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문출판총서(이하 신문출판총서). 게임에 관심 있다면, 익숙한 이름입니다. 외국 국가기관 중 이런 곳은 유일합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고, 화제가 됐던 탓이겠죠.
그런데, 이 곳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무척 빈약합니다. 엄청난 영향력에, 화려한 루머까지 떠돌았지만, 국내 매체가 취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겁없는 TIG도 몇년 전 지인을 통해 시도해봤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죠.
그럿 탓이었을 겁니다. 몇몇 한참 지난 사례를 기반으로 한 각종 루머들이 여전히 힘을 쓰고 있는 까닭은요. 이 곳에서 발급하는 판호가 한국 개발사가 중국 퍼블리셔에 묻는 FAQ(자주 묻는 질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겠죠.
이런 어벙한 상황에, 텐센트 코리아를 통해 솔깃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국내 주요 게임웹진 편집장들과 신문출판총서의 온라인게임 책임자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지난 3월 22일 베이징에서 마침내 신문출판총서를 만났습니다.
솔직히, 큰 특종은 기대 안 했습니다. 네, 예상은 여지없이 맞았습니다. ^^;
그래도 그 자체로, 그리고 또 몇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참에 신문출판총서와 판호에 대한 허접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베이징(중국)=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기자
신문출판총서에 대한 기억들
중국 신문출판총서는 온라인게임의 ‘판호’(版號, 출판번호), 즉 서비스 허가번호의 발급 기관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이를 위한 사전심의를 진행하는 곳이죠. 그런 바다 너머 기관이 어떻게 국내에 잘 알려지게 됐을까요?
이 곳의 이름은 먼저 업계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바로 ‘악명’을 얻었죠.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판호가 꼭 필요한데, 이걸 얻기가 좀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요즘은 별로 안 들리지만, 5~6년 전만 해도 판호가 안 나와 골머리 앓는다, 심지어 문 닫는다는 업체 소식이 드문드문 들렸습니다.
실제 2004년 신문출판총서가 개최한 게임산업발전보고 회의에서는 ‘특정한 국가(한국, 편집자 주)의 게임이 중국 게임시장을 독점할 수 없도록 정책을 동원하여 자국의 민족 산업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되기도 했죠. 그 뒤 1달에 2개의 쿼터(quota, 한도)가 있다느니, 메이저 업체만 1년에 2~3개씩 쿼터를 받는다느니, 하는 미확인의 풍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신문출판총서라는 이름을 국내 게이머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일조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중국에서 판호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한편, 게이머들에게 신문출판총서는 2009년의 ‘<WoW> 중국 서비스 중단 사태’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흥미진진했죠. <WoW>를 놓고 다툰 더나인과 넷이즈의 대결. 그 뒤에 있는 국가기관들의 힘겨루기. 그 덕분에 <WoW> 서비스가 중단된 일은 우리 게이머들에게도 ‘강 건너, 참 신기한 불구경’이었습니다.
그후 신문출판총서는 온라인게임 판호 발급기관의 입지를 계속 가져갔고, 여전히 차이나조이와 게임산업발전보고 등을 주최하고 있습니다.
신문출판총서의 정체
대학교 1학년 때 ‘방송학과도 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과 이름이 ‘신문학과’였기 때문이었죠. 한자 신문(新聞)은 원래 ‘뉴스’를 뜻합니다. 넓게 보면, ‘신문, 방송을 포함한 언론 미디어’를 포괄하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과명(科名)을 그렇게 지은 것이었죠. 이후 저희 과는 '언론정보학과'로 개명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포인트는 ‘신문출판총서’가 온라인게임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포괄해 중국의 모든 언론과 출판물, 영상, 음반물 등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맡는다는 점입니다. 2000년에 정부급(正部級)으로 승격된 국무원 직속기구로, 국가판권국을 겸하고 있죠.
제가 만난 장화이하이 처장은 신문출판총서의 [과학기술 및 디지털출판관리사(司)] 산하 [인터넷출판처(處)]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처가 국산 및 외산 온라인게임의 사전심의를 담당하고, 판호를 발급해 주는 곳이죠. 중국에서는 게임도 사상을 담은 출판물의 일종으로 여기며, 사전심의와 판호를 필수로 하고 있습니다.
신문출판총서 공식 홈페이지(//www.gapp.gov.cn) 내 음향전자 및 온라인출판관리사 페이지.
이 곳의 힘을 우리 정서로 판단하면 곤란합니다. 중국은 엄연히 공산당이 지도하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는 늘 언론과 출판을 확실히 장악하려고 합니다. 당 또는 정권의 가치나 정책은 언론과 출판을 통해 전달되니까요. 또 그에 위배되는 내용이 유포되면 곤란하니까요.(방송 3사(MBC, KBS, YTN)와 국내 최대 통신사(연합뉴스)의 파업,<무한도전>의 9주 결방 등은 이게 다른 나라, 다른 시절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죠. 군사정권 시절은 더했습니다. 언론통폐합과 기자대량해직에, 보안사나 안기부 직원들이 어느 언론사나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죠.)
그래서 그런 체제 아래에서 언론과 출판을 관리, 감독하는 부서의 힘은 크게 마련입니다. 신문출판총서가 국무원(행정부 최고기관) 직속기관인 이유이자, <WoW> 판호를 놓고 문화부와 벌인 싸움에서 이긴 배경이기도 하죠.
한국 매체 曰 “판호, 판호, 판호”
신문출판총서와의 첫 만남. 한국 매체의 질문은 당연히 한 가지 주제로 몰렸습니다. 판호를 둘러싼 과거의 소문을 확인하고, 판호의 범위, 발급 프로세스 등에 대해 물었죠.
모든 플랫폼의 게임 판호는 신문출판총서가 발급하는가?
>게임에 대한 판호는 국무원(행정부) 기관 중 유일하게 신문출판총서에서만 발급할 수 있다. PC나 콘솔, 온라인,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판호를 발급한다. 모바일게임이나 소셜서비스에 붙은 게임, 퍼즐 류의 미니게임은 아직 판호를 주지 않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모바일게임에 판호를 주지 않는 이유는? 미니게임의 기준은?
>게임산업 초기에는 클라인언트 기반 온라인게임이 주류여서, 프로세스가 확실히 갖춰졌는데, 산업이 발전하면서 생겨난 모바일게임이나 개발 주기가 짧은 소셜게임(SNG) 같은 경우 프로세스 자체가 확실히 잡혀 있지 않다.
모바일게임의 심의나 판호는 따로 없는데, 몇몇 업체는 판호를 달라고 신청한다. 그런 경우 예술성이 있으면 판호를 주기도 했다. 그런 것 없는 간단한 (퍼즐 류의) 게임은 판호를 줄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 온라인게임 심의 및 판호를 책임지고 있는 장화이하이 처장.
게임 심의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 예를 들면 MMORPG는?
>공식적으로 접수 80일(업무일 기준) 안에 처리가 된다. 콘텐츠 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WoW> 같은 경우는 양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국 법규나 정서에 맞지 않으면 수정을 요청하는데, 그 과정은 80일 내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도 한다. (인터뷰와 별도로, 수정이 요청된 사항은 1달 내로 제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한국 게임 또는 외산 게임 판호에 쿼터(quota)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
>혹시 몇 개까지 쿼터가 있다고 소문을 들어봤나? 그저 소문일 뿐이다. 그런 정책도 없고, 그런 일 자체도 없었다. 정부가 전체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2년여 전에 인력 부족 등으로 심사가 오래 걸린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는 아무 문제없었다. 외산 게임 심사에 있어서 내용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퀄리티 있는 외산 게임은 판호를 받는 데 문제없다. (상대적으로 외산 게임이 심의 중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규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니까요. 또 해외 개발사와를 설득하는 문제, 해외 개발사의 우선순위 문제 등으로 중국산 게임보다 판호를 받는 시기가 늘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편집자 주)
게임 심의 담당 인원과 지난해 심의한 게임의 수는?
>공무원 자체는 3명이지만, 전문가 팀이 50명으로 구성돼 있다. 외산게임과 국산게임을 포함해 지난해 총 심사한 게임이 500여 개 된다. 그중 외산게임은 총 41개가 판호를 받았다.
41개가 판호를 받았다고 하는데, 외산게임은 몇 개나 판호를 신청했나?
>이렇게 보면 된다. 신청해서 대부분 다 판호를 받았다. 2년 전에는 확률이 낮은 편이었다. 요즘은 못 받는 게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내용에 큰 문제가 없으면 수정 등의 과정을 통해 거의 다 해결된다. 가끔 가다가 유럽 쪽은 순수한 폭력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있어서, 판호를 못 받기도 한다.
한국 게임이 중국 판호 받으려면 주의해야 할 사항은 어떤 게 있는가?
>중국 법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된다. 그러려면 중국 법규를 잘 알아야 하는데, 신문출판총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 나와 있다.
신문출판총서 曰 “협력, 협력, 협력”
그 동안의 답답함을 풀듯 한국 매체는 계속 판호만 물고 늘어졌죠. 반대로 신문출판총서 쪽은 계속 판호만 물어보니 갑갑했던 모양입니다. 중국 게임과 시장을 홍보하고 싶었는데, 주제가 계속 한쪽으로 몰렸으니까요.
판호 질문이 이어지자, 장 처장은 “양국 게임산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우리가 중국에서 한국 게임을 많이 홍보해주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중국 게임 산업을 많이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장 처장의 왼쪽은 중국게임산업협회 리우지에화 회장. 리우 회장은 또한 인터넷출판처 부처장이기도 하다. 정부의 영향력이 강한 중국의 상황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간단한 한국 측 질문에 대해서도 몇 분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의 바람과 달리 그 후에도 판호 질문이 이어졌지만, 질의응답 틈틈이 그는 두 가지 메시지를 내비쳤습니다.
1) 중국 게임산업의 성장
먼저 장 처장은 한국 온라인게임에 대한 칭찬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 수입된 최초의 외국 게임이 <미르의 전설 2>다. 한국 게임이 중국에서 인기가 매우 좋고, 앞으로도 훌륭한 게임이 들어와줬으면 좋겠다. 중국은 좋은 콘텐츠와 기술에 오픈돼 있다.”
하지만, 바로 중국 게임의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중국에서 게임산업이 발전한 지 13년쯤 됐는데, 초반에는 외산 게임이 주로 서비스되다가, 이제 중국 자체 개발 게임이 많이 서비스되고 있다. 2011년에 온라인게임이 428.5억 위안(약 7.7조 원), 모바일게임이 17억 위안(약 3,05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들어 모바일과 웹게임의 발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역사도 길고, 문화도 많아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만들 수 있다. 또한 5~10년 전과 달리, 네트워크 환경과 개발기술도 많이 발전했다. 게임산업 자체가 좋은 성장기에 있다.”
2) 한중 간의 게임개발 협력
중국 게임산업과 시장의 성장을 바탕으로, 장 처장은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외부에서 봤을 때 중국 하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다. 좋은 기술과 콘텐츠가 있으면 서로서로 교환했으면 좋겠다.”
중국 게임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죠. “중국 게임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서로 배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많은 협력을 통해 양국 게임이 더 많이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계속 협력을 강조하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를 물어봤습니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들은 세제 혜택 등 국가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어떤 도시를 가느냐에 따라 지방마다 우대 정책이 다르다. 신문출판총서의 역할은 투명하고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이고, 각 지역들은 자기들만의 지원정책이 있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와는 다르다.”
판호에만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 자리에 들어간 국내 매체에게 중국 게임산업의 성장과 상호협력을 강조하는 부분이 뜻밖이었습니다.
판호, 로비와 꽌시 이야기
서로 엇갈리는 질의응답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만 과거형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닐까? 저쪽은 이미 미래형으로 달리고 있는데.’ 그래서 왜 이런 간극이 생겼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불편했습니다. 인식지체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달까요.
제 기억 속 판호에 관한 가장 ‘쎈’ 이미지는 골프백입니다. 꽤 옛날 일이라지만, 자극적이어서 그럴 겁니다. 잘 안 잊혀집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도 가끔 봤으니까 연상도 잘 되고요. 술자리 안주거리로 반복적으로 이야기되기에도 제격이죠.
대강 얼개는 이렇습니다. ‘담당자에게 사적인 로비(뒷거래)를 어떻게, 얼마나 했고, 그에 따라 발급 여부와 시기가 결정됐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실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도 행사 협찬이나, 혼인상제 인사 수준의 영업(?)은 있겠죠.
결은 꽤 다르지만, 판호에 대한 고전적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중국 대형 퍼블리셔의 베이징 사무실이죠. 텐센트나 샨다 등 중국 메이저 업체들은 본사가 각각 선전과 상하이에 있지만, 모두 베이징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정부, 특히 신문출판총서와 소통하고, 관리마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중국은 지방 정부의 힘도 커서 선전과 상하이 등에도 지방정부 관계를 위한 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큰 회사에는 GR이라는 이름의 부서가 있죠. Government Relations의 약자로, PR의 Public 대신 Government를 씁니다.)
2000년 초중반 ‘메이저 업체의 판호 쿼터’라는 (정황은 있으나 확증은 없는) 루머 뒤에는 이 사무실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습니다. 무언가 ‘그들만의 리그’ 혹은 ‘카르텔’ 느낌이 물씬 풍겼으니까요. 실제 일부 메이저 퍼블리셔가 ‘판호 어드밴티지’를 내세우며 한국 게임회사에게 어필하려던 시절도 있었고요.
‘판호 쿼터’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 사무실들의 역할은 현재진행형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사업에서 ‘꽌시’(관계)라고 불리는 영역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실제 이 곳을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고, 생각을 주고받기도 하겠죠. 베이징 사무실의 ‘꽌시’가 없었다면, 이번 한국 매체와 신문출판총서의 만남은 불가능했을 거고요.
‘로비’나 ‘베이징 사무소’ 같은 무언가 은밀한 프레임은 자극적입니다. ‘후진국’ 중국은 씹기도 좋고요. 잘 몰라도,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편하고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인식의 지체현상을 겪었는지도 모릅니다.
판호, 정치적 의미와 산업적 고려
앞서 언급했듯, 판호는 국가 주도적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집니다. 꽌시나 로비 전에, 체제의 규범과 룰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고, 절대적입니다.
국무원 직속이라는 신문출판총서의 성격과 함께, 이번 미팅에서 확인한 ‘미니게임의 판호 없음’은 그 자체로는 판호의 정치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판호는 기본적으로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국 정부의 미디어 관리 차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런 부분을 담당자가 함부로 처리한다면 큰 탈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온라인게임 산업 초기에는 심의 기준 등 룰 자체가 확고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관계당국에게 온라인게임이 낯선 것이었을 테니까요. 이럴 경우, 담당자의 자의적 기준이 중요했을 수 있고, 로비 또는 뒷거래의 영향력이 클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산업의 규모가 작았던 초창기에는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거고요.
하지만, 산업의 발전과 함께 룰이 정해지면, 담당자의 자의적 결정권은 옅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거대해진 산업의 규모에 따라, 시스템적인 감독이나 관리도 강화될 것이고요.
이제 중요한 건, 그 룰을 잘 파악해서 맞추는 것이 됩니다. 베이징의 사무실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죠. 꽌시와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판호 발급 조건, 프로세스 등에 관한 노하우는 메이저 퍼블리셔의 장점일 겁니다. 하지만 그게 필수조건은 아니죠. 물론 경험과 관계가 없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위험성이 높겠지만요.
정치적 규범성과 함께 판호의 산업적 맥락을 간과하기는 어렵습니다. 신문출판총서는 우리의 ‘게임물등급위원회’와 달리, 중국 게임산업의 발전도 목표로 삼고 있는 곳이니까요. 차이나조이와 게임산업발전보고 등을 개최하는 것이나, 이번 미팅에서 “한국과 중국과의 협력” 등을 지속적으로 어필하려고 했던 것은 다 같은 맥락이겠죠.
중국 온라인게임 산업 초창기에는 그 시절의 산업적 목적을 위해 판호의 활용이 더 강력했을 수 있습니다. 외산 게임에 대해 좀더 엄격한 규범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었겠죠. 룰이 확고히 자리 잡지 않았거나, 룰을 잘 모르던 탓에, 의도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판호를 못 받거나, 늦게 받는 업체도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최근의 산업적 맥락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중국 온라인게임이 자신감을 가졌고, 메이저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신문출판총서가 “한중 게임산업의 협력”을 위한 미팅에 나설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고, 그들의 역할을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추측, 혹시 막후 뒤에서는…
이번 미팅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이야기는 게임 심의 및 판호의 발급, 게임산업을 관리, 감독하는 인터넷출판처의 공무원이 3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3명이 온라인게임 산업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죠.
그때 문득, 과거 참여정권의 인수위원회 시절 삼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200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는 5년 간의 국정과제를 세우는 작업을 했는데, 삼성경제연구소에도 70명의 연구원들이 국정 아젠다를 만드는 똑같은 일을 했었죠. 그 아젠다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산업의 발전에 따라 거시적 국정과제마저 사기업의 전문성에 의존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던 부끄러운 일화죠.
초창기부터 인력과 전문성이 부족한 신문출판총서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겁니다. 온라인게임이 초보자 어른에게는 오죽 어려운 분야 아닙니까. 특히 베이징에 사무소가 있는 메이저 업체들의 큰 그림을 짜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죠.
2000년 초중반 외산 게임의 쿼터가 있었다면, 명분은 자국 게임 개발력의 증대였겠지만, 수혜의 상당 부분은 분명 메이저 퍼블리셔들에게 돌아갔을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60~70년대, 국산영화의 부흥을 위한다며 제한된 외화 수입권을 특정 영화사에 줬던 것과 비슷한 거죠. 군사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화(반공영화, 새마을영화)를 만든 업체들은 큰 이익을 쉽게 챙길 수 있는 외화 수입권을 얻었으니까요.
60~80년대 쇼비즈니스와 정치의 세계를 다룬 MBC 미니시리즈 <빛과 그림자>에서 영화계 실세로 등장하는 이휘향(송미진 역). 청와대 라인에게 찍혀 외화수입권을 잃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문출판총서 입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산업자본의 축적과 별도로, 메이저 업체 중심의 재편이 정치적 관리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심의나 정부 정책과 관련된 관리, 감독 등을 하기에 메이저 업체들이 편할 테니까요. 큰 업체들일수록 큰 리스크를 지려고 하지 않고, 몸을 더 잘 사리는 편이고, 정부의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을 테니까요.
추측일 뿐입니다. 신문출판총서의 게임 관련 판호 및 산업 정책은 메이저 퍼블리셔들의 밑그림에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것 말이죠. 이를 통해, 신문출판총서는 국가적 규범을 안정화하며, 자국 게임산업을 육성할 수 있었고, 메이저들은 자본의 축적을 통해 확고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제 그 단계는 완성된 것 같습니다. 다음 단계에 이미 들어섰겠죠. 그 단계에 필요한 것 중 하나를 이번 미팅에서 이야기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윈윈할 수 있을까요? 중국 정부와 메이저 업체들이 윈윈했듯이.
모자란 글, 몇 가지 판호 관련 팁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 이미지 관련
- 게임배경: 건축물이나 주요한 위치에 해골, 시체 등의 이미지가 들어가면 안 된다.
- NPC: 팬더 등 국보급 동물은 NPC로 설정할 수 있지만, 펫이나 몬스터로의 설정은 피해야 한다.
- 몬스터: 중요한 배경설정을 위해 해골 NPC가 나오는 것은 가능하나, 몬스터, 마크 디자인 등에 해골은 피해야 한다. 몬스터의 몸체에 선홍색을 사용하면 안 되고, 사냥할 때 피가 튀거나 빨간색 이펙트도 안 된다. 눈이 튀어나오거나, 도끼가 박히는 공포 요소, 몬스터 디자인상 뼈가 보이는 것 등은 피해야 한다.
◆ 콘텐츠 관련
- 중국 정부의 통제나 사회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는 불가하다.
- 범죄 및 약물(마약) 사용 내용은 없어야 한다.
- 저속어, 비속어, 외국어는 없어야 한다.
- 사행적, 선정적, 폭력적 요소는 중국 법규의 표준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