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란이 뜨겁고도 냉랭하다.
지난 8일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이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규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할 뜻을 밝히자, 게임업계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미 자율규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와중에 나온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어떤 업체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대놓고 밝히진 못하고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많은 유저들이 업계의 자율규제를 믿지 못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게임업계 내부에서조차 (자율규제가) ‘가능할 리가 없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이고 있다. 과연 업계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스스로 규제할 수 있을까? 디스이즈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실현 가능성을 하나씩 되짚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1. 2008년, 자율규제는 이미 끝났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08년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통해 처음 추진됐다. ‘캡슐형(확률) 유료 아이템 서비스 제공에 대한 자율준수 규약’이라는 이름의 첫 자율규제안의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 캡슐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값에 현금, 현물, 유가증권 등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 캡슐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값에 캐시아이템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 특정한 캡슐형 유료 아이템을 통해 다수의 이용자로부터 금품을 모으고, 추첨 등의 방법을 통해 특정 이용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주고, 다른 이용자에게 손실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 건전한 영업환경 조성을 위한 상설모니터링기구를 설치한다.
하지만 당시 온라인게임을 기준으로 세운 자율규제안은 200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확률형 아이템의 보상 결과에는 대부분 캐시아이템이 포함됐다. 그리고 이는 모바일게임에 주요 비즈니스가 됐고 확률형 아이템의 구성 노하우는 게임 기획자들의 주요 포트폴리오가 됐다. 여기에 한술 더떠 다수의 이용자로부터 금품을 모으고 추첨으로 이득을 주는 방식은 최근 넥슨이 <서든어택>에서 도입하려다 유저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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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영업환경 조성을 위한 상설 모니터링 기구와 정기 모니터링 역시 자율규제안이 나온 이후 흐지부지됐다. 결국 확률형 아이템과 실행 의지가 없는 자율규제안은 2011년 국정감사에서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후 게임산업협회는 회원사들의 의견을 총합해 ‘상설모니터링 시스템 강화와 결과값 아이템의 폭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자율규제안을 확립할 방침을 세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자율규제안은 지지부진한 논의를 거친 끝에 2014년 10월에야 K-IDEA를 통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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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확률형 아이템 규제는 늦출수록 이득? 업계의 불성실한 태도
게임업체들의 불성실한 태도도 자율규제의 신뢰성을 떨어트린다. 국정감사가 끝난 2011년 7월 20일,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엔씨소프트, 넥슨,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 넷마블게임즈(당시 CJ E&M), 위메이드, 액토즈소프트, NHN엔터테인먼트(당시 NHN), 한빛소프트, 엠게임 등 10개 개발사를 대상으로 ‘확률형 아이템’ 운영에 관련된 간담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10개 개발사는 모두 게임위의 간담회에 불참했다. 이에 게임위는 8월 5일부터 2주 동안 확률형 아이템 관련 자체 현황 조사를 실시했지만 개발사 모두가 아이템 확률과 유저 이용량 등이 영업비밀이라며 제출을 거부했다. 홈페이지나 게임 내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금액, 이미지 등을 보낸 게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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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게임위는 ‘게임위는 규정에 따른 업무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등급분류를 신청한 자에게 등급심사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자료를 요구했지만 게임업체들은 (아이템 확률 등의 자료가) 로그기록과 연계된 비밀사항이며 사행성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보내지 않았다. 이 개발사들은 '황금 거위'와도 같은 확률형 아이템 방식의 수익모델을 한발짝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게임위의 등급 재분류 기간에 2달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사행성이 짙은 확률형 아이템을 이벤트로 내놓고, 게임위에서 등급재분류를 마치기 전에 이벤트를 종료하는 방식이다. 등급 재분류의 허점을 노린 것으로 사실상 ‘치고 빠지기’ 편법이다.
3. 대놓고 규제 회피 방법 제시? 이미 형식 뿐인 2014년 자율규제안
게임업계에서 새롭게 발표한 자율규제안에도 허점이 많다. 지난해 11월 K-IDEA가 선언한 자율규제안안의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 전체이용가 게임 대상 ‘캡슐형 유료 아이템’ 결과물 범위 공개
- 전체이용가 게임 대상 ‘인챈트’ 관련 결과물 범위 공개 및 경고 문구 게시
- 캡슐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물에 캐시아이템 포함 금지
- 모니터링 기구 상시 운영
- 청소년 과소비 보호 정책 추진 및 강화
얼핏 보면 ‘확률성 아이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종류와 구성비율, 획득 확률 등을 공시’하도록 만든 개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가장 민감한 확률과 범위값 공개는 ‘전체이용가 게임’만을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당초 자율규제 자체가 청소년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플레이 매출순위 10위권의 게임 중 전체이용가 게임은 <피파온라인3 모바일> 하나뿐이다. <레이븐> <세븐나이츠> <영웅> <몬스터길들이기> <별이 되어라> 등 정작 확률형 아이템을 가진 게임들은 자율규제가 적용되도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최소 12세 이상 이용가(콘텐츠등급 - 하)에 해당한다.
자율규제를 하더라도 위의 게임 중 확률을 공개해야 하는 게임은 단 4개에 그친다. 오히려 확률형 아이템이 없는 게임들이다.
여기에 모바일게임은 18세 이상 이용가 게임을 제외하면 게임위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오픈마켓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등급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이용등급을 바꾸기도 쉽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이용가 게임’만을 대상으로 확률을 공개해봐야 개발사에서 12세 이상 이용가(콘텐츠등급 – 하)로 등급을 바꾸면 모든 확률공개 항목은 무용지물이 된다. 사실상 자율규제 자체가 ‘개발사에서 빠져나갈 구석’을 미리 만들어 둔 셈이다.
남은 자율규제 항목인 결과값에 캐시아이템 포함 금지나 모니터링 상시운영 등의 항목들 역시 대부분 2008년 자율규제안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2008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던 내용들을 2015년에 다시 지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4. "회원 혜택으로는 자율 규제가 있습니다?" 회원사는 81곳뿐, 부족한 강제성
K-IDEA가 게임업계를 얼마나 대변하고, 강제성을 가질 수 있느냐도 문제다. 현재 K-IDEA의 회원사는 81곳, 실제 게임개발사의 절반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넥슨과 넷마블게임즈, 네시삼십삼분 등의 주요 개발사는 모두 K-IDEA의 회원사이다. 하지만 <애니팡>을 서비스 중인 선데이토즈, <도탑전기>의 가이아모바일코리아, <불멸의 전사>의 레드사하라 등은 회원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매출 순위 30위권부터는 비회원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특히 최근 공세가 심해진 중국 모바일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셔는 대부분 K-IDEA에 소속돼있지 않다. 가뜩이나 온라인에 이어 모바일에서도 해외 게임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회원사만을 대상으로 자율규제를 진행할 경우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기 쉽다.
그렇다고 K-IDEA가 회원사에 대한 강제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K-IDEA의 회원사가 아니더라도 게임의 출시나 서비스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비회원사에 대한 영향력도 마찬가지로 없다.
결국 K-IDEA의 자율규제는 게임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따라주기를 바라야 하는 말 그대로의 '자율 규제안'이다.
5. 매출의 80%에 육박하는 확률형 아이템, 포기할 수 있을까?
게임업계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확률형 아이템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현재 일부 개발사의 확률형 아이템 매출비중은 전체의 50%가 넘는다. 심한 경우 80%에 달하는 개발사도 있다. 확률형 아이템 매출을 절반으로만 줄여도 현상유지가 되지 않는 게임이 부지기수다.
확률형 아이템 이외에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지만 ‘뽑기’ 콘텐츠를 핵심으로 제작된 모바일게임들이 당장 콘텐츠 구성방식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작은 규제라도 매출로 직결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자율규제나 개정안 등을 통해 확률이 공개될 경우 한 번 공개한 아이템 확률을 ‘바꿀 수 없다’는 부담도 크다. 모바일게임 개발사에서는 서비스과정에서 유저의 반응에 따라, 혹은 게임 내 경제나 밸런스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값을 조절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예를 들어 특정 등급의 몬스터가 예상치보다 많다면 해당 등급 몬스터가 나올 확률을 줄이거나, 경쟁게임에 비해 뽑기 확률이 과도하게 낮다고 판단되면 좋은 아이템의 확률을 조금씩 높이는 식이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할 경우, 게임 내 밸런스가 개발사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수습할 방법이 사라진다. 혹은 거센 비판을 감수하고 공개된 확률을 뜯어 고쳐야 한다. 게임업계에서 정부의 무조건적인 확률 공개가 담긴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이벤트에 따른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변동까지 발표하는 개발사가 많다. 스크린샷은 <SD건담 G제네레이션 프론티어>의 이벤트 공지사항.
■ 게임업계의 자발적 행동이 아닌 눈치 보기는 개정안 도입에 힘을 싣는 꼴
결국 현실적으로 봤을 때 게임업계가 법적인 강제력 없이도 스스로 확률형 아이템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의 불성실한 태도부터 경제적인 부담감, 부족한 강제성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의 자율규제라면 3번 이유처럼 빠져나갈 구석이 충분한 ‘있으나마나 상관없는 형식적인 규제’ 수준에서 멈추거나 그조차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개정안이 계획대로 추진되면서 ‘자율규제가 아니면 개정안’의 극단적인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정안 자체가 모든 확률을 공개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최악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게임업계로서도 자율규제를 통해 일정부분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게임업계에서 스스로 확률형 아이템을 줄여나가기 위한 자율규제를 이뤄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의 비중과 사행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게임업계의 주장에 힘을 실기 위해서는 말 뿐이 아닌, 당장의 최소한의 실천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