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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게임 전문성은 어디에? 콘텐츠진흥원 게임 잔혹사

임상훈(시몬) 2015-09-15 19:35:53

지난 칼럼에서 저는 올해 차이나조이 한국공동관에서 잡은 '꼬투리' 한 가지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배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능별 업무분장과 순환보직이 있다는 내용을 썼죠.

 

[허접칼럼] 아직도 걸음마 중? 나이 헛먹은 한국공동관


이번에는 공동관 대신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이하 콘텐츠진흥원)를 진득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게임이 잘못 나왔다면 개발사에 어떤 사정이 있는 것처럼, 공동관에 문제가 있었다면 콘텐츠진흥원에도 사정도 있었을 테니까요.

 


아, 콘텐츠진흥원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 많죠? 콘텐츠진흥원은 정관 제1장 제3조에 따르면, '콘텐츠 사업을 육성하고 발전을 지원할 목적'으로 정부에서 설립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입니다. 문화부와 함께 우리나라 게임 등 콘텐츠의 주요 정책을 이끄는 쌍두마차죠. 

 

이 마차의 사정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단절: 명이 끊긴 게임 전담 기관

 

이명박 정부는 2008년 8월 26일 2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 추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1차 때 공기업 민영화에 중점을 뒀다면, 2차는 40개 공공기관의 통폐합에 포커스를 뒀죠. 이게 왜 ‘선진화’인가 하는 반발도 있었지만, ‘내가 해봐서 아는’ 분의 계획은 착착 추진됐습니다.


2009년 5월 7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재웅 원장)이 출범했습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설립된 후 이어져왔던 게임 전담 공공기관은 역사 속에 사라졌습니다. 게임산업진흥원은 문화콘텐츠진흥원, 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과 통합됐고, 전 국회의원이 이 '슈퍼 진흥원'의 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콘텐츠진흥원의 첫 조직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하는 일은 통합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각 기관의 기존 사업을 이어받아 6본부 체제로 운영됐으니까요. 게임도 게임산업본부로 대부분 승계됐습니다. 통합 이후 뒤숭숭한 분위기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의도였을 겁니다.  

 

 

해체: 게임 본부의 와해와 게임 전문가들의 고생

 

얼추 조직 안정화가 이뤄진 2009년 12월 28일, 이재웅 원장은 드디어 칼을 뽑았습니다. 조직을 기능 위주로 확 바꿨죠.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조치였습니다.

 

 

 

콘텐츠진흥원은 “기존 조직은 제작, 수출, 행사 등에서 유사 지원기능들이 본부마다 존재해 비효율적 요소로 지적돼 왔으며, 상호 연계나 기능 강화에도 장애가 되어왔다”고 개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게임은 주로 제작지원본부 소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게임 전시회는 글로벌사업본부의 전시지원팀이 담당하게 됐죠. '산업(장르) 중심 체제'에서 '기능(직무) 중심 체제'로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팀 하나 없어진 거잖아, 하고 볼 수도 있지만,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게임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통합된 기관 중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은 1989년부터 이어져온 단체였습니다. 경력 많고, 연배 높은 인력이 많았습니다. 인원도 많았습니다. 기능 별로 멤버가 섞일 경우, 게임 쪽 인력이 관리자를 맡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 일이 그렇듯, 출신 진흥원 별로 파워싸움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통합 때부터 비게임 진흥원 출신들은 급여 문제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합 전, 방송영상 등 다른 진흥원에 비해 게임산업진흥원은 급여가 낮았습니다. 통합하면서 격차의 중간 수준에서 급여가 맞춰졌습니다. 게임 쪽 인력은 급여가 올랐습니다. 급여가 깎인 다른 진흥원 출신들에게 게임은 못 마땅한 존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산업본부를 맡았던 서태건 본부장은 개편 후 글로벌게임허브센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게임산업을 잘 아는 팀장급 이상 인력들은 다른 지원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조직개편의 실질적 의도는 인력 축소였습니다. 희망퇴직으로 7명의 인력이 떠났습니다. 주로 게임 쪽 인력이었습니다.

 

게임은 영화나 애니메이션보다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연령이 높을 경우 진입장벽은 더 험난해집니다. 이건 인수인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게임을 모르는 본부장 밑의 게임은 의사결정이나 자원배분 등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편 후 임명된 제작지원 본부장은 게임 쪽 경험이 없었습니다.

 

희망퇴직 후에도 인력 보강은 없었습니다. 사업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 감당해야 할 사업 꼭지수가 늘어났습니다. 남은 게임 전문인력들의 업무가 과중해졌습니다.​ 새로 게임을 맡은 인력들도 잘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산업 분야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력은 축소됐고, 그 분야 비전문가들도 시간과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복원: 게임 전담 본부의 생성, 그러나 이미 떠난 사람들

 

2012년 3월 콘텐츠진흥원 원장이 바뀌었습니다. 청와대 출신이 왔습니다. 신임 홍상표 원장은 기능 중심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했습니다. 홍 원장은 "한류의 핵심이 되는 콘텐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진흥원의 모든 업무를 고객ㆍ산업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해 5월 8일 게임 본부의 복원을 포함한 조직개편을 했습니다.

 



게임은 차세대 콘텐츠와 함께 본부로 승격했습니다. 게임산업진흥원 출신이 본부장에 올랐습니다. 비록 스마트콘텐츠센터가 게임과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게임의 입지는 어느 정도 회복된 듯했습니다.

 

하지만, 늦었습니다. 기존 기능 중심 체제 하에서 소외됐거나 불만을 가졌던 게임 전문인력들이 콘텐츠진흥원을 많이 떠난 상태였습니다. 전병헌 의원의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 따르면, 게임산업진흥원 출신은 39명 중 11명(28%)가 퇴사했습니다. 11% 수준의 퇴사율을 기록한 다른 기관 출신들보다 2.5배 많은 수치였습니다. 

 

고위직인 부장급 이상 인력 22명 중 14명(63%)이 방송영상사업진흥원 출신들이었습니다. 게임 인력들의 인사 소외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정책 상의 소외와 더불어, 다른 기관 인력에 비해 연령이 낮았던 점도 게임 쪽 퇴사자가 많은 이유였습니다. 동일 업종의 일반 회사보다 급여가 높은 다른 진흥원 출신들은 퇴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임산업진흥원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NC, 넥슨 등 게임업체의 대외정책 파트 등으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진흥원은 인력 구성 차원에서 게임과 계속 멀어졌습니다.


 

결핍: 부족하고 확보하기도 어려운 게임 전문 인력

 

콘텐츠진흥원은 2014년 6월 전남 나주로 이전했습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콘텐츠코리아랩 본부가 신설됐고, 기본 본부들은 실로 바뀌었습니다. 콘텐츠코리아랩 본부에 힘이 실리면서, 게임은 방송과 함께 묶이게 됐죠. 그나마 과거 참혹했던 시기보다는 나은 모습니다.

 

 

더 큰 문제는 게임 전문 인력의 부족 현상입니다. 콘텐츠진흥원 통합 당시 게임산업본부장과 그 산하 팀장을 합치면 4명이 있었습니다. 현재 한 명만 남아있습니다. 관리자급과 실무자급 게임 전문인력은 계속 이탈해왔습니다. 나주 이전 등과 더불어, 현재는 게임산업진흥원 출신 중 절반 가량이 나간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게임산업진흥원 시절을 기억납니다. 신규 인력을 뽑을 때 경력직 채용이 많았습니다. 게임 업체 출신 또는 게임을 좋아하는 다른 업계 출신들이 게임산업진흥원에 입사하곤 했습니다. 게임종합지원센터 때부터 이어온 업계와의 스킨십도 많았습니다. 진흥원의 게임 전문성은 자연스럽게 쌓여갈 수 있었습니다. 업계의 신뢰도는 그런 토대 위에서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반면, 현재의 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전담자를 뽑는 곳이 아닙니다. 토익 점수도 높고, 스펙도 좋은 신입사원들이 입사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모르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을 익히려면 시간이 꽤 듭니다. 애정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애정 없는 전문성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게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콘텐츠 분야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일 겁니다.

 

 

경시: 전문가를 키워내지 못하는 체계

 

2009년 이후 한국 게임은 총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콘텐츠진흥원의 출범 이후와 겹칩니다. 콘텐츠진흥원 때문에 위기기 생겼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정부와 공공기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시기, 게임은 정부 공공기관 내에서 계륵 신세였습니다. 상당수 전문인력은 그 곳을 떠났습니다. 신규 인력에게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찌어찌 게임 관련 업무를 익혔더라도 2~3년 지나면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합니다.

 

콘텐츠진흥원을 관리하고, 게임 정책을 이끄는 기관은 문화부입니다. 문화부 게임 담당 사무관은 대한민국 게임정책 결정에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입니다. 이 사무관도 2년 정도 지나면 자리를 옮깁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게임 담당 공공기관에는 경험과 노하우, 전문성이 쌓일 시간이 없습니다. 차이나조이와 게임스컴 한국공동관의 아쉬운 모습은 구체적인 단면입니다.

 

전문성 부족과 순환보직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한국공동관 등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허접한 글이어서 부끄럽고 죄송스럽지만, 건강한 한국 게임생태계의 조성을 위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공유시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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