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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게임, 미국 프로농구 NBA의 신데렐라를 만들다

농구계의 이가와 게이, 하산 화이트사이드 이야기

임상훈(시몬) 2015-08-28 13:49:02

야생마 같았던 미국 대학농구 블록슛 왕

 


야생마 같은 농구선수가 있었다. 포지션은 센터였지만, 스타일은 강백호였다. 2009-2010 시즌 미국 대학농구에서 평균 13.1점, 8.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슛을 쳐내는 능력은 더욱 탁월했다. 강백호가 리바운드 왕이었다면, 그는 블록슛 왕이었다. 평균 5.4개의 블록슛은 미국 대학 농구 랭킹 1위였다. 

 

 

 

그의 이름은 하산 화이트사이드(Hassan Whiteside). white(백)와 side(면) 때문에 일부 한국 팬들에게 '백면'이라고 불린다. 기본기가 약했지만, 탄력 넘치는 플레이는 관중들의 넋을 나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실력만 야생마였던 것은 아니었다. 성질도 야생마였다. 화를 잘 다스리지 못했고, 불평불만이 많았다. 이런 부분도 강백호와 비슷했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에게는 채소연이 없었다.

 

 

채소연이 없는 강백호의 운명이랄까... 

 

그가 손을 들면 손끝은 2.9미터 높이에 닿았다. (농구 골대 림의 높이는 3.05미터다.) 그가 팔을 벌리면 2.37미터로 늘어났다. 괴물 같은 수준이었다. NBA는 그의 몸과 운동 능력에 반했다. 신인 드래프트 1순위는 떼어논 당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드래프트에 나선 팀들은 1순위 지명을 망설였다. '태도 문제'(attitude problems) 때문이었다. NBA 스카우트 리포트에는 그에 대해 '드래프트에서 가장 고위험/고보상 선수'(draft’s biggest ‘high-risk/high-reward’ player​)로 적혀있었다. ▲근면함의 부족 훈련태도 불량 등이 언급됐다. 특히 코치의 지도를 진지하게 안 받아들이는 태도는 큰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태도'나 '성격'은 선수를 뽑는데 무척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국 프로야구도 외국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이를 중시한다. 박동희 기자는 외인 스카우트를 다룬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10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스탯이나 경기력 못지않게 눈으론 확인 불가능하나 꼭 확인해야 하는 선수 인성에 주목한지 오래다. 실력이 좀 떨어져도 인성이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이제 더는 생경한 장면이 아니다.​"

 


한화 이글즈의 나이저 모건은 성적 부진으로 지난 5월 방출됐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실책을 하고 나서나, 삼진을 당한 뒤 벤치에서 T자 세리머니를 했던 그의 기행이 김성근 감독에게 찍혔다는 것을. 

 

화이트사이드는 2010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을 받지 못했다. 2라운드 33순위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뽑혔다. 데뷔시즌은 암울했다. 부상의 여파도 있었다. 1경기 2분 출전, 반칙 2개. 끝.

 

구단은 그를 D리그(Development League, 야구로 치면 마이너리그)로 보냈다. 이듬해 정규리그로 올라온 그는 18경기에 출전했다. 평균 1.6점, 2.2개의 리바운드. 다시 D리그로 전출.

 

성장은 더뎠다. 태도도 좋지 않았다. 인내심이 바닥난 구단은 그를 방출했다. 화이트사이드는 D리그와 레바논 프로리그 등을 전전했다.

 

 

정말 '백면'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질 수도 있었던...

 

2013년 화이트사이드는 중국 프로농구팀 쓰촨 블루 웨이즈로 갔다. 대륙 프로리그를 초토화시켰다. 27경기에서 평균 25.7점, 16.6개의 리바운드, 5.1개의 블록슛으로 '올해의 수비상'을 탔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더 날랐다. 소속팀을 플레이오프 전승으로 이끌며 MVP 트로피를 들었다.

 

2013년 8월 12일 한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 유재학 감독은 인천공항에 금의환향했다. 16년 만에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구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란과 필리핀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공항에서 유재학 감독은 잘못된(혹은 세뇌된) 순혈주의에 빠진 이들이 들으면 좀 놀랄 발언을 했다.

 

 

"한국 농구의 약점은 센터진이다. (중략) 신장은 비슷해도 몸싸움에서 밀렸다. 대회가 끝난 뒤 연맹, 협회와 외국인 선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우리도 (귀화선수의 대표 합류를)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상당수 아시아 팀들이 적극적으로 귀화 선수를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한국은 그들의 높이와 파워를 절감했다. 귀화선수 영입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2014년 초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레이더에 중국 리그에서 훨훨 날았던 몸집 좋은 센터가 잡혔다. 하산 화이트사이드였다. 당시 레바논 리그에 있던 그와 접촉했다. 하지만 포기했다. 좀더 알아보니, 훈련태도나 성격이 문제였다. 스카우트 수준이 아닌 귀화 프로젝트에서 성격은 더없이 중요한 요소다. 

 

1947년 흑인이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의 재키 로빈슨은 '어떤 경우에도 보복행동을 하지 않을 인내력'을 지닌 덕분에 MLB 역사의 불멸의 별이 될 수 있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팽배했던 그 시절, 그를 스카우트한 (내가 진짜 존경하는) 브랜치 리키가 그에게 했던 말은 이랬다.

 


"나는 아주 훌륭한 흑인 선수를 찾고 있다네. 그냥 경기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야. 남들이 모욕을 줘도, 비난을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진 선수라야 하네. 한마디로 흑인의 기수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야 해. 만약 어떤 녀석이 2루로 슬라이딩해 들어오면서 '이 빌어먹을 깜둥이 놈아'하고 욕을 했다고 치세. 자네 같으면 당연히 주먹을 휘두르겠지? 나도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대응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구. 자네가 맞서 싸운다면 이 문제는 20년은 더 후퇴하는 거야. 이것을 참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해. 자네가 그걸 해낼 수 있겠나?"

 

재키 로빈슨은 해낼 수 있다고 했다. 하단 화이트사이드였다면, 처음 서너 문장 정도 듣고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What the Fxxx".

 

 

NBA의 신데렐라, 농구게임 속 능력치를 위해 분투하다

 

해외 무대에서의 활약 덕분에 그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그를 스카우트했지만, 한 게임도 안 뛰고 방출해버렸다. 센터가 부족했던 마이애미 히트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를 데려갔다. 

 

2014-2015 시즌 벤치 멤버에서 출발한 화이트사이드는 데뷔 1~2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짧은 출장시간에도 포텐셜을 터뜨렸다. 출장시간도 점점 늘었다. 특히 올해 1월 첫 6경기에서 세 차례 더블더블 달성했다. NBA의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월 25일 시카고 불스와 경기에서 '대형 사건'을 터뜨렸다. 

 

그는 단 24분 37초만 뛰고도 14점, 13리바운드, 12블록슛을 기록했다. 개인 최초의 NBA 경기 트리플더블. 게다가 12개의 블록슛은 팀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아래 영상은 그 하이라이트 및 이후 인터뷰)

 

 

당연히 경기 직후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이날 기록만큼이나 깜짝 놀랄 발언이 나왔다. ESPN의 스포츠캐스터 헤더 콕스(Heather Cox)가 "오늘 경기를 잘한 이유는 무엇이냐"(What inspired you today?)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뒤의 의례적인 발언은 생략했다.)

 

"I’m just really trying to get my NBA 2K rating up.

(나는 진짜 <NBA 2K>의 내 능력치를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화이트사이드는 '셀프 마케팅'을 할 줄 알았고, 2K Games도 이 절호의 마케팅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잘 들었다고 피드백을 줬다.

 


능력치를 올리려는 화이트사이드의 불굴의(?) 노력은 경기와 TV인터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직접 게임 개발자에게 주말에 자기가 슛 넣는 것 봤냐며 어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노력은 결국 결실을 봤다. 며칠 지나지 않아, 2K Games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업데이트를 통해 59점이었던 그의 능력치는 77점으로 높이 점프했다. 이후 <NBA 2K>와 관련된 화이트사이드의 흑역사(?)가 알려졌다. 2010년 새크라멘토 킹스 루키 시절, 그의 능력치는 거의 바닥에 가까운 49였다.

 


게임을 좋아했던 화이트사이드가 본인 능력치에 대한 실망을 나타냈던 그 시절의 찌질한 트윗들이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화이트사이드, 마침내 81점을 받다

 

<NBA 2K>의 능력치를 높이려는 화이트사이드의 노력에 세상도 함께 관심을 보여줬다. 이런 티셔츠까지 나왔다.

 

 

 

화이트사이드도 맘에 들었나 보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줬다.

 

 

지난 시즌 활약 덕분에 그는 NBA의 대표적인 센터로 자리를 잡았다. NBA 2015-2016 시즌은 10월 27일(미국 시간)부터 시작한다. 마이애미 히트의 감독은 화이트사이드에게 더 많은 공을 보낼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보다 그에게는 더 멋진 소식이 지난 주말(8월 22일) 전해졌다. 화이트사이드는 그 내용를 바로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해냈다.

  

 
강백호에게는 채소연이 있었고, 화이트사이드에게는 <NBA 2K>가 있었다. 


and one more thing person

 

화이트사이드의 사연은 한 명의 야구선수를 연상시킨다. '괴짜투수'로 불리는 이가와 게이다. 게임 속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그가 먼저다.

 


TV 때 나온 프로필에 취미로 무선 조종 헬기, 축구 비디오 모으기(1000여 개), 이누야샤, 명탐정 코난, 컴퓨터게임, DVD 감상, 청소를 적은 괴짜 선수.

 

이가와 게이는 2003시즌 리그 MVP와 사와무라상(일본의 사이영상, 최고 투수에게 주는 상)을 수상한 뒤 "게임(실황 프로야구) 능력치를 올리고 싶어 노력했다"는 인터뷰로 화제를 모았다. 본인의 능력치가 낮아서 동생 친구가 본인의 캐릭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분노해 열심히 노력한 사연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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