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20년 12월, 한창 코로나로 전 세계가 멈춰있던 그 시기에. 일본에서는 본래 열렸어야 했던 '코믹마켓' 겨울 행사가 취소되고, 대신 '에어 코믹마켓' 이라는 온라인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 때 한 국산 게임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굿즈를 판매하며, 게임을 홍보했다. 하지만 알려진 IP도 아니었고, 무언가 캐릭터들의 디자인이 특출나게 눈에 띄지도 않았고, 하다 못해 노출이 심한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게임에 대한 관심은 처참할 수 밖에 없었다. 관계자가 회상하길 당시 이 게임의 굿즈 판매량은 모두 합쳐서 채 200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장면 2.
약 2년 8개월이 지난 2023년 8월. 코로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여름 코믹 마켓이 정상 개최되었다. 코믹 마켓은 일본, 아니 전세계 서브컬처 문화에 있어서 일종의 '상징' 같은 행사고, 2023년 여름 코믹마켓(C102)는 이틀간의 개최 기간 동안 26만 명의 관람객이 모이면서 그 위용을 다시 한 번 뽐냈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한 국산 게임이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타이틀 중에 하나인 <페이트/그랜드 오더>(정확히는 타입문) 보다도 많은 서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유명 작가나 서클에서는 준비한 굿즈를 '완판' 했다는 공지가 속속 올라왔고, 트위터 등 SNS에서는 어딜가나 그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굿즈 200개를 채 팔지 못했던 게임, 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일본 최고의 인기 게임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국산 게임. 그 게임의 이름은 <블루 아카이브>다.
일본 코믹마켓은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2차창작' 회지(만화, 동인지) 및 각종 동인 굿즈의 판매가 메인인 행사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인기 높은' 타이틀의 참여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전세계 서브컬처 시장을 선도하는 일본의 트렌드를 알아볼 수 있다는 데서 주목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행사에서 <블루 아카이브>는 정말 당당하게도 '주역' 중에 하나로 자리잡고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단순히 참가 서클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섭씨 35도가 넘어가는 더운 날씨 속에서 일반 관람객들이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복장을 입고 오는 경우를 손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와 열기가 뜨거웠던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이런 일본 내 게임의 인기가 '시간이 지날 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블루 아카이브>는 지난 1월에 일본 서비스 시작 2년 만에 처음으로 양대마켓 매출 순위 1위를 달성했다. 서비스 2년이 지난 게임이 '뒤늦게' 1등을 차지한다는 것은, 게임이 순수하게 인기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7월 말에는 '2.5주년' 기념 업데이트로 다시 한번 호평을 받으면서 매출 순위 1위를 다시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인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활동유저(액티브 유저) 또한 시간이 지날 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지금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게임이 일본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업계 관계자들이나 게이머들이나 모두 '스토리'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 게임 업계 관계자는 "이야기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학원물' 이라는 콘셉트가 살아 있어서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정석일 수도 있지만, 정말 많은 유저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다" 라고 호평하고 있었다.
이 게임의 총괄 PD인 김용하 PD는 이전부터 인터뷰 등을 통해 "과연 <블루 아카이브>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꾸준히 스토리 진도를 나가면서 선생님들(게임 속 유저)의 호응을 얻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유저들에게 감사를 전한 적이 있다.
그 말 그대로 <블루 아카이브>가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결국 스토리에 대한 유저들의 자발적인 '호응'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일본에서 이런 식으로 스토리 면에서 유저들의 마음을 붙잡은 게임은 장기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블루 아카이브> 또한 앞으로의 전망이 밝다.
<블루 아카이브>의 인기는 사실 코믹마켓 뿐만 아니라, 일본 게이머들의 '일상'에서도 손 쉽게 체감이 가능하다. 흔히들 서브컬처 문화의 '본거지'라고 일컬어지는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 전자상점가를 가보면 다양한 가게에서 <블루 아카이브> 관련 서적, 굿즈 등의 상품을 정말 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다양한 업종 및 가게와의 '콜라보레이션' 제의 또한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고, 성사된 경우에는 그 인기 또한 엄청나게 높다고 한다. 실제로 <블루 아카이브>는 지난 해부터 아키하바라의 쇼핑몰, 라면 가게, 사격장, 미술관 등. 수많은 업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고 하나 같이 커뮤니티 및 SNS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코미케 기간에는 도쿄 인근의 한 온천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업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인지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 <블루 아카이브>는 'TV 애니메이션' 제작이 결정되어 이르면 2024년부터 방영이 시작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니메이션이 화제가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게임을 넘어서 IP에 대한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에서 만든 서브컬처 게임, 서브컬처 IP가 일본에서 이렇게 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주목하게 만든다. 과연 <블루 아카이브>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성장을 계속 지켜보는 것도 여러 의미로 흥미로울 것이다.
장면 3.
<블루 아카이브>는 8월 2일부터 8월 31일까지, 도쿄 인근의 한 온천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 방문객들에게 <블루 아카이브> 관련 특별 굿즈를 제공하고, 또 특별한 음료와 음식을 판매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이 온천에서는 '혼잡'을 이유로 하필이면 '남성' 손님의 입장을 제한한다는 공지가 수시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혼잡의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블루 아카이브>의 플레이 유저 중 남녀 성비는 8:2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동시에 콜라보레이션 굿즈 및 음식의 판매 중지 공지도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