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나온다. 초심자에게는 대상에 대한 이해도 숙련도도 없는데, 정작 자신은 그 무엇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운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연금술사>는 대략 주인공 산티아고가 초심자의 행운 덕을 보고 여정을 떠났다가 생고생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지스타는 그 초심자의 행운이 강하게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 콘텐츠가 부족하고, 관객이 보이지 않고, 비즈니스 미팅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는 말이 들려오고, e스포츠경기장이 다 지어지지 않아도 뭐라 그러기 애매하다. 역대급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병행 방식의 지스타는 어느 누구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난 지금, 그런 애매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올해 부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볼거리는 지스타보다는 개막 전날 열렸던 대한민국 게임대상이다.
넥슨과 넷게임즈의 <V4>는 오리지널 IP로 '언더독'을 자처하며 출사표를 던졌고, 한해 내내 매출 상위권을 기록했다. 그리고 게임은 그 이름처럼 4관왕(대상, 사운드, 그래픽, 캐릭터)의 영예에 올랐다. <바람의나라: 연>이 인기상과 스타트업 상(슈퍼캣), 피파퍼블리싱그룹이 e스포츠 발전상을 받으면서 넥슨은 7개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기자가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지점은 중소·인디 게임이 여러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우수상은 클로버게임즈의 <로드 오브 히어로즈>가 받았으며, 압도적인 유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111%의 <랜덤 다이스>와 네오위즈의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는 우수상을 받았다. <MazM: 페치카>는 굿게임상을 받았으며,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가 인디 게임상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게임대상 수상 결과를 돌아보면, 올해 상당히 많은 중소·인디 개발사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확인된다. 코로나19로 대형 게임사의 개발 일정이 제대로 준수되지 못해서 작은 규모의 업체들에 상이 돌아갔다기보다는 오래도록 준비해온 작은 게임들이 게이머와 심사위원단에게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드문 콘솔게임 신작 <베리드 스타즈>가 우수상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직위는 나흘간 약 85만 명의 시청자가 지스타TV를 시청했다고, 그들의 새로운 도전은 뜻깊었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온라인 중심, 오프라인 병행 방식의 지스타 본 행사에 대한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이병헌이 <브롤스타즈>에 이어 <미르4>의 광고 모델이 됐고, <오딘: 발할라 라이징>의 새 트레일러가 놀라운 퀄리티를 자랑했다. BIC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코스프레 어워즈의 심사에도 치명적인 문제는 없었으며 송재경 대표 등이 출연한 컨퍼런스도 들을 내용이 많았다.
그럼에도 기자는 지스타TV를 흥미롭게 보지 못했다. 외려 2층 기자실에서 바로 1층에서 열리는 행사를 트위치로 보고 있으니 '현자타임'마저 왔다. 토요일 오후까지 기자실에 앉아 행사를 보고 있을 때도 깜짝 놀랄 만한 새 소식이나 궁금증이 드는 뉴스는 없었다.
올해도 지스타에는 스트리머나 인플루언서가 여럿 출연했다. 수년 전부터 이어지는 트렌드다. 기업별, 개인별 채널로 분산됐던 것이 지스타TV로 정돈된 느낌은 들었다. 당연히 그 프로그램을 재밌게 시청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게임쇼인가 인플루언서의 무대인가라는 질문 역시 계속 나오고 있다.
기자는 행사 기간 중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산 시민의 말을 들어봤다.
예년과 달리 벡스코에서 택시 잡기는 어렵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올해 지스타를 하는지도 몰랐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벡스코 앞에서 줄을 서고 있으면 금방 호텔이나 해운대, 부산역, 김해공항으로 사람들을 실었는데 올해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매일 저녁 업계인들의 만남으로 북적이던 해운대도 썰렁했다. "인사하느라 걷기조차 힘들었다"던 너스레는 무용담이 되어버렸다. 해운대 모 술집의 사장은 "손님이 없어 죽을 노릇"면서도 "그래도 타지에서 사람이 몰려와 (코로나19로) 난리가 나는 것보단 낫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마침 한 확진자가 해운대 아쿠아리움을 들렀다는 재난문자가 온 날이다.
사실 10월~11월은 여름 성수기를 보낸 해운대 상권이 맞이하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지스타는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해운대 빛축제를 비롯한 여러 축제가 몰리는 기간인데 안타깝게도 정상적으로 열린 축제는 하나도 없다. 다른 상인은 "내년에도 이러면 장사 접어야 할 판"이라며 대목을 날린 아쉬움을 전했다.
벡스코의 현장 요원은 작년보다 '꿀'알바를 하고 있는 걸까? 물었더니 "마스크만 쓰고 다녔지 위에 선캡까지 써본 건 처음"이라고 답변했다. 이어서 "사람이 없어 일하기 편하지만 심심하긴 하다"고 이야기했다. 현장 아닌 현장을 지키는 요원의 말이었다.
전시장에 '부스'라고 부를 만한 곳은 특설 무대와 BIC 쇼케이스 두 곳뿐이었다. 적지 않은 현지 기획, 대행사들이 일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기자가 만난 현장 요원도 운이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얻은 편이었다.
머무는 호텔의 컨시어지 데스크에서는 "이맘때면 외국인 손님 응대도 많고, 캐리어도 많이 맡기는데 올해는 정말 한산한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 공실이 얼마나 되느냐, 호텔 가격이 얼마나 저렴하게 나왔냐 같은 말은 묻지 않고 캐리어만 받아서 나왔다.
판데믹만 끝나면 지스타는 다시 지역과 상생할 수 있을까?
이번 지스타는 최초로 센텀시티 권역 바깥에서도 행사를 열었다. 삼정타워에 부산e스포츠경기장(BRENA, 브레나)를 열면서 게임대상과 e스포츠 행사 '지스타 컵'을 서면으로 옮긴 것이다.
원래 같은 상황이었다면 새로이 문을 연 공간을 알린다는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브레나는 행사를 앞두고도 계속 공사 중이었다. 기자가 실제로 지스타 컵 경기를 앞둔 열릴 21일 낮 삼정타워에 들렀는데 행사 4시간 전에도 계속 공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곳으로 입주한 부산정보산업진흥원 관계자를 만나러 갔지만, 아쉽게도 사무실에선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21일 밤 열린 지스타 컵은 무사히 완료됐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소프트 론칭'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기엔 화장실도 문을 열지 않았고 곳곳에 분진이 날렸다. 이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스타의 분산 개최는 가뜩이나 떨어지는 현장 행사의 주목도를 더 떨어뜨리는 결과가 됐다. 우려와 달리 아무런 사고도 안 났으니 다행일 뿐이다.
박성훈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개막식에서 "우리 시는 앞으로도 지스타의 든든한 파트너로서 지스타를 세계 최고의 게임전시회로 키워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강신철 지스타 조직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도 사실 오프라인 개최의 욕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부산시와 조직위는 가급적 부산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최선책으로 꼽고 있다. 초심자의 행운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물론 그 전에 반드시 코로나19가 종식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