁜 부스걸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