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측은합니다. 각종 매체와 게이머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모습이 말이죠. 저도 지스타 조직위에 그리 호감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직위가 실수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르는 영역에서 정말 문제가 많을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명백히 자기 잘못도 아닌 일로, 마녀사냥처럼 린치당하는 것은 좀 너무하다 싶습니다. 지스타와 관련된 모든 불만을 조직위 탓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곤란합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도 좀 심한 것 같고요. 비판은 많았으니까, 제 불만은 좀 누르고, 마지못한 두둔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시몬, 너 미쳤니?’ 하는 반응을 보이실 분도 있을 것 같네요. 많이 그러니까, 또 한번 그럴 수도 있죠. 제 정신인지 아닌지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1. 장소
논란이 참 많은 문제입니다. 삼성동에 아지트가 있는 TIG는 코엑스가 좋습니다. 5분 걸어가면 되는 거리니까요. 하지만 일산 부근에 사는 분들은 킨텍스가 좋겠죠. 지방 사는 분들은 잘 모르겠네요. 제가 만난 업계 관계자나 외국인들은 거의 모두 코엑스를 선호했습니다. (일산에는 게임업체가 별로 없죠. 도심공항터미널은 코엑스 옆에 있고요. 기자들도 대부분 서울에 삽니다.)
지금 제가 따지려는 것은 어디가 좋냐/나쁘냐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 문제가 조직위가 비판 받을 사안이냐 하는 것이죠.
지난 허접칼럼에서도 언급했듯, 지스타 행사장은 2004년 말에 결정됐습니다. 조직위 위원장은 2005년 3월 임명됐고, 조직위는 그 해 5월 출범했습니다. 2004년 말 이미 3년 동안 킨텍스로 하기로 결정된 사안으로, 그 이후에 출범한 조직위가 비판 받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 조직위를 비판하시더군요.
그런데 조직위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도 코엑스가 낫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하기 곤란했습니다. 왜냐하면 2004년 말 킨텍스로 결정한 주체는 문화관광부와 게임산업개발원(현 게임산업진흥원)이기 때문입니다. 문화관광부는 조직위의 예산을 지원하고, 위원장 임명에 관여하는 상위 책임기관입니다.
접근성, 숙박시설, 식당, 부대행사 공간, 택시 안 잡힘(!) 등 장소와 관련해서는 갖가지 이슈로 조직위가 덤터기를 쓰고 있습니다.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문화관광부와 (구)게임산업개발원입니다.
2008년엔? 경기도는 여전히 지스타를 붙들고 싶어합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지스타에 왔죠. ‘민폐’라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본인은 나름 ‘힘’을 실어주는 행위로 여길 겁니다. 제 판단으로는 게임업계 및 조직위, 미디어 모두 코엑스를 선호합니다. 코엑스는 이미 내년 전시스케줄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와 문화부의 협조가 있다면 ‘틈’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서울시가 성의를 보인다면, 코엑스에서 열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소 문제로 조직위를 비난하기 보다는 서울시 홈페이지에 가서 지스타 좀 밀어달라고 글을 남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
2. 시기
이 또한 정답은 없습니다. 업체, 혹은 그 안의 개발팀마다 생각이 다 다르겠죠. 유저들도 입장이 다를 겁니다. 고3 수험생들은 확실히 수학능력시험이 코앞인 11월 둘째 주 목/금/토/일을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11월 둘째 주에 했을까요.
조직위는 E3(5월), 차이나조이(7월), TGS(8월), GC(9월)을 피해 11월을 택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게임쇼를 만들려면 해외 게임쇼와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건 업체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 같습니다. 게임쇼 하나를 준비하기도 얼마나 벅찬데요. 업체 입장에서도 11월이 낫습니다.
또한 조직위가 2005년 5월 설립됐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5월 설립됐다면 조직 추스르고 행사 준비하기에는 11월쯤 진행하는 게 맞았을 겁니다. 이미 조직위가 설립되던 시점부터 11월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능 이후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운 날씨에 대한 부담을 안기 싫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지스타 전신인 카멕스는 더 늦은 겨울에 열렸었으니까요. 아주 큰 잘못은 아니지만, 처음 정한 11월 둘째 주를 고집한 것은 '일관성'보다는 '고지식함' 또는 '무신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2008년엔? 아직 결론 난 것은 없습니다만, 5월 이전설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습니다. E3가 유명무실화한 상황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아이디어죠. 관중몰이를 위해 방학에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날씨가 너무 더운 점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
3. 비용
부스 비용이 비싸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E3나 도쿄게임쇼와 비교해 비싼 것은 아닙니다. 다만 비용 대비 ‘효과’에 문제가 있는 것이죠. 효과는 홍보효과, 즉 관중몰이와 동의어입니다. 관중몰이는 장소의 문제와 직결되죠. 위에 적었듯 장소의 문제로 조직위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효과’가 적다면 ‘업체 부담’도 줄이는 게 맞습니다. 업체들이 결성한 단체가 중심에 선 E3나 도쿄게임쇼와 달리 정부가 주도로 하는 행사인만큼, 정부가 팍팍 밀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걸로 조직위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그 위에 있는 조직, 즉 예산을 주는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에게 항의를 해야 할 문제지요. 조직위는 당연히 예산을 많이 따고 싶겠죠. 하지만 받고 싶은 만큼 받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물론 주어진 예산과 지자체의 후원금, 그리고 부스 비용만으로 행사를 진행하려고 한 조직위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나흘 간 게임을 좋아하는 15만 명이 거의 하루 종일 있는 행사라면 소비재 마케터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마케터가 아니니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지 말이죠. 그렇게 번 돈으로 게임업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정도의 추측만 할 뿐입니다.
이런 부분을 못 했다고 조직위를 탓할 수 있습니다만, 그건 조직위의 상황을 먼저 이해한 뒤에 해야 될 문제 같습니다. 조직위 입장에서는 B2C관 유치와 B2B 준비가 우선사항이었을 테고, 인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다양한 협찬활동을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정부가 주도하는 행사인 점도 고려해야 할 테고요.
2008년엔? 코엑스에서 하면 ‘효과’ 부분은 올해보다는 나아질 수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후원해준다면 게임업체들의 부담이 다소 줄어들 수도 있겠죠. 협찬 부분은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야를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좀 가르쳐주세요. ^^;; |
4. 운영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조직위의 전문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임업체의 현실을 잘 인식하지 못해 게임쇼의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모바일 업체의 경우 공동관 형식으로 나올 수 있었다면, 출전하는 업체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이 밖에도 운영상에 꽤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직위의 전문성 부족이 ‘반쪽’ 짜리 행사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너무 지나친 듯합니다. 콘솔 유저 입장에서는 서운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유명 콘솔 메이커나 콘솔/패키지 위주의 해외 퍼블리셔는 조직위가 바뀐다고 해서 많이 참여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보다는 시장이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2004년대 YBM시사닷컴이 게임사업에서 철수한 것은 전문성 부족 탓은 아닙니다. 저도 도쿄게임쇼가 5년 안에 망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고요.[관련기사] 태평양 건너에서 먼저 그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요….
제가 만난 해외 업체 관계자들은 B2B관에 대해서는 대부분 만족해 했습니다. B2C에서는 고전했지만, B2B쪽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엔? 이렇게 심하게 두드려 맞고 있으니까, 내년에는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소가 바뀌면 '반쪽'보다는 조금 커질테고요. |
5. 걸스타
솔직히 ‘걸스타’라는 오명을 쓴 것은 지난 해 경쟁적으로 과감해진 업체들과 이를 관리하지 못한 조직위의 원죄입니다. 하지만 올해도 ‘걸스타’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심합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니, 게임쇼에 게임만 있으면 됐지 부스모델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전시회가 문제겠죠.
제 개인적인 느낌, 그리고 지난 해와 올해를 모두 경험한 지인들의 판단으로는, 올해는 절대 ‘걸스타’라 부를 만한 지스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는 부스모델 위치 등 일부 ‘주객전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체감수준으로는 지난 해에 비해 10분의 1 정도로 얌전해졌습니다. 지난 해와 올해의 비교만으로 납득하지 못할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제가 경험한 E3, 도쿄게임쇼, 차이나조이 등과 비교해서도 아주 무척 얌전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걸스타’라고 비아냥대는 것은 '흠집 내기를 위한 흠집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진 것은 나아졌다고 이야기해야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엔? 연예계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인기모델 이가나 씨는 계속 나올 겁니다. 레이싱 모델들을 섭외하려는 게임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은 계속 될테니까요. 다만 올해 호평을 받은 엔씨소프트의 부스 도우미처럼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 역할보다 시연대에서 가이드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모델들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