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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취재수첩] 확률형 아이템 집중조명, 그 뒷이야기

안정빈(한낮) 2015-04-13 15:31:37

4월 7일 디스이즈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집중보도를 시작한 이후 많은 반향이 있었습니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칭찬을 해준 유저들도 있었고, 실상을 전혀 모른 채 작성된 기사라거나 거짓으로 가득한 기사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트위터에 실명이 거론되고 정부와 유착관계를 의심받는 명예(?)도 누렸네요.

 

하고 싶은 이야기 많았습니다. 7일 기사에서 쓰지 못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아까운 것도 있었고, 취재 이후 진행된 일도 있었죠. 취재 과정이나 뒷이야기 등 4월 7일 집중보도 때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취재수첩을 통해 조금 더 풀어볼까 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김진수 기자


 

안정빈 기자 가장 시끄러웠던 일주일을 보내며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하지 않냐?”

 

오랜만에 술자리에서 만난 게임업계 친구에게 필자가 던진 말이다. 지난해 모처럼 만난 친구이자 제보자는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개발 중인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실시간으로 바꾸고 있고, 때때로 당첨자가 아예 없는 아이템도 내놓는다는 것이다.

 

친구는 확실한 내부자료를 보여줬고, 심각성을 인지한 필자는 다른 업체까지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는 쉽지 않았지만 시간을 들인 결과 상당수 개발사가 자체적인 필요에 따라 정해진 절차 없이 확률형 아이템의 ‘당첨확률’을 바꾸고 있고, 일부 개발사는 확률과 상관없이 당첨자를 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규모가 조금 큰 개발사들을 조사하고 있을 때 김진수 기자도 확률형 아이템을 개인적으로 조사 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 기자가 확률형 아이템 취재를 시작한 건 2014년 초였다.

 

곧장 내부에 보고했다. 때마침 법안 발의와 함께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시작됐다. 디스이즈게임도 시기에 맞춰 기획을 준비했다. (졸지에 후배가 집중 취재 중인 기사를 빼앗은 모양새가 됐지만) 아무튼 그 결과가 이번 확률형 아이템 기획이다.

 



■ 취재를 통해 파악한 실상

 

기사에는 여러 이유로 쓰지 않았지만 취재과정에서 수집한 확률형 아이템을 위한 몇 가지 노하우(?)를 공유한다.

 

1. 일정 금액마다 최고등급의 아이템이 ‘꼭 한 번' 나오도록 정해 놓는다. 예를 들어 결제금액을 10만 원으로 끊어놨을 때, 첫 결제부터 최고등급 아이템이 나왔다면 앞으로 10만 원을 더 채울 때까지는 더 이상 최고등급 아이템이 나오지 않는다. 유저의 총 결제금액에 따라 금액단위를 다르게 가져가기도 한다.

 

2. 게임 내의 모든 유저가 뽑기 테이블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1950번째 뽑은 아이템은 캐시물약, 1951번째는 최고등급 영웅카드 같은 식으로 미리 테이블을 정해두는 식이다. 다른 유저가 언제 얼마나 지를지 모르므로 이것도 일종의 확률로 볼 수 있다. 테이블은 일단 정해둔 방식에 따라 자동으로 생성되며 개발사에서 필요에 따라 바꿀 수도 있다.

 

3. 최고등급 아이템을 일단 0%로 설정해 놓는다. 대신 최고등급 아이템을 정해진 시간에 일일이 ‘넣어준다’. 이제 아이템이 하나쯤 풀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시간을 정해두면 해당 시간에 확률형 아이템을 뽑은 유저가 그 아이템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확률은 낮추면서도 미끼상품은 만드는 노하우다.

 

4. 공개된 확률을 속인다. 1~2% 이하의 확률은 유저가 직접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확률을 몇 배로 뻥튀기해 공개한다. 해외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이 택한 방식이다.

 

물론 위의 어떤 내용도 유저에게는 고지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유저는 ‘누군가 희귀한 아이템을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며 ‘나도 가능하겠지’라는 생각에 도전할 따름이다.

 

위의 모든 사례는 국내 일부 개발사의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다. 게임을 아예 접하지 않는 유저가 아니라면 최소한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개발사의 이야기도 섞여 있다.

 



 

■ 예상치 못했던 일부 개발자들의 반응

 

필자가 위의 사례를 기사에 쓰지 않은 이유는 3가지였다. 첫 번째는 기사에 언급했던 사례와 달리 100%의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비록 0%라는 제목이 자극적이긴 했지만) 특정 수치나 편법이 아니라 ‘유료 아이템의 확률을 아무렇지 않게 바꾸고 있다’는 상황만으로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필자가 만난 개발자들은 하나같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상황을 가장 단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3가지 사례면 충분할 것이라 믿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일부 개발자의 반응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디스이즈게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자극적인 제목의 무리한 보도를 한다’는 반응은 (익명성을 너무 강조한 만큼) 충분히 예상했지만, ‘게임밸런스를 위해 확률을 바꾸는 건 당연하다’거나 ‘유저들이 잘 구입하고 있는 걸 왜 매체에서 나서서 뭐라고 하느냐’는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기자와 (일부!) 개발자, 유저와의 온도차다.

 

빨간 볼드체로 '일부의 이야기'라고 주의를 줬지만, 가챠 운영과 전혀 상관 없는 개발사와 개발자들도 피해를 봤다. 게임업계에는 확률형 아이템을 만들지 않는 회사도 많고, 이를 바르게 운영하는 곳도 많다. 그 분들에게는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기사에 반대하는 현직 개발자의 의견도 최대한 들어보려 한다. 현직 개발자로서 의견을 말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부탁드린다.

 



 

■ 보도는 계속된다. 

 

확률형 아이템 운영 실태에 대한 자료를 몇 가지 더 가지고 있다. 이를 기사로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보자의 안전 때문이다. 제보자의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내용의 인용은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디스이즈게임으로는 내부 정보를 제공한 제보자를 지켜줄 힘이 없다. 더 조심스럽다.

 

익명으로 쓰는 기사는 누구나 하겠다는 조롱을 받더라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익명성 때문에 발생할 형식적 신뢰성의 약점은 이번 이슈의 꾸준한 취재와 올바른 방향의 보도로 메워나가겠다.

 

지난주 필자는 몇 명의 ‘전혀 모르던 사람’을 알게 됐다. 확률형 아이템 기사를 잘 봤거나 다뤄줘서 고맙다는 개발자들이 연락해오거나 찾아왔다. 그 중에는 제보를 해주거나 자료를 주겠다던 개발자도 있었다. 정보는 얻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보도는 조심스레 사양했다.

 

비록 기사화할 수 없는 인물들과의 연락과 미팅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서 가장 뜻 깊었던 순간이다.

 

필자를 비롯해 디스이즈게임 편집국은 이번 확률형 아이템 이슈가 단순히 유저 VS 개발자의 싸움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디스이즈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업계가 살아야 같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게임매체이고, 소모적인 싸움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이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디스이즈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취재와 보도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위에서 말한 직접적인 몇 가지 증거를 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디스이즈게임의 메인 전체를 확률형 아이템 기사로 채우는 수준의 보도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에서 자율규제안 강화도 밝혔고, 상반기까지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일정도 공개했으니 당분간은 ‘기다림’의 싸움이 될 듯하다.

 



 

김진수 기자  1년 전, 한 기획자의 증언​이 가져온 충격


약 1년 전, 한 개발자가 툭 뱉듯 털어놓은 말은 충격이었다. ‘실제로 최고급 아이템 확률이 0%인 이벤트’를 진행해 봤다는 이야기였다. 4월 7일 보도 이후 나왔던 "금방 망한 회사일 것이다”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꽤 오랜 기간 서비스해 온 온라인게임 기획자의 증언이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후 확률형 아이템에 관해 회사에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취재했다. 어차피 추가 취재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증언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증거를 입수해야 더욱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증언과 증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필자는 이 이슈가 매우 껄끄러웠다. 당연히 파급이 클 수 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게임기획을 전공했던 필자로서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게임업계 전체가 유저의 신용을 잃고, 개발자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

 



■ 확률형 아이템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

 

게임기획 전공자이자 게임유저이기도 한 필자는 모바일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져 가는 현상이 우려스러웠다. 확률형 아이템 외에 ‘사용자에게 재미를 주는 다른 핵심 메카닉’에 대한 게임 내 비중이나 개발사의 연구개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게임 개발자들에게 이런 푸념을 자주 들었다. 뽑기가 핵심 매출원이며 검증된 시스템을 추구하다 보니, 회사가 새로운 재미요소에 도전하는 걸 꺼린다는 이야기였다. 항상 새로운 것이 재미있거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게임이 발전하려면 새로운 시도는 필요하다.

 

게임유저로도 현재 많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운영 방식은 달갑지 않다. 최소한의 확률이나 기대값도 공개하지 않은 채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으니 돈을 쓰라고 유혹한다. 개발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달라지만, 유저는 확률형 아이템 상황부터 알려달라고 한다.

 

취재를 할수록 확률형 아이템이 점차 한 달에 몇 백, 몇 천 만원을 쓰는 사람들을 잡기 위한 모델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게임 개발사는 더욱 더 고액 유저 중심의 서비스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장기적으로 개발사와 유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 셧다운제의 후회, ‘4대 중독법’과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 발의

 

배철수 씨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20대는 현재의 사회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40대가 되면 사회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셧다운제를 막아내지 못한 데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다. 당시에는 기자가 아니었지만, 게임 개발에 쫓겨 ‘남이 막아주기만’을 기다리고, 그대로 내버려뒀다. 결과는 여러분도 다 알고 있을 셧다운제 통과로 이어졌다.

 

부끄럽고 후회된다. 그래서 ‘4대 중독법’이 발의됐을 때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기자의 본분을 다하기 위함도 있지만, 40대가 되어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뒤를 이을 세대에게 '4대 중독법' 같은 이상한 법안을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4대 중독법 이슈가 시들해질 즈음, 정우택 의원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세간에는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공개하라는 법안으로 알려져 있어서 호응하는 여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필자나 디스이즈게임 모두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 자율규제를 위한 ‘독촉’이 필요했다

 

첫째, 정우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매우 모호한 표현을 쓰고 있다. ‘게임 안에서 이용자가 보유하는 모든 콘텐츠에 대한 획득 확률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은 매우 모호하다. 이대로라면 모든 보스 몬스터의 아이템 드롭 확률 등까지 공개해야 하고, ‘우연성’에서 오는 재미와 개발자들의 자율적인 창작 범위를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임에 대한 이해 없이 내놓은 법안이다.

 

둘째, 다른 규제 법안의 근거로 사용될 소지가 많다. 실제로 토론회 등을 가 보면 ‘4대 중독법’의 찬성론자들이 게임 중독이 실제한다는 근거 중 하나로 사용하는 것이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있는 ‘과몰입’이라는 표현이다.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게임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로 랜덤성까지 걸고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정우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업계의 자율적인 움직임은 더욱 축소될 수도 있다. ‘국내 게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규제 법안 밖에 없다’는 인식이 높아질 것이 우려된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자율 규제를 지지한다. 하지만 기대보다 게임업계의 대응은 느리고 안이했다. 여전히 업계 공동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두 번의 자율규제 기회는 이미 놓쳤다. 어쩌면 이게 자율규제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론의 역할

 

개인적으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독립적인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내 개발사의 경쟁력 저하와 수익성 악화, 이에 따른 인력 이탈과 노하우 축적 부족 등 게임 생태계 전체와 연계돼 있다고 느낀다. 생태계의 전체적인 개선 노력과 함께 다뤄야 할 문제로 생각했다. 먼저 경쟁력이 악화된 생태계 전체의 이슈를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정우택 의원의 발의 법안과 현재 자율규제 관련 상황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사안이었다. 디스이즈게임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인지했다. 때마침 다른 기자들과 함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뒷이야기와 증거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보도에 앞서 고민도 많았다. 보도로 인해 벌어질 파급효과 역시 고려해야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업계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자율규제의 기회는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결국 확인한 사실을 보도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 제기해야 할 문제는 확실히 제기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언론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더불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임업계의 힘을 믿었다.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했다는 지적이나 논리적으로 좀 더 깔끔한 기사를 내보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한다. 나아가 보도로 인해 유저의 불신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점도 사과 드린다.

 

디스이즈게임은 지지부진하던 이 이슈를 제기했고, 논의를 촉발시켰다. 이후에도 우리의 역할은 뻔하다. 강제적인 법적 규제 대신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자율규제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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